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키보드를 두드릴 때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ㅔ, ㅖ'를 칠 때에는 'ㅐ, ㅒ'를 치는 약지를 같이 사용한다. 물론 왼손 약지는 사용한다. 그렇다고 내가 오타를 치거나 남보다 타이핑 속도가 느리지는 않다. 평균 분당 500타 정도는 된다. TV를 보다가 출연자가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칼질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겠지만 내 눈에는 바로 들어온다. 내가 '어, 저사람 왼손잡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정말이네'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남보다 관찰력이 좋아서일까?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왼손잡이다. 운동할 때에만 왼손을 쓰고, 그 외에 글씨를 쓰거나 밥을 먹을 때에는 오른손을 쓰는 반쪽 왼손잡이가 아니다. 공을 던져도 글씨를 써도 밥을 먹어도 왼손으로만 하는 말 그대로 왼손잡이다. 불편하지 않으냐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한다. 하물며 30년 가까운 세월(지금 나는 우리나이로 29세)을 반복했는데 불편함이 있겠는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여러 겹의 벽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도 끝없는 저항(?)으로 그 벽을 넘어섰다. 이러한 신체적인 특징과 내력 때문일까 내가 세상을 보는 눈도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남북 정상회담 이야기가 한창이다. 한때 '통일'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라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그 당시에 가장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실향민도 재야세력도 아닌 재벌이라고 말하던 이들이 있었다. 오늘의 모습을 보라. 지금 우리는 '광주의 폭도와 위대하신 전두환 장군'을 떠들었던 TV가 '진보를 수용할 수 없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진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우리의 눈은 오른쪽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제 감히 내 눈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 '오른손잡이를 바른손잡이라 말하는 이 사회의 눈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잡이일뿐 바른손잡이가 아니다.
일명 '쨉이, 왼빼이'인 내가 왼손으로 하지 않는 일이 많다. 문을 열거나 악수를 하거나 지하철 표를 개표할 때, 버스 요금을 낼 때 그 외 기타 등등. 내 기억으로 이런 일들은 처음부터 오른손으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른손으로 하게 된다. 이런 일들을 일부러 왼손으로 해 보려 하면 나도 무척이나 불편하다. 오른손이 없다면 내가 물건을 들거나 아니면 똑바로 균형을 잡을 수나 있을까? 이처럼 처음부터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하는, 즉 왼쪽 눈과 오른쪽 눈으로 같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학교'에서 자란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벽에 못을 박을 때에도 한손에는 망치를, 다른 한손에는 못을 잡아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 나는 2000학번이다. 대학에 입학할 때, 당시 언론들이 우리 학번을 두고 ‘밀레니엄’학번이라고 즐겨 불렀던 기억이 난다. 무언가 90년대 학번들과는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 같은 것들이 그 호칭 속에서 슬며시 느껴졌었다. 적어도, 80년대 선배들의 치열함을 이어나가기 위한 또다른 ‘치열함’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던 90년대 학번(내가 직접 부딫칠 수 있었던 90년대 후반 학번들에게 한정되겠지만)을 두고 진정한 대학인으로써 자유롭게 학문을 할 수 있는 축복받은 세대라고 말하는 리영희 선생은 과연 우리 세대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지적 충격에 빠진 것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대학 신입생 시절 마냥 어리버리 눈만 꿈뻑이던 나에게도 여전히 리영희 선생의 글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도록 하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즈음에 출간되었던 ‘스핑크스의 코’나 ‘반세기의 신화’를 통해서 수십년간을 한결같은 자세로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선생의 노력이 세대를 뛰어넘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읽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또다른 의미에서 선생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이다. 책 속에 있는 한 칼럼의 제목을 딴 이 한 구절이 그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의 시의적절함으로 인해서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인상깊은 것은 책이 출간된 지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새는..’이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당시의 북핵위기와 지금의 상황이 놀랄만큼 비슷하다는 점이다. 선생이 수십년간 중국과 북한문제에 천착해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나로서는 선생이 책에서 하고 있는 말을 다시 한 번 주의깊게 살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책의 절반 정도는 94년 북핵위기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선생의 연구와 관련된 칼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책을 집필할 의도가 아닌 칼럼을 모은 형식이기에 나머지 뒷부분은 군대, 언론, 사회, 대학등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선생의 보다 인간적인 면을 풍부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94년과 04년의 사회적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 재미있다. 군대에 7년간 그것도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 그가 느낀 군대에 대한 환멸감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군 병역 거부자 문제에 대해 선생의 의견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또한, 영화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미국문화(선생의 말에 따르면 양키문화)에 대한 우려는 최근 전성기를 맞고 있는 한국 영화의 지난 10년을 다시 되돌이켜보게 한다. 그리고 입학한 느낌에 대해 ‘시시하다’라고 말한 대학 신입생들(93년학번이니 그 신입생도 이미 서른이 넘었겠다.)에게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놓은 지식이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에 가 보라고 했다는 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는 집회와 시위가 중심이 아닌,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당시 대학생들에게 바랬던 선생의 진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많은 지식을 담기 위한 어학 공부, 그리고 폭넓은 독서에 그치지 않고 그렇게 만든 지식을 실천으로 옮겼던 리영희 선생의 꼬장꼬장한 글들을 다시 읽으며 그동안 잠시 흔들리고 있었던 마음의 자세를 바로 가다듬는다. 또다른 전환시대를 맞고 있는 지금, 세상을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한 지식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
|
