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노스케의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책으로 접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단순히 소설에서의 '라쇼몽'과 영화의 '라쇼몽'은 조금 내용이 다르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것이 영화의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할수 있겠다. 소설에서의 '라쇼몽'은 인간의 물질적인 욕심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속이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파가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는 행동과 나중에 청년이 노파의 옷을 벗겨가는 것은 가히 놀랄만한 일이나 민심이 흉흉한 때에는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덤불 속 이야기'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편은 영화 '라쇼몽'의 알짜배기 줄거리인데 '하나의 완벽한 사건은 없다'라고 귀결지을 수 있을만한 소설이다. 한 사건에 대한 당사자 개인간의 의견도 다르고 관찰자의 의견도 틀리니 우리가 보는 사건은 하나의 완벽한 사건이 아닌, 극히 주관적인 사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틀리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류노스케는 줄거리 상으로도 인간내면을 살피는 점에서도 탁월하게 기술한 소설가라 할 만하다. 또한 '두자춘'이나 '마술' 등도 결과적으로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라쇼몽'과 '두자춘','마술', 등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류노스케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리고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특성은 다소 동화같으면서도 무언가 신기한 면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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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에 관한 뉴스에서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한나라당 나성빈의원의 발언이었는데 법대로 하면 국민의 99%는 탈세범일 것이라며 정운찬후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웃긴 이야기인데 웃기지 않았다. 웃기려는 패턴이 매번 비슷하다 보니 대본자체는 웃기지만 웃음이 나지 않는다. 나성빈의원, 정운찬후보, 이명박대통령, 너와 나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둥글게 랄랄랄라 빙글빙글 즐거웁게 탈세를 하고 있으니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문득 라쇼몽이 생각났다. 시대와 상황에 맞는 문학의 재조명 차원이었다. 책장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을 꺼내어 라쇼몽 하늘위를 둥글게 둥글게 돌며 처량하기에 그지없는 한 하인을 바라보는 까마귀의 심정으로 단편집중 "라쇼몽"편을 다시 읽기로 한것이다.
<스포일러성 줄거리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날 라쇼몽 처마 밑에 쫒겨난 하인이 비를 피하고 있다. 딱히 갈곳도 없는 하인은 당장 먹고 살 것 부터 걱정이다. 도적질을 해야 할지 뭘 해야할지 막막하다. 그러던중 시체 더미 사이에서 백발을 한 노파가 한 여자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뽑아내고 있다. 하인은 칼을 뽑아 들어 노파에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묻자 뱀고기를 병사들에게 속여 팔았던 사기꾼의 시체에서 가발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좀 뽑는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먹고 살려면 어쩔수 없다는 것이다. 오호라~ 하인은 노파를 밀쳐내고 옷을 벗겨 달아난다. 하인은 고민 할것도 없이먹고 살기위해 도적질을 하기로 맘먹은 것이다. 노파는 시체들 속에서 옷을 빼았긴체 도망가는 하인을 말없이 바라본다.
이것뿐이다. 문득 라쇼몽속 이야기가 생각났던 것이다.
나성빈의원은 여러 의원에게 질책을 받은 후 발언 내용을 속기록에서 지워 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장면에서 나는 혀를 차며 겨우 웃을 수 있었다. 끌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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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작지만 알찬 문고본이다.
