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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 날씨고 두 번째로 생각나는 건 영원할 것 같던 김일성의 사망이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김영삼 정부가 이끄는 문민정부와 후기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90년대. 뭐든 희망이 가득할 것 같았던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다. 바로 ‘지존파 사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불평등과 부조리가 가득했던 사회. 그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았던 젊은이들은 좌절과 박탈감을 폭발시켰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의리를 말하며 인육을 먹었던 그들.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다만 이 불평과 불만을 폭발시켰을 뿐. 지존파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1994년대를 회상하게 만든다.
학교 서열 2위. 서기표. 즉각적이고 반항적이며 화를 잘 내는 성격. 큰 덩치에 착했던 아이 김다윗은 작고 외소한 체격의 신정수(병수)를 보호자처럼 보호했다. 그리고 이들보다 두 살 많은 학교 최고 서열 이 세종은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 밑에서 외동으로 자란다.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 한동진은 시골에서 이들이 사는 동네에 정착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다. 이들이 사는 곳은 신정동. 비만 오면 침수 되는 이곳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의 인생은 시작된다. 1984년 홍수로 아버지를 잃고 가장이 된 세종은 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돈을 조금 벌지만 그나마도 병에 걸린 어머니로 빈 털털이가 된다. 다윗 대신 싸움을 한 기표는 소년원에 가게 되고 이후 가출을 반복하며 방황한다. 다윗과 정수 또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들과는 다르게 삶의 방식을 찾아가려던 동진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합격하지만 허무와 권태에 빠져 일상을 낭비하고 있다. 이들이 모여 만든 세종파. 돈을 벌기 위해 행동 강령을 만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기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이 조직에 폭력이 개입된다. ‘사회에 대한 복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게 과연 복수일까
세상의 모든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이렇게 변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힘들고 인생이 버겁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무차별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처한 가난과 보이지 않는 미래가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를 향한 복수가 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어야 할까? 그리고 생각해 본다.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사회일까? 개인의 인성일까? 개인의 인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사회가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도 맞다는 생각이 든다. 선량하고 착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불공정과 절망을 준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니까. 세종파라 말하는 그들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기까지 했으니까. 차라리 사이코 패스의 악랄할 만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덜 화가 났을까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핑계(?)거리를 말하지만 여기나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경찰에 잡히고 모두 사형 당했다고 한다. 사형을 당하기 전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종교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용서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실제로 90년대부터 양극화가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오렌지 족이니 야타 족이니 졸부니 하는, 그런 작자들이 주범으로 보였죠. 신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은 중산층의 일부 젊은이에 국한 된 말이에요. 그 밑바닥을 이해해야 돼요. 그 무렵 하층 계급의 20대들은 박탈감에 젖어 있었어요. 가벼운 바라에도 비명을 지르는 아주 예민한 종이었죠. 이런 좌절의 분위기에서 세종파가 나왔고 막가파가 나온 거예요. 세종파는 어쩌면 시대의 희생양이었어요. 사회는 그들을 미워하기 전에 이해해야 돼요.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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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올 당시 나는 외국에서 일어난 사건인 줄 알았다. 그동안에도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끔찍하다고 여길 만한 살인 사건은 늘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달랐다. 연쇄살인에 그 대상이 부유층이라는 점, 게다가 장기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인육을 먹었다는 점 등은 이 사건이 가지는, 기존의 살인 사건과 변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현산 작가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지존파 사건'의 발생 원인을 추적한다. 물론 소설 속에서 지존파는 '세종파'라는 조직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두 조직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소설은 이 세종파 조직원들의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사건의 전조를 추적하고 있다. 불우했던, 정말 되는 것이 하나 없던 주인공들의 삶을 재구성함으로써 세종파와 지존파가 저지른 범죄가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 안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종파와 지존파, 이 둘은 양면과도 같은 존재다. 