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겨진 것 이후에 -이제니 흰 집 건너 흰 집이 있어 살아가는 냄새를 희미하게 풍기고 있다. 거룩한 말은 이 종이에 어울리지 않아서 나 자신도 읽지 못하도록 흘려서 쓴다. 하늘은 어둡고. 바닥은 무겁고. 나는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을 가지게 되었고. 너는 말 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읽히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낮잠에서 깨어나 문득 울음을 터뜨리는 얼굴로. 마음과 물질 사이에서 서성이는 눈빛으로. 인간 저 너머의 음역으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돌보는 말과 돌아보는 말 사이에서 밀리는 마음과 밀어내는 마음 사이에서 사랑받은 적 없는 사람이 모르는 사이 하나하나 감정을 잃어버리듯이. 한 밤의 고양이와 친해진 것은 어느 결에 사람을 저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이라는 말. 그저 사랑이라는 말.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울어라.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네 자신으로 존재하여라. 두드리면 비춰 볼 수 있는 물처럼. 물은 단단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남겨진 것 이후를 비추고 있었다. 시가 되지 않는 밤에는 종이 위에 아무 말이나 써 놓고 엎드려 울었다. 조금 더 고민하고 문장을 쓰고 싶었는데 그대로 잠들었다. 손에 연필을 꼭 쥔 채로. 꿈 속에서 시를 썼다. 굉장한 문장으로 시인으로 살아가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보면 공책에는 흘려 쓴 글씨가 번져 있었다. 모두 떠나갔는데 단 한 사람만이 남은 시절의 기억이다. 꿈이었으므로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지붕 위에 집을 마련한 고양이를 멀리멀리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그 녀석들의 우는 소리를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그런 날이었다.
나무 식별하기 -이제니 그 나무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평생 제 뿌리를 보지 못하는 나무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눈과 그 귀와 그 입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밤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나는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너도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늘과 그늘 사이로 밤이 스며들고 있었다. 너는 너와 내가 나아갈 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잎과 잎이 다르듯이. 줄기와 줄기가 다르듯이. 보이지 않는 너와 보이지 않는 내가 마주 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본 작은 나뭇잎이었다. 내가 나로 사라진다면 나는 바스락거리는 작은 나뭇잎이라고 생각했다. 참나무와 호두나무 사이에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사이에서. 가지는 점점 휘어지고 있었다. 나무는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밤은 어두워 뿌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어스름과 어스름 사이에서. 너도밤나무의 이름은 참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밤의 나무 아래. 너도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밤. 어둠 속에서 나무들은 서로를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한 자리에 오래도록 붙박혀 있는 삶에 대해 감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바람이 불면 잎사귀 몇 개 떨어뜨려 보내 주고 온 몸을 비벼 잘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 밖에 상대에게 해 줄 수 없을 때, 나무는 쓸쓸해진다. 나무의 비어있음. 나무의 허무. 나무의 서글픔. 나와 너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만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일들이 나무에게는 있었다. 밤에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시를 베끼는 일이 내게는 그런 일들이었다.
한 자락 -이제니 사랑과 비밀을 바꾸어 울고 있었다. 휘감긴 것은 꿈 속의 말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사라지는 것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사라지는 것이 골목과 골목을 만들고 있었다. 골목과 골목이 벽과 벽을 만들고 있었다. 벽과 벽이 과거와 과거를 바꾸고 있었다. 무수한 과거 속에서 무수한 얼굴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는 오늘 다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에 가까워지고 있씁니다.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기쁩니다 기뻐요. 그러니까 너와 나는 멀어지면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벌어지면서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휘날리는 휘장과 휘장 사이에서. 한 자락 한 자락 휘날리는 얼굴이 되어. 다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보이고 있는 것이다. 너의 발목에는 이국의 낱말 하나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잊지 않으려고 잃지 않으려고 문장을 새겨 넣었습니다. 가까운 듯 멀리서 한 자락 노래가 드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음과 음이 몸과 몸으로 만나고 있다. 머릿속으로 공명하는 소리. 마음으로 마음으로만 우는 소리. 미래 혹은 미레. … 나는 나의 운명도 모르면서 시의 운명이나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쓰지 않은 시. 내가 써야 할 시. 누군가 쓴 시. 누군가가 쓰지 않았으면 하는 시. 긴 밤의 미래는 다가 올 새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절망하는 밤의 시간. 시를 쓰는 사람의 운명이란 빈 종이와 마주하는 아침의 참담함. 예언은 널려 있었고 소원은 기약 없이 대기한다. 시가 되지 못한 언어는 노래가 되기도 한다던데. 소문일 뿐이었다.
