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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를 읽으면서 느낀 하나의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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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는 정선경이라는 여배우가 '엉덩이가 예쁜 여자'라는 이름으로 선전이 되었던 것 같은데, 원래 원작에서는 '바지입은 여자'가 바른 표현인 것을 알 수 있었다.(바지입은 여자'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의 제목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궁금하게 생각한 게 있는데,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중에 여자 이름이, 그러니까 소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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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나를="" 보낸다="">>. 영화에서는 정선경이라는 여배우가 '엉덩이가 예쁜 여자'라는 이름으로 선전이 되었던 것 같은데, 원래 원작에서는 '바지입은 여자'가 바른 표현인 것을 알 수 있었다.(바지입은 여자'라는 표현과 관련해서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의 제목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궁금하게 생각한 게 있는데,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중에 여자 이름이, 그러니까 소설 속의 여자주인공 이름이 정선경인데,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은 1992년도에 발행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그 이후에 나왔고. 어떻게 여배우 이름이 탤런트 정선경 일수가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배우 정선경이 원래 정선경이 아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 소설 속의 여주인공 때문에 가명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인해 소설속의 여주인공과 같은 '정선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도저히 짐작이 안 간다고나할까? 이것이 내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 라는 책을 읽으면서 가진 하나의 의문이다.
h*****n 2002.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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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이 바라보는 우리가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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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소설은 읽으면서 재미는 있으나 어떤 평을 하기에는 힘든 거 같다. 왜냐하면 이건 소설이면서도 그 소설에 대한 비평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다지 틀린 비평도 아니고, 이 때문에 결국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사람의 반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당혹하게 만든다. '고통을 받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연민을 통해 내 자신이 사물이나 세계와 하나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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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소설은 읽으면서 재미는 있으나 어떤 평을 하기에는 힘든 거 같다. 왜냐하면 이건 소설이면서도 그 소설에 대한 비평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다지 틀린 비평도 아니고, 이 때문에 결국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사람의 반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당혹하게 만든다. '고통을 받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연민을 통해 내 자신이 사물이나 세계와 하나 되어본 경험을 당신은 가져본 일이 있는가 누군가 심하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 자신의 상처를 들여 다 보는 듯한 동병상련의 감정에 시달려본 적이 있는가.' (p189) 우리에게 타자는 어떻게 경험되는가? 타자는 신체와 결부되고 있는 물리적인 대상인 감각으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의 여러 문제에 속한 환경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음과 그리고 또 각각에 대한 주관(상호 주관적인)으로서도 경험된다- 우리는 개개인의 여러 가지 삶의 존재 방식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현실을 정립할 수가 있다. 그것이 문학에서는 인물의 정형화나 형식의 고착 같은 것으로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상황(이 소설에서는 80년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 어떤 인물이 있었나 하는 이미 우리가 스스로 만들기 전에 만들어져 내려오는 관습이 존재한다. 이렇게 우리는 그 정형화된 것을 통해 그걸 수용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읽을 수 있으며 타자를 경험 할 수가 있다. 여기서의 타자는 이 소설에서 보여 지듯이 인간들(등장인물들)이 될 수도 있고, 사회의 역사(80년대 시대 상황)가 될 수도 있고, 제도(성에 대한 관습들)나 물건(바지, 시, 소설)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타자들에 의해 제약되는 공간 안에서 보여지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순수한 선험적인 자신의 모습은 보여 질 수 없고, 타자에 의해 다시 나에게 돌아온 '너 안에서의 나'만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의문들을 타자를 향해 '보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린 '진실 - 타자로부터 제약되어지고 부여되어진- 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를 떠나 자유롭게 꿈꾸는 예술이 가지는 진정한 상상력의 문제와 만나고 타자들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전체주의적인 사회에 조롱할 필요를 느낀다. 