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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주 화요일마다 조선일보에 이 책의 제목인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는 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칼럼들 중 2016년 6월 21일부터 2018년 10월 12일까지 쓴 칼럼을 모아서 쓴 책입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책을 소재로 하여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서 현대의 시사를 풀어내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이 칼럼에는 부제로 책 제목이 실려 있고 칼럼마다 책 한 권씩을 소개하며 현실과 연결을 짓고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이나 찰스 디킨스 같은 고전은 물론이고 지난해 미투(Me Too)운동이 한창이었을 땐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 같은 최신작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좌파의 어젠다로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며 저자가 처음 교단에 섰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건 힘이 없는 여성들에 대한 연민이라는 보편성을 띠고 있었는데 그런 것까지 좌우로 편을 나누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포함되지 않은 최근 저자의 칼럼도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살인마'라 부르길 서슴지 않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어서 틀어쥐는 것? 아, 생각만 해도 오한이…"라며 분개하는 칼럼 등 책 내용을 통해서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탈원전, 최저임금 급격 인상 등 정책 부작용이 명확한 것들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계속 반복해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속 농민들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시책으로 나중에 캘리포니아의 중·상류층이 됐는데 이 정권은 우리 중산층의 하락을 방관 혹은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식입니다.
이렇듯 정치 성향이 뚜렷한 칼럼이고 저자도 그것을 서문 등에서 분명히 자신의 성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감안하고 읽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칼럼집의 가장 큰 특장은 역시 동서고금의 명저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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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교수님의 글이면 보수의 글인 것 같다. 난 보수나 진보, 좌파, 우파의 개념이 전혀 없었다. 아빠집안이 지주집이었는데 공산당에게 할아버지가 생매장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아빠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싫어하시는 걸 봤다. 그래도 난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자본주의나 성공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누구의 편도 아니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자국의 이익을 따라가는 것인데 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있는 나라는 미국이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저물어가는 사상이다. 마르크스도 부르주아계층이었는데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제창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war room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정말 감명을 받았다. 우리가 정말 싸워야 할 존재가 누구이고 전략을 잘 짜야지 승리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미국 헐리우드영화를 보면 정말 타락하고 윤리의식이나 도덕의식이 낮은 나라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또 그런 영화를 보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하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잘 알기 위해서는 서지문교수님의 글을 읽고 정치사상을 무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cnn뉴스와 일본뉴스를 보면 우리나라 뉴스와 약간 뉘앙스가 틀린 것을 느꼈다. 왜 그럴까를 계속 생각했는데 언론이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을 알았다. 보수, 진보의 개념이 뭔지, 내가 보는 뉴스의 눈이 얕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텔레비전은 뉴스만 보는데 서지문교수님의 깊은 눈으로 뉴스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박성진 중소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으로 인식하고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높이 평가한 죄로 좌파 진영으로부타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요즘 들어 갑자기 제기된 대한민국 건국이 1948년이 아니고 1919년이라는 좌파 진영의 주장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나도 계속 1948년이 건국년인 줄알고 있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건지 궁금하기는 했다. 로미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장미는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똑같이 향기로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1945년에 외세의 힘으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우리나라는 극도의 혼란 속에서 국가 경영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절대부족으로 허덕였다. 그러나 만 3년의 분투 끝에 대강의 질서를 잡고 나라의 기틀을 마련해 어렵게 대한민국을 출범시켰다. 취약점이 너무 많은 나라였지만 6.25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절치부심하며 세계가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고 국민의 수명을 2배로 1인당 국민소득을 500배로 늘렸고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좌파 진영에서 그 설립을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임시정부는 국가의 구성 조건인 국민, 영토, 주권 중 하나도 갖추지 못했고 국제적인 인정도 받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의 중추였던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역력히 증언하듯 임시정부는 내부 분열과 불순분자들의 준동으로 인해 숱하게 존립을 위협받았고 단결해서 어떤 목표에 매진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본국의 국민을 정신적으로 지도하지도 못했고 한국의 처지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1919년의 상해 임시정부 설립이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는 하다. 그러나 임시정부 수립이 곧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주장을 외국인이 듣는다면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저자의 말로는 이 논쟁은 북한이 그들에 동조하는 세력이 나라의 정통성을 임시정부로부터 북한으로 옮기려는 시도라고 한다.
