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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요시모토 바나나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이 작가를 왜 좋아하는지 왜 비판하는지 알겠다. 비판에 대해서는 하루키에게 그러하듯 비슷한 지점이 있다. 짧고 가볍게 밀고 나가는 필치. 그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 어투와 결합된 일본 문화 특유의 휘발적인 단상조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이 자주 담는 기담과 공포까지 포함해서.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 소설에 대해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이 소설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는 [작가의 말]이 다 전하고 있다. 재능이나 결손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한 것과 작가가 선호하는 테마들을 최대한 실험해보고 싶었다는 것.
시원치 않은 작가 생활과 삶을 산 다카세 사라오라는 작가가 마흔여덟 살에 자살하고 그가 미국에서 낸 단 한 권의 단편집을 둘러싸고 이 소설의 인물들이 엮인다. 작가의 자녀들인 쌍둥이 남매 사키와 오토히코, 스이, 다카세 사라오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다가 자살한 쇼지, 쇼지의 어린 연인이었던 가노. 이들의 삶도 비슷비슷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겪었고 여전히 그 영향 속에서 살고 있는 사키, 오토히코, 스이, 가노. 재능은 있었지만 삶 속에서 무너진 다카세와 쇼지. 이들은 "미행당하고 있다는 망상에 젖어 있는 분열증 환자처럼은 아니라 해도 무언가에 홀려 있지 않은 때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시간의 무게는 나눌 수 없는" 사람 삶이 대체로 그렇지 않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흘러가지만 그 자체로도 사실 버겁다. 작가였던 다카세, 번역가였던 쇼지의 처지와 심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가노의 어머니가 탈출구를 원했듯이 쇼지에게 여고생 가노, 다카세에게 스이가 그런 역할이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의 무게만으로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다음 세대의 극복에 집중한다. "무언가를 은닉한 사람만의 강함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듯 보이는" 사키는 심리학을 공부하며 자살 같은 저주에 빠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뭇사람들과는 어긋나는, 자립해 있는 재능의 자기 충족적인 무언가. 다른 사람과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내면의 고뇌 같은 것. 몇몇 사람에게만 통하는 강력한 신호"를 가지고 있는 스이는 관계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아버지처럼 창작 재능이 있는 오토히코는 스이와의 관계가 끝나며 아버지의 그림자와 광기 어린 삶에서 빠져나와 독립적인 작가로 전환할 시기를 맞이한다. 가노는 이들을 통해 쇼지와의 아픈 기억을 극복한다.
우리는 매년 여름을 겪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인생의 순간들도 맞는다. 욕망과 꿈 실현 때문에 서로 갈등하고 상처도 주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모두 마음속에 여름 같은 열정과 바다 같은 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작가와 함께 나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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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책을 만나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는데, 역시나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 소설 N.P는 나 라는 인물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나는 가노 카자미 이다. 그녀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자신의 어머니와 헤어져 집을 나간 아버지 때문에 어린시절 엄마와 언니 이렇게 셋이 살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은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는데, 그녀가 고등학생일때 자신과 열일곱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토다 쇼지라는 인물과 사귀었다. 쇼지는 다카세 사라오 라는 미국에서 유명한 일본 작가의 N.P라는 소설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그 소설 속에는 총 아흔일곱편의 단편이 들어 있고 다카서 사라오 라는 인물이 48세에 자살하고 난 이후 아흔여덟번째의 소설이 나타났단다. 그리고 그 아흔여덟번째 소설을 번역하던 쇼지는 어느 날 수면제를 복영하고 자살했다. 이로써 다카세 사라오 작가의 아흔여덟번째 소설을 번역하다 자살한 사람은 총 3명이다. 이 소설은 어쩜 자살을 부르는 저주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 아흔여덟번째 소설의 내용은 작가 다카세 사라오가 술집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추후 알고 보니 자신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소설로 적어 놓은 것이라 한다. 나 라는 인물 카자미는 5년전 어떤 모임에서 쇼지덕에 다카세 사라오의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있던 쌍둥이 남매를 보게 되었는데, 그 이후 몇년이 지난 어느 날, 즉 쇼지가 자살로 떠난 이후 우연히 길가에서 그 남매의 남동생인 오토히코를 만나게 되고, 누나 사카도 만나게 된다. 또 아흔여덟번째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는 스이라는 오토히코의 여인이자 다카세 사라오의 딸을 알게 되는데, 어느 순간 그들 모두는 나 라는 인물인 카자미와 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이렇듯 미발표된 아흔여덟번째 단편 소설을 통해 뭔가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가 소설 책 속 전반에 흐르고 있는데, 나 라는 카자미를 통해 조금씩 밝아 지는 듯 하다. 하지만 좀처럼 저주가 걸린 것처럼 모두가 왠지 자살을 할 것 같은 분위기. 그리고 어딘지 모르는 불안, 우울 등 어찌보면 소설이 아주 음침한 분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하지만 좀처럼 그런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모든 것이 나 라는 카자미 덕분에 누군가에게나 희망이 되고, 의지하고 픈 인물이 되어주고 있는데,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는 왜 소설속에서 근친상간, 레즈비언, 어딘지 모를 초능력, 텔레파시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지 궁금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