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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야 미우는 최근에 알게 된 작가이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전부 읽었다. 아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사 놓고 아직 읽지 않았다. 잠시 착각. 그 외에 나머지 작품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남편의 그녀』 그리고 방금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까지 읽었다. 가독성이 꽤 높은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 찾아든 소설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를 시작으로 읽는 재미에 빠져서 한 권씩 찾아서 읽는 중이다. 다행히 최근까지 작품이 번역되고 있다.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의 주인공 미즈사와 구미코는 최악의 하루를 보낸다. 회사에서는 계약이 만료되었고 연인의 감정을 넘어 혈육의 정을 느끼는 남자에게서 애인이 생겼다는 통보를 받는다. 함께 집세를 내고 사는 집에서 나가달라는 정중함과 무례함이 섞인 말도 듣는다. 처음에 구미코는 좌절했다. 일본은 집을 구할 때는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 건실한 직장에 다닌다는 증명서가 필요하고 통장의 잔고도 넉넉해야 한다. 그 모든 사항에 구미코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와 결혼하겠다는 동거인은 예전에 그녀에게 청혼을 했었다. 구미코는 당시로서는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거절했다. 그걸 지금에서야 후회할 줄이야. 후회해봐도 이미 늦은 일. 구미코는 당장에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그전에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젊은 나이에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다큐를 본다. 일본 농업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는 당찬 그녀에게서 기운을 얻어 농업 대학교에서 실시하는 농업 연수를 듣는다. 도시에서 힘들다면 농촌으로 가자. 그곳에서 먹을 채소를 재배하고 더 나아가 밭을 경작해서 수입을 올리자. 희망찬 생각을 했더랬다. 현실은 가혹했다. 서른두 살 독신 여성에게 농촌은 냉담했다. 농사 일이라는 게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땅을 빌리는 데 조건이 까다로웠다. 가족이어야 하고(남편이라는 존재는 필수였다!) 자식에게는 농업을 물려줘야 한다. 조건이 충족되었어도 그냥 땅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고 몇 년 정도 농사짓는 것을 보고 정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면 빌려준단다. 구미코는 대학 시절 시골에 연립이 있다는 선배에게 연락을 해 집을 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일은 험난하기만 하다. 다큐에 나온 여성은 농사일이 힘들지 않다고 했다. 기계가 발달해 여성 혼자서도 충분히 농사를 짓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녀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이런 그녀는 부모가 농사일을 하고 땅과 집을 이미 갖춘 상태에서 농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구미코와는 출발이 달랐다. 좌절하지 않는다. 소설은 내내 명랑하고 밝다. 여성 혼자 살아가기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마냥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지 않다고 말해준다. 집과 일을 구해 자립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구미코의 좌충우돌 체험기를 통해 보여준다. 구미코가 농사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후지에가 결혼 미팅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을 제안한다. 구미코는 마다하지 않고 가서 코미디처럼 진행되는 남녀 짝짓기 현장을 체험하기도 한다. 도전해 본다. 일단 해본다. 구미코 주변의 여성이 결혼으로 안락함을 보장받으려 했다면 구미코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그녀가 힘을 낼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움을 준다. 서른두 살. 각자의 기준을 들이대자면 젊다면 젊고 나이가 들었다고 한다면 들었다는 나이. 일 년이 지나 서른세 살이 된 구미코는 과연 혼자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의 행복을 축복해주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 역시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남의 행복을 질투한다. 자신이 불행할 때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불행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성격이 특별하게 비뚤어진 것은 아니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가키야 미우,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中에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행복 앞에서 불행이나 불안을 연출하는 사람으로 살 수는 없다. 누구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자신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어 책 읽기의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다면 가키야 미우의 소설들을 추천한다. 초긍정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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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소설도 그렇긴 하지만 일본 소설을 읽을 때 자주 느끼는 게, 비슷한 환경과 문화에서 겪는 일들이 너무 닮았다는 거다. 거기에 이 작가, 가키야 미우의 작품 속 주인공들과 그들이 마주한 여러 가지 사연들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심정을 토로하는 건 듣는 기분이 들거나, 어느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고민을 마주하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저자의 작품을 좋아한다. 가식을 떨칠 수 있는, 굉장히 적나라한 상황과 심리 묘사로 현실에 찰싹 달라붙은 우리의 이야기를 펼치곤 해서 말이다.
