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하다는게 이런게 아닐까 싶다. 삶이...
세상사 험한 파도와 같다 하지만 삶의 길에는 파도만 있는게 아니니까 그 과정을 헤쳐 나가면 또다른 빛이 우리를 반겨줄 것이란 희망이 있기에... 지금도 살아가는게 아닐까 싶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힘들고, 외롭고, 타인에 대한 부정을 갖게 하지만 작자의 글 속에 나타나듯이 눈을 떠 자세히 살펴보면 삶은 훈훈함으로 가득차있기도 하다는걸 알게 될 것이다. |
|
책을 읽으며 점점 말랑지는 이 좋은기분과 위안은 최근 읽은 책들의 저자들의 경제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이어 더 가슴에 포근한 기분 좋음이 소복소복 쌓였다 읽던 중에 작가의 책을 북카트에 닮으며 기분 좋아함과 동시에 읽으려 사둔 책들의 직업들이 물리학자 경제전문가란걸 확인하고 아 다음 고비를 어떻할건지 고민이 되었던....
책을 읽으며 말랑해진 이 기분좋음과 위안에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며 다른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
![]() 1월에 출간되자마자 구매해 읽었다. 알맹이가 없고 너무 가벼운 에세이들이 많아져 에세이 자체를 읽지 않는 독서가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는 다르다. 김소연 시인의 <시옷의 세계>를 시작으로 시인들의 에세이를 찾아보게 되었다.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은 모두 읽었는데 가장 산뜻하고 좋은 의미로 가벼운 것 같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챕터로 구성되어있어 해당 계절이 다가올 때 다시 한번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겨울에 읽고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 다시 읽어보려 책을 꺼내며 좋았던 문장을 기록한다. 다시 한번 읽을 때 나에게 와닿을 문장은 어떤 것일지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된다. ![]()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끝까지 묻는 일. 이 질문은 존재에 대한 사색이 아니다. 생존 가능성에 대한 타진이다. p.30 그러나 용기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전하는 칭찬은 소용스럽지 못하다. 위로하기 위한 칭찬임을 그들이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다른 종류의 낙담을 한다. 자신을 냉정하게 알아채고 있는 사람일수록 진짜 칭찬과 진짜 위로와 진짜 교감을 더 잘 알아본다. p.33 좋은 사람. 오십 년을 그렇게 했든 하룻밤을 그렇게 했든,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함께 있어주면 가능해지는 것. 나는 할머니덕분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쉬운 걸 이제야 알게 됐다. p.40 |
| 믿고 보게되는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사실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의 시규 하니 외우지 못하는 독자이지만 매력적인 산문에 이끌려 아렇게 책이 나올때마다 한권 한권 쌓아가면서 읽어가고있네요. 이번 나를 뺀 세상의 전부역시도 그간의 보여주었던 그녀만의 담백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을 잘풀어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에세이스트를 마난다는건 행운입니다. |
|
한때 에세이를 열심히 찾아가며 읽었던 적이 있었다. 문학적인 감수성이 한참 피어오르던 시기에 작가의 표현 하나하나가 심장과 머리를 관통해서 찌릿찌릿한 환희를 가득 안겨주곤 했었다. 김소연 작가의 시는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고, 글도 이 책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쉽고, 짧게 씌어진 글들이 가슴에 와 닿기도 했지만, 책장을 덮었을 때는 딱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었다. 이런 글들도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될 수 있다니... 나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였지만, 적어도 메모해 두고픈 문장하나, 기억할 만한 소소한 이야기쯤은 남았으면 했는데... 요즘에 나온 에세이집들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이야기에 동화되는 시점은 모두 상이하기에 내 감상도 지나치게 박한 면한 없지 않아 있으나, 글쎄.... 책장이 너무 잘 넘어가는 책인것은 분명하다.
|
|
설 명절을 앞두고 있다. 며느리들의 스트레스 수치가 서서히 증가하고 덩달아 아들들의 스트레스 수치 또한 올라가는 때다. (딸의 스트레스 수치는 딸이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사위의 스트레스 수치는 오르지 않는다.) 자식들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부모들로 가득한 나라이니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들의 행복감 또한 올라갈리 만무하다. 나는 도통 명절의 존재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연휴이므로 책이나 실컷 보는 걸로 자족한다.
“...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일을 가까스로 할 수 있는 게 문학이라고 믿어왔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문학이 더 많을 때에, 그것을 나는 여전히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p.31)
《나를 뺀 세상의 전부》는 시인의 일기글 같은 것이다. 날짜가 적혀 있지는 않지만 계절에 따라 구분하고 있기는 하다. 시시콜콜한 일상의 기록들로 거개가 채워져 있지만 직업이 시인이니 문학에 대한 일갈들이 드문드문 등장한다. 문학을 앞에 세우기보다 인간을 앞세우려는 태도가 있다. 문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에 좀더 방점을 찍고 있다.
“언제나 불의는 홀로 완성되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고,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구성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자기 정당화, 각자의 피치 못할 사정, 각자의 선의에 입각한 타협이 각자의 침묵을 만들었다. 이것들이 결합하고 서로 도와야 불의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나는 결코 아니었다고 단언하기에는 내가 속한 준거집단에 나는 긴밀하게 연결된 채 살아왔다.” (p.81)
영화나 문학 작품을 읽은 소회가 인간과 사회의 어떤 구조를 읽어내는 단초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나서 기록하는 위의 단락과 같은 경우가 그렇다. 개개의 생활인으로 존재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이 불의한 시스템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지를 아프게 가리키는 대목이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데, 탄핵 이후 새로운 대통령 이후에도 여전히 견고하게 작동하는 적폐의 시스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생활 아닌 것들로 거의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시. 작품이 되어 본 적 없는 우리들의 생활. 생활은 어째서 시에게서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세계가 되어 있는 걸까. 생활이 곧 자부이자 자랑인 세계는 평범하기만 한 걸까. 평범함은 어째서 시가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p.156)
시인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떠올리는 위와 같은 성찰의 떠올림도 나쁘지 않다. 시와 생활의 분리가 만들어내는 이율배반이 스스로에게 납득되지 않아 토로하는 한숨 같다. 시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이나 시를 논하는 평론가의 시선에 구애받기보다 시를 향하여 갖게 되는 어떤 의구심에 사로잡히는 작가가 더 보기 좋다. 작가의 시집을 곧잘 읽는데, 이러한 의구심이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겠다.
“서점을 나와 근처 커피집에 앉아 눈발이 날리는 골목을 내다보다가, 새로이 꿈 하나를 꾸게 됐다. 사전만 전문적으로 갖춘 작은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 누가 내 꿈을 대신 이룬다면 그것도 무척이나 기쁠 것 같다.” (p.227)
소파에 드러누워 아직 반 너머 남은 휴일을 떠올리며 느긋하게 읽기에 좋았다. 사전 전문 서점에 대한 대목을 읽을 때 동생 녀석이 처음 들어갔던 체코어학과, 동생이 들고 왔던 정식 출판되지 않고 사본으로 존재하였던 체코어-영어 사전이 생각났다. 체코어-한국어 사전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지금은 체코어-한국어 사전이 (딱 한 권이지만) 팔리고 있다. 사전 전문 서점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김소연 / 나를 뺀 세상의 전부 / 마음의숲 / 261쪽 / 2019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