시를 쓰겠다고 공책을 샀다. 시를 쓰겠다고 책상에 앉았다. 쓰다만 시는 쓰레기가 되었다. 쓰레기가 되어도 좋았다. 연필을 잡은 손이 아프면 유통기한이 지난 파스를 붙였다. 밤에 음악을 듣지 않은지 오래. 이제니의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시를 읽으며 사라진 노래를 이어 부른다. 미를 치다가 미치고 마는. |
|
이제니의 시인의 시를 송별회 단골 멘트로 사용하고 있다. '그믐으로 가는 검은 말'의 아래구절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한참동안 써먹었다.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발설하지 않은 문장으로 너와 내가 오래 묶여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잊혀진 줄도 모른 채로 잊혀지지 않기 위함이다"
그래서 그녀의 새로운 시집이 나왔다길래 궁금했다. 오늘의 책에도 선정되었다. 서평단 신청책으로 올랐길래 부리나케 신청해놓고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주문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는 아니지만) 내가 책을 구입한 줄 어떻게 알았는지 서평단은 똑 떨어졌다. 아 서평단에 선정되었으면 또 선물했을텐데 아쉬운 뿐이다.
그녀의 시집을 읽어간다, 몇 몇 시를 빼놓고는 길다. 문장이 많다. 이 곳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도착하면 저곳이 되어 있다. 들어갔던 문과 나오는 문이 어찌 이리 다를 수가 있는지 다른 공간으로 시간으로 점프를 해버리는 그녀의 시는 좋다라는 표현의 말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읽으면서 아하, 내마음인 걸 하면서 눈물 흘리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시도 좋지만 자꾸 다시 한번 보게 하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생각하게 하는,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찾아보게 만드는 이런 시들도 좋다.
그녀가 흘려쓴 시를 바르게 세워 탁탁 털어서 읽어도 좋을 것이고 그냥 같이 흘러 흘러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겨진 것 이후에-
흰 집 건너 흰 집이 있어 살아가는 냄새를 희미하게 풍 기고 있다. 거룩한 말은 이 종이에 어울리지 않아서 나 자신도 읽지 못하도록 흘려서 쓴다. 하늘은 어둡고, 바닥 은 무겁고, 나는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을 가지게 되었고, 너는 말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읽히지 않는 문장이 되었 다. 낮잠에서 깨어나 문득 울음을 터뜨리는 유년의 얼굴 로, 마음과 물질 사이에서 서성이는 눈빛으로, 인간 저 너 머의 음역으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돌보는 말과 돌아보는 말 사이에서 밀리는 마음과 밀어내는 마음 사이에서
사랑받은 적 없는 사람이 모르는 사이 하나하나 감정 을 잃어버리듯이, 한밤의 고양이와 친해진 것은 어느 결 에 사람을 저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이라는 말, 그저 사랑이라는 말,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울어라,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네 자신으로 존재하여라, 두드리 면 비춰 볼 수 있는 물처럼, 물은 단단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남겨진 것 이후를 비추고 있었다.
|
| 정말정말정말좋아요 이런 양질의 문장 모음집을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니 저는 한국어가 가장 서정적인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니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님도 한국인이구 나도 한국인이구 그래서 이렇게 글을 공유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되어 너무너무 고맙구 맘이 몽글몽글해졌어요 제목그대로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의 느낌이 나요 뱉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말들이 있잖아요 ? 써야해서 쓸 수 밖에 없었던 문장이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이 문장을 위해 희생하였을 수많은 밤을 생각하게되었고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싶어요 |
|
당신
돌을 만지는 심정으로 당신을 만진다. 가지 하나조차도 제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낮이다. 두 팔 벌려 서 있는 나뭇가지를 보았습니다. 당신은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길가 작은 웅덩이 위로 몇 줄의 기름띠가 흐르고 있었다. 몇 줄의 기름띠 위로 작은 무지개가 흐르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번지고 있었다. 한 장면 두 장면 이어지고 있었다. 또 다른 세계의 입구가 열리고 있었다.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면 됩니다.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반복되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닥을 향하는 서늘함이다. 투명하고 빈 공간이 있는 하얀색이다. 귀를 기울여 익숙한 소리들을 걸러낸다. 어떤 말은 오래오래 잊히지 않습니다. 고요한 것들이 고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화체의 기본적인 구조를 숙지하고 있다.