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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수유병(滯穗遺秉)이란 말에 반해서 읽게 된 책이다. [시경] <대전>편에 나오는 ‘저기에도 남은 볏단이 있고, 여기에도 흘린 이삭이 있다’는 피유유병(彼有遺秉) 차유체수(此有滯穗)라는 구절에서 따왔다는 [체수유병집]은 추수 끝난 들판에 여기저기 떨군 볏단과 흘린 이삭처럼 저자가 지난 10년간 써온 글 중에서 모으고 정리한 글들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정민교수의 책은 한,두권 읽은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생각해봐도 어느 책인지를 잘 모르겠다. 제대로 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 하고는 맞지 않아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전자가 아닐까 싶다.
책은 글의 성격에 따라 4부로 나뉘어 있지만 구분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저 읽어가다 보면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날 수 있고, 그 글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면 되지 싶다. 굳이 구분을 한다면 나는 2부 ‘연암과 다산’편에서 연암의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뭘까? (…) 문체의 불온성은 문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사유의 불온성과 관련이 있다. 문체는 그 불온성을 발화의 영역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89쪽) 정조는 연암의 [열하일기]가 지닌 불온성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유례없는 문체반정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암의 불온성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본 것과 못 본 것의 전도된 배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본 것이라 생각한 것이 연암에게는 못 본 것이고, 그들이 못 본 것이라 여긴 것이 연암에게는 본 것이 되는 셈이다. 북벌과 소중화는 연암에게 못 본 것이고, 청의 문물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못 본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볼 것을 제대로 본 것인지, 혹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문해 본다. 연암의 글을 저자의 생각을 따라 읽어가다가 문득 일전에 읽은 [열하일기]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제대로 읽었는지, 혹 고전이라 하길래, 남들이 읽길래 덮어 놓고 읽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왕에 읽은 책들을 제대로 읽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내 자신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생각해낸 모든 새로운 것은 닳고 닳아 낡은 것의 변주일 뿐이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서 고안해낸 새것도 알고 보면 전에 있던 것들이다. 내가 모르고 우리가 몰랐으니 새것이지, 예전에는 혹은 저기서는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누구나 알던 것들이다. 그러니까 없는 새것을 쥐어짤 생각 말고, 잊었던 옛 것을 뒤지는 편이 훨씬 빠르다.’(210쪽)는 저자의 말은 그런 나를 빗대어 말하는 것 같다. 새삼스레 [열하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거기에 더하여 [연암집]을 읽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예전에 읽었던 그것들을 새롭게 읽으면서 과연 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가능하면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삶이 힘들었을 때는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지만, 본디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순간만은 모든 근심과 욕망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부딪히는 물음이 있다. 나는 왜 책을 읽는지,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가 그것이다. 단지 걱정과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면 책을 읽는 것 말고도 많은 방법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책만 책이 아니다. 독서는 문자를 빠져나와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을 때 가장 위력적이다. 삶의 행간을 읽고, 드러나지 않는 질서를 읽을 때 독서는 비로소 완성의 단계에 진입한다.’(13쪽) 아마 머리로 읽기만 하는 책은 의미가 없다는 말일 게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한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지극히도 평범한 말을 다시 한번 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그의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그러지를 못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되 그저 눈으로, 머리로만 읽는 책읽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추수가 끝나고 여기저기 흘린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하며 새로운 책읽기가 될 수 있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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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저자가 그동안 해왔던 누군가의 문집을 번역한 것이라고 예단했다. <체수유병집>이라는 낯선 표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체수(滯穗)나 유병(遺秉) 이 모두 수확할 때 떨어진 이삭을 일컫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책의 ‘서문’을 읽었을 때, 비로소 저자가 이러한 제목을 붙인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또한 한문학을 전공하는 그의 기질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의 달변을 옆에서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전의 번역이나 옛글을 편집해서 엮은 것이 아닌, 저자의 생각들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내가 아는 저자는 달변가이다. 학회가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생각들을 꺼내놓으며 좌중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에 맞추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들이 저자가 평소 생각했던 바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하겠다.
