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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독자를 홀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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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능청스러움에 깜박 속아 넘어갔지 뭔가. 노량진역 헌책방에서 구입한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 사이에 이 소설의 출처가 된 오래된 원고가 끼어 있었다나.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꾸준히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사람이 보태고 고쳐 쓴 낡은 원고를 바탕으로 작가는 그저 현대에 맞게 고쳐 썼을 뿐이라며 구라를 치는 바람에 순진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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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능청스러움에 깜박 속아 넘어갔지 뭔가. 노량진역 헌책방에서 구입한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 사이에 이 소설의 출처가 된 오래된 원고가 끼어 있었다나.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꾸준히 전해 내려오면서 여러 사람이 보태고 고쳐 쓴 낡은 원고를 바탕으로 작가는 그저 현대에 맞게 고쳐 썼을 뿐이라며 구라를 치는 바람에 순진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작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판인데 책이라면 사족을 못쓸 작가가 어느 날 우연히 구입한 책자 사이에서 낡은 원고 하나를 발견했고, 그 원고의 내용이 여간 탐나는 게 아니어서 현대에 맞게 번역과 각색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책을 400쪽이 넘는 두 권의 책을 다 읽는 동안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사실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말이다. 빌리가 애완지구인으로 트랄파마도어 행성에 납치되었었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그럴듯한 구라에도 넘어가지 않았었는데...  

 

"이사를 하고 난 뒤 나는 틈날 때마다 '소설'을 노트북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문에 들어 있는 감정과 감각, 시대정신을 손으로 직접 느껴보고 거리를 좁혀보려 했던 것이지만 과정이 길어지면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내 나름의 편집과 번안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 소설은 원래 그런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불가해한 힘을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권 p.13)

 

사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역사적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케케묵은 역사서 속의 인물들이라는 인식을 독자들의 뇌리에서 지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므로 역사소설을 읽는 독자와 소설 속 인물들 간에는 항상 일정한 거리, 혹은 괴리감이 형성되곤 한다. 그러므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한 괴리감을 없애기 위한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설치한다. 그렇게 해도 눈치가 빤한 독자들을 속여먹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는 얘기다. 성석제 작가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 조치로 소설의 앞머리에서부터 구라를 친 것이다. 이 책이 마치 먼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야사일 뿐이고 자신은 그저 이야기의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굳게 믿을 수 있도록.

 

각설하고, 조선 숙종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보면 독자들은 소설의 화자가 되는 성형을 만나게 된다. 기생 할머니 밑에서 자라 '장안에 호가 난 알건달에 파락호'로 이름이 높은 '성형(成衡)'은 스승의 심부름을 갔다가 송시열의 집 앞에서 집을 지키는 하인배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는 수모를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길바닥의 개똥을 먹어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 위기를 구해준 인물이 장차 숙종이 될 세자인 소년 숙종이었다. 그 인연으로 소년 숙종과 성형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고 급기야 의형제를 맺기에 이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에 오르게 된 세자 이순(李焞). 왕의 부름을 받은 성형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미관말직으로 입궐하여 닳고 닳은 신하들 사이에서 어린 왕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된다.

 

성형은 양반의 자제이기는 하지만 북벌을 꿈꾸었던 임경업 장군을 따라 사라진 아버지로 인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기생인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한양 제일의 기생집을 운영하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였던 할머니 덕분에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성형. 세상 물정 모르는 천방지축의 성형이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이는 궁궐 깊숙이 뛰어들면서 보게 되는 남인과 서인의 당쟁, 대비와 대왕대비, 계비인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로 알려진 장옥정 간의 세력 다툼 등 숙종 치하 46년의 역사가 방대한 사료와 함께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독자들의 시선이 성형에게로 과도하게 쏠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형으로 인해 역사 속 실제 인물이 더 입체적으로 살아나고 성형 역시 여러 무술을 익혀 검계의 우두머리가 되는 설정을 취함으로써 오래전 무협지를 읽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아버지라는 스승을 통해 배운 무공이 어느 경지에 다다르게 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작고 미미한 것들의 움직임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런 것이 대국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빠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느리게 보였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은 곧 따라잡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몸은 금강석처럼 단단해지고 머릿속은 차곡차곡 정리된 지식과 논리로 빠르게 돌아갔다." (2권 p.126)

