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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지배계층의 이념과 권위를 강조하는 웅장한 기념조형물들은 구태의연한 형식이 되어버렸다."(8쪽) "이제 기념조형물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9쪽) 그러나 우리의 기념조형물은 여전히 구태의연하고 의미 없는 장소에 설치되며 주변 환경과 조화롭지도 못하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 비해 기념조형물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이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덕분이다. 1. 전쟁의 비극을 묵상하는 신위병소 : 노이에바헤 이곳은 격변하는 독일의 역사를 껴안은 곳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구상하여 1816년에서 1818년 세워졌다. 100년간 왕의 경비소로 사용되다가 1920년대 중반 전쟁기념비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다.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망하고 나치 정권 아래서 나치 병사의 죽음을 찬미하는 장소에서 동독 시절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희생자를 위한 경고비로 사용하다가 독일 재통일 후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를 위한 독일의 중앙추모소'가 되었다. 유대인 단체는 가해자에 해당하는 독일인의 죽음까지 함께 추모된다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헬무트 콜 연방수상이 타협안을 제시해 희생자 집단이 명기된 두 개의 금속판을 건물 외벽에 설치함으로써 현재의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를 품은 추모소가 되었다. 저자의 "깊은 침묵을 응시하는 공간"이라는 소제목은 사진으로 보여지는 노이에바헤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만으로도 숨이 멎게 만드는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는 텅빈 공간과 천장의 둥근창으로 비치는 빛 속에서 응축된 감정을 끓어올린다. 2. 분서의 흔적, 텅 빈 도서관 베벨 광장 지하에 설치된 미하 울만의 [도서관]은 1933년 5월 10일 밤 11시 나치가 자행했던 책들의 화형식으로 사라진 책들을 기억하기 위한 텅 빈 도서관이다. "땅을 판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근원과 접속하고 역사의 무의식 속에 깊이 가라앉은 것들을 들추어내는 행위를 은유한다."(45~47쪽) 가로 120cm 세로 120cm의 정사각형 투명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텅 빈 도서관은 출입구 없이 사방이 막혀있고 텅 빈 책장만이 사방에 놓여있다. 저자는 '책이 소실되고 저자가 추방된 곳에서 침묵과 정적만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3.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풍경 "아무런 글자나 장식도 없는 밋밋한 회색 콘크리트 블록이 마치 침묵 속에 사라져간 무명씨들을 위한 석관묘처럼 줄줄이 깔려있다."(57쪽) "회색 콘크리트 블록은 석양의 블그스름한 기운을 머금는 듯하더니 해가 넘어갈수록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를 띤다. 그리곤 이내 어둠 속에 묻힌다."(58쪽) 저자의 해설은 문학적이며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뉴욕 출신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한 기념조형물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다. 베를린 중심부, 과거 나치의 주요 관청이 자리했던 지역에 반성적인 의미로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세운 것이다. "수많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추상적인 형태 속에서 추모하는 장소인 동시에,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 역사를 반성하게 만드는 계몽의 장소"(75쪽)로 삶과 역사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우리로서는 꿈꿀 수 없는 공간이지 않을까. 서울의 한복판에 그러한 대형 부지를 만들어 기념조형물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은 말이다. 4. 죽음으로 가는 역에 각인된 역사 : 17번 선로, 그루네발트역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기차역에 조성된 기념조형물로 17번 선로를 따라 132미터에 걸쳐 양쪽 승강장 바닥에 주물 강철판을 깔았다. 각 강철판 가장자리마다 1941~1945년 사이 베를린에서 특별열차가 출발한 날짜, 수송된 유대인 수, 행선지를 연대순으로 새겨 놓았다. [17번 선로] 외에도 카롤 브로니아토프스키의 [추방된 베를린 유대인을 위한 경고의 기념조형물]이 있다. "추모의 공간으로서 그루네발트역은 호젓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전한다. 역 안과 밖에 가깝게 설치된 두 개의 기념조형물은 이곳의 풍경을 압도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소박한 일상적인 풍경과 담담히 연결된다."(97쪽) 현재는 운행되지 않는 선로를 가진 역사라고 한다. 이 특별열차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공포가 어떠했을지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작은 역사들을 위한 길바닥 추모석 베를린 거리엔 길바닥에 박힌 작은 동판이 있다. 작가 군터 뎀니히의 추모석이다. 나치에게 추방당하거나 살해당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추모의 대상은 유대인 외에도 정치범,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여호와의 증인처럼 나치에게 희생된 모든 이들이다. 이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는 걸려 넘어지다와 돌이라는 독일어 단어의 합성어로 걸림돌, 장애물, 난관의 의미이다. 