난 손석희의 토론프로나 라디오, 손석희의 뉴스만 봤다. 손석희의 책도 전부 읽었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신뢰를 갖지 못했고 JTBC에서 TV조선으로 모든 뉴스를 옮겼다. 엄성섭앵커나 신동욱앵커를 신뢰하면서 그쪽 뉴스만 본다. 유튜브뉴스도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해서 황장수의 뉴스브리핑이나 고성국TV를 보기 시작했다. 손석희에서 황장수로 옮기는데에는 많은 시각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등나무집은 말레이시아 공화국에서 이복동생 김정은에 의해 살해당한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회고록이다. 김정일-성혜림-김정남의 기이한 가족사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정작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성혜랑-성혜림 자매 집안의 3대에 걸친 가족사이다. 이런 얘기는 어디서 들어 볼 수 없는 얘기같다. 두 자매의 조부모, 부모의 생애를 통해 격변기 우리 민족의 의식이 형성된 여건들을 조망할 수 있고 공산주의의 생리를 충격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아들이 아내의 편을 든다고 아들을 때려서 죽게 한 남편에게서 독립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외할머니,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 같은 삶을 살지 않는 세상을 동경해서 공산주의를 영접하고 공산주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공산 정권을 받들었던 어머니, 그리고 대지주의 후예인 아버지는 상속받은 토지를 모두 소작인에게 나누어주어 공산주의를 실천한다. 처음엔 문재가 뛰어난 어머니기 로동신문을 혼자 집필, 편집하다시피 하면서 공산주의의 귀한 일꾼으로 칭송과 영예를 누렸고 아버지도 김일성에게 모범적 사상가로 치하를 받았지만 공산당 세력 중심에서 차츰 밀려나서 어머니는 거듭 실질적인 강등을 당하고 아버지는 지주 출신이라는 낙인을 떨쳐 낼 수가 없다. 몇 십 년을 공산주의를 위해 뼈 빠지게 헌신했던 성혜랑의 어머니는 노년에 6시간을 혼자 무대에 세워져 자아비판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끼니조차 불안해졌다. 시동생의 친구였던 김정일이 자기 여자로 불렀을 때 성혜림은 거절할 도리도 없었지만 부모를 곤궁과 박해에서 구하기 위해서 수락한다. 김정일과의 사실혼은 성혜림을 신경증에 시달리게 했고 김정일이 애지중지한, 둘 사이의 아들 김정남은 결국 아버지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바에 의하면 김정은이 노동당 간부들의 본보기식 숙청-처형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 간부들은 야심에서였건 충성심에서였건 공포심에서였건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다. 저자는 그런 정부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북한을 닮아 갈까 봐, 북한의 세력권에 들어갈까 봐, 친북 세력의 약진이 두렵다고 한다. 저자가 해주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보거나 요즘 왜 그런지 의문이 드는 것에 대해서 잘 알려 준다. 뉴스에서 헌법 전문의 자유를 뺀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건 또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헌법 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것이 실수로 빠뜨렸다는 해명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 수정 지침에도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라고 했으니 실수가 아니었다고 한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부는 무언가를 추진하면 국민에게 설명을 충분히 해주고 조율이 안되는 것은 국민투표에도 붙였으면 좋겠다. 저자는 지구상에는 인민민주주의라는 몬스터가 있다고 한다. 인민에게서 자유를 박탈하고 억압, 학대하는 무자비한 반민주주의, 독재의 가면이라고 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총칼과 채찍과 교화소의 위협으로 인민민주주의에 길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불가능할 듯하지만 강건하고 기개 높은 우리의 북녘 동포도 길들였다고 저자는 바로 답을 한다. 인민민주주의하에서는 촛불 혁명 같은 민중 항쟁은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인민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어떤지 정확하게 알려 줬으면 좋겠다. 촛불 혁명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독재 정권이어서가 아니고 국민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허약한 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4.19혁명도 이승만 독재가 빈틈이 많고 표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고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의 고전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도 직접적인 원인은 부르봉 왕조의 무자비한 억압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대와 달리 선량하고 유약했던 루이 16세 치하에서 철권통치가 대폭 약화되어서 자유를 맛본 민중이 간헐적인 통제나마 견디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다. 인류에게서 역사의 발전이란 자유의 확대 과정이었다. 서열이나 억압은 인류가 공동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늘 있어 왔지만 농경사회부터 인간은 조직적인 계급사회, 즉 불평등 사회에 살았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소수가 그 공동체의 힘을 키우면 사회발전의 모멘텀이 생긴다. 