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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일본 작가들 중 아무것도 없이 사막에 내버려 두었을 때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을 작가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하라 고이치를 꼽겠다. 생존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다윈도 자연선택론을 말했지만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적응을 위해서는 또한 처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이 그 첫째가 될 터이니 그 긍정에 있어서 하라 고이치는 무한도전의 노긍정 교주 이상으로 긍정의 정신으로 무장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 말이 의심된다면 다행히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하라고이치의 작품 '극락 컴퍼니'나 아니면 이번에 소개할 작품 '달려랴 얏상'만 읽어봐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극락 컴퍼니와 달려라 얏상은 그러니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공통점이 하라 고이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좀 멋을 들여 말하자면 '세상의 끝에서 더욱 크게 부르는 희망의 노래'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공통점이다. 그렇게 '극락 컴퍼니'는 정년 퇴직으로 삶의 전부였던 직장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점점 존재의 의미가 옅어져가는 존재들이 스스로 만든 '회사 놀이'를 통해 다시금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축해나간다는 작품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달려라 얏상' 또한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가장 최하층, 그래서 가장 절망의 계층이라 할만한 노숙자들이 자신들만의 신념과 긍지로 어떻게 세상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가는가 아니 더 나아가 오히려 세상을 치유해 나가는가 그런 이야기이다. 이 정도 소개만으로 드러나듯이 하라 고이치의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의 가장 바깥으로 밀려나는 존재들이지만 그 바깥에 헐벗은 채로 서있다고 해서 결코 포기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세상의 끝, 그 절망의 공간에서 그것을 그대로 긍정하고 그 긍정한 한계내에서 가장 제대로 존재하게 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이것은 스스로 당당히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존재론적 의미 찾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렇게 바깥으로 내 몬 사회가 오히려 더 삐걱거려서 그들의 긍정과 자긍심이 윤활유가 되어 보다 제대로 그리고 보다 부드럽게 돌아가게끔 만든다. 말하자면 하라 고이치의 주인공들이 가지는 긍정과 그로 인한 최선이 자신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세상마저도 치유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후자의 보다 확장된 치유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 '달려라 얏상'이다.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바람에 번듯한 직장까지 있었으니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다카오는 같은 노숙자이지만 전혀 주눅들거나 자신의 삶을 내팽겨치지 않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얏상'을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세상의 것을 나누어 받고 살면서도 세금은 내지 않고 있기에 그 공짜로 받은 부분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봉사를 하면서 메우겠다는 얏상의 노숙자로서의 긍지에 감화되어 그의 제자가 된다. 얏상의 봉사는 바로 매일 같이 들르는 도쿄의 최대 수산시장 '츠키시'에서 이런 저런 거래의 정보들을 가져와 호텔의 주방장이나 긴자 요리집의 주방장들에게 유통시키는 것이다. 다카오는 이 정보의 수요가 의외로 크다는 것에 놀라는데 그것은 요리사들도 좋은 재료를 원활하게 공급받는 부분이나 새로운 요리 메뉴를 개발할 때 막히거나 어렵곤 해서 새로운 정보에 대한 욕구는 크지만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새로운 정보를 끝없이 물어다주는 얏상이 고마울 수 밖에 없고 그 고마움을 한 끼 식사로 보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얏상은 이러한 윤활유로 기능하고 있었다. 다카오는 아무리 노숙자지만 스스로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쓸모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그러한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오히려 주어진 혜택에 대한 당연한 보답으로 여기는 얏상의 겸손에 반해 그의 제자가 되어 윤활유로 사는 법을 배워간다. 그리고 하라 고이치는 모두 여섯 개의 에피소드에 이 둘의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과 신념이 어떻게 세상마저 치유해나가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라 고이치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절망의 근거가 되느냐 아니면 희망의 근거가 되느냐는 바로 우리 자신 내부에 해답이 있다고. 중요한 것은 처한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문제라고 말이다. 소설에서 펼쳐지는 맛깔스런 음식의 향연이 우리의 코와 침샘을 자극하듯 그렇게 정년 퇴직자나 노숙자와 같이 세상에서 존재 의미가 무색해지는 사막으로 아무리 내몰렸더라도 그 사막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은 끝이 아니며 오히려 시작일 수 있으며 그래서 종국에는 그 사막조차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는 하라 고이치의 진언은 읽는 이의 마음에 반향을 일으킨다. 듣기에 하라 고이치는 일본의 카프카라고 한다. 평생 무명과 고독 속에서 홀로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세상을 부조리와 회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카프카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해 매달리려 하는 고이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억압과 회유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분투하려 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은 왠지 겹치는 것 같다. 