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 '자연스럽지만 합리적이지만은 않은'이란 표현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평가다. 100% 동의한다. 물론 책 내용전체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한민족 운운하며 감성에 호소하는 글 보다는 훨씬 더 점수를 주고싶다. 그래서 별5개를 준다. 복거일.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작가라는 느낌이든다. 흔히 그의 이름 앞에 소설가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그의 진가는 오히려 이 책과 같은 논리적인 글에서 더 돋보인다. 최근 발간된 그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어찌보면 친일파라고 욕먹어 온 사람들에겐 복음서와도 같은 책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용기있는 글쟁이다. 욕먹을 줄 뻔히 알 면서도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을 보면. 글을 읽으며 욕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란 생각도 들지만 차분히 읽어보면 수긍할 점도 꽤있다. 그의 몇년전부터의 일관된 주장인 '영어공용화'론이 주내용인데 한편으론 못마땅하면서도 그의 주장이 꽤 논리적이라는데는 별 이의가 없다. 혹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의 저자인 김경일 교수의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라는 책의 내용에 동감했던 분이라면 무릎을 쳐 가며 읽을 책이다. 철저한 한글 혹은 한국어 옹호자로서 그의 영어공용화론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사람이라도 사고의 폭을 넓히고 반대편에 선 사람의 생각을 알아보는데 도움을 줄 듯하다.나는>공자가>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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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계기로 영어공용화 논쟁은 신문에서 책으로 무대를 옮겼다. 논쟁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 복거일을 시작으로 책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좀더 심도 깊게 영어공용화를 논하고 있다. 복거일은 영어공용화 논쟁의 반대자들이 거론하는 가장 큰 문제로 민족주의를 든다. "민족주의가 강렬하지 않은 사회가 있을리 없지만, 우리 사회처럼 민족주의가 모든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을 뒤틀리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시민들의 애국심이라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우리 사회를 실제로 이롭게 하려면, 거친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일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영어공용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2부에 가서야 나오기 시작한다. 복거일은 '1부 '지구제국' 시대의 민족주의'를 통해서 일차적으로 그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민족주의를 제어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잘못된 거친 민족주의의 예와 이를 올바로 수정하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이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어공용화 주장의 반대의견으로 등장하는 대다수의 논거가 민족주의적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복거일이 민족주의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놓으려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된다.
"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를 큰 가치로 여기고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사회적 강제를 줄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민족적 특질들에 따라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그것은 나라를 이루는데 주력이 되는 민족에 속하는 개인들이 소수 민족들에 속하는 개인들보다 더 큰 권리를 갖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민족이 정의하기 어렵고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실제로 민족을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자들에겐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영어공용화 반대에 대한 많은 책과 글이 나왔고, 그 중 다수의 사람들과 학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반론도 있으며, 오히려 복거일의 주장보다는 그들의 주장이 더 정당성의 근거를 획득하기 쉽다. 영어공용화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한 한학성의 책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가 아닌 다른 구도도 얼마든지 있으며, 민족주의저이지 않으면서도 영어공용화 반대를 할 수 있음을, 해서는 안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논쟁의 초점이 영어공용화여야지,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여서는 곤란하다. 그거 복거일이 말하는 자유주의라는 것은 영어공용화를 옹호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 밖에 되지 않는다. 그로부터 우리 모두가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도출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언어의 죽음>이란 책을 통해서봐도 수많은 언어들이 매일같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어의 쇠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가 쇠멸할 것이라 예상되면 어떻게든 한국어의 생존력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이 옳은 행동일 터이다. 이는 민족주의자로서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자로서의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그것이 한국어든, 한국어가 아니든.
주장하는 바는, 한국어를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가 아닌 내가 사용해왔고 사용하는 언어를 살리자는 것이다. 강제로 국가가 언어를 규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이는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한국어가 변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종 외국어에 의해 감염된다 하더라도 감염된 이후에도 그것은 한국어다. 우리는 감염된 언어를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다른 언어를 통해서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물론 감염된 언어는 과거의 순수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대화단절의 결과를 맞이하게 하겠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한국어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두개의 언어를, 두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세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의 언어생활을 위해서도, 문화적 풍부함을 위해서도 더 좋을터이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맡길 일이고, 언어를 바꾸자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나더. 복거일은 책을 통해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민족국가가 개인들로 이루어졌고 따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므로, '국익'이란 말은 궁극적으로 민족국가를 이룬 개인들의 이익 집합을 나타내는 '간략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국익'은 개인들의 이익들의 함수다." 그러나 이는 집합의 오류다. 개인들의 이익의 합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며, 국가의 이익 또한 그것이 분리되고 나누어진다고 하여 개인들의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물은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로 이루어져있지만, 소수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곧 물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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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운동의 이념 제공자 가운데 한 사람인 복거일은 ‘독도 괴담’을 담론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일찍이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 지성사, 1998)라는 책에서, 국익이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개인들의 이익을 합산한 것이라고 말한다. 독도 문제 역시, 독도가 한국 땅이기 때문에 생기는 “국익이 궁극적으로는 어떤 개인들의 이익으로 환원되는가?”를 차분히 따져봐야 한단다. 그의 고언대로라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어서 소설가인 내게 줄 수 있는 이익은 고작해야 심리적인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돌아가는 직접적인 이익 또한 전무하다.
이 논리대로라면, 동해안의 어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지 못하고, 독도가 배타적으로 소유하게 될 해양 영토나 미래의 해저 자원은 결코 국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이익을 합산한 게 진정한 국익이라고 그는 말하지만, 그것은 ‘국익으로 포장된 사익’, 즉 일부 경제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로 수렴된다. 얼마 전 미국 국립지리원 지명위원회는 한국령이던 독도(리앙쿠르 암)를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했다. 한국이 반발하자 미국 정부는 다시 원상회복시켰다. 이 대통령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격노했다지만, 제대로 된 우익도 되지 못하는, 시장 만능주의 정권의 독도 수호 의지가 어느 만큼일지는 의문이다.
장정일/소설가
몇 번을 진지하게 생각해도 배려가 되지 않는 책이지만, 제가 감정을 추스리고 다른 사람의 독서내용을 옮깁니다. 복거일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리들이 어찌나 궤변을 근거로 하는지 얘기하고 싶습니다. 영어공영어론 같은 경우 과연 영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 이익이 본인이 주장하는 시장의 논리처럼 효율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는지를 묻고 싶더군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리는 어찌나 근거가 미약한지 일종의 자학사관이 아닌지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친일을 옹호하고 친일만이 살 길이라고 외친다면 조금 덜하겠습니다.(자신의 본질을 밝히는게 솔직하다는 생각이 드는 존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민족의 개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강대국의 존재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우선하는 사람이 저인데, 강자의 논리를 철저하게 쫓는 복거일이란 존재 꼭 만나서 반론을 펼치고 싶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제 서평을 따로 옮기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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