현실과 소설이라는, 실제와 가상 속의 존재이지만 그들이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혹 이 두 집단의 발생을 유도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빈부의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고 두 조직원들이 지녔던 불만과 불안은 더 증식되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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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은 엄청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안방극장에서는 빨강망토 차차와 서울의 달이 방영되고 장혜진의 노래 <1994년 어느 늦은 밤>이 히트를 쳤고 한국의 사이비 종교 연구가 탁명환이 신학생에게 살해당했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기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영생할 것 같았던 김일성이 죽었고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아현동이 폭발했고 MBC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 안에'가 장안의 화제.. ...이 사이 어디 쯤엔가 지존파 일당이 경찰에 일망타진 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살인마라고 불렀고 악마의 화신이라고도 했다. 이 소설은 그들 지존파를 모티브로 쓰여진 악의 연대기이다. 94에는 박한상 존속 살해 사건도 있었죠. 지존파의 반대편에 있는 사건이라고할까.. 야타족 오렌지족 혹은 강남의 졸부들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에서 비롯된 지존파와 바로 그 오렌지족의 대표 케이스인 박한상 사건이 같은 해에 발생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 지존파가 떠들썩했던 이유.. 일단 두목(26세)을 제외한 멤버들이 너무 어렸고(20초반) 희생자의 시체를 토막냈다거나 식인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었죠. 그들의 시작은 노력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촉발되었고 오렌지족과 강남 부자들을 혼내주겠다는 의도로 범죄 단체를 조직했지만 정작 그들이 해를 입힌 대상은 공장에 다니는 소녀 가장을 비롯, 자신들의 처지보다 그닥 나을 것이 없는 돈없는 서민들이었다는 것. 하마터면 미궁에 빠지거나 범죄 행각이 장기화로 접어들지 않았던 것은 납치된 피해자 중 한명이 목숨을 걸고 그들의 아지트 사설 감옥에서 탈출,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94년 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 신문 1면을 장식해 국민들을 경악시킨 사건.. 암튼 지존파를 모티브로 쓰여진 소설 속에서는 '세종파'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기존 지존파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가난과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쳐 문제 청소년으로 성장, 이런저런 소소한 범죄로 교도소에 들락거리고 그 과정에서 익힌 안면 등으로 조직을 결성했고, 소설 속 세종파는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강서구 신정동과 안양천변 사이의 어디 쯤 위치한 어느 국민학교 동창과 선후배 관계로 엮여있습니다. 이미 결말, 즉 지존파 일당 검거, 형 확정 후 사형 집행까지, 를 알고 있는 사건을 다룬 소설이기에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저들이 도주에 성공할 것인가? 인질은 탈출할 수 있을까?... 등등.. 앞으로 펼쳐질 사건에 대한 궁금증, 즉 스릴 요소가 작동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 소설의 최대 약점이 됩니다. 범죄는 시대를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이 소설은 90년대가 도대체 우리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동기를 주고 있습니다. 90년대의 범죄는 싸이코패스가 주도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입니다. 오히려 그 이후로부터 이어지는 21세기의 범죄는 환경에 대한 분노 혹은 사회를 향한 복수의 표출 보다는 취미성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 독자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범죄자들, 즉 세종파의 어린 시절과 성장 배경, 주변 환경과 이에 반응하는 심리 등을 개연성있게 묘사하면서도 저널리스트 특유의 냉정한 시각을 유지한 작가의 서술 태도 덕분인지 그들의 언행에 감정이입되거나 동정을 갖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만의 진지한 독서 경험이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가슴 한켠이 묵직한 [독서후증후군]을 앓고있습니다.... 소설 속 세종파 혹은 현실의 지존파는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가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범죄와 살인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타고난 악마' 혹은 '절대 타인으로부터 교화될 수 없는 내성을 가진 강인한 자'로 취급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인정욕구.. 참 대단히 끈질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릅니다. 인정 받으려는 것을 포기하면 편한데... 다 부질없다. You don't even have to try It comes easy for you The way you move is so appealing It could make me cry Go out driving with my friends In bobby's big old beat up car I'm with a lot of people then I wonder where you are Good times, bad times, give me some of that Good times, bad times, give me some of that Good times, bad times, give me some of that I don't want to say goodbye Don't want to walk you to the door I spend a little time with you I want a little more Good times, bad times, give me some of that Good times, bad times, give me some of that Good times, bad times, give me some of th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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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떡 벌어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전례를 찾을 수 없었던 지존파의 범죄.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지존파의 행동강령 부유층을 증오한다와 사체를 훼손해 인육을 먹은 잔악한 짓이.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지존파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범죄자 심리를 첨가해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이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소설은 1994년 상도동의 명암으로 시작한다.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취임과 세종파(지존파) 은신처 수색. 주인공은 기표, 다윗, 동진이다. 소설은 동진의 시각에서 서술된다. 세종파의 어원은 동진의 동네형인 이세종의 이름이다. 조직과 강령을 만들었으나 담이 크지 않아 곧 조직을 떠나며 기표가 리더가 된다.