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의 통합을 시도한다. 낯선 것일수록 감각을 예민하게 일깨울 수 있습니다. 내일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을 합니다. 마음속에 간직해온 얼굴을 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돌은 모든 것을 보고 돌은 무엇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말들 위로 이끼가 내려앉는다. 너와 나라는 두 개의 문이 열린다. 가지가 가지로 자라나듯 목소리가 목소리로 이어진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바닥에는 몇 개의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죽은 것이 죽은 것으로 다시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움직임을 따라간다. 흐르고 있는 그림자를 경계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 하나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환한 빛을 필요로 합니다. 시간과 함께 둥글게 깎이고 있는 돌을 본다. 당신을 만나는 심정으로 돌을 만난다. - 이제니, 「돌을 만지는 심정으로 당신을 만지고」
돌을 만지는 심정은 어떤 마음일까?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주 가까이 있는데도 가까이 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오래 전부터 눈여겨본 사물이라서 참으로 익숙한 돌이다. 찬찬히 만지면 기꺼이 온몸을 열어줄 것만 같은 돌. 그런 심정으로 시인은 당신을 만진다.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당신을 만지면 당신 또한 돌처럼 온몸을 열어주지 않을까? “가지 하나조차도 제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낮”에 시인은 그림자를 벗어나 당신으로 가는 꿈을 꾼다. 당신은 꿈속에 있다.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나뭇가지가 보인다. 시인은 그곳에서 곳곳에 서 있는 당신을 본다. 당신을 향한 말이어서 그럴까, 꿈속에서 시인은 경어체를 쓴다. 꿈밖으로 나오면 말은 다시 평어체가 되고, 곳곳에 있던 당신 또한 자취를 감춘다. 몇 줄의 기름띠가 흐르고 있는 작은 웅덩이가 보인다. 기름띠 위로 작은 무지개가 흐르고 있다.
시인은 기름띠로 만들어진 무지개를 눈여겨본다. 한 방울 두 방울 기름띠가 번지면 무지개도 번진다. 기름띠인 듯 무지개인 듯, 한 장면이 다른 장면을 낳고, 다른 장면은 또 다른 장면을 낳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인은 또 다른 세계의 입구가 열리는 것을 본다. 다시 꿈속이다. 꿈속에서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그림자에 매이면 꿈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꿈속에서 누군가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려면 대상을 향한 지독한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어야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꿈밖이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투명하고 빈 공간이 낯설게 눈앞에 펼쳐져 있다. 시인은 귀를 기울여 익숙한 소리들을 걸러낸다. 그 사이로 꿈결처럼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말은 오래오래 잊히지 않습니다.”
오래오래 잊히지 않는 말을 시인은 꿈밖에서도 기억하고 있다. 고요한 것들이 고요하게 움직인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이 하나로 묶여 새로운 감각으로 밀려나온다. “낯선 것일수록 감각을 예민하게 일깨울 수 있습니다.”라는 당신의 목소리가 저 먼 곳으로부터 들려온다. 꿈속에 있던 당신은 어느새 꿈밖=현실로 나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감각을 일깨운다. 낯선 것을 대할수록 감각은 더욱 더 예민해진다. 촛불을 처음 본 아기를 떠올려 보라. 환하게 타오르는, 그래서 황홀한 마음을 일으키는 촛불은 한없이 낯선 사물이 되어 아기를 압도한다. 일렁이며 타오르는 촛불에서 아기는 자기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다. 아기는 지금 자기 목소리에 취해 일렁이는 촛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시인은 처음으로 촛불을 본 아기 마음이 되어 “마음속에 간직해온 얼굴을 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첫 구절에 나온 ‘돌’이 이제야 나온다. 시인은 “돌은 모든 것을 보고 돌은 무엇도 말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일까? 모든 것을 보는 돌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면, 시인은 어떻게 돌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까? 시인은 “말하지 않는 말들 위로” 내려앉는 이끼에 주목한다. 이끼는 돌이 살아온 시간을 그 속에 품고 있다.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돌은 이끼에 자기가 보았지만 말하지는 않은 기억을 새록새록 새겨 넣는다. 돌이 전하는 말을 들으려면 그러므로 이끼가 전하는 말을 먼저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너와 나라는 두 개의 문이 열린다.”라는 구절로 이 상황을 표현한다. 문은 언제나 양쪽에 있다. 두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으면 그리로 들어가는 문은 이내 닫힌다.