인간 소외에 있어 악화일로를 걸어가는 지금의 세상이기에 때로 자신의 존재가 거의 무의미에 가까우리만큼 생각될 때도 많지만 그래도 한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그다지 작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 결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력에 의해 티끌처럼 날아가버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오히려 그 세상의 균열을 일으키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내파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점. 바로 그 점에서 카프카와 하라 고이치는 또 연결되는 '레가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굳이 상세한 설명을 첨부하지 않더라도 요즘 세상이 위안이 필요한 시대라는 건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이다. 또한 지금 들려오는 소식들 역시도 닥쳐 올 세상이 그런 위안을 많이 필요로 하게 되리란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환경을 이겨내려는 굳건한 마음이 없이는 위안은 그저 값싼 동정에 불과할 뿐이다. 하라 고이치의 '달려라 얏상'은 바로 그런 굳건한 마음을 주려는 소설이다. 그것이 공허한 빈말로 독자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얏상과 다카오의 일상을 넘치는 현실감으로 묘사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하라 고이치가 옆에서 어깨를 토닥이며 '끝은 네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거야'하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당신 역시도 거기에 공명하게 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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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데 감사할 줄 알고 부당한 대우에 비굴해하지 말라는 노숙자의 긍지를 내세우며 은연 중에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면 '긍지를 갖고 살라'는 얏상의 호통이 시작부터 끝까지 메아리 친다. 비현실적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장 속 이야기들을 쫓아가다 보면 비록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물임이 분명한데도 마치 바로 옆에서 호통 한방 날려 줄 것만 같은, 아니 꼭 그 호통을 듣고만 싶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휴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요즘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같이 빽빽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현실이기에 얏상의 캐릭터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된다. 도심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넘치는 사연과 기구한 팔자에 남의 이야기라도 한숨을 쉬게 되는데 재료와 요리의 궁합을 탁월하게 중매해주 듯 시장 속 사람들의 사연을 중개해주는 얏상의 모습을 보노라면 기존에 갖고 있는 노숙자라는 개념은 아예 잊게 된다.
말이 노숙자지 얏상이 보여주는 긍지와 철학, 지혜 등에 걸맞은 솜씨와 경험 등은 츠키지를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대부로서 시장에 자선사업을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본인은 도시로부터 은혜를 입는 다지만 중개인 역할을 매일같이 성실히 해 나가면서 돈 한푼 안받고 오로지 기본적인 식생활만을 신세지는 정도로 만족하는 얏상을 보면 매사를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는 현대가 놓치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경영이나 경제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공부하고 도입하여 성장을 이룬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행복해하기는커녕 우리에 갇혀서 그 우리를 울타리 삼아 벗어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간신히 들어찬 자신을 다행스러워하는 모습에 안쓰러웠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원하는 바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일이란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이라기 보다 '정말로 못해먹겠다'싶은 일이 아니면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일 보다 생활의 유지 정도로 살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마케팅의 핵심인 고객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서 충분히 즐거워야 상대에게도 온전히 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인데 수동적인 시스템에 사고하는데 익숙해서는 그저 형식에 그치지 않기에 고객도 사원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한계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이렇게 인간냄새를 물씬 맡으며 가슴 훈훈해진 지금도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는 내게 진저리가 쳐지지만 자본주의가 인간냄새를 없앤 것이 아니라 그를 도입한 우리가 욕심이 과했기에 탈이 났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실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데 자본주의 체제만큼 환상적인 시스템이 또 어디 있겠냔 말이다. 하지만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은 본인과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위한 것에서 시작했더라도 단지 수단이었던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니 결국 노예 같은 인생을 살아버리고 만다. 장인으로서의 재주와 뚝심만 가지고 우직하게 살다가 그 자본주의체제에 기생하는 업자들의 배신으로 큰 좌절을 겪게 되어 결국 아버지의 안타까운 결말을 목도한 얏상에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지 않을 정도로 무소유의 의미를 깨닫고 몸으로 실천한다. 본인 스스로도 순간의 어리석음에 벼랑 끝에 섰었지만 곧 '도망치지 않은 아버지'상을 보여준 스승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를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지인들을 둘러봐도 본인의 삶의 충실하거나 젊은 치기에 과한 욕심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려다가 기어코 넘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 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타고난 열정적 성격 때문인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루저의 뼈아픈 경험을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누가 좌절을 사서 하고 싶겠냐 마는 목표를 위해 돌진하다 보면 예상 외의 곳에서 벽을 만나거나 내동댕이 쳐지는 기분에 죽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경험이 없는 청춘은 거의 없다.
