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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장례=""> 이후 2년 반 만에 김명인 시인이 내놓은 그의 여섯 번째 시집 <길의 침묵="">에는 인생길에서 이제 쉰 살이라는 큰 고개를 막 넘어선 나그네의 편치 않은 심사가 곳곳에 스며있다. 나그네의 심사가 편치 않는 경우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지 못하거나(과거에 대한 부정) 아니면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서 낙관하지 못할 때(미래에 대한 부정), 또는 둘 다 해당되는 경우일 터인데 김명인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부정하고 있어 <바닷가의 장례="">에서 예고하였던 긴 방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부재를 살아왔으며, 그가 기댄 적막을 따라 힘들게 도달한 항구는 주인 없이 스스로 삭아내리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문패’). 그는 오랫동안 배를 저어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지만 그것은 착란이었으며 그는 어느덧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침묵’). 무엇이 김명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하여 이렇듯 가혹한 부정어법으로 말하게 만드는 것일까? 단순히 흔들리는 중년의 위기의식으로 이를 설명하는 것은 미흡하다. 보다 근원적인 상처가 분명 있을 터인데, 나는 그의 시 ‘문패’에서 그것이 오월 광주에 닿아있지 않나 추측할 뿐이다(‘오월이 장미 가시에 찔려 피의 분수 솟구칠 때/생목이 제 가지를 부러뜨려 흘린 수액/뭉쳐서 이룬 옹이를/시간의 울타리 밖에서 비로소 찾아낸다’라는 시구를 보라).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아직도 풍경의 풍파 위에 떠서 이렇게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는 늦은 밤 어둠 속 유리창에 비친 밤도깨비로 희화한다.(‘밤도깨비’). 그 모습은 몹시 외로워 보인다. 사실 그는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듣고 있을 정도로 외롭다. 그러나 그는 그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길은 ‘어디론가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다가 다 놓치고 혼자 뒤처져버린 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의 인생길처럼 숙명적으로 혼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길을 김명인은 소진(消盡)의 길이라고 부른다. 그는 바닷가 마을 소태리에서 맞은 일몰의 풍경 속에서 ‘모든 길 끝이 어둠 속으로 놓여나려고 뿔뿔이 저를 거두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본다’(‘소태리 점경’). 그리고 일몰의 마지막 순간 한결 뚜렷해진 ‘먼 곳’을 보고, 애써 외로워하거나 슬퍼할 까닭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가 본 ‘먼 곳’이 어디이길래 아니 무엇이길래,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죽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죽음이란 우리 육체와 정신의 소진이며, 그런 점에서 이제 그의 앞에 놓여진 길은 소진의 길이며, 그것을 극명하게 인식하는 순간 그는 외로움이나 슬픔에서 놓여나게 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사실 이 시집에는 죽음을 노래한 시들이 눈에 많이 띤다. 제2부의 ‘구멍’, ‘트럭에 실려가는 돼지’, ‘예언’, ‘여우를 위하여’, ‘충돌’ 등의 시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죽음이 소진의 결과라면 노화(늙음)는 소진의 과정일 터인데, 이 시집에는 육체적 늙음에 대한 시인의 관심도 많이 눈에 띤다. 육체에 대한 시인의 관심은 이미 지난 시집 <바닷가의 장례="">에서 ‘오래된 사원’ 연작시로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두 편의 ‘오래된 사원’ 연작과 ‘의자’, ‘食道’ 등의 시에서 계속되고 있다.