 

열네 살에 즉위하여 46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신권(臣權) 세력을 자주 교체하는 '환국(換局'을 유도한 것으로 잘 알려진  까닭에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숙종 재위 기간은 어쩌면 독자들에게도 익숙할지도 모른다. 책이 아니더라도 영화와 드라마, 연극이나 뮤지컬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보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진부하다거나 낯익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성형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약방의 감초처럼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 속 인물들을 작가의 재치와 유머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명이든 아니든 허구적으로 변용되거나 창작되었으며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과는 같지 않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그럼에도 당대의 창작물과 기록물에 힘입은 바 큰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 이긍익의『연려실기술』, 김천택의『청구영언』, 작자 미상의『 인현왕후전』『박태보전』『박태보실기』 등이 대표적이고 그 외의 수많은 문집과 내가 어릴 때 단편적으로 만난 사랑방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소개가 되었다. 그 기록 속의 격렬하고 치열하고 오욕칠정에 사로잡힌 인정을 숨김없이 묘사하는, 가혹하리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 소설을 계속해서 쓰게 만들었다." (2권 p.418~p.419 '작가의 말' 중에서)

 

성석제의 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익숙했던 시대적 배경과 인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역사적 재발견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남인에서 서인, 서인에서 다시 남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왕은 숱한 목숨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두려운 존재로 변해가고 의형제였던 성형과 왕의 관계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마음에 두었던 여인 장옥정이 왕의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성형의 마음을 그려냄으로써 소설은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의 그러데이션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펼친 독자가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까닭은 성형이라는 가공인물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릴 뿐만 아니라 작가의 능청스러움에 독자 역시 깜빡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허구라는 걸 까맣게 잊고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인 양 느꼈던 건 내가 남보다 더 순진하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s*****l 2019.02.16. 신고 공감 1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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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의형제가 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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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소설은 놀랍다. 소재를 역사에서 가져왔을 때도 여전하다. 거침없는 입담, 시정잡배들이나 할 수 있는 거친 언어, 다양한 역사적 지식,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화술 등 모든 것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가벼운 이야기인데도 무게가 있다. 조선 역사 속에서 문제가 되는 시기의 이야기가 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내용의 각색도 많다. 많은 이야기들이 당대의 대학자였던 송시열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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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소설은 놀랍다. 소재를 역사에서 가져왔을 때도 여전하다. 거침없는 입담, 시정잡배들이나 할 수 있는 거친 언어, 다양한 역사적 지식,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화술 등 모든 것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가벼운 이야기인데도 무게가 있다. 조선 역사 속에서 문제가 되는 시기의 이야기가 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내용의 각색도 많다. 많은 이야기들이 당대의 대학자였던 송시열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숙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구시대의 세력들을 제거해 나가고 친정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인 나를 통해 그려나간다.

 

나는 북벌을 주창하면서 가족들을 두고 어디 갔는지 모르는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리고 기방을 크게 운영하는 할머니를 둔, 놀고먹는 파락호다. 시장을 전전하면서 살면서 주색잡기에 능하고, 할머니의 기방에 들락거리면서 살아간다. 기방을 운영하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어린 세자(숙종)을 만난다. 둘은 서로 의기투합하고 숙종의 강한 요구에 의해 의형제가 된다. 나는 숙종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던 숙종의 갑자기 아버지가 죽게 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왕 위에 오른 숙종은 나를 찾는다. 나를 궁궐로 불러 주위에서 생활하도록 만들면서 자신을 돕게 한다.