장정일은 이러한 보편적 현실에 대한 왜곡을 표절이라는 소재를 빌어 독자에게 제시한다. 이 소설에는 표절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방식과 장정일 스스로가 이 소설에서 차용하고 있는 인용의 형식을 빌린 괴테의 '파우스트', 영화 '내일을 행해 쏴라', 짐 모리슨의 도어즈 노래 가사, 도스토예프스키 '지하 생활자의 수기', T.S. 엘리옷의 황무지의 맨 마지막 구절인 산스크리트어 '샨티 샨티 샨티'(평화 평화 평화, p161) 같은 것들의 노골적인 뻬끼기, 후쿠야마 '역사의 종언',사드의 '소돔 120일' 같은 해석적 뻬끼기, 또 예술이 가지는 사회 반영적인 성격으로서 '루카치와 브레히트의 리얼리즘 논쟁 ' '벤야민의 정치사회의 반영으로의 텍스트 해석법'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 '러시아 형식주의' 같은 이론들의 내용을 풀어서 삽입 시킨 것 같은 계몽적 뻬끼기 등등 정말 다양한 표절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뻬끼기가 차용되고 있는 구성적인 재미와 다양한 박식에서 오는 깊이에서 독자는 사회에 비판 할 수 있고 유익한 웃음을 짓는 것이다. 현재 사회에서의 고통을 잊기 위해 꿈꾸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죄절을 읽을 수도 있지만 다시 새로와지려는 희망을 본다. <은행원>의 성기가 커지는 꿈, 나의 소설 쓰는 꿈, 바나나 껍질이나 담배의 환각작용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들은 이러한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진실을 알아가는 계기가 된다. 장정일이 여러 소설에서 포르노 그라피를 집어 넣는 이유는 소통 수단으로서의 성이 가지는 그 진실한 출발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은행원의 얻어 터지는 아줌마와의 첫사랑과 바지입는 여자의 노팬티와 같은 성적인 묘사와 신체의 폭력 장면(술집에서 이빨 깨지기, 이웃집 남자의 마누라 구타)는 감각에의 호소에 다름 아니다.(물론 장정일이 우려 하듯이 유치한 페미니즘으로 해석하는 돌머리 독자도 있으리라...) 그 호소는 다른 단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현상학에 의하면 <타자는 나="" 자신의="" 반영이며="" 유사자이다.="" 타아="" 즉="" 1차적="" 자연="" 세계="" 속에="" 있는="" 물체가="" 물체임에도="" 불구하고="" 파악되기="" 위해서는="" 나의="" 신체의="" 통각이="" 그="" 물체="" 속으로="" 이입되어야="" 한다.="" 이러한=""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는="" 타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해진다. 즉 여기서의 타아경험은 '지식인은 그 한계를 드러냄으로서만 노동자를 가르친다'라고 이 소설에서 말하듯이 단순한 추론이 가지는 막연함과는 구별되어져야 한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지향적인 자세가 그 전제 조건인 것이다. 우리는 단지 섹스나 쾌락에서 타자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계기로서 자신을 알아가는 단계로서 그것이 필요하다. 성은 진정한 자기를 알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 도구이지 전체가 아니다 - .<이 부르조아="" 세계엔="" 이토록="" 평화가="" 넘치네=""> 라고 수없이 말하며, 세상 앞에 장정일은 그 거울을 치켜 들며 신선한 모험을 행한다.
m*****m 2000.03.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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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장정일이 투영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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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소설에서 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는 그에게 성스럽거나 혹은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내면화 과정이라고 볼 수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보면 나름대로 진실을 추구하려고 고민하는 표절작가가 타락한 포르노 작가로, 또 유명 여배우로의 가방 모찌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왜곡하고 우스꽝스럽게 전개한다. 은행원이 하루아침에 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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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소설에서 <글쓰기> 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글쓰기>는 그에게 성스럽거나 혹은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내면화 과정이라고 볼 수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보면 나름대로 진실을 추구하려고 고민하는 표절작가가 타락한 포르노 작가로, 또 유명 여배우로의 가방 모찌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왜곡하고 우스꽝스럽게 전개한다. 은행원이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바지 입은 여자는 유명한 여배우로 승격되고, 소설가가 가방 모찌로의 변신은 상당히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다른 작가에 의해 이런 내용의 급격한 비약.비현실적인 내용이 씌었다면 비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장정일만의 <글쓰기>를 안다면, 여러 책을 통해 경험했다면, 이런 비약(사실 이 비약이라는 것도 비평가들이 끼워 맞춘 단어는 아닐까)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소설 속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바지 입은 여자" 와의 대담에서 알 수있듯이, "나"라는 소설가는 장정일이 투영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장정일도, 그리고 소설 속의 "나"도 아버지와의 불화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가 "독서" 였고, 학교를 끔찍하게도 싫어했으며 , 그 둘의 어렸을 적 꿈은 하급 공무원이 되서 아침 9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을 씻고 새벽 2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라는 부분에서 상당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의 직접적인 화두는 성적욕망의 무휴식성과 금기의 위반 등 성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특히 금기 위반은 사소하고 불가피하다라는 인식이 들게끔 전개되는데, 그의 이런 전개는 정통 소설이라는 것의 문법을 철저히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 - 장정일 스스로가 원했던 대로 이 소설을 읽어 나가는 독자였던 나는 끊임없이 그래서? 