소설은 지존파의 팩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씩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의 조직강령과 조직원(병수) 살해, 중소기업 부자 살해 등등. 다만 전후사정과 범행을 하는 이들의 심리 등을 현장을 그리듯 설명한다. 특히 부자인줄 알고 납치했다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알았을떄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범행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극한에 상황에 놓이고 하나의 선택지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들이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소설에 빠져들면 연민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 한다. 실제인물은 어떠하더라도 최소한 소설 속의 그들은 그렇게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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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병들게 되는 것은 지나친 격렬함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너무 많이 느끼기 때문에 병이 들고, 주위의 모든 존재와의 과도한 상관성으로 고통을 겪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내밀한 체질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세계의 표면에서 육체와 영혼을 자극하는 모든 것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때문에 사람들은 더 무구(無垢)하고 동시에 더 떳떳하지 못하다. 더 아픈 그만큼 더 심한 무의식 상태로 신경계의 흥분에 의해 이끌리므로 더 무구하지만, 이 세상에서 애착을 느낀 모든 것, 영위해 온 삶, 품었던 애정, 너무나 흐뭇한 마음으로 길러 온 정념과 상상력이 신경의 흥분상태 속에서 녹아 없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자연스런 결과와 도덕적 징벌을 발견하므로 훨씬 더 떳떳하지 못하다. 삶 전체는 결국 이러한 신경과민의 정도에 따라 평가된다.” 미셀푸코, <광기의 역사>중에서 정치와 사회의 그 정신적 분열증에 관한 담론
대한민국의 90년대는 쉽게 이야기해서 ‘민주화의 시대의 도래 혹은 복귀’의 시대였다. 아직도 대학가에는 마르크스에 관한 투쟁과 레닌에 관한 실천에 대한 혁명에 역사를 꿈꾸는 자는 사라지지는 않아 화염병과 최루탄이 여전히 흩날리며 뉴스에서 그 선명하게도 빨갛게 물드는 불꽃과 매콤한 연기를 풍기며 페퍼포그의 그 짜릿함이 우리들의 시각과 후각을 예민하게 자극하였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군부독재의 종말이 서서히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는 점점 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다수결제도에 의한 합리적인 제도를 운용하기 위해서 수많은 정치인들은 예전의 우악스러운 독재자스러운 전형적인 모습을 버리고 좀 더 세련된 테크노라트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마치 한순간의 서울의 봄을 원귀회복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권력의 진공의 여백을 자본을 소유한 대기업의 주주들이 침략하기 시작한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돈의 욕망은 대중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기 시작한다. 도덕적인 원칙은 벗어버리고, 돈에 물든 정관계, 법조계 인사들의 입맛대로 그 코드를 다시 조립하고 윤리의식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리기 시작한다. 사회는 그렇게 병들고 썩어 들어가는 전염병이 돌기시작하자 그러한 병폐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백신의 개발의 미도착, 아직 사회는 성숙한 인격체의 집단으로서 그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아직 미숙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범죄의 재확대 생산의 모방이었다. 유현산의 두 번째 장편<1994년 어는 늦은 밤>은 그 당시 1994년 우리들의 사회를 경악케 했던 극악무도한 살인집단 지존파의 실화에서 그 모티브를 따와 만든 소설이다. 매스컴은 온톤 사회의 ‘양심’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을 하며 이러한 범죄를 일으킨 우리들의 사회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반성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그렇다. 물신만능시대의 본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보다 돈의 우선화법칙. 대중들의 지식인은 앞다투어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원인에 대해 분석하기에 심혈을 기울이며 한편으로 우리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기를 제안한다. 사회가 이렇게 삐거덕거릴 때, 우리들의 대중묺화는 이와는 반대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현실의 도피, 서태지의 힙합뮤직이 온통 한반도를 뒤엎더니 그 이후로 모든 가수들은 흑인음악 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마치 신의 자리에 위치해 있는 듯 한 착각을 만들며 대중문화를 선도한다. 우리에게는 봉준호가 이미 80년대 군부독재시절에 화성에서 벌어진 연쇄살인범을 다룬 <살인의 추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전으로 더 돌아가 임상수가 1979년도 박정희 암살사건을 다룬 <그때 그 시절>을 보았다. 그들의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나 아들에 시대에 혼란을 야기시켜 주는지 잘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더불어 9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시대였다. 