 

숙종은 무척 영민하게 그려진다. 나를 넌지시 이용하기도 하고 조정의 세력들을 의뭉스럽게 처리해 나간다. 그것이 당시엔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 듯하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기가 센 신하들이 얕보는 것을 억제해 나가면서 자신의 입지를 세워나가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굳은 일은 내가 많이 처리한다. 물론 나는 음지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한다. 초반엔 송시열에게 선대왕이 내린 교지를 찾아 회수하는 일이다. 나는 이리저리 노력한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할머니에게 기방을 물려받는다. 현실적으로 힘이 상당히 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뜻이다. 나는 왕의 옆에서 둘이 있을 때는 형의 대접을 받으나 사람이 있을 때는 별감의 신분으로 왕을 보좌하는 존재다. 벼슬이 그리 높지 않아 타인들에겐 별 볼일 없는, 유명무실한 신분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힘이 있다.

 

숙종은 당파 싸움의 와중에 결국 송시열을 귀양 보내고, 힘이 있는 친정의 체제를 구축한다. 그런 와중에 숙종의 애정을 기반으로 궁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삼복(숙종의 아저씨)도 대비의 주청으로 귀양 보낸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을 내어 민중들을 위한 정치를 해나가려 한다. 이런 상황에 나에게 대비 전에 있는 장옥정이 눈에 띈다. 내가 장옥정에게 많은 마음을 주나 장옥정의 열망은 너무 크다. 결국 장옥정을 숙종에게 연결시키는 일을 한다. 아마 2권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이루어지리라.

 

그러면서 나는 무예를 배우기도 하고 기방 운영의 능력도 기르면서 역관들과 얽힌 조선 경제에 대해 학습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모든 일에는 할머니의 조력이 크다. 뒤에 나는 내수사 수장으로 영전되고, 내수사를 조사하면서 나라의 재정에 많이 관계한다. 함흥과 영흥에 직접 내려가 내수사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가? 혹시 부정이 없는가? 를 조사하게 되었고, 영흥에서는 광해 때 김개시가 자주 들려 제를 올린 것을 기회로 무슨 일이었는가를 조사하다가 금괴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왕실의 창고에 들인다.

 

때가 무르익어 계해년에 반정의 기치를 높이 세워 왕위에 올랐다. 인륜과 의리를 복원하자던 군신의 맹약은 참신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일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한 암투가 처절하게 벌어졌다. 군신 모두에게 스스로의 이름과 몸뚱이, 가솔과 친척이며 후손이 있었고 그 후손의 후손까지 영달을 이어가게 하리라는 욕망은 누구라 할 것 할 것 없이 뜨거웠다. 거룩한 경전을 달달 외고 공맹의 도를 외쳐도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른바 사대부며 군자, 유자라 하는 것들이 살아생전의 제 명성과 피를 만대까지 전하려 하는 욕심이 더했다.(p250)

 

인조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경우를 애기하고 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를 때는 왕과 신하 모두 신성한 의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인륜과 의리를 복원하고 민중들을 잘 살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각자의 욕망과 자손들에 대한 소망으로 집단 이기주의로 흘러갔다. 서로 파당을 형성해 싸우게 되고, 결국 원수까지 되는 결과를 낳았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되었다. 오늘날도 이런 일은 더러 있으리라. 야당이었을 때는 모든 것을 국민들을 위하여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일이리라. 자신들의 바탕이 되어준 사람들을 위하는 것보다 우선 자기를 챙기는 일이 자행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이것이 절제될 수 있다면 훌륭한 존재로 남을 것인데.