타고날 때부터 금수저 입에 물고 나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 인생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애초에 가질 수 없다면 바라지도 않기로 한 지금 나와 비슷한 환경일지라도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경험을 거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도 벼랑 끝에 선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죽도록 노력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넘어지면 아프고 다시 일어서기가 고통스럽지만 대신 앉아만 있다가 걸을 수 있고, 또 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쭉 기어 다닌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길 바래서 그렇게 사는 거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실패한 경험이 없음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얏상도 아마 대놓고 뒤통수를 후려치며 '긍지'를 갖고 살라고 호통을 칠 것이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하라 고이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평범한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독특한 캐릭터를 설정하여 무서운 흡인력을 보여주어 읽다 보면 어느새 후기를 읽는 바람에 '벌써 끝났나...'하는 허탈함과 함께 주인공들의 허구성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워낙 캐릭터 설정을 맛깔 나게 하는 작가인데 <달려라 얏상>에서 얏상과 러브라인을 구축하는 '오머니'의 설정이 한국음식의 감칠맛을 적절히 표현해주어서 내심 흐뭇하고 뿌듯했다. 한국음식의 감칠맛이라는 것이 번역을 매끄럽게 잘 한 덕분인지 일본어로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음식을 오래 먹어 온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 표현을 나타낼 수 있다니 작가가 그저 요리를 소설 소재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겹치거나 고루한 설정이 없이 적재적소에서 그 개성을 발휘하고 있어 읽는 동안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마음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매일을 살아가는데 과연 오늘의 나는 어땠는지 한번 돌아본 적 없었던 순간을 반성하게 된다. 작심삼일이라도 좋지 않은가 오늘 하루라도 반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달려라 얏상>과 같은 휴머니즘 가득한 긍지를 일깨우는 책이 종종 나오는 한 세상이 흉흉한 일로만 얼룩지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 거다.
"해당서평은 북로드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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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나 만화나 소설 등을 읽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분야 중 하나가 음식이다. 단지 제목만 가지고 파악할 수 없는 이 소설도 바로 음식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 주인공이 음식과 관련 있는 직업을 가지거나 아니면 회사 기획에 의해 음식을 다루는데 이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직업은 다르다. 다르다기보다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고? 그것은 주인공 다카오와 얏상 모두 노숙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은 일반 노숙자와 다르다. 외견 상으로도 다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보통의 노숙자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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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니 몇년전에 보았던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런데 책을 읽고나니 비슷한 구성의 다른 책이 다시 생각났다. 같은 일본작가였는데 누구였더라... 하여간 이런 식으로 덩치큰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하나씩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에피소드별로 엮여있는 책이었다. 아, 리뷰를 올렸던것 같아 한참을 뒤지다가 찾아냈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그런데 공중그네에서의 문제해결사는 의사였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얏상은 신기하게도 노숙자다. 그런데 사연을 가진 특별한 노숙자라는 점이 신선했다. 그는 한때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현재는 자신만의 노숙자 철학을 바탕으로 살면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제자(?)를 맞게 되고 그 제자와 함께 지역 사회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겪고, 또 해결해나간다.
