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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읽고 있다. 미친듯이 서사를 쫓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부러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 나가고 있다. 읽기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지만 이제 겨우 1부를 끝내고 2부1권을 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토지]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책이 보이면 그 책도 함께 읽고 있다. 다른 사람은 [토지]를 어떻게 읽는지, [토지]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안다면 나의 책읽기도 그만큼 깊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에게-[토지]가 건네는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 참 쓸모 있는 인간](김연숙 저/천년의상상)을 읽은 것도, 그리고 지금 이 책 [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서]를 읽은 것도 다 그런 생각에서다.
‘[토지]를 읽은 경제학자가 바라본 우리사회의 풍경’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목인 [잃어버린 품격을 찾아서]가 말하듯, 지금 우리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또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다루는 사회비평서이다. 처음 이 책을 보면서 [토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다소 결은 다르지만, [토지]를 매개로 하여 우리사회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책을 읽는 한 방법임을 생각할 때 앞으로 읽어갈 [토지]에 대한 또 다른 독법을 생각해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자는 이 책이 ‘[토지]의 등장인물들은 나라를 빼앗겨 염치도 잃었다고 한탄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염치를 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시민으로서의 품격을 갖추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8쪽)라는 생각으로 [토지]를 읽으며 적어 둔 메모들을 토대로 엮은 책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우리들 모두가 잃고 있는 염치와 품격에 대해서 살펴보는 셈이다. 염치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또 품격은 사람의 품성과 인격, 즉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혹은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품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염치를 아는 것이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토지]에 나오는 백성들의 말을 빌어 염치와 품격을 말하는 것은, 작금의 우리사회가 품격은 고사하고 염치마저도 잃어가는 뻔뻔한 사회가 되어 가는데 대한 우려와 경고로 다가온다. 총4부로 되어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빈자와 부자의 품격, 시민의 품격, 갈등의 품격,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태생적 품격은 무엇이고 또 우리는 어떻게 그런 품격을 찾아야 하는지를 [토지]의 등장인물들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먼저, ‘빈자의 품격, 부자의 품격’에서 저자는 [토지]에서 나라 잃은 백성들이 자기 존엄만은 치열하게 지키려 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부자여서 품격이 있는 것은 아님을, 먹고 살기 팍팍해도 자기 존엄을 위해 지킬 품격이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부자, 빈자를 막론하고 지켜야 할 품격이 있음을, 따라서 우리사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신의 품격을 생각해보아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가난은 품격은 고사하고 인간의 존엄마저도 내팽개치게 만드는 현실에서 품격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부자고 빈자를 막론하고 모두를 위한 복지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투자임을, 그런 복지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품격까지도 지켜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시장의 에너지와 시민의 품격’은 현대사회에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장을 [토지]에서 묘사하는 장터풍경에 대비하여 말한다. 해고를 둘러싼 갈등,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등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제적문제들의 바탕에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시장이라는 말은 부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도구로 인식되어 있다. 최근 쉽게 들을 수 있는 갑질이란 말도 결국은 시장을 통해 부를 축적한 천박한 부자들의 염치와 품격에 대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시장의 에너지를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품격으로 조화시킬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갈등의 품격’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수많은 갈등구조의 기저에는 바로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 먼저 할 일이 있다. 위기에도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야 세계화속에서도, 4차산업혁명의 물결속에서도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 용기가 생겨날 테니까. 위기의 순간에도 나만 먼저 살겠다고 약자를 밀어뜨리는 그런 야만을 경멸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의 품격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132쪽)
마지막으로 ‘[토지] 남녀 : 잃어버린 품격의 시간을 찾아서’는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토지]의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내가 이 책을 처음 보면서 기대했던 것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다. 남녀간, 부모자식간 그들의 성(性)과 사랑과 연민을 풀어내는 [토지]의 미학을 통해 우리의 태생적 품격을 찾아보겠다는 저자는 식민지 지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절되기만 했던 우리의 품격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책은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사회비평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가 염치를 잃고, 품격을 잃은 까닭은 우리의 근대가 고단했고, 또 그런 근대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역시 현실과의 간극을 메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삼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경력 혹은 좌익경력이 나온다는, 그래서 한국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꼭 좋은 것인가?’하는, 그 말이 함축하는 특권의식을 둘러싼 논쟁을 잠시 차치하자면, 책임감 있는 건전한 보수세력의 부진, 자신감 있는 포용적 진보세력의 부진 등 우리의 아픈 근대사를 상기시키는 말임에 틀림없다.’(86쪽)는 저자의 말은 그런 우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박한 시장경제 속에서 염치도, 품격도 저버린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 [토지]를 읽은 경제학자는 지금이라도 우리가 염치와 품격을 찾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토지]를 읽어가면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들 또한 유심히 살펴보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