소진의 길인 죽음과 늙음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길’이다(‘食道’). 인간의 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길 앞에서 김명인 시인은 외롭고 슬프다고 말하는 대신에 이제 쓸쓸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는 ‘살아 있음이란 결코 지울 수 없는 파동, 그 숱한 멀미 가득 실었다 해도 모든 滿船은 쓸쓸하다’고 말하기조차 한다(‘아버지의 고기잡이’). 그것은 그가 滿船의 운명이 ‘마침내 비워내고선 무얼 싣기도 버거운 저기 조각달’과 다를 바 없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쓸쓸함으로 그가 세상에 띄운 ‘닻이 끊긴 배 한 척’이 어디로 향할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지워질 ‘끝내 닿을 수 없는 항구’로 향하게 될지 아니면 우주선 같은 말미잘이 열어놓은 문을 통과하여 ‘또 다른 우주’로 나아갈지는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 말해 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버지의 고기잡이 열목어의 눈병이 도졌는지,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나와 내 漁撈가 궁금해지신다 그러면 나, 아버지의 계류에서 다시 흘러가 검푸른 파도로 솟아 뱃전을 뒤흔드는 심해에 낚시를 드리우고 바닥에 닿는 옛날의 멀미에 시달리기도 하리라 줄을 당기면 손 안에 갇히는 미세한 퍼덕거림조차 해저의 감촉을 실어나르느라 알 수 없는 요동으로 떨려올 때 물밑 고기들이 뱉어놓은 수많은 기포 사이를 시간은 무슨 해류를 타고 용케 빠져나갔을까, 건져올린 은빛 비늘의 저 선연한 색 티! 갓 낚은 물고기들 한 겹 제 물 무늬로 미끈거리듯 아버지의 고기잡이는 그게 새삼 벗어버리고 싶어지신 걸까, 마음의 갈매기도 몇 마리 거느리고 바다 생살을 찢으며 아침놀 속으로 이 배는 돌아갈 테지만 살아있음이란 결코 지울 수 없는 파동, 그 숱한 멀미 가득 실었다 해도 모든 滿船은 쓸쓸하다, 마침내 비워내고선 무얼 싣기도 버거운 저기 조각달처럼! 바닷가의>바닷가의>길의>바닷가의> |
| 무려 30년간 시를 써온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난 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나보다. 그나마 제목에서 던져진 '길'과 '침묵'이라는 화두에서 보이는 '흐름과 떠남'이라는 화자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뿐이다. 수록된 시들중에 「침묵」, 「의자」, 「番陽」을 주목하여 보면 흐름과 떠남의 이미지 혹은 있음과 없음의 이미지, 채움과 비움의 두 이미지를 살필 수 있다. 결국 '떠남=없음=비움', '흐름=있음=채움'의 두 상반된 - 상반되다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둘 사이에는 어미가 같은 일란성 쌍생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단어 사이에서 시인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현실을 딛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현실에 대한 초월 의지임을 보인다. 누구나 제 안에서 들끓는 길의 침묵을/ 울면서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침묵중에서) '침묵'에서 보여지는 길은 고정된 길, 현실의 세상이다. 화자가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가려해도 어느새 강물의 길은 금세 흐름을 바꾸어 나는 길 밖으로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와있다. 화자는 그런 길위에 서서 울면서 침묵을 들어야 할 때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것, 실존의 한계를 전제하고 살아가는 것을 통해 온몸으로 허무의 의식을 끌어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30년의 시력에도 불구하고 「밤의 주유소」, 「트럭에 실려가는 돼지」, 「江 학교」 등에서는 문화의 답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밤의 주유소」는 이미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는 주유소를 소재로 하는 광고와 에리틱스즘이라는 접근법은 광고 이상의 상징성을 갖지 못한다.「트럭에 실려가는 돼지」 역시 생활을 일반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江 학교」에서 텔레비젼 르포를 보고 창작한 그의 詩作이그 자체를 넘어서지 못하는 평이함 그것뿐이었다. 당대 문화를 표현하는 것 자체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한편의 이야기 단계에 머물고 있을뿐 아름다운 詩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2부에서는 흐름과 떠남의 이미지가 읽기 어렵게 보이고 있는 반면 3, 4부에서 명징적으로 드러내지고 있는 이야기줄들은 읽는이를 침묵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화자 혼자 다 이야기 해버리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는 어떤 그림도 그려낼 수 없으며, 그려내려는 노력조차 방어막을 쳐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어막 안에 허무나 초월의 의식을 꿰고 있지도 않다는데 문제는 발생한다. 시력 30년의 경력에서 더 이상 쓸 것이 없었는가?라는 의심까지 들게하는 것이 3, 4부이다. 덧붙여 자신의 길을 만들지 못하고 詩作을 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99년에 간행된 이 시집에서 보이는 비연시의 경향이 당대의 경향이 었음을 살필 때, 그것을 따라가는 것 이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시인의 詩作이 당대 시작활동의 모습을 답습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가. 더 이상 창조적 능력을 잃어버린 시인에게 시를 처음 썼던 초심의 마음, 문학에 다가오는 원심력을 획득하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