일본의 한 수산시장과 이 곳의 해산물을 주 원료로 삼는 근처의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서로간의 니즈를 찾아 채워주는 역할로 식사를 해결하고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관리 또한 철저하며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공공시설을 통해 위생도 관리하는 주인공이라니 분명 평범한 노숙자는 아니다. 더군다나 한때는 부자였던것을 넘어 유명한 요리사이기도 했다니 언제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재진입이 가능한 상태이니까. 하여간 여기에 뛰어난 인맥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각지에 지인을 두고 있으니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부러워할법도 하달까. 앗,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으면서도 이런 분석조의 글을 쓰고 있다니. -_-; 아무튼 위에서 말한 내용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 안에서 그러니까 수산시장안과 그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에피소드 별로 인생의 장면장면들을 다룬다. 여기서의 등장인물들은 사업파트너에게 배신당하고, 언론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단체간의 갈등 속에 놓이기도 한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주인공인 얏상과 그 제자가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며 재미를 느낄수 있을듯 하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제자 스스로 문제를 다루며 막판에는 해피엔딩으로 '파문'당하더라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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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긴자에서 노숙을 하던 다카오는 어느 날 얏상이라는 노숙자를 만난다. 그저 그런 꿈도 없이 살았던 다카오가 무일푼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촌인 시오가마에서 태어난 다카오는 열여덟 살 때 도쿄로 올라와 그저 그런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후 IT 기업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인간관계가 원할하지 않아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서는 당장 먹고살기 위해 파견근무를 5,6년쯤 계속했지만 점차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졌다. 다시 정규직으로 취직을 해보려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는 이미 구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집세를 밀리게 되었고, 그 결과 오모리의 싸구려 아파트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한동안은 인터넷 카페에서 숙박을 해결했지만 이내 수중의 돈마저 바닥이 났고, 두 달 전부터 무일푼 신세가 되어 급기야 긴자의 노숙자가 되고 만 것이다."
노숙자 얏상은 다카오에게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며 항상 운동을 하여 몸을 튼튼하게 유지하가고 강조한다. 얏상에게는 자신만의 노숙자 철학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철학에 입각한 세세한 배려가 있기 때문에 얏상은 다른 노숙자들과 다른 살아가고 있었다. 주방장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이유도 얏상이 주방장과 츠키기 상인 사이에서 정보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맞대어 있는 살아있는 정보를 얏상은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정한 알짜배기 정보라는 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지 않는 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얏상의 주장이었다."
"노숙자는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라고. 집이고 재산이고 직업이고 가진 거라곤 하나도 없지만, 인간으로서의 긍지만은 반드시 지녀야해.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를 하기는 해도 알랑거리고 아첨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얘기야."