나치에 희생된 이들이 잊혀지는 것을 막는 걸림돌, 장애물이란 의미다. 거대한 역사에 묻힌 개개인의 작은 역사를 발굴하고 기억하게 하는 작업이다. 1992년 군터 뎀니히가 쾰른에서 시작해 2018년 10월 독일을 포함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 24개국 2000개 지역에 7만 개의 추모석이 설치되었고 베를린에는 7662개의 추모석이 설치되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6. 히틀러에 대한 저항을 기억하라 2008년 톰 크루즈가 주연한 [작전명 발키리]의 역사적 배경이 된 히틀러 암살 음모 사건의 주 무대가 되는 벤들러 블록의 안마당 왼쪽 건물 벽에 동판이 걸려 있다. "독일을 위해 여기서 죽다/1944년 7월 20일/누구 ... 누구 ... 누구 ..." 1944년 7월 20일 쿠데타 그룹이 작전을 결행하였다. 슈타우펜 베르크가 폭탄이 든 가방을 히틀러 가까이 놓고 빠져나왔지만 히틀러는 살아남았고 벤들러 블록 안마당에서 슈타우펜 베르크 대령과 동료들은 총살당했다. 1500명의 반역 관련자들이 체포되고 200명은 처형되었다. 1953년 7월 20일 존경의 뜰로 명명된 벤들러 블록 안마당에 청동 청년이 수갑을 찬 모습이지만 가슴은 펴고 당당히 선 모습으로 세워졌다. 1979년~1980년 에리히 로이슈는 안마당을 새롭게 연출해 리하르트 샤이베의 청동상 좌대를 없애고 지면에 세우면서 안마당 입구와 청동 청년 사이 크기가 다른 평평한 직방체 모양의 청동조각 두 개를 횡목처럼 설치했다. 고전적 조각과 추상성 강한 현대적 조각이 조화롭게 공간을 구성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7. 버스 정류장에 새겨진 악의 평범성 유대인 강제 이송을 담당한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를 상기시키는 경고의 기념조형물이 실슈트라세 버스정류장에 조성되어있다. 작가 로니 골츠가 제작한 [아이히만의 유대인 담당부서]이다. 유대인 담당부서가 있던 쿠어퓌르스텐 거리 115~116번지에 아무런 아내판이나 기념조형물이 없는 것에 의문을 갖고 버스정류장이라는 평범한 일상 공간에 경고의 기념조형물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8. 냉전의 추억, 체크포인트 찰리의 빛상자들 체크포인트 찰리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동서 분단을 강력하게 상징하는 곳이다. 1996년 베를린 주정부는 과거의 국경 검문소 일곱 곳을 표시하기 위한 공모를 했다. 응모작품 중 베를린 예술가 프랑크 틸의 [빛상자]는 특정한 개인의 초상사진이 아닌 군인이란 신분을 알리는 사진으로 '역사성의 상실'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상실된 역사성은 '역사의 현장에 설치'됨으로써 회복된다. 9. 추모공원이 된 베를린장벽 지역 "다채롭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분단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베를린 장벽 추모공원은 단순한 기념조형물 조성 차원을 넘어서는 사례를 보여준다. ...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사례는 그저 모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면 받아들이되, 반드시 한국 사회의 상황에 적합하게 재해석, 재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205쪽) 분단된 조국에서 가족을 만나기 위해 혹은 이념적 체제를 견디지 못해서 탈주하던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던 아픈 기억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조형물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기념조형물이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통일되지 않은 나라로서 추모할 수 있는 기념조형물을 세울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10. 벽화들의 축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1989년 11월 9일 저녁 6시55분 동독의 정례 기자회견장. 공보담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브스키가 동독시민이 서독 여행을 신청하면 즉시 허가되는 개정법은 언제부터 발효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즉시"라고 대답했고 이것은 실언이었지만 그날 밤 양측의 베를린 시민들은 장벽을 깨부수었다. 국경은 해체되었고 1990년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재통일되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벽화는 1990년 2월부터 9월까지 동베를린 주재 영국대사관의 문화담당관 크리스틴 매클린의 주도로 전 세계 21개국의 118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106개의 작품을 장벽에 남기게 되었다. 2000년부터 카니 알라비의 감독으로 훼손된 벽화의 복원작업이 시작되었고 2009년 기존 벽화 작업에 참여했던 예술가 87명이 다시 초청되어 그림 100점을 제작하였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잊지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세월의 풍화작용이든 인위적인 훼손이든 보존하는 일도 쉽지 않고 우리가 일상에서 무뎌진 마음을 일깨우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누군가 때문에 우리는 잊지 않을 수 있고 그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다. 베를린은 나치의 행위를, 자신들의 잘못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소녀상 하나의 경고의 기념조형물도 잘 지켜내지 못한다. 희생되었던 개개인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름없이 죽은 많은 희생자와 독립투사들의 삶이 있기에 현재의 우리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고 다시 되풀이 되게 하지 않기 위해 경각심을 일깨울 기념조형물은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