 

내수사의 논에서는 직파법을 쓰지 말고 모내기를 하게 했다. 모내기 전에 거름을 충분히 줄 수도 있고 김매기를 적게 하는 동안에 거름을 만들게 해서 또 땅을 비옥하게 하니 소출이 훨씬 늘었다. 벌좌에게 황해도 연백의 평야에서 시험 삼아 도지제를 실시하도록 건의하고 왕에게 귀띰하여 곧 그리되었다. 연이은 가뭄만 아니었더라면 내수사의 전장에서 거둬들이는 수입이 한 해에 두 배는 늘었을 것이다.(p311)

 

나는 나라의 경제를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특히 모내기를 해 수확을 늘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시행해 보고, 내수사 토지만이라도 농민에게 줘 농사를 짓게 하고 나누는 도지제를 시행해 보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함은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확신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나라의 살림을 위해 화전을 금하게 했다. 온 나라 물과 뭍, 산과 숲까지 임금의 은혜가 고루 퍼져가는 땅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내가 가진 마음이었다. 그리고 비밀사업을 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삼 기르기다.

 

마지막 부분에 청국에서 온 사람들과 검술 시합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의 검술은 상당한 경지에 있다. 청에서 내기를 걸고 도전해 온 검술 대회에 검술 스승인 야당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 나를 내보내게 된다. 나는 상대를 누르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결국 대결은 승리로 끝난다. 그 결과를 보고 검계라 지칭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온다. 한편 숙종은 장옥정을 차츰 마음에 품어 나가게 된다. 2권엔 장옥정, 검계 등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무척 흥미롭게 읽혀지는 글이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놀랍니다. 당대의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 경제, 심지어 궁중의 비화까지 자세하게 소화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역사가 바탕이 되는 소설은 한계가 많은데, 그것을 교묘하게 처리하면서 역사에 위배되지 않게 흥미롭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2권은 더욱 잘 읽히리라. 기대가 된다

j****3 2019.10.2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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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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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은 노회한 신하들 곁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나이를 먹으며 성장해 간다. 서인과 남인, 후에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는 당쟁 속에서 강력한 왕권을 이룩하려 정권을 교체하는 환국의 파도 위에 올라타는 수고를 감행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허구의 인물인 성형의 눈을 통해 이순이 왕으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언어로 그리고 있다. 왕의 곁에서 왕을 지켜야 한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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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은 노회한 신하들 곁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나이를 먹으며 성장해 간다. 서인과 남인, 후에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는 당쟁 속에서 강력한 왕권을 이룩하려 정권을 교체하는 환국의 파도 위에 올라타는 수고를 감행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허구의 인물인 성형의 눈을 통해 이순이 왕으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촘촘한 언어로 그리고 있다. 왕의 곁에서 왕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환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켜질 듯 깨어질 듯한다. 급작스러운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 성형이 모시는 스승들이 귀양을 가거나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왕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건 여전히 신하들이었다. 신하들이 귀양 간 송시열처럼 왕을 우습게 알거나 삼복처럼 왕의 여자를 넘보아서가 아니었다. 신하라는 것들이 한결같이 무능하여 국사를 제대로 처결하지 못하는 것, 신하들끼리 이전투구와 세력 다툼으로 날을 새느라 민생과 왕토가 피폐해지는 것, 도성과 지방의 신하와 수령들이 가렴주구로 백성을 등쳐먹어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나라를 저버리거나 역질과 굶주림으로 저세상으로 가버리는 것, 부패한 신하들 때문에 살림이 거덜 난 나라에 외척이 쳐들어 오는 것이 왕위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다.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中에서)


