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명태>의 가사 중 일부이다. 소주와 어울리는 서민의 대표적인 생선인 명태가 이제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해양수산부에 의하면 1950년대 연간 2만4000톤, 1970년대 연간 7만톤이나 잡히던 명태는, 2000년대 중반에는 100톤 미만으로 어획량이 줄었고, 2007년 이후에는 1년에 1~2톤 정도나 잡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남획과 수온 상승으로 어종 자원이 거의 고갈되다시피 한 셈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해양수산부가 고갈된 국산명태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살아있는 명태를 어민들한테 구하거나, 러시아·일본 등에서 수정란을 들여와 치어로 키운 뒤 동해에 방류한다는 계획이다. 살아있는 명태는 1마리당 50만원, 죽은 명태는 5만원에 매입한다고 현상금까지 내걸은 것을 보면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 명태와 같은 대구목 대구과의 바닷물고기이며, 무분별한 남획으로 인해 어획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생선이 있다. 명태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 이 생선의 이름은 무엇일까 바로 대구다. 대구는 명태와 같은 어종이다. 대구는 명태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몸 앞쪽이 보다 두툼하고 뒤쪽은 점점 납작해진다. 머리가 크고 입이 커서 대구(大口)라고 부른다. 비린 맛이 없어 담백해서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명태가 우리나라 서민의 대표적인 생선이었다고 하면 대구는 전 세계인들이 대표적인 생선이라 볼 수 있다. 대구를 세계인들의 대표적 생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이 생선을 즐겨 먹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류와 함께 했던 기나긴 역사가 있어서다. 바이킹의 유럽진출, 신앙을 찾아 미국으로 간 청교도들, 노예무역, 독립전쟁, 산업혁명...등등 대구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인간의 삶과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바이킹 북유럽의 바이킹은 먼 바다를 항해하여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에 도착한 것은 바이킹의 뛰어난 조선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숨겨진 진짜 공로자가 있는데 바로 대구다. 먼 바다를 향해하기 위해선 먹을 식량이 충분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대형선박이 없었던 시절에 음식을 넉넉하게 배에 실을 순 없었다. 바이킹들은 말린 대구를 이용했다. 청교도 :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많은 청교도인들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갔으나 매사추세츠의 혹독한 추위에 대부분 굶어 죽었다. 그들은 영국으로부터 대구를 잡는 법과 소금에 절여 말리는 법 등을 배우고 어장을 세움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이후 그들은 대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대구가 그들을 살렸다.
뉴잉글랜드는 대구 무역 덕분에 상업의 중심지가 되고 사람들은 대구를 쫓아 뉴잉글랜드로 몰려든다. 뉴잉글랜드의 상인들은 질 좋은 대구는 유럽으로 수출하고 나쁜 것들은 카리브 해의 사탕수수 농장에 팔았다. 사탕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노예들에게 대구는 그나마 영향을 보충할 수 있는 괜찮은 먹거리였다. 그들은 카리브 해에서 당밀을 수입해서 럼주를 만들어 아프리카에 팔고, 그 돈은 다시 카리브 해 농장에서 일할 노예를 사 오는 데 쓰였다. 대구money가 노예무역을 활성화 시킨 자본이 된 것이다. 그 밖의 여러 역사적 사건 속에서 대구는 항상 우리와 같이 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구의 주요무대는 유럽과 미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받아야 할 메시지는 매우 크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명태 고갈 사건처럼, 대구 역시 남획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인간 탐욕으로 인한 무차별한 남획은 단지 한 어종의 물고기의 멸절하는 것 이상이다. 나의 욕심이 우리 자녀에게 물려줘야할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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