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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동원의 대상이던 사람들을 주체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행정에 의해 인위적으로 전개됐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건 물론이다. 결과가 성공이었는지를 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전까지 마을 일에 전혀 관심을 안 보이던 일부 주민들이 새로이 각종 움직임에 참여한 건 분명 고무적이나 소수에의 의존도는 너무도 컸다. 과연 이와 같은 흐름이 지속 가능할지를 묻게 된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이 서울이라서일 수도 있다. 서울 안 다른 지역에 비한다면 나름 높은 정주율을 자랑하지만, 젊은 층은 대개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난 상태다.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강점 찾기가 요원하다. 사고의 단위를 보다 잘게 쪼개는 작업에 집중하면 사정이 나아지려나 싶지만, 아직까지는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마을자치 이야기의 모델이 된 곳은 경상북도 합천군의 양떡메 마을이었다. 마을이름이 꽤나 독특하다 했더니 마을 특산품인 양파즙, 가래떡, 메주의 앞 글자를 따 새로이 지은 명칭이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지역이나 대강의 모습이 그려졌다. 너른 논밭,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저자 스스로도 ‘농사 잘되는 것 말고는 볼 것 없는 동네’라 하였다. 그렇지만 양떡메 마을은 여느 농촌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무엇이 이와 같은 차이점을 낳았을까. 나의 눈에 우선적으로 들어온 건 사람이었다. 마을 리더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성영수 씨다. 여성 이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분위기에 힘입어 평소 마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헌신해온 영수 씨가 이장으로 선발됐고, 이는 마을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시 양파 값은 해마다 폭등과 폭락을 거듭해 주민들로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공무원 남편의 도움을 얻어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공모 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부족했다. 손맛이라면 자신 있었던 주민들이 십시일반 메주를 쒀 내다 팔았는데, 맛은 보장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상품으로 어딘가에 내놓기엔 모양이 정갈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정 정도 수익을 창출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개개인에의 의존성이 강했던 판로를 마을 단위로 규합했고, ‘마을기업’으로서의 모양새를 탄탄히 갖추게 됐다. 저자의 글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 단어는 코피였다. 모두가 참여했지만 그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는 지도자격 주민의 역할이 중요했다. 주문이 몰려 들어 밤낮 없이 일하며 흘린 코피는 그나마 나았다. 돈이 모이니 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별다른 근거도 없으면서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의 일부를 제 몫으로 챙기고 있다는 식의 음해가 이어져 마음 고생을 꽤 했지 싶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취한 투명한 서류 공개와 지속적인 소통의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양떡메 마을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성공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저자는 마을 자치 활동을 함에 있어 중요한 건 방향성이라고 보았다. 특정 시설의 유치처럼 가시적인 목표만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그간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라도 좌초당하기 일쑤다. 지역의 유력 인사가 너도 나도 나서서 자신의 실적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일군 것을 들먹이는 것은 물론이요, 그로부터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이 창출되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둘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 간 분열이 일어나기도 한다. 돈을 보고 일련의 활동에 뛰어든 이들이 존재한다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전까지는 웃는 얼굴로 대하던 이웃을 잃는 불상사를 경험할 수도 있다. 사실 프로세스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마을을 고민하고, 자신과 유사한 고민을 품은 이들과 교류하고, 마을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고, 공동으로 이룰 수 있는 의제를 설정해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은 전국 곳곳에서 행해진 마을계획/자치계획만 살펴보아도 쉬이 알 수 있다. 실제 활동도 말처럼 쉽다면 참 좋으련만, 그게 아니니 매일 같이 밥을 먹는다는 양떡메 마을과 같은 곳을 서울에서 찾기가 힘든 모양이다. 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었던 건 마을기업인 듯 했는데,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서 이는 쉽지가 않아 보였다. 아파트가 즐비한 이 지역에서 내세울 수 있는 자산이 과연 무어가 있을까. 마을기업도 기업인지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판매하는 상품의 질이 훌륭해야 한다. 서울에서 충분한 생존력을 갖춘 마을기업의 탄생을 기대하는 건 왠지 무리 같다. 마을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야 그 형태가 기업이 아닌들 어떠하겠는가! 잠깐 잠을 자기 위해 머무는 공간이 아닌, 내 정체성의 일부가 완성되는 공간으로서의 마을을 꿈꿀 수만 있다면 꼭 마을기업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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