왜 하필 숙종 때의 일을 성석제는 소설로 불러온 건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치열한 예송 논쟁과 환국의 중심에 있던 왕이었다, 숙종은. 희빈 장 씨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하들의 힘에 좌지우지되어 정권을 손바닥 뒤집듯 교체한 여자 치마폭에 쌓인 줏대가 없는 왕으로 그려졌다, 이순은. 소설은 이름 그대로 작은 이야기를 펼쳐 놓는 역할을 한다. 역사가 증명하지 못한 사관이 미처 적지 못한 세세한 장면의 틈으로 소설은 비집고 들어간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왕을 이름난 정승집 개보다 못하게 여기는 신하들의 아귀다툼에서 살아남으려는 왕이었음을 소설에서나마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 곁에 신분은 낮지만 머리는 좋지 않지만 입만은 자유자재로 놀리고 후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비기로 무공을 연마한 성형이라는 인물을 두어 혼란한 조선의 역사를 바로잡고자 한 한 인간의 노력과 꿈을 그리고 싶어 했음을 상상해 본다. 상복을 몇 년 입을 것인가, 왕자를 원자를 삼을 것인가는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왕은 안녕하시다』에서 줄곧 성형은 백성들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가뭄과 흉년, 역병으로 이어지는 흉난에 백성들은 굶어 죽는다. 대동법을 시행했지만 간악한 관리들의 등쌀에 스스로 도적이 되기도 하는 등 백성들의 삶은 편치 못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왕은 안녕하시다고 말하는 이에게 왕은 안녕하신가라고 반문하고 그런데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성형은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 김만중을 만나 이야기책을 받아든다.


“내가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볼 수 있게 자네가 직접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나?”

“불학무식한 제가 문자와 문장과는 담을 쌓았으니 쓸 수가 없지요.”

“문자와 문장? 세종 임금께서 만들어주신 글로 쓰면 되지 않나? 초동목부며 규방의 여인들로 모두 아는 걸 자네 또한 알고는 있겠지?”

“그것도 글재주가 있어야 쓰는 게 아닙니까?”

“진실함과 굳센 믿음이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고 오래도록 전해지며 천년만년 사람들을 끄는 향을 풍기는 게 패설이라네.”

……겉장에 ‘구운몽’이라는 제목이 날아갈 듯 힘찬 서체로 쓰여 있었다.

“이건 한글로 되어 있어서 저도 읽을 수가 있겠네요.”

“조선 사람이 조선의 글자로 된 것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네가 돌아가는 길에 이걸 읽고 내 어머니처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에게 읽게 해주면 고맙겠네.”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中에서)


흔하게는 잡소리, 허구가 가미된 우스갯소리, 농담으로 심심풀이용으로 지어진 이야기, 소설은 태어나는 순간 신분이 정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귀한 위로가 되어 불리고 쓰였다. 말과 언어가 일치하지 않아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던 시대에 구비로 전해진 이야기는 훗날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진다. 성형은 김만중의 뜻인지 자신의 깨달음인지 모를 힘으로 책 한 권을 남긴다. 꼬마 임금 이순과 파락호 성형의 이야기는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책이라면 환장하는 어느 사람의 손에 의해 미래의 독자의 손에 쥐어질 날을 위해 잠자코 먼지를 양식으로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왕과 백성들이 공평과 사랑을 말하며 살아가는 시대를 꿈꾸며 안녕을 이야기한다. 힘이 없는 왕은 왕이어도 안녕하지 못하고 그런 왕을 위해 살아가는 백성의 삶 역시 편하지 못하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던 2019년이라는 미래를 갖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착한 ‘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쓰는 인간의 믿음에 대해 전한다. 살아남으라는 성형의 마지막을 되새긴다. 살아남아 누구에게 뭔가를 남기는 자가 되어 혹독한 시절을 견뎌야 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안녕하신가.