그래서? 라고 묻게 되었다. 그런 질문이 소설이 독자를 충족시켜줄 수있다고 하는 그의 생각중의 일부이다. 그만큼 그의 소설에는 글쓰기에 힘이 있고, 급진감과 적절한 비약으로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없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사건의 인과 관계나 개연성을 무시 할때는 이 소설처럼 인물의 급격한 인생역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에는 비판적 혹은 반성적으로 사고해야할 일반적인 논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무질서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혹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철저한 논리 지배적인 소비자본주의의 사회, 즉 현재가 아닐까- 소비자본주의는 절차가 생략된 가속화된, 심리적이면서 내면적인 성찰을 잃은 현대인의 표본을 가장 여실히 나타낸 현상이다. 그런 암암리적인 비판을 통해서 그는 무질서만이 팽팽한 그의 소설 속에서 역으로 추적하여 현대인의 논리정연하고 체계화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는 남자 주인공들의 심경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남성의 육체는 성기 팽창 외에는 좀처럼 표현되지 않는데 반해 여성의 육체와 감정의 미동만이 표착될 뿐이다. 이런 식의 묘사를 통해 장정일은 여자의 성을 해석하는 전형적인 남자의 주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가학적인 성 강제, 남자의 시선에서만 여성을 보고 해석하는 것 , 그래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전적으로 여성의 육체일 뿐이다. 이것은 남성중심의 환상의 결과가 아닐까 - 이런 부분에서는 장정일이 가지고 있는 남성 ,여성의 성 불균형에 대한 인식을 해소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작가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무한한 상상력과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 내에서 만이 작가의 상상력이 존중받을 수있다. 이미 사회는 여러 차례 그의 상상력에 대해서 표절과 음란물 시비로 그의 상상력을 지치게 만든 바 있다.그럴 것이 아니라 그의 상상력을 존중해주고 한명의 작가로서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쓰도록 지지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장정일의 소설에 대해서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원색적이고 상스러운 표현" 이라는 설명을 나는 " 독특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있는 기발한 표현"이 되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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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2003.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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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고 재미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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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수많은 극성팬들을 거느린 한국 영화계 최고의 문제적 감독이신 장선우 씨에 의해 영화화되어서 꽤 히트하기도 했습니다. 문성근 씨와 탤런트 정선경 씨가 주연이었는데, 특히 정선경 씨는 데뷔작이었고, 정선경이란 예명은 '바지입은 여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죠. 문성근 씨는 원작의 주인공이 주던 이미지에 비해 너무 늙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고, 정선경 씨도 엉
"재치있고 재미있는 소설" 내용보기
이 소설은 수많은 극성팬들을 거느린 한국 영화계 최고의 문제적 감독이신 장선우 씨에 의해 영화화되어서 꽤 히트하기도 했습니다. 문성근 씨와 탤런트 정선경 씨가 주연이었는데, 특히 정선경 씨는 데뷔작이었고, 정선경이란 예명은 '바지입은 여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죠. 문성근 씨는 원작의 주인공이 주던 이미지에 비해 너무 늙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고, 정선경 씨도 엉덩이가 아주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그리고 검열을 의식해서인지 원작에 충실하지 못 했습니다. 원작은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하드코어스런 장면들이 잔뜩 나오고, 구성면에서도 아주 특이한데, 각 단락마다 1), 2) ..이런 식으로 번호를 붙이고 있고, 몇 번을 참조할 것 하는 식의 문장도 나옵니다. 장정일 씨 소설답게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특히 '오만과 자비'와 '바지입은 여자'의 화장실에서의 정사나 백형두 일당과의 주점 부분, 소설속의 포르노 소설 내용 등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장정일 씨는 후기에서 자신의 소설에 경험과 사유가 부족하고 정보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적인 말을 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재미있는 스토리도 있고 아주 잘 읽입니다. 장정일 씨의 또다른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공권력에 의해음란물 판정을 받고 작가는 구속되기까지 했는데, 21세기에는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b***1 2002.10.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