박광수가 학생권 운동을 하는 대학생을 다룬 <그들도 우리처럼>가 극장 간판에 아무렇지 않게 걸리게 되었으며, 좌파적 지식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적 철학에 대해서 맹렬하게 토론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현산의 <1994년 어는 늦은 밤> 시대의 드레스코트를 안성맞춤으로 구조화한다. 이미 그의 첫 번째 장편<살인자의 편지>에서부터 출발한 그의 사회적 의식에 대한 병폐를 세세하게 다루겠다는 그의 야심는 이미 그의 문학세계에서 잘 표출하기로 정편이 나있었다. 토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가장 감명 깊게 읽어 그토록 이상향을 실천하게T다는 그의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다른 편으로 생각해보면, 사회의 불안정이 여전히 지속적이며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다는 냉소적 패배론에 대한 따끔한 충고의 메시지이다. 유현산의 소설의 세계는 이상하게도 주인공이 법인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누구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이야기하는 화자 즉, 주인공이 악인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물론 이 트릭을 이용하여 소설을 만든 이는 <애크로이트 살인사건>의 애거사 크리스티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칙은 반칙이다. 어떠한 소설도 이 위험한 패턴의 유형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게끔 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혹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법을 즐긴다. 유현산의 트릭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보고 있으면 저절로 범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러한 트릭의 발생과 숨김은 그 대상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이 범인의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더 몰두해 있는 소설가이다. 그러한 유지적인 조직의 연동성. 그리고 링크. 이 시회적인 부조리의 모순이 괴물 같은 인간을 탄생하게 만들었다는 성선설을 더 신봉하는 편이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그 전후관계처럼 말이다. 아직도 사회는 회복가능성이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의 물체이다. 그 희미함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 류현산의 소설이 영화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올해의 히트작 이용주의 <건축학개론>의 흥행 때문이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지금의 경제적 소비적 주체권은 30대에서 40대가 점유하고 있다. 그들의 호주머니를 자연스럽게 터는 방법. 그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 광기의 시대를 힘겹게 관통하며 숨 막히며 답답한 현실을 살았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옛 기억들에 대한 재조립뿐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린다. 문학과 영화라는 테마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박범신의 <운교>가 자주 인용되면서 그 스크린셀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이때에, 더없이 찾아오기 힘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 텍스트와 이미지에 대한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사실 영화의 힘은 좋은 시대상을 투영한 글의 짜임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험난한 시절에 다리가 되어줄 소설을 마음껏 보여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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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의 히트곡 <1994년 어느 늦은 밤>과 제목이 같다고 해서 로맨스나 이별을 주제로 한 감성 소설로 보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
제목에서 느껴지는 첫인상과 다르게 이 작품은 1994년에 체포된 연쇄살인집단 <지존파>를 모티브로 쓴 흉악(?)한 소설이다. 작가의 전작인 <살인자의 편지>를 재밌게 읽었었는데... 신작이 나와서 보게됐다...<지존파>라는 말에 끌리기도 했고...
그럼 <지존파>가 뭐냐?? 뭐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막가파>와 비슷한 집단으로... 연쇄살인마 유영철같은 싸이코가 몇 명 모여 만든 연쇄엽기살인조직이라고 보면 되겠다. <지존파>에 대한 간단하게 추려보면 이렇다.
1993년 7월 김기환(26세)을 주축으로 7명이 결성. 조직원들이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아 노동 현장을 전전하다 보니 잘사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 야타족과 오렌지족 등 부유층을 대상으로 살인을 계획. 같은 조직원이 배신했다는 이유로 살해. 이듬해 1994년 9월까지 사체소각시설가지 갖춘 상태에서 5명을 납치 토막살해. 납치된 한 여성이 극적으로 탈출 후 신고해 체포. 재판결과 6명 전원이 사형.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 사형. 1995년 11월에 사형집행.
지금이야 소설이나 영화, 또는 뉴스를 통해 엽기적인 연쇄살인마를 종종 보지만 당시에는 전무후무한......생각지도 못한 엽기적인 사건이라 충격여파가 장난 아니었다. 이후로 생매장에 인육까지 먹는 <막가파>와 <영웅파> 같은 아류파들이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 범죄에 있어 한 획을 그은(적당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조직이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르포형식을 취했는데... 이전에 읽은 <우행록>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었다... 순간 떠오를 정도로...