그래서 국부를 창출하고 국력을 신장할 국민의 능력 개발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신장되었다. 자유와 권리의 선순환이 선진국을 창조했다. 북한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억압으로 연명하는 체제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왜 북한 체제를 모방해야 하냐고 의문을 던진다. 난 항상 우파정부이든지 좌파정부이든지 현정부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다. 황소장님이 좋은 이유도 모두까기를 해서인 것 같다. 정치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그런 논쟁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싶고 깊은 통찰력은 가지고 싶다. 저자의 언어가 조금 어렵기도 하고 사전을 찾아 봐야 하기는 하지만 깊은 통찰력을 인문학과 현정치현상으로 같이 묶어서 알려 주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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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여의 집필기간 동안에 나의 칼럼은 매회 절규가 되었다. 물론 내 정치 감각이 예리하지 못해서 분석이 정밀하지 못한 면이 있겠지만 어쨌든 나와 같은 울분, 위기감, 그리고 부당함에 괴로운 독자들에게는 나의 칼럼이 그들의 분노를 대변해주는 작은 카타르시스의 장이었다고 한다. - '저자의 말' 중에서
국내외 이슈를 성찰하다
이 책의 저자 서지문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 학사, 웨스트조지아 대학 영문학과 석사, 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1978년부터 35년간 고려대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고려대 명예교수다. 석사취득 직후부터 시작된 저자의 집필은 국내 국, 영문 일간지와 주간지에 문학과 시사를 넘나들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유명 칼럼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는 무게감을 지닌 정론으로 평가받는다. 왜냐하면 국내외 전반에 걸친 이슈를 연관이 있는 출판물과 접목시켜 조용한 듯하면서도 거침없는 표현으로 독자를 휘어잡고 있기 때문이다. 35년간 대학교 강단에서의 명강의로 정평이 났을 때처럼, 핵심을 놓치지 않되 쟁점을 둘러싸고 있는 사안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다. 이 칼럼 120편을 묶어서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부르키니의 여인들
부르키니burquini를 아는가?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이는 무슬림 여성들이 입는 수영복의 일종으로 무슬림 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인 '부르카burka'와 '비키니bikini'의 합성어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부르카는 무슬림 여성복식 중 가장 폐쇄적인 형태로, 몸 전체를 가리는 복식으로 눈 부위까지 망사로 가려 다른 사람과 인상착의 구분이 어렵다.
그런데, 왜 이런 수영복이 생겨났을까? 무슬림 여성들이 신체를 숨겨야하는 이슬람 규율을 지키며 수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수영복 패션인 셈이다. 무슬림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수영은 하고 싶고 몸은 가려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 수영복의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즉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모로코 등의 일부 수영장에서는 착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최근엔 프랑스에서도 착용 금지 대열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서 교수는 이런 차별적 대우와 관련해 이런 칼럼(2016/8/30)을 올렸다.
오늘날 이슬람 여성들에게 씌운 굴레는 전 세계 여성들이 유사한 형태로 겪어 온 것이다. 유교 체제하에서 양반 계급의 여성은 길에 나갈 때 장옷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인수대비는 '내훈內訓'에서 지혜로써 남편을 깨우치고 인도하는 아내를 이상적 아내로 꼽았지만 또한 아내는 남편이 발로 차더라도 반항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존귀했던 서양의 숙녀도 숙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갖은 제약은 물론 수모도 견뎌야 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반半실화소설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에서 탐스러운 머릿결의 과부 소멜리나는 외지인과 하룻밤을 지냈다는 이유로 교회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목이 잘린다. -
그러면서 칼럼의 말미에는 "이슬람 여성을 무학無學과 여성 할례, 명예살인, 부르카 착용, 일부다처제의 굴레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금지보다 그들의 증오와 반감을 누그러뜨릴 우정과 인내, 선의의 설득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글을 남겼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선 틀릴지 몰라도 약자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다를 뿐인 것이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도 인간의 생활의 한 부분 아니겠는가?