그림자를 벗어난 가지가 또 다른 가지로 자라나듯, 목소리는 언제나 다른 목소리로 이어진다. 목소리는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 않는다. 가야 할 곳이 있어 목소리가 흐르는 건 아니다. 목소리는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 않음으로써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한다. 두 문이 열리면서 안과 밖을 나누던 그림자는 이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죽은 것이 죽은 것으로 다시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온다. 경어체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말을 꿈속 세계에 한정된 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죽은 것이 죽은 것으로 다시 죽어가려면 죽음을 죽음으로 고정하지 말아야 한다. 삶이 삶으로 고정되지 않듯, 죽음 또한 죽음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시인은 한편으로 흐르고 있는 그림자를 경계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림자는 사라진 게 아니다. 모습을 달리 해서 다만 흐르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시인은 이러한 이유를 “환한 빛”으로 표현한다. 빛은 다만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그 빛과 더불어 다른 생으로 뻗는 것은 오로지 그 생을 사는 생명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지금 “시간과 함께 둥글게 깎이고 있는 돌을” 보고 있다. “마음속에 간직해온 얼굴”을 닮은 돌이다. 시간과 더불어 둥글게 깎인 돌은 이리 보면 어제 본 그 돌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고정되지 않았는데, 시간을 사는 돌이 어떻게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시인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돌을 만진다. 모든 것을 봤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돌은 바로 이 순간에야 마음 깊이 간직한 얼굴 하나를 풀어놓는다. 당신을 만나는 심정으로 돌을 만나는 시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가? 당신을 놓아야 비로소 당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낯선 당신, 그래서 한없이 익숙한 당신. |
|
혼자이기 위해 집으로 가듯 너는 쓴다. 종이 위에서 쓴다. 흘려서 쓴다. 자신에게조차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팔분음표에 하나씩, 한 걸음에 하나씩. 천천히 일정한 박자로. 끊어지듯 이어지며. 이어지듯 끊어지며. 어떤 기계음처럼 단속적으로. 소리 아닌 소리로 발음되기를 바라면서. 발화자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다. 문이라는 듯이. 열고 열리는 마음이라는 듯이. 마음은 통과한다. 기억은 건너뛴다. - <발화 연습 문장 -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일부
하나씩 하나씩 나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오늘 어디까지 와 있나 점검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진다. 조금의 쉼을 쉰다. 마음이 그곳에 머문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에게조차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 어떤 물음표. 결국, 발견하지 못한 채 나는 나의 길, My way로 향한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마음의 문을 통고할 뿐이다. 무사히, 건너길 바란다. 삶은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문이니까. 그 길에 누군가 함께 간다면 더 좋겠지. 나는 지금, 미지의 문 앞에 있다. 두렵지만, 설렌다. 삶이 바짝 다가왔다. |
|
진짜 표지가 너무너무 약해서 너무 속상해요 조금 긁혔는데 겉이 반이 날아갔어요. 하얀색이 다 드러나고… 속상한거말고는 조아요. 읽어보면서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를 좋아하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문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문장들이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려고 시를 읽는 거고 그 목적에 맞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
|
요즘 시집이 읽어 보고 싶어서 그리고 필사를 즐겨 하는 중이라 훑어보던 중 눈길이 가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와닿고 정말 좋았습니다. 문장에 담긴 의미를 하나 하나 찾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제각각인 것도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문장으로 필사를 하고 있을 때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고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
|
이 리뷰는 2019년 01월 문학과지정사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시집을 구매하고 싶어 끌리는 책을 구매한 것인데,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라서 기분이 좋았어요. 단지 짧은 단어가 나열된 그저 그런 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추천합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요. |
| 이제니의 시집을 읽다보면 자꾸 음독하고 싶어진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기분으로 읽는다. 우리나라 말이 이렇게 서정적이었구나 다시 한번 느낀다. 한국어로 작가님의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서 새삼 감사한 마음도 든다. 덕분에 단어 하나하나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선물해줄래 작가님 진짜 천재같아요,, 다음 작품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만나뵐 수 있길. |
|
* 다시 읽어야만 하는 시집 한줄 읽고 생각하고 한줄 읽고 생각하느라 오래 읽었다 시인이 내 앞에 앉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고조되는 리듬이 있다 시집 전체의 구성이 대단하다
* 죽을 때까지 너와 나에 관한 것은 그 무엇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몸에 새겨 넣은 단어는 희미해졌지만 너는 네가 선택한 발음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어떤 다른 날에 문득 오늘을 떠올릴 때. 접히고 묻힌 지난날의 주름을 우연히 펼쳐 보게 될 때. 오늘처럼 다시 노래하게 될 겁니다. 오늘처럼 다시 울게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