s*****m 2019.02.0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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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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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파락호로 불리는 성형은 1648년 무자생 쥐띠이다. 두역(천연두, 마마)을 앓은 세 살부터 여덟 살까지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비는 북벌에 뜻을 두어 임경업 장군을 따라 길을 나섰지만 소식을 알지 못한지 오래이다. 성형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기생방에 들어앉아 세월아 네월아 지내며 스승이라 불리는 미수 영감의 심부름이나 다닌다. 우암 송시열이 어떠한지 보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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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일의 파락호로 불리는 성형은 1648년 무자생 쥐띠이다. 두역(천연두, 마마)을 앓은 세 살부터 여덟 살까지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비는 북벌에 뜻을 두어 임경업 장군을 따라 길을 나섰지만 소식을 알지 못한지 오래이다. 성형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기생방에 들어앉아 세월아 네월아 지내며 스승이라 불리는 미수 영감의 심부름이나 다닌다. 우암 송시열이 어떠한지 보고 오라는 미수의 명으로 길을 나서다 훗날 숙종이 될 소년 이순을 만난다. 그때부터 성형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성석제의 장편 소설 『왕은 안녕하시다』는 헌책방에서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을 만난 것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십만 원을 부른 주인에게 오만 원에 하자며 결국엔 칠만 원에 전집을 사서 한동안 잊어버렸다. 이사를 하며 펼쳐본 전집에서 발견한 한 권의 복사본에서 ‘소설’은 발견된다. 누군가들에게 의해 쓰이고 붙이고 잘라졌을 ‘소설’은 시대가 흐르고 흘러 헌책방에서 먼지를 먹고 있었다.


소설. 小說. 작아서 가벼운 이야기. 황당하고 우습고 처절한 이야기는 밤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으로 여인들이 둘러앉아 심심 파적 읽는 것으로 돈이 조금 있으면 전기수에게 쥐여주고 한시름 세상을 잊어보려 하는 것으로 소설은 그 이름값을 했다. 우는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할 요량으로 할미가 제 손자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건 곶감이라고 할 때부터 소설은 작지만 큰 세계의 일을 그리는 훗날을 도모하는 이들의 슬픔을 그려 주었다.


『왕은 안녕하시다』는 진짜와 가짜가 어우러지는 세계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전집 안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 속 주인공 이순과 성형이 그리는 꿈으로. 송시열 선생의 집에 갔다가 개 취급을 받으며 개 짖는 소리를 내고 개똥을 먹으며 창피를 당하고 있을 때 성형을 구해준 건 어린아이, 꼬마였다. 호형호제를 하자며 먼저 수작을 부리며 성형에게 친한 척 구는 꼬마가 조선의 19대 임금인 숙종이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성형은 그저 미색이 뛰어난 아이와 연을 맺으며 기생방에 앉아 음주와 가무를 즐길 요량이었다.


현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13세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성형은 꼬마가 왕이 되고도 연을 끊지 않고 왕이 부르는 대로 달려가 어린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다. 『왕은 안녕하시다』의 이야기는 폐위되었던 인형왕후가 궁궐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그 사이에 서인과 남인의 대립으로 인한 당파 싸움과 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처참한 백성의 고단한 삶을 그린다. 북벌에 실패해 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갖은 공물을 바치고 대국으로 떠받들어야 하는 조선의 비애를 다룬다.


아니, 나처럼 덜떨어진 인간이 뭐라고 임금의 지척에서 무슨 일을 하라는 거야.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 왕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였다. 또 꼬마가 내게 먼저 형제가 되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 내게 나도 잘 모르는 어떤 능력이 있어서 왕을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우가 그걸 원한다면.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中에서)


조선 건국 때 온건 개혁파로 분류되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한 사림은 성종 때에 중앙 정치에 등장했다. 그 후 훈구파와 대립해 사화를 입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 그들은 선조 시기 중앙으로 복귀해 권력을 차지했다. 사림 은 지역과 학문의 경향에 따라 여러 붕당으로 갈라졌다. 인조의 둘째 아들인 효종이 죽자 그의 어머니인 조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할지를 두고 치른 예송 논쟁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현종이 왕에 오른 후 효종의 왕비 인선 왕후가 죽고 시어머니 조대비가 상복을 입을 기간을 두고 또 논쟁이 펼쳐졌고 1년 복을 입을 것을 주장한 남인이 승리해 실권을 잡았다. 예법을 따지는 논쟁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인과 남인의 첨예한 정권 장악의 욕심이 숨어 있는 사건이었다.


