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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려온, 내 인생의 전환점을 줄지도 모를 신의 한수와 같은 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참된 지식과 지혜, 경험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쉽지만 깊고 간략하지만 넓은 책의 수준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명품 서적임을 보장합니다. 이 책을 통해 더 행복하고 멋진, 기쁘고 자유로운 삶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될 것 같아 기대되고 흥분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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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
한스 큉(19280- )
한스 큉의 저서 ‘교회’의 축소판이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가 ‘교회’의 방대한 내용을 일반인들에게도 소개하기 위하여 책의 내용 중에서 중심이 되는 내용만을 간추려서 발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교회의 본질과 비본질에서 출발한 저자의 논의는 개혁주의 교회와 동일한 시각을 갖는 부분이 다수 존재하는 듯하다. 다만 에큐메니즘적인 관점이 책의 전반에 흐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톨릭 학자이면서 에큐메니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관점을 갖고 주의하여 읽는다면, 교회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저자는 교회가 지닌 본질적인 부분인 성경의 교회, 신앙, 성령의 일하심 등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중심으로 교회를 설명하는 동시에 교회의 위치는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에 불과한 것으로, 그 시작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 파악하고 있다.
책의 중반부에는 잘못된 교회관을 몇가지로 구분하여 이를 비판하며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성경을 근거로 따져보기도 한다(하나도 틀린 말이 없는 듯이..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내려갔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가톨릭과 관계된 교리를 중심으로 에큐메니컬한 관점을 조금 더 제시하고 있다.
* 세계적인 석학의 글에 대한 개인적이고 초보적인 느낌. * 학문적인 태도나 논리, 자세 등을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느낌. * 가톨릭 사제이자 학자이면서도 개혁주의 느낌이 조금씩 묻어나는 것은 ‘성경’이 기준이기 때문이겠지. *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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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믿고 전하는 십자가에서 죽음 분의 부활은 만인의 부활과 신세계의 출현의 선포다. 이것은 아직 와야 할 것이고, 나날이 교회에 다가오는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행위에 의하여 교회와 세계에 안내될 새로운 것이다. 태초의 세계 창조가 그렇고 중간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렇듯이, 종말의 하나님의 새 창조도 성서에서는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고 비유적으로 시사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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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에서도 처음부터 어떤 교회론을 제시하고서 그것을 실현해 나가려 하지는않았다. 처음에는 현실에서 출발했고 그 다음에야 이에 대하여 반성하게 되었다. 현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현상이요 사실이며 역사적 사건이다. 현실 교회의 현실의 본질은 역사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본문 p17)
"낡아 버린 과거를 보존하려고 새로운 현재의 요구에는 무심한 보수적 태도와, 살아 있는 과거를 무시하고 일시적인 현재의 새로운 변화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급진적 태도와의 중도를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론 자체를 처음부터 영구불변한 것으로 생각하여 무비판적으로 과거의 특정한 시대와 문화에 매이는 전통주의 교회론에서 역사성이 몰이해되고 있다면, 현재의 시대와 문화에 적응 한다고 하여 역시 비판 없이 유해무익한 가변적 현실에 좌우되는 현대주의 교회론에서도 역사성이 몰이해되고 있다. 교회 자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자화상인 교회론도 특정한 상황에 매여 있어서는 안된다. 특정한 세계와 시대의 설계와 신화, 환상과 결단, 이미지와 카테고리에 영합해서는 안된다." (본문 p28)
"신약의 교회는 우리가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라야 할 모델이 아니다....중략.....예수 그리스도에게 바탕을 둔 근원에서 비롯하여 이미 교회의 본질을 충만히 지니고 있는 신약성서상의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본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서 적용하여야 할 근원적 설계다. 신약성서상의 교회 이외에 교회의 근원적 설계가 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본문 p31)
"복음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회개 그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철저한 회개는 구원의 시대가 성취되었고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요, 철저한 신앙은 자기 자신의 죄와 은총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을 철저히 수행할 자세를 표현하는 회개에서만 가능하다. 다가오는 하느님 통치에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이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본문 p54)
"'에클레시아'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은 '주님의'(혹은 야훼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이다. 여기서도 집합과정이 등한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위하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모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본문 p64)
" '집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란 결코 단순히 정적인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모임의 끊임없는 반복에 의하여 존재하는 단체임을 나타낸다. '공동체'라는 말은, 에클레시아란 결코 단순히 구체적인 모임과는 동떨어진 고도의 추상적 조직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모이는 사람들의 단체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교회'라는 말은 에클레시아란 결코 아무런 상호 관계가 없이 고립 자족하는 종교 단체가 아니라 상호 봉사를 통하여 결합된 하나의 포괄적인 공동체의 구성원들임을 밝혀 준다. 일반적으로 위의 세 가지 말은, 특히 '공동체'와 '교회'는, 서로 그대로 바꾸어 쓸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집회'는 구체적인 사건성을 '공동체'는 장소적인 영속성을 '교회'는 초장소적인 기구성을 강조한다." (본문 p65~66)
"각 에클레시아, 각 집회, 각 공동체, 각 교회는 - 아무리 작고 아무리 빈약하고, 아무리 보잘것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 완전히 하느님의 에클레시아, 하느님의 집회, 하느님의 공동체, 하느님의 교회의 발현이요 표현이며 실현이다." (본문 p67)
"현대 주석학자들이 새로이 밝혀 주고 있거니와, 신약성서의 메시지에 의해서는 그리스도교 국가는 물론 교회도 '지상의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현실 양상', '하나님 나라의 지주'라고 할 수 가 없다. 또 - 선의로라도 -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거나 지상에 넓힌다거나 그 실현을 위하여 일한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 바로 이 교회가 기도하고 있는 것이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나라를 실현하게 하소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인 것이다. (본문 p69)
"에클레시아는 아래로부터 자라나고, 현세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으며, 발전. 진보. 변증법의 소산이다. 요컨대 인간의 일이다. 그러나 바실레이아는 위로부터 돌입하고, 즉각적인 활동이며, 측량할 수 없는 사건이다. 요컨대 하느님의 일이다. 하느님이 이 통치의 주체다." (본문 p70)
"교회는 결정적인 하느님 통치의 전단계는 아니나 가히 그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본문 p73)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한 일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오직 그것을 증언할 수 있을 뿐이다." (본문 p76)
"그렇다. 교회가 궅이 스스로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면, 그런 교회는 좌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가 교회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면, 교회는 신앙에서 오는 확신을 가지고 지금 이미 최선을 다할 수 있고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 (본문 p77)
"모든 카리스마를 지배하는 '법'은 동일하다. 모든 카리스마가 '사랑의 법' 아래에 있다. 모든 카리스마가 지향하는 목적은 동일하다. 공동체의 건설이 모든 카리스마의 목적이다." (본문 p104)
"영은 말씀에 매여 있다...중략...말씀에 매이기르 ㄹ포기하고 영에만 의지하려는 교회는 지나친 열정에, 성령의 광신에 빠진다. 역으로 말씀에만 의지하여 영을 말씀으로 격하시키려는 교회 역시 지나친 열정에, 말씀의 광신에 빠진다." (본문 p105)
"분명히 말해 두거니와, 직무 없는 신앙인은 그리스도 신자요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나, 신앙 없는 직무 담당자는 그리스도 신자도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도 아니다." (본문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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