평소 저자는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갈무리하는 습관이 있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그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저자의 연구실에 들른 적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연구실이 책과 온갖 자료들로 가득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종 프린트물과 메모들을 모은 파일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던 모습이었다. 그러한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그동안 왕성한 결과물을 쏟아냈던 것이리라. 정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충분히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연구 태도라 할 것이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의 항목에서 저자의 학문적 이력과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2부에서는 그가 스승으로 삼고 있다는 박지원과 정약용을 다룬 글들만으로 채워져 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주로 공부를 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메모하고, 그러한 자료들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책을 쓰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에도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는 종종 행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자료를 모아 엮은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철저히 자기화하여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저자가 그동안 고전 번역과 옛글의 편집에 매달렸던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글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나에게는 4부에 있는 ‘논문 작성과 텍스트 분석’이라는 내용의 글이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다. 최근 들어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 작성을 지도하면서, 논문에 대한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부쩍 하고 있다. 단지 학위논문만이 아니라, 소논문 하나 쓰는 것도 버거워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의 이 글에 내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내용들이 다 담겨있었다. 앞으로는 이 글을 읽힘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기본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독서 경험은 앞으로도 저자의 생각이 담긴 글들이 보다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계기였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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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내가 가진 것이 많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넉넉해서 없는 이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남에게 베푼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면 도리어 내가 받고 있고, 나누어주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내게 더 많이 돌아오는 것이 나눔이다. 다 나눠주고 나면 내 것이 남지 않아야 이치에 맞지만, 나눠줄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베풀고 나면 받은 쪽에서 고마워야 할 텐데, 베푼 사람이 더 고맙다. 전에는 안 보이던 것이 새롭게 보이고, 앞앞서는 나와 무관하던 일이 바로 내 일이 된다. - p.56
『체수유병집』을 읽는 중이다. 이것도 꽤나 오랜 시간에 걸려 읽을 듯 하다.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천천히 읽지 아니하면, 흐름을 놓쳐 무슨 얘기인지 모르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서 책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일단 리뷰를 써놓고 천천히 천천히 음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도 제대로 된, 완전체 리뷰는 언제 작성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3월부터는 바쁘게 돌아갈 나의 일상 때문에 써야 할 리뷰들을 빠르게 정리 중이다. 좀더 여유있는 3월의 리뷰쓰기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재밌냐고? 처음엔 재밌다가 흐름을 놓쳤더니, 이젠 재미있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단! 의미는 있다! 푸히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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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이 없는 보물’ 같은 한문학 문헌들에 담긴 전통의 가치와 멋을 현대의 언어로 되살려온 고전학자 정민 교수님의 글이다. “옛것을 그대로 따라 해서도 안 되고, 옛것과 완전히 달라서도 안 된다”는 ‘상동구이(尙同求異)’의 지론으로 방대한 자료를 분류해 난해와 고리타분함을 지워내고 다양한 주제로 변주하여 대중과 소통해온 우리 시대 대표 학자이다. 고전부터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삶과 공부ㆍ차 문화ㆍ꽃과 새 등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연구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ㆍ멋과 여운이 있는 글쓰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의 삶과 연구를 정리하는 산문집을 선보인다. 체수(滯穗)는 낙수요, 유병(遺秉)은 논바닥에 남은 벼이삭이다. 나락줍기의 뜻이다. 책 제목 ‘체수유병집’은 이 구절에서 따왔다. 추수 끝난 들판에서 여기저기 떨어진 볏단과 흘린 이삭을 줍듯, 수십 권의 책을 펴내면서 그동안 미처 담지 못하고 아껴두었던 이야기 50편을 모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보낸 지난 시간들에 관한 살아 있는 증언이다. “한 편의 글마다 그 시절의 표정과 한때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학자로서의 연구와 경험, 철학 등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기성의 전복이자 일상을 해체하는 독서에 관한 즐거움부터 정민 교수의 큰 스승 연암과 다산 두 지성에 관한 이야기, 질문의 경로를 바꿔야 비소로 열릴 인문학적 통찰에 관한 제언까지. 정민 교수의 다채롭고 풍성한 글밭에서 가려 뽑은 빛나는 사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추후 더욱 자세한 리뷰를 작성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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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권필, 박지원, 정약용, 세 분은 옛 사람이 아닌 지금도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임을 알게 한다. TV나 드라마에서 지나가면 보았던 세 분이 아니라 그분들의 지혜가 고스란이 담긴 텍스트에서 만나야 한다. 나의 식견과 통찰력을 길러 가치관이 없고 돈과 오로지 승진에만 메여 있는 혼탁한 지금에서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야 한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속도가 빨라지면 생각이 없어진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상동후이, 태와 형, 색과 광 본질과 현상 정말 생각해야할 문제를 많이 던져준다. 얼마 전 읽은 '그대는 그 마음을 가졌는가'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그림에서 지혜를 보았다. 이 책과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높음이 자랑스럽다. 그 지혜를 공부하여 갖고 싶다. 문두혜심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 |
| 처음 책 제목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 책을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구입을 했는데 역시 정민 작가의 문체덕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문체가 정말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핵심을 콕콕 집는다. 내가 기억하는 고전은 고등학교 시절 이해없이 무작정 외운 관동별곡 뿐인데 이 책을 읽으며 박지원, 정약용의 삶을 배우게 되었고 고전에 대한 인식도 조금이나마 바뀌게 된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