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즈의 무희를 읽은 것은 수능 준비를 하던 무렵이었다. 바쁘고 지친 일상을 영위하던 중,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야스나리의 단편선이 대단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수험 공부도 접어둔 채로, 이즈의 무희를 곰씹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이 단편 소설은 슬픈 내용은 아니다. 당시의 나처럼 고등학교 학생이 훌쩍 여행을 떠나, 우연히 만난 놀잇패거리(아마도 우리나라의 남사당패쯤 되는 듯 싶다.)와 어울려 며칠간 같이 지내다 헤어지는 내용이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제목인,'이즈의 무희'는 새카맣고 숱많은 머리카락과 대조적인 작고 흰 얼굴에 마음이 설레던 놀이패의 젊은 여자가 알고보니 고작해야, 12-13살 남짓의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다는 작은 에피소드에서 나왔다. 그러나, 짧고 단순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마지막까지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저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음은 분명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일시적인 어울림이지만, 헤어지고 나서 주인공이 어쩔 수 없는 애달품에 눈물을 흘리고, 갑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주인공의 짧은 여행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이, 또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짧고 덧없는 관계이기에,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놀이패들의 심산스러운 여정과 고생이 도리어 운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여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당시 각박한 마음이었던 내가 이즈의 무희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었다. 주인공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나 역시 주인공처럼 낯선 노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그런 면모가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에도, 이따금 일상의 각박함에 짜증이 날 때면 생각나는 책이다. |
| 가와바타 야스나리. 한국사람들은 이 이름을 들어도 갸우뚱 하겠지만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작가. 좀 더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설국이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가와바타의 소설은 묘사가 대단히 뛰어나다. 눈덮인 아름다운 별세계를 표현하던 그 필체가 이 소설에서는 이즈의 무희를 표현하는데 맘껏 발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귀여운 무희가 눈앞에 나타난것 같은 뛰어난 묘사이다. 이런 문장은 아무리 번역을 잘 하더라도 원작을 읽는것에 미치기는 어렵다. 이 책은 대부분의 한자에 후리가나를 달아주고 친절하게 해설을 해줌으로써 일어실력이 출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원작의 향기를 맛보게 해준다. 만약 이즈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소설의 이름을 본딴 열차 '오도리코(무희)'를 타보는 것도 좋으리라. |
| 아무래도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설국"으로 가장 잘 알려 졌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즈의 무희"를 읽었던 까까머리 시절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루키가 Jazz와 whisky로 중무장한 동시대의 탈세계적 폐허의 낭만이라 한다면, "이즈의 무희"에서 보여주는 야스나리의 세계는 가장 일본적인 숲속의 폐허를 헤메는 감성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하지만, 그들이 나긋하게 이야기 해 나가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는 상당히 닮아 있는 모습을 느끼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청년의 1인칭으로 진행이 되며, 여행중 우연히 만난 춤추는 소녀에게 강하게 끌리는 마음을 적어나가고 있다. 가장 흔해 빠졌지만 아름다울 수 밖에 사랑이야기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한 비슷비슷한 애타는 속내와 행동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근대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충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욱달부나 노신의 글에서 묻어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전통"이나 "민족색"이라는 뭔가 모를 간판이 아닌, 송진냄새 같은 이름 모를 노스틸자에 대한 막연한 향수와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내가 사랑한 사람에 대한 마음과 그 애절함을 느끼고 싶은 분과 나막신을 신고 일본의 촌락을 누비며 즐거웠던 적이 있으셨던 분과 온천이 유명한 이즈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읽어 보셔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