츠키지의 시장에서 농성이 있었을때에도 진심으로 음식과 사람을 사랑하는 얏상의 모습이 담겨있는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었다.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전 찬성파 편도 반대파 편도 아닙니다.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인을 좋아하고 시장을 좋아하고 중매인을 좋아하고, 그리고 사람을 좋아할 뿐인 노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일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노숙자의 우스갯소리라 여기고 단 하나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시장이 이전을 하든 안 하든 그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세계 제일의 시장에 터전을 두신 여러분 사이에 하찮은 응어리만은 남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맛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자들과 맛난 음식을 먹여주고 싶어 하는 자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만은 부디 하나로 있어주십시오. 이것만은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카오는 대학 진학이라는 명목으로 미아기 현의 시오카마라는 어촌에서 도쿄로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다. 본가는 시오카마 시내에서 양조업을 했는데 가업을 이을 이는 다섯 살 위의 형이었다. 차남인 다카오는 본가에 남는다고 해도 형 밑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지만 형과는 어릴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본가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거나 다름없었다. 직장도 그 연장선상에서 결정했다. 도쿄에 몰려 있는 IT 관련 기업을 지망하면 본가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신흥 IT 미디어 개발기업에 들어갔다. 당시는 IT 붐이 한창이던 시절이어서 그 정도의 의식만으로도 받아주는 기업이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의식으로 제 몫을 해낼 리 없었다. 안 그래도 상승 기류에 편승한 신흥 기업에서는 설령 갓 입사한 사원이더라고 스스로의 입으로 업무를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인정을 받지 못한다. 가만히 앉아서 일을 기다리기만 하는 다카오는 순식간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어 설 자리를 잃고 1년을 간신히 넘긴 시점에서 도망치듯 퇴직했다. 그 후에도 적당히 도피하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왔다. 아르바이트와 파견근무를 전전하다 보니 어느 새 그런 하루살이 삶이 몸에 배어 무일푼인 노숙자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세타령이라는 건 도피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하던 얏상, 젊을 때부터 신세타령에만 매달려 있다가는 평생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던 얏상의 말이 다카오에게 뼈저리게 느껴졌을 것이다. 얏상을 따라다니면서 변화해가는 다카오의 모습을 보면서 좋은 에너지가 생겨난다.
소설 <달려라 얏상>은 노숙자의 맛집 수첩, 러브 미 소바, 농성 레스토랑, 츠키지의 난, 소나무 별장, 터릿의 행방이라는 소재별로 사회적인 이슈인 맛집문화, 요리의 철학 등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한다. 얏짱이 왜 노숙자가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이해되기 시작한다. 소바 직인이 되고 싶어하던 15살 소녀 미사키를 위해서 얏짱과 다카오는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주며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해준다. 소설 끝부분에 다카오를 좋아하던 미사키가 18살이 되면서 다카오와 잘 지낼 수 있게 되어서 흐뭇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편식을 하면서 진정한 먹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소바를 좋아하는 미사키에게도 얏짱은 당분간 소바를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제대로된 미각을 키워야한다고 당부한다. 언론이라는 권력을 내세우는 맛집기사의 횡포 등 음식과 관련한 고쳐야할 행태들이 소개되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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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도 품격이 있다. 첫째 다른이들에게 혐오감을 주지않기 위해서 청결에 힘쓸것, 둘째 공짜로 얻어 먹을 생각을 하지말고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정당하게 끼니를 해결할것. 셋째 세금을 일절 내지않고 있으니 행정관련문제에는 나서지않지만 사람관계에서는 최선을 다할것등..말만 노숙자지 어지간한 일반인들보다 훨씬 사고가 제대로 잡힌 노숙인 얏상의 등장이다.대학을 졸업하고 이런일 저런일등을 떠돌다가 결국 노숙자로 전락하게 된 다카오는 노숙인의 전설 얏상을 만나게 된다. 노숙인으로의 긍지를 가지고 산다는 얏상을 만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노숙인의 선입견을 모두 날려버리게 된 다카오는 얏상을 스승으로 삼아 노숙인의 자질을 배워 나가게 되는데..츠키지시장에서 얏상을 모르는 이는 하나도 없는것 같다. 보통의 경우 노숙자가 드나들면 싫어하는 가게주인들이 대부분일텐데 오히려 얏상에게 상품의 질을 물어보거나 먼저 음식을 권하는 등 노숙인을 대하는 폼이 아니다. 그런 가게주인들의 대우에도 불구하고 얏상은 상점주인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면서 늘 가게뒷문을 고집하고 그런 얏상과 함께 생활하면서 다카오는 체력까지 기르게된다. 잘나가는 가게와 망하는 가게를 구분하는 방법중의 가장 확실한것은 가게의 뒷문을 보면 된다는것이 얏상의 지론이다. 쓰레기가 어수선하게 널려있거나 정리되어있지않고 가게에서 사용하는 음식물의 찌꺼기가 많이 나와있다면 그 가게는 이미 내리막선을 탔다는 것이다.그밖에도 여러가지 음식에 대한 상식들을 넓혀가던 다카오는 노숙자의 맛집이라는 코너를 실을 예정이라는 기자의 취재에 응하게되고 다카오가 대답한것과는 전혀 다르게 실린 기사내용에 분개한후 얏상에게 미안한 마음에 행방을 감추게된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이대로 꼬랑지를 내리고 있을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다시 얏상을 찾아간 다카오는 변함없이 받아주는 얏상의 넓은 품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된다.