옛날 작가답게 대부분이 권선징악이나 탐욕을 경계하는 교훈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광차>와 <라쇼몽>만이 인간 본연의 심약함과 광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두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 같다. 특히 <라쇼몽>보다는 <광차>가 아무래도 요즘 정서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사카 코타로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이 그 작품을 인용하는 이유를 알 듯도 하다. <광차>가 마을에 들어오자 타보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무작정 인부들을 따라 먼 길을 광차를 밀고 나섰던 꼬마가 너무 멀리 왔음을 인식하고 혼자 무서움을 떨치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안도의 울음을 터트리는데 그것을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마음이 변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 주인공의 생각에서 지금의 우리도 광차를 밀고 올라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달리다 다시 내려 힘들게 오르막길을 밀며 오르는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공감하게 된다. 그나마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로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코>는 자신의 단점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다고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세상이 달라질까 싶다. <라쇼몽>은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근데 내가 생각하던 영화 <라쇼몽>과 전혀 달라서 좀 의아했다. 난 그러니까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인간의 본성의 하나가 아닌지 싶지만... <거미줄>, <두자춘>, <마술>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나 탐욕에 대한 경계를 교훈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욕심이 없다는 것, 그 자체가 거짓은 아닐까 싶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은 한번 봐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보니 그저 전형적인 일본 단편이었다. 색다르다면 깔끔하다는 것 정도... 아마도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은연중 보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거장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사람도 저사람도 다 천재라고 한다. '완벽한 아름다움의 문장'이라고는 해도 일본어 원어로 읽지 않았으니 우리말로 번역된 걸로서야 그저 조금 그럴싸한 문장일 뿐이다. 도대체 어떻기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하는 건지 궁금하다. 그보다도, 한결같이 인간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심성에 대한 생각을 긴 기적소리처럼 뒤에 오래도록 남기는 그 단편들의 그 울림이 꽤 묵직하다. 책도 정말 얇은 녀석이어서, '라쇼몽' '덤불 속 이야기' '코' '두자춘' '밀차' '마술' 이렇게 여섯개의 단편들을 읽는데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문득문득 멍청하게 있는 시간에 생각이 날 것 같다. 일본 단편들의 그 '짧은글 긴여운'이란 특징은 하이쿠로부터 영향 받는 바가 큰 게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도 해 본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밀차'라는 단편은, 인간의 성악설에 대한 내용이라기에는 좀 다른데, 어린 시절의 별 것 아닌 사건에서 어린 마음에 느꼈던 깊은 인상에 대한 이야기다. 공사장에 있는 밀차를 언덕으로 밀고갔다가 거기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일을 동경해왔던 어린아이가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마침 마음좋은 아저씨들을 만나서 밀차를 미는 걸 도와주고 올라타기도 하게 되는데, 이 아저씨들은 이 아이의 마을 쪽으로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밀차를 밀다가 타다가 하면서 가는 바람에 해가 질 때까지는 마을에서 한참 먼 곳으로 가 버린다. 집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달은 순간, 이 아저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에게 "그럼 이제 너는 집에 가거라" 하는데, 한번도 그리 먼 곳에 와 본 적이 없던 아이는 겁에 질린다. 어두운 숲속을 헤매면서 겁에 바득 질린 아이가 결국은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엄마 품에서 왕 울음을 터트리는 정도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는 이야기다. 저녁놀과 땅거미가 어린아이에게 주는 아득한 두려움은 누구의 기억 속에나 간직되어 있을 것일진저, 기억의 실타래를 더듬어 그 때 그 골목 그 어스름 그 붉은 하늘 밑으로 한번 더 내 자신을 가져다 놓아보는 새삼스러움도 쏠쏠하다. |
|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말을 변명처럼 하고 다니는 버릇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믿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 단점을 숨기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물에는 그 나름대로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그렇지만 사물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본 모습만 기억 속에 남게되고, 그 모습만이 그 사물의 진리라고 믿게 된다. 비단 사물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러하다. 그저 유명한 영화라고만 알고 있던 "라쇼몽"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무언가 대단하고 상당한 양일 것이라는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지하철 안에서 채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라쇼몽은 끝나 버렸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라쇼몽이라는 영화는 사실 '덤불 속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덤불 속 이야기'는 산적을 만나 죽은 사나이의 이야기다. 그 사나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엇갈린다. 누가 그 사나이를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결국 아무런 해답이 없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범인을 그려내는 수밖에.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는다면 그 사람의 말이 모두 진실같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되면 두 사람중 누구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렇지만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진실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