구관이 명관
현재 대한민국이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도무지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치 망둥이처럼 펄떡거리기만 한다. 얼마 전엔 남북간의 지도자가 평화회담을 한 후, 서울시청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반면에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 모임이라는 소위 '태극기 집회'는 불법으로 간주하거나 허용하더라도 집회 장소에 매우 인색한 편이다. 현 정부는 지난 시절의 모든 정부는 모두 말살하고 자신들의 이념을 앞세워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열정이 활활 타고 있다. 이와같은 정치 작태에 관해 서 교수는 이미 경고성 칼럼(2017/3/21)을 올렸다.
우리의 반미주의자들은 이런 미국의 행동을 요즘 한국의 '사드' 도입을 저지하려고 중국이 벌이는 조폭적인 행패와 비교해 보았을까?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화 저지가 1차적 목표였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를 보전해 주고 막대한 원조를 주면서도 '동맹국'으로 대등하게 대우했다. 반면 중국은 6·25 때 백만 대군을 보내 한국을 쓸어 없애려 했던 나라다. 그런데도 한국은 1992년 수교 후 이웃으로 중국의 경제 개발을 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칭 신형 대국이니 G2니 하며 우리를 짓밟고 능멸하려 든다.
저자는 칼럼 말미에 "트럼프 대통령의 '당하고만 있지 않는 미국'은 우리의 반미에 어떻게 대응할까? 어떤 경우라도 중국처럼 야만적이진 않을 테니 그로써 위로를 삼을 수 있을까?"라고 우리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고 있다.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이 지난 과거를 모두 잊고, 현재의 작은 성공과 영화에 만족하며 민족주의를 부르짖고 홀로 서기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 한반도의 남쪽을 노리는 세력이 준동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우리의 국방력은 이들 나라에 비해 열등한 편이다. 이리 되어도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는 괜찮을까? 난 지금도 나의 자식과 손자 세대를 앞서 걱정하고 있다.
최선의 추모는?
지금껏 우리의 정치세력은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이슈를 정말 오랫동안 우려 먹는다. 이런 일환으로 현 여권은 최근까지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념하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가져왔다. 이런 류의 행사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정치적 쟁점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는 건설적인 대안을 준비하는 게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즐거운 수학여행을 떠난 고교생들을 태운 배가 일기 상황을 고려치 않고 무리하게 출항해야만 했던 이유, 적정 화물량을 초과해서 적재한 이유 등등 향후에는 사고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청사진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성공적인 인양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미수습한 시신 9구를 찾고자 나라 재정을 무려 1천억 원을 투입했다. 이 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그나마 인양이 종료되면 광화문광장에 어지럽던 천막이 걷히고, 말도 되지 않는 황당한 모략성 발언이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아 유가족들도 일상의 생업으로 돌아갈 것으로 온 국민들은 기대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 뒤에 엄청난 기름띠가 해안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새로운 재난이 등장한 것이다. 이에 관련해, 서 교수는 다음과 같은 칼럼(2017/3/28)을 올렸다.
세월호 인양 이야기가 나왔을 때 기름 유출 가능성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그런데 유족의 '망자에 대한 도리'에의 집착과 국민의 안쓰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그 재앙 가능성을 묵살하게 했다. 막대한 인양 비용을 우리 사회의 약자를 돕는 데 쓰는 게 망자들을 더욱 뜻 깊게 기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애석하게도 유족들을 그런 방향으로 설득하려 한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늘 초강경 투쟁으로 일관하는 환경 운동가들도 왜 일제히 침묵했을까
마지막으로 칼럼 말미에 서 교수는 공자의 논어를 인용했다. 즉 공자는 논어 제19편 '자장子張'에서 " 상사애 기가이의喪思哀 其可已矣·(상에는 슬픔을 생각한다. 이 정도면 된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최선의 추모는 무엇이며, 그동안의 정치세력과 환경단체들은 무슨 이익을 노리고 그토록 세월호 조사와 인양을 주장했던가 말이다.