며칠전 직장동료들과 함께 맛있는 집이라는 부대찌개집에 가게되었다. 허름한 식당이지만 손님들이 바글바글 끓어서 옆가게까지 터서 가게를 넓혔다는데 우리가 간 시간이 점심식사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일행중 한명이 찌개냄비에서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고 꺼내보니 행주 삭은 조각들이 마치 양념인듯이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던 것이다. 일행들의 단골집이라 뭐라고 싫은 소리는 하지못하고 마지못해 먹기는 했지만 먹는내내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이 가라앉지않았다.찌개를 한숟가락 떠서 먹는데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조미료맛이 강하게 느껴지는것이 맛있는 집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다카오에게 얏상이 말한다. 일단 미식가들의 이십프로에게 인정만 받는다면 그 다음에는 알아서 굴러가게 생긴것이 바로 맛집이라는 것이다. 맛있다고 미식가들의 인정을 받으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미식가들을 따라 뭔맛인지도 모르면서 맛있다고 찾아오게되고 계속해서 다른 손님들이 늘어나게 되어있다고 한다. " 결국 이 나라 손님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미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건 자주 듣게 되는 말인데, 요식업으로 돈을 벌 작정이라면 먼저 정말로 맛을 아는 2할의 손님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거야. 그렇게 되면 평범한 미각을 가진 6할의 손님과 아예 맛을 모르는 2할의 손님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p153 생각해보니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혹 일행들과 함께 맛집이라고 이름난 집에 가게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다들 맛이 있다고 하면서 먹을때 내입맛에는 별로인경우라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보일까봐 맛이없다고 한 경우는 없는것같다.
얏상과 다카오가 노숙생활을 함께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게 된다. 얏상과 부부관계나 다름없는 재일교포인 오머니의 등장도 반갑고 다카오와 부부관계로 발전할 소바장인을 꿈꾸는 어린 소녀 미사키의 모습에서도 느껴지는 바가 많다. 무엇보다 노숙자로서의 긍지를 우선으로 삼는 얏상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숙자에게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달려라 얏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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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0대 중반인 다카오는 도꾜 도심에 사는 노숙자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적으로 바뀐 뒤 한 번 직업을 잃고 나서 다시 고정적인 일자리가 없자 노숙자가 된다. 근데 같은 노숙자이자 귀인인 야스, 부를때는 얏상, 50대 남자를 만나서 먹는 문제가 해결된다. 동경의 노량진, 츠키지 시장의 도매상과 소매상, 그리고 도심의 음식점들을 얏상이 다 알고 그를 따라다니면서 3식이 해결되고 음식에 관한 눈이 뜨인다.
그러면서 수산시장을 중심으로 한 여러가지 에피소드. 소바, 메밀장인이 되기 위해 가출햇지만 위험한 어린 소녀를 구출해서 정상적인 길을 가도록 도와주고, 버블시절 전문음식점이지만 컨설팅사 꾀임에 빠져 무리한 투자로 부도난 음식점 사장의 인질소동, 역 중심에 츠키지시장을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려는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 등... 알고보니 얏상은 유명한 세프겸 음식점 경영자..
뭐 노숙자,실패한 경영자예기라 전반적으로 우울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밝은 명랑소설+생선이야기 들. 유머는 들어 잇지 않지만 약간의 감동과 신오쿠보에서 실패한 한국아줌마를 도와주는 이야기, 한국식 사시미먹는 법, 상추와 쌈장. 설롱탕 등 낯익은 예기도 나온다. happy en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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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얏상!!)