이 책은 1994년에 출간되었고, 저자가 그 해 '미국 정부의 대북한 군사공격작전 준비의 뉴스를 들으면서' 서문을 작성했다. 저자 리영희 교수는 왜 하필이면 서문을 '미국 정부의 대북한 군사공격작전 준비의 뉴스를 들으면서' 작성했을까? 그 이유는 핵 개발을 하는 '불량국가' 북한을 응징하는 미국의 군사침략 준비를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고, 적어도 '전쟁'이라는 극한의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질 정도로 왜곡된 인식에 빠져있는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오른쪽 날개로만 나는 데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왼쪽 날개를 다쳐서오른쪽 날개로만 퍼덕이며 무수히 많은 깃털이 빠져가며 제자리에서 퍼덕이는 애처러운 새의 신세와 흡사한 우리 사회를 안정되고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하기에 리영희 교수(한양대 명예교수)식의 '균형론'은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의 '균형론'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던가, 이것도 그르고 저것도 틀렸다는 식의 '양비론'과는 다른다. 오히려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진 양팔저울의 무게중심을 반대편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그의 균형론이다. 따라서 오른쪽 날개로만 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들의 반대편의 극단으로 색칠하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리영희 교수는 '균형론'을 통해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리영희 교수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만 결국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저없이 별 다섯 개로 추천한다 [인상깊은구절] "당신네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시오, 저 새가 오른Wr 날개로만 날고 있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 크기 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이오." ...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의 원리가 아닐까? ... 8.15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늘쪽은 신성하고 왼쪽은 악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새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
| TV나 신문을 통해서 익히 들어왔던 노교수의 책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 한편으로는 쑥쓰럽고,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 행동하는 지성인의 표본인 이영희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미국을 다시 생각하자고 역설한다. 그는 미국의 양면적인 태도, 즉 예속국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자주적인 모습을 보이는 국가들에게는 비민주적이고 조폭적인 태도를 취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전자의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슬라엘이고, 후자의 나라가 북한이나 이라크라는 사실은 다들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식의 논조는 노엄 촘스키의 <불량국가>에서도 느낄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장소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 두명의 노교수사이에는 같은 줄기의 지적 용천수가 솟아나고 있는 거 같다. 마지막으로 이책의 재미난 부분에 대해서 말하자면 열차명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말하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통일호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 민국에서 가장 열악하고 볼품없는 열차라는 데서 엄청난 실망과 탄식을 하고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커다란 오른쪽 날개로만 나는 새는 있을까? |
|
전환시대의 논리 이후 20년만에 출간된 이 책은 리영희 교수의 새로운 전환시대의 논리이다. 1974년의 전환과 1994년의 전환의 성격이 동일하지는 않았다. 전자의 전환이 탈냉전의 전환이라면, 후자의 전환은 동구권의 붕괴와 우리의 통일논의가 진전되는 전환이였다. 그러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우상을 찾고자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 '진실'은 균형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左)와 우(右)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맞고, 인간 사유의 가장 건전한 상태이다." 위의 글은 이 책의 머리말에 있는 글이다. 그리고 위의 글은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에 대한 분명한 정의다.
리영희 교수는 진실은 균형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 책의 머리말에서 강조한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사회주의 사상의 급격한 약화와 자본주의 사상의 일방적인 승리가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기에 세계는 급격한 우편향으로 기울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진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사실에 대한 판단을 어설픈 양자택일의 것으로 몰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이기주의는 악이고 이타주의는 선인다!" "자본주의는 선이고 공산주의는 악이다!" 식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면 진실은 영원히 감추어져 버리게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많은 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글들은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사실을 밝히는 것에 주력한다. 그것이 선인가 악인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분법적 판단은 이성의 눈을 가리는 우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 리영희 교수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바로 진실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방법이다.
[인상깊은구절] P. 355 독서를 통해 자신의 두터운 지적 몽매가 한 구석씩 깨어지는 순간의 감격은 거의 종교적 희열과 같다. 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은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통찰력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유인"이기를 위해서 애써 독서하는 삶을 살자. |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은 중고등학생때나 대학생일 때만 하는 게 아니라 평생 가지고 가야할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먼저처럼 많은 인간 중에 하나인 나. 게다가 특별한 재주도 없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지만 한 평생 만족한 삶을 살고 싶고 나 스스로 떳떳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여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식인이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호칭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리영희 교수의 글 모음이 이 책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나오고, 통일에 대해서도 나오고, 미국에 대해서도 나오고, 리영희 선생님 개인의 이야기도 좀 나오고... 글 하나 하나가 그다지 긴 분량은 아니였지만 2000년을 사는 내게 내가 살았지만 보지 못했던 사회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쪽의 시각만 내게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한쪽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내가 몰랐던 사실이, 아주 처참한 사실들이 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때의 그 충격이... 책 속에서 구구절절히 옳고, 감동적이고, 충격적이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구절이 참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절한 표현이 바로 책 제목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이다. 좌와 우, 발전을 위해서라면 정반합의 원리를 떠나서라도 참 딱 떨어지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역사는 끈질기게 외면해 오던 상식인 것이다. 좋은 책이다. 비록 회사 자료실에서 빌려서 읽은 책이고, 저자는 이 책이 안 팔리는 때가 매우 기다려진다고 하셨지만 한 권 구입해서 밑줄 그어가며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나름대로 잠들지 말고, 눈 커다랗게 뜨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