대통령 발언의 막중함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는 브루투스가 시저가 독재할 것이 두려워 살해했다고 말하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어서 안토니가 등장해 시저가 얼마나 로마 시민을 사랑했는지를 뜨겁게 웅변했다고 기술한다. 이 웅변 뒤에 로마 시민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렇다. 로마 시민들은 브루투스를 죽이라고 격렬히 외친다. 이처럼 지도자의 말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유족들에게나, 영화 <택시운전사> 관람 후에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괴담'은 처음부터 거짓이었기에 침몰 원인은 명백했고 구조 책임을 잊은 당사자의 처벌과 함께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다. 이제 또다시 광부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발언했다. 언제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릴까?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하여 서 교수는 칼럼(2017/8/22)에 이런 글을 올렸다.
대통령의 북핵 관련 인식과 발언 역시 너무도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자기 나라 국토, 국민이 핵 공격을 받을까 봐 속이 타들어 가는 미국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즉 북한은 한반도 밖인 미국을 공격할 수 있지만 미국의 북한 공격은 허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말은, 내 동생이 미쳐서 총을 난사하겠다고 날뛰고 있지만 동생이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 그 총을 뺏으려 하면 안 된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나는 발악하는 동생 앞에 내 자식들을 발가벗겨 내놓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주문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과 문 대통령이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 김정은 정권인가, 북한의 2천만 동포인가.
지금도 연재중
정치, 문화, 시사, 페미니즘, 인종차별 문제까지 주제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특히,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국민들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한다. 이는 글쓰기를 사명감과 '죄 닦음'으로 여기고 단어와 문장에 신중을 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사명감을 맛 보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치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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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 언젠가부터는 신문을 읽지 않고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또 최근 일어나는 사태들로 언론을 보는 시각도 곱지 않아졌고 언론사들도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에 믿음도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인데요,, 그럼에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것은 책 소개글에 보여졌던 서지문의 칼럼의 글 때문에 이 분이라면은 ~~하는 호기심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속이 다 시원하게 느껴지네요,, 답답한 제 마음을 뻥 뚫어주는 느낌이랄까요? 이 책은 지난 2년 반 동안 조신일보의 칼럼 <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 > 로 연재되었던 칼럼 중에서 120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정세의 이슈를 이에 연관이 있는 책과 함께 엮어서 저자만의 정론으로 전투적으로 핵심을 파고 들어 지적과 비판 그리고 나아갈 바를 말합니다. 2016년 6월 21일 영국의 EU의 탈퇴 이야기부터 2018년 10월 9일 < 국민 세금은 공돈이 아니다 > 칼럼까지 총 120편의 칼럼이 있는데 한 편당 할애한 페이지는 신문에 실어 놓은 글에서 조금 더 추가를 해서 한 칼럼당 2페이지이니 1~2분의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간결함이 생명인 짧은 칼럼이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명확하게 전해져서 한 문장 한 문장 얼마나 심혈을 기울려서 글을 썼는지가 느껴지는 동시에 전문적인 글쓰기는 이래야 한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저자의 칼럼의 글을 읽으면서 절대적인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 너무나 서민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물가는 올라가고 세금은 갖은 수로 더 많이 뜯어낼 궁리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 서민의 생존과 직결된 쌀값만 해도 몇년전과 비교를 해서 몇십프로가 오른지 모르겠습니다. 좀더 내나라 국민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거든요,, 저자는 자신과 같은 울분, 위기감, 그리고 부당함에 괴로운 독자에게 자신의 칼럼이 우리의 분노를 대변해주는 작은 카타르시스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칼럼을 읽다가 보면은 절대적인 공감이 가고 속이 다 시원해져서 저자가 원하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저는 정말 좋게 잘 읽었습니다. 부정청탁금지법인 일명 김영란법의 도입과 앞으로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박과 같은 대륙 횡단 철도 건설에 관한 저자의 생각, 그리고 그리고 마지막 글에서 < 국민 세금은 공돈이 아니라> 칼럼에서 마지막 문장이자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했던 저자의 따끔한 한마디.. 정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국민이 정부를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너무나 공감이 갔네요.. 