달려라 얏상은 요리에 관한 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밤에 읽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맛있는 회부터 시작해서 각가지 종류의 음식들이 나왔는데. 밤에 읽어서인지 더욱 군침이 돌고 허기지고 상상속으로 음식들을 떠올리곤 했다. 무엇보다도 글이 쉽고 정렬하게 표현이 되기 때문에 누구나가 읽어도 부담이 없고 쉽게 잘 익히며 시원시원하게 읽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스토리가 빠르게 전개되는 편이라서 그 또한 참 좋았다. 대부분의 소설들은 첫부분에서 따분함을 많이 느끼는데에 비해서 <달려라 얏상>은 처음부터 아주 재미있게 책을 읽혀나가니까 더더욱 손을 땔수 없는 즐거움을 맞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첫부분을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다카오라는 주인공은 특별한 꿈도 없고 목표도 없이 살아오다 젊은 나이에 직업을 잃어버리며 그로인해서 길바닥에서 노숙자가 되고 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얏상 이라는 노숙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는 전혀 노숙자 같지 않은 모습에 자기 관리가 아주 철처한 사람 같았다. 얏상은 다카오를 보자마자 구박을 하고, 젊은 나이에 꿈도 희망도 없는 다카오를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젊은 놈이 벌써부터 이러면 되겠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다카오는 이 '노숙자'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닌다. 다카오는 마치 꿈을 꾸는 듯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밥 한끼 못 먹으며 골골 거리던 자신이 지금은 여기저기를 다니며 아주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고 먹을 수 있게 되다니.. 그것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니!! 그러나 알고보니 공짜는 아니였다. 알고보니 얏상이라는 노숙자는 정보를 교환해주는 '댓가'로 음식들을 제공 받았던 것이다. 다카오는 이런 얏상을 보고 '잘만 따라다니면 내 인생도 달라지겠구나' 라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 뒤로 다카오는 얏상에게 '제자'로 받아 들여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한다. 그러나 얏상은 '노숙자에게 제자가 어디있어!!'라고 호통을 치더니 '그냥 따라다닐려면 따라다녀라'라고 말을 하고, 그 뒤로 얏상을 졸졸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경험한다.
<현재의 우리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실 <달려라 얏상>을 보면 '현재의 우리의 모습' 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세상을 잘 표현을 했다고 본다. 얏상은 다카오에게 '희망'이라고 할 수 있고, 다카오에게는 얏상이라는 존재가 '마지막 끈' 일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얏상은 다카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다카오에게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세상의 재미를 알려준다. 그로인해서 다카오는 점점 변하고, 성장 해나가며 얏상의 캐릭터는 아주 개성넘치며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며 '세상에 저런노숙자가 있다니' 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치열한 사회생활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나에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회'라던지 '해산물'이라던지 이런 종류의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나와서 흐뭇했다. 그로인해서 많이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참 좋은 작품을 만나뵙게 되어서 너무나 좋다. 다음에는 달려라 얏상에 이은 어떤 작품이 또 탄생을 할지 무척 기대되는 작가이고,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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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라하지만 노숙자가 아닌것 같고 노숙자로서 자부심? 을 가지고 있는 얏상. 노숙자라고 무조건 얻어먹거나 주워먹는것은 아니라는 얏상.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제공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다. 다카오에게 인생의 길을 안내해주는 얏상은 푸드코디네이터말고도 인생길잡이도 된다. 노숙자로 전락한 다카오에게 새로운 길을 찾아주고, 인생을 열어주는 다카오에게 인생의 멘토인 얏상.