인간이 절망을 느끼며 다시 바닥 짚고 일어서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건 국적을 가리지 않는가 보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구미코는 긍정적이었다. 일도 잘하고 분위기도 좋았으니 이번 계약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로 믿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계약이 끝났다는 통보로 구미코와의 인연을 끝냈다. 설상가상, 7년째 동거하며 지내온 남자친구는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며 헤어지자고 말한다. 둘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같이 준비하며 합했던 모든 것은 이제 나뉘어야 한다. 특히 구미코에게는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부모도 가족도 없는 그녀가 돌아갈 곳도 없다.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고 살던 집에서도 나가야 하는데, 도저히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구인란을 뒤지며 새로운 일을 찾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단기로 일하는 시간제만 있다. 그녀가 찾고 싶은 정규직에 안정적인 직장은 그녀를 거부한다. 그녀의 나이 이제 삼십 대 중반을 향해 간다. 무언가 안정되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더 불안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모아놓은 돈은 집을 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집을 구하려면 보증이 될만한 배경이 필요하다. 다닐 직장도, 가야 할 집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듣기만 해도 캄캄하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고, 내 몸 하나 편히 뉠 곳도 없다는 건 얼마나 벼랑 끝이란 말인가. 이것저것 시도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절망에 절망을 거듭할 무렵,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가지. 농업.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홍보하는 장면에 시선을 빼앗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정성 들여 가꾸니 무언가가 자란다. 채소와 과일이 눈에 그대로 담긴다. 아, 뭐든 노력하는 만큼 내놓고 보여주는 게 땅이구나. 그녀는 농업을 가르쳐주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실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농업을 계속할수록 자신감이 붙는다. 이제 모든 수업은 끝나고, 실전이다. 땅을 구하고 열심히 채소를 가꾸기만 하면 된다.
생각하는 그대로 모든 게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무렵 농업을 알게 되고, 이제 다시 일어설 일만 남았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쳤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시골에서 여자 혼자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모두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대대손손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뜬금없이 나타난 뜨내기가 농사를 짓겠다고 바람을 일으키니 좋아할 사람이 없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인내심을 가지고 농업을 하면서 시골에 정착한 사람이 없더라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구미코는 당황한다. 땅을 임대해야 농사를 짓고 집도 짓고 하면서 시골 생활에 적응할 텐데, 준비 단계에서부터 그녀는 다시 꽉 막힌 현실에 부딪힌다.
가까운 주변에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실제로 농사를 지켜본 적은 없다. 마트에서 필요한 채소 몇 가지 사다 먹으면 된다는, 편한 일상을 지내기만 했으니 농사의 현실을 내가 알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다가 엄마가 마당의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거의 일 년 내내 그 작은 밭에 몸과 마음을 쏟는 것을 보고 농사의 어려움을 작게나마 알게 됐다. 이렇게 땅에 몇 가지 채소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데, 더 크고 넓게 농사를 한다는 건 정말 가늠할 수 없는 고단함이겠구나 싶었다. 여름에 푸릇하게 벼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것을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구미코가 처음 농사에 뛰어들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사람도 회사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나를 배신하는 때도 많지만, 땅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농업을 쉽고 편하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니,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일이 더 경건하고 위대한 일로 보인다.
식물을 만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채소와 꽃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뻤다. 씨앗 한 알갱이에서 싹이 나올 때의 기대감, 시간이 지나면 가련한 꽃이 피고 거기에 열매가 맺힌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또 연구하고 노력하기에 따라 열매의 품질이 정해지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베란다에 채소를 키우곤 한다.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79페이지)
구미코가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에 입성하고, 어렵게 땅을 구하고 채소를 심고 가꾸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삶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낀다. 일하겠다고 땅을 구하는 여자에게 농업 하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이나 하라고 말하는 인식, 열심히 자기 삶을 꾸리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남편의 안정적인 삶에 기대야 한다고 말하며 결혼 만남에 등 떠미는 시선, 단체 맞선 같은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강요되는 여성의 자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참담했다. 내숭을 떨어라, 바지 말고 치마를 입어라, 상대의 취향에 맞추는 척해라, 처음부터 남자의 환경이나 능력을 묻지 말아야, 가만히 앉아서 적당히 미소로 응대하라는 등 다시 만나려고 이래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말들이 암흑이었다. 솔직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일이 거부당하는 현실, 그것도 대부분 여자에게 강요하는 처세술이 이런 거라니. 결혼하지 말라는 게 아닌, 여성 그 자체로 살아가기 위한 당당함과 독립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비추면서,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누구에게 기대거나 현실의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오롯이 마음이 통하는 상대와의 결합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성 혼자 농촌 생활을 시작하는 고군분투가 생생해서 삶의 치열함을 거듭 엿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내 앞에 튀어나올까 겁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내 앞에 닥친 문제의 답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또 뛰어다녀야 할까 생각만 해도 심란하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 순간을 넘어가기 위해 우리는 또 답을 찾아서 달려야만 하니까. 결국은 눈앞에 닥친 지금을 성실히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답이 되겠지. 그게 바로 삶의 의지가 되고 이유가 된다. 구미코의 곁에 아야노와 후지에 같은 삶의 경험이 축적된 어른이 있어서, 현실의 고충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또래의 시즈요나 히토미, 미즈키 같은 여성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니까. 함께,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구미코가 현실의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기까지 스스로 노력하기도 했겠지만, 주변에서 관심 둬 주고 함께 나아갔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테다. 이번 기회로 삶의 고마움과 사람의 소중함을 더없이 배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겸허히 껴안은 방법도 배웠겠지.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차근차근 배워가는 삶의 순간들이 아름답게 보였던 소설이다. 어떤 환경을 만들어도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답을 찾은 그녀의 농사가 언제나 풍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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