칼럼을 읽으면서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에 따라서 이 칼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보수적 시각으로 현 상황을 바라보고 내 놓는 의견에도 귀담아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우리나라 정치, 사회와 세계 정세에 관련된 책도 함께 소개하고 내용도 언급이 되어 있어서 또 다른 독서로 연결이 되는 점도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간결하고 짧은 칼럼이지만 정치, 문화, 시사, 페미니즘, 인종차별 등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꼭 한번 읽어보면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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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언론사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이 책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는 120편의 국내외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저자의 사명감에 독자로서 느끼는 바이지만 다른 도서들과는 달리 전문성과 다양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호볼호가 달라질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120 편의 칼럼 내용에서 보여주는 보수적 편향성에 박수를 보내는 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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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당시를 알지 못하더라도 문학 작품을 통해 어렴풋하게라도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시대의 뉴스를 관련된 문학이나 책을 연관지어 다시 읽을 수 있게 한 것이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이다. 당시의 뉴스를 통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기도 하고 몰랐던 책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는 저자가 조선일보에 2년 반 동안 매주 연재했던 칼럼들을 모아둔 것인데 칼럼이라 짧은 분량으로 시대와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그동안의 칼럼들을 읽다보니 시대의 변화도 느낄 수 있고 뉴스가 화제가 된 시점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정치와 문화, 세계 트렌드 등을 한꺼번에 읽고 앞으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부르키니'에 대한 글이 책의 초반에 있기도 했지만 부르키니와 여성 인권에 대한 글이 인상이 깊었다. 부르키니는 이슬람 여성들이 입는 옷으로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가리는 옷이다. 날씨에 상관없이 이슬람 여성들을 이런 옷을 입고 외출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이 장옷이라 하여 얼굴을 대부분 가리는 옷을 입고 외출해야 했다. 이런 여성들의 인권은 21세기가 되어도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그리스인 조르바'에도 외지인과 하룻밤을 보냈다는 이유로 과부 소멜리나는 교회 앞에서 목이 잘린다. 이런 참혹한 현실은 지금도 여성들에게 씌워진 굴레이기도 하다. 채만식의 단편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은 취직운동을 하지만 거절만 당한다. 조선시대에도 무직자는 많았다. 양반 대부분이 무직자였고 일제강점기가 되어서 직종 다양화로 서민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을 하면서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나마 자력 생존의 길이 열리는데 현재는 청년 실업이 점차 늘어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청년 실업 문제를 이용해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공약을 내지만 그것은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일뿐이다. 그리고 요즘 뜨거운 감자이기도 한 '법'에 대해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어본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19세기 러시아의 사법 정의를 여지없이 비웃었다고 한다. 법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심리와 판결에 사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법은 현재의 현실과는 다른게 많아 사볍 개혁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외에도 대통령 탄핵 사건이나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정책 등등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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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인터넷을 통해 칼럼을 보다가 마주했던 서지문의 칼럼. 많은 칼럼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그동안의 칼럼이 책으로 엮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칼럼을 이번 기회에 만나보자는 생각에 만나게 된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입니다. 2년간 연재되었던 칼럼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 된 이책 제목은 신문 칼럼의 제목과 같습니다. 신문에서는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압축해 썼던 칼럼을 뜻이 더 명확해지도록 최소한의 수정을 했다고 합니다. 칼럼들은 국내의 다양한 뉴스를 저자는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거침없는 분석과 함께 뉴스에 연관이 있는 도서를 통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게 서지문의 칼럼이라고 합니다. 칼럼들을 보면 다소 거침없는 분석으로 놀라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이렇게 거침없어도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할 정도로 거침없는 분석이 꽤 많습니다. 어쩌다 한 두번 나오겠지 했지만 저자의 거침없음은 멈추지 않고 이어집니다.