다카오는 그저그런 대학을 나오고 it회사를 다니다가 인간관계가 원할하지 않아 그만두고, 지금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집세도 밀리고, 아파트에서 쫓겨나 긴자의 노숙자가 되었다. 쓰레기통 옆 먹다남은 김밥을 먹고있는 그의 앞에 얏상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노숙자라고 볼수 없는 모습이였는데 그도 노숙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노숙자라고 해서 지저분하게 자신을 관리하지 않고, 아무데서나 누워서 자는 그런 노숙자가 아니였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얏상을 따라서 다타오는 얏상을 따라 나서게된다. 얏상은 츠키지 중앙도매시장으로 다카오를 데려갔다. 그리고, 그는 생선가게에서 생선의 상태도 확인하고 식사도 해결했는데, 얏상을 대하는 상인들의 태도가 노숙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어서 다카오는 놀랐다. 게다가 아무도 얏상의 출입을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푸드코디네어터 얏상은 츠키지 도매상들이나 유명한 주방장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 이렇게 다카오는 얏상을 따라다니게 되었다. 얏상의 노숙자의 긍지가 있다고 해야하나, 깨끗하게 입고, 운동도 열심히하며 체력도 키웠다. 좋은 생선이 나오면 그 정보를 가지고 얏상은 상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노숙자 푸트코디네이터 얏상. 얏상을 따라다니며 요리에 목숨건 사람을 만나는 책이다. 다카오는 얏상을 따라다니며 일에 대해서 조금 인정받을 쯔음 어느여기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다카오는 약간의 수고비를 받게 되는게 그게 잘못된 일이 되어버리고 편지 한장 써놓고 얏상을 떠나게 된다. 언론플레이에 상처를 받게 된 다카오. 다시 얏상에게 돌아온 다카오. 얏상은 그냥 따라오면 되는거지 하면서 다카오를 다시 받아주게도 되고 다시 얏상의 제자가 된다. 그리고 두번째 얏상이 만나게 된 소바에 푹 빠진 중학생 미사키를 만나게된다. 소바에 빠져 학교를 그만두고 식당을 돌며 소바를 먹고 도망치는 미사키.
은근히 손이가고 끌리는 책이다. 얏상에게 배우는 인생 철학. 사회의 배신 인간관계등...
음식에 대한 철학이 확실한 얏상을 따라 다니다 보면 정말 맛있는 맛집을 만나게된다. 한번쯤 먹어보고 싶어지는 맛집들. 긴자에 가면 얏상을 만날수 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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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노숙자는 사회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숙자에게는 의무가 없지만 권리도 없다. 노숙자는 직업은 물론 수익이 없기에 세금을 내지도 않는다. 노숙자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노숙자도 투표할 수는 있지만 노숙자에게 투표할 의무를 행하라고 권유하는 선거관리 위원회의 캠패인을 본적은 없다. 요컨데 노숙자는 우리들이 옹기종기 붙어서 다닥다닥 조밀하게 살아가는 사회라고 불리는 인간들의 망에서 벗어나 있는, 일종의 잉여의 존재이다. 그런 노숙자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깃들어서 살고 있는 사회의 모든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누군가를 부양하기를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돌아올 도움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도 사회적 지지망에 가입하지 않아 남을 간접적으로라도 돕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혹은 기존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방식과 완전히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 이 책의 주인공 얏짱이라는 존재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는 존재. 노숙자이기에 잠을 잘 자리를 빌리기는 해야 하지만 그것도 폐가 되지 않게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 존재. 그래서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는 낮에도 벤치 하나를 통채 소유하여 다른 사람이 앉을 자릴를 뺴앗지 않기 위해 않아서 잠을 자는 노숙자. 남에게 노숙자는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매일 목욕하고 빨래를 하는 노숙자를 상상해 본다면? 바로 그런 독특한 존재를 창조하여 그 존재로 하여금 얇지 않은 책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도록 만든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 바로 이 책이다. 달려라 얏짱리는 제목처럼 그는 자신의 먹을 거리를 구하는 것도 구걸이 아닐 당당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의무로부터 벗어난 존재이기를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노숙자가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생긴 문제를 돕고 해결하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 활약상들이 바로 이 책을 구성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보며 얏짱은 단지 사화의 잉여적인 존재가 아닌것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진 인간형을 적극적인 의미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인간들의 세상에 있을수 밖에 없는 것들을 철저히 거부하고,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노숙자. 그러하면 그는 세상의 잉여적 존잭잭 아니라, 우리가 깃대어 사는 '정상저긴'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삶을 손수 실행하는 수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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