사건발생 후에 그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세세한 당시 상황을 듣는다. 사건담당 경찰...변호사...이웃 주민...친구...피해자 가족... 한사람...한사람 거쳐 갈수록 전체적 사건윤곽이 드러나면서 미완성 퍼즐조각이 완성된다. 완성된 퍼즐 속에서 언론을 통해 발표된 사건의 이면을 보게 된다. (우행록에서는 숨겨진 살인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그들은 왜 조직을 만들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
80~90년대 우리나라 현실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이야기 동선을 따라가면 그 답이 나온다. 배우지 못한 자의 설움... 가진게 없는 자의 아픔... 보듬고 보호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벼랑끝까지 내모는 세상... 더러운 세상...좆같은 세상...있는 것들이 더 한 세상...
복수하리라... 세상에 복수하리라... 있는 것들에게 복수하리라...
그렇다면 이 작품은 공포막장하드고어스릴러냐?? 재밌게 읽었던 작가의 전작 <살인자의 편지>가 스릴러물이라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강도가 좀 더 쎄~~진 범죄스릴러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서 책장을 넘겼지만... 아니었다.
이 작품은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자체 보다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현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체가 <지존파>가 아니라 우리나라 1980~90년대 사회분위기(현상)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범죄스릴러 보다 1980~90년대 시대반영소설에 가깝다.
얼마나 많은 시대상을 반영하기에..... 한마디로 무지막지하다. 근처만 가도 동네 홍반장처럼 어디선가 툭툭~튀어나와 감놔라 배놔라 할 정도다. 국민학교 생활...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동네...인기 있던 노래&드라마... 각종 사회범죄...각종 직업의 애환...등등등
이건 뭐 스릴러 소설인지...시대상을 반영하는 르포다큐인지 헷갈릴 정도. 몰입도를 방해하는 것은 당연지사..... 나처럼 표지에...홍보 문구에...스릴러적 재미를 찾고자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할 것이다. 전작처럼 문장력은 좋으나 소설적 재미는 그닥인 작품.
80~90년대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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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육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지존파는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같았다. 그들이 딛고 서 있는 현실이 잔인한지, 인간의 목숨을 너무도 쉽게 앗아간 그들이 잔인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명분을 내세우며 부유층을 골라 살인을 저질렀고, 우리 사회는 그들의 죄를 물어 다시 살인했다. 그리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으나 이후 '막가파'와 같은 파생형 범죄 조직이 등장하기도 했다.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지존파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됐는가를 추적한다. '세종파'라고 하는 가상의 조직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조직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등을 서술함으로써 지존파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불우했던 등장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세종파의 탄생을 되짚고 있다. 지존파의 범죄 대상이 왜 부유층이었는지, 왜 적개심을 갖게 됐는지 그 원인을 추적하면서 사회 비판적인 시각 또한 견지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만큼 사건에 대한 많은 자료 조사와 작가의 추론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잔혹한 범죄 조직인 지존파를 다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며 무게감 있게 내용이 서술되고 있다. 사건이 주는 그 중대함과 무게감을 잘 살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존파, 아니 세종파, 아니 그 두 조직의 조직원 모두 그들은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다. 혹 그들이 죽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세상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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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어느 늦은 밤>은 한국 범죄사상 가장 잔혹한 집단으로 기억되는 지존파를 모티브로 ‘세종파’라는 가상의 범죄집단을 상정, 90년대 사회적 모순과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학교 내 서열 2위이자 반항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서기표, 큰 덩치에 어릴 적부터 옆집 친구로 함께 놀았던 신정수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김다윗, 작고 왜소한 체격에 다윗의 말은 무조건 따르는 신정수, 그들보다 두 살 많고 예쁘장한 외모에 학교 서열 1위의 독한 싸움꾼 이세종과 시골에서 서울 변두리 인생으로 편입된 한동진의 초등학교 시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만 오면 침수구역으로 변하는 안양천변 빈민촌 아이들은 냄새 나고 끈적끈적한 동네를 통해 세상을 알아가며 혼돈의 청소년기를 보낸다. 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가 하면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세상과 거리를 벌여간다. 비열한 현실을 몸으로 체득하며 분노를 쌓아온 세종은 허무주의에 빠진 한동진을 제외하고 1993년 세종파를 결성한다. 이들은 조직의 단합과 범행자금 조달을 위해 납치, 강간, 살해를 일삼지만 스스로의 행동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가진 자들은 도덕성이 결여된 자들이고, 이들의 돈을 빼앗는 건 정의로운 행위라고 정당화하는 식이다.
작가는 이 소설은 ‘지존파’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존파를 이야기 하면서 지존파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니? 작가의 말을 미뤄 봤을때, 인간의 악한 본성을 끌어낸 조직의 광기였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해 어쩌면 지존파라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조직을 모티브로 삼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