최근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정상회담에 쏠려 있는데, 이 책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지난 1차 북미정상회담 뉴스의 칼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칼럼과 연결된 책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입니다. 그 책이 연결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 한국의 Me Too 운동 확산으로 인해 들어난 추악함을 보여주는 뉴스는 작년 한국에서 가장 많은 책이 팔리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82년생 김지영]과 연결됩니다.이 소설이 미투 관련 뉴스와 관련이 있나 당장 확인해보고 싶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오만과 편견]등 다양한 문학작품들과 만나는 칼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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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놀랐다. 세상 돌아가는 현상과 이슈들에 대해 단순한 의견과 칼럼을 기재한 것이 아니라 문학속 내용을 기술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에 연결해서 문제와 우려의 소리들을 담아 함께 공감하게 한다. 2016.6.21~2018.10.9 까지 조선일보에 실었던 칼럼 120편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칼럼이 올려지던 시기가 우리나라에서는 참 많은 일들과 사건 사고들이 가득하고 국민들은 광화문 및 여러 곳에서 집회로 모이기에 힘쓰고 역사적인 일들을 이루어내던 시기이다. 당연히 칼럼은 담담한 소식들보다 무거운 내용들이 주된 것이었다. 그러니 내용이 전하는 강도나 저자가 글에서는 격앙된 외침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여러 책속의 이야기을 통해 공감하고 같이 욱하게 되는 내용들이 팍팍 다가온다. 이미 한참 지나버린 그 시간의 이야기들을 2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읽는 지금도 이렇게 다시 생생해 지는 것은 아직도 현 시간들이 과거의 시간들을 청산해 내지 못하고 있는 때문인것 같다.
뒤에 대통령이 된 트럼프에 대해 나오는 내용이 또 있다. 마크 트웨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이야기를 통해 주목받던 대통령 이외의 무수한 기억에 남지 않는 여러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강국인데... 책 이야기와 더불어 세상 이야기를 같이 이어주니 내용이 더 잘 집중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자신들이 잘났다고 큰소리치는 어리석은 정치인들의 모습에 고개가 흔들리고 쯧쯧하는 소리가 저절로 이어진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한 정치인은 불가능한가?
작년에 엄청나게 세상을 흔들었던 '미투' ... 나도 당했다. 무분별하게 드러난 내용들도 있었지만 정말 굵직한 소식들에 자살한 사람도 있고 억울함을 꾸준히 호소하는 사람, 왕성히 활동하다 사라져버린 무수한 사람들로 인해 여기저기 벌집이 되어 시끄러운 세상이 었다. 지금은 다양한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시끄러움은 언제까지 일지 끝을 모르겠다. 앞으로도 이런 칼럼은 꾸준히 올려질텐데... 안타깝고 화나고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런 시각과 목소리에 같이 공감하고 어두운 우리의 이면들이 드러나면서 공분하지만 하나씩 벗겨지다보면 좀 더 나은 내일이 되고 억울한 누군가가 한명은 줄어들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 광화문에 집결하고 한 목소리를 내었듯이 이런 글들이 소식들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조금은 더 깊이 있게 시야를 넓히게 하고 많이 생각하게 해서 몰라서 머물러 있는게 아니라 더 알고 더 관여하게 하는 그런 능동적인 사람들이 되게 할것 같다. 좋은 글, 다양한 책들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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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의 북미 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 회담에서 오고 갈 의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북제재 해제와 함께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할지, 그리고 종전 선언이 나올지 등등... 현재로썬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이 회담에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것 같다.
종전 선언을 통해 남북이 더이상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정말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한다면 이또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 어떤 명확한 사실없이 그저 대북 제재가 해제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핵무기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가 보이고 있는 외교와 국방 등에 관한 내용들을 보면 북한의 어떤 명확한 행동이 없는 가운데 스스로 지나치게 빠르게 해제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만나보게 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담아내고 있는 『서지문의 뉴스로 책 읽기』라는 책을 보면서 어쩌면 현 정부는 이 글들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겸허한 자세로 들어야 하고 많은 국민들이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실망했던 부분을 이번 정부만큼은 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으면 다 같아지는 것일까 싶은 행보를 보일 때마다 안타깝기도 하고 실망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2여 년 기간동안 신문에 기고한 글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책을 함께 담아냄으로써 뉴스와 책을 결합시킨 이 책은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분명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이 그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반대 세력의 비난이라고만 치부하기 보다는 좀더 폭넓은 관점에서 접근하되 이런 우려의 시선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국민 전체와 소통하기 위한, 사람이 먼저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먼저인 대한민국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도 국정 운영에 힘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책이였다.
물론 책은 이외에도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에 걸친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런 이슈들에 대한 여러 방면의 견해를 접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에 접근한다면 좋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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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오늘날의 세상은 '누구나 '영향력 있는' 논객'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과 같은 매체에서 활동하며, 이른바 아마추어 논객 (또는 시사 유튜버 등)의 길을 걷고 있고, 또 이러한 현상 또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반 국민이 선택 할 수 있는 보다 새로운 국정&정치 참여의 길이 활짝 열렸다는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혹 이러한 포화상태로 인하여, 과거의 전문 지식인들이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과도한 참여와 이념적 갈등이 국정의 추진력을 깎아내리고, 결국 순간의 민심에 좌지우지되는 중우정치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아닐까? 바로 그 때문에 결국 (나는) 더 나은 나라의 흐름을 위해서는 분명 격렬하고 뜨거운 포럼(토론의 장)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 먼저 각각의 주제에 따라,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그 나름의 지식인들의 역활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속에서도 또 이 책의 존재에 비추어 생각해본다 하여도, 이른바 지식 전문가들이 이끌어온 '여론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가져왔다.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소수 중심의 엘리트주의가 절대적으로 올바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록 언론 스스로가 공정하고 사실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 해도,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과 개인의 필터링에 따라, 여론자체가 분멸되고, 또 혼란스러워 질 수 있는 만큼, 나름의 기준이 되는 존재쯤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나의 주장인 것이다. 때문에 생각해보면 이들은 어느 대전제에 대하여 각각의 신념과 진영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에 물론 이 책의 저자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본래 책의 내용자체가 신문의 사설을 모은 것이기에, 결국 이 모든 내용에 있어서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 고조된 것에 대한 저자 스스로의 신념이 오롯이 드러난다. 국방을 논하고, 정책을 논하면서, 분명 저자는 이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과 우려를 드러내고, 또 지도자와 여권을 향한 쓴소리를 멈추지 않으며, 이른바 (나름대로)보수논객으로서의 면모를 강렬하게 내보였다. 그렇기에 아마도 일부 독자들은 이러한 '정치색'을 접하면서, 나름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또 박수를 치는 긍정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 허나 적어도 책이 드러내려는 '주제'를 생각하면 이보다는 더 사고하고 또 탐구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분명 저자는 어느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의 '주장'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 주장의 표면을 접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 주장 속에 녹아있는 저자 스스로의 지식과 신념, 그리고 그 형성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 과거의 가치따위의 많은 것을 함께 접하게 해준다. 바로 이때! 독자는 결국 저자 스스로가 내보인 가치를 접하면서, 이에 '옛 문학'이 그 절대적인 위치에 군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해보면 본래 사람사는 것에 대한 '본질'은 똑같지 않은가? 그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대문은 견고해야 하고, 안은 깨끗하고 안락해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것에 대한 온존한 보전과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생각되어야 마땅하다. 또 그것이 비로소 뒷받침되고, 나서야 변화와 도덕 감성등에 눈을 돌리는 진보의 가치를 맞이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결국 저자의 논리는 단순하다. 적어도 국방과 안보에 대해서는 경직되었다 생각될 만큼 '예외'를 두지 않는것, 그리고 국정에 다가감에 있어서도 규제보다는 보다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것... 이처럼 이 책은 지식으로 단련된 보수가 드러낸 현 대한민국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오늘의 책' 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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