숙종 이순이 왕으로 집권하던 시기에는 예송 논쟁과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진 정치 세력의 다툼이 극심하던 때였다. 꼬마 이순은 성형에게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성형은 곁에 아무도 둘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순을 위하여 기꺼이 날라리 형님이 되기로 한다. 처음에는 별좌라는 직함을 얻고 이후에는 왕실의 재정 관리를 맡는 내수사에 그밖에 왕이 가라고 한자리에 가서 자신도 몰랐던 신통방통한 재능을 펼친다. 그중 최고는 멍텅구리라는 검을 얻어 조선 제일의 무술 신공을 발휘하며 어쩌다 무사가 되기도 한다. 대비 마마전에 있는 나인 옥정을 발견해 연심을 품기도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옥정은 이순의 품에 안겨 정치적인 격랑으로 빨려 들어간다.


2권에 계속...

s*****m 2019.02.0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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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시다 1, 2 -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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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아는 역사는 흔히들 강자의 역사라고 한다. 그 기록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왕을 만나고, 위대한 학자를 만나고, 역적을 만나고, 전쟁을 만나고 그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하지만 그 역사라는 물결을 같이 타고 흘렀단 수많은 개개인은 흐름 속에 묻히기 마련이다.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는 조선시대 19대 임금인 숙종의 이야기를 담아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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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아는 역사는 흔히들 강자의 역사라고 한다. 그 기록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왕을 만나고, 위대한 학자를 만나고, 역적을 만나고, 전쟁을 만나고 그 안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하지만 그 역사라는 물결을 같이 타고 흘렀단 수많은 개개인은 흐름 속에 묻히기 마련이다.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는 조선시대 19대 임금인 숙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익히 들은 당파 싸움, 어린 왕, 장희빈. 작가는 그들의 행보가 어땠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성형'이라는 유쾌하고 천방지축이지만 정 많은 인물로 하여금 허구의 장막을 지어 올렸다. 우리는 그 장막 안에서 누구는 사랑에 빠지고, 누구는 돈을 벌고, 누구는 잔치를 벌이고, 누구는 죽임을 당하고, 누구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조선 제일의 파락호 성형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기생방에 죽치고 지내는 한량이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길을 나선 그는 시비를 걸어오는 양반과의 난처한 순간에서 그를 구해준 귀공자 같은 꼬맹이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그들이 의형제를 맺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형은 이순이 곧 즉위할 조선의 왕세자임을 알게 되고, 이순은 즉위하자마자 성형을 궁으로 불러들여 자신을 지키고 할바마마이신 효종이 송시열에게 준 기밀문서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게 왕이라는 괴물의 실체였다. 임금이라는 자리가 왕을 그리 만든 것이겠지만 내가 가진 게 많아질수록 그것을 한순간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왕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었다. -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 2>


당시 조선은 당파싸움이 한창이었다. 힘 있는 신하들 사이에서 휘둘리지 않겠다며 왕권을 강화해 나가는 숙종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성형은 왕의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손에 묻힌 피를 씻어낼 길이 없겠다며 아우를 위해 슬퍼하다가, 왕의 힘에 두려워하다가,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로 둘러싸여 있는 아우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다가, 왕을 위해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닫고 슬퍼한다. 한순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지만 매번 아우 곁으로 돌아오고 만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왕의 기분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신하들의 안위나, 백성들의 목숨과 같고 그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독자들은 살얼음판을 여러 번 걷는다.


"영용한 군왕이 군사를 이끌고 오랑캐를 무찌르고 강역을 넓힌다 한다면 어느 신민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불 속 활갯짓으로 신하와 정국을 이리 바꿔치고 저리 쓸어버리고 하여 두려움을 자아내서는 인심을 얻을 수 없지요."

"임금에게 신하란 장기판의 말과 같은 것이거늘, 때에 따라 총애하고 중용하기도 하지만 소용을 다하면 결국 버릴 수밖에. 혈육이든 처자든 백성이든 나라든 내가 있고서 있는 법." -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 2>


왕이 안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안녕하지 못했는지를 읽다 보면 소설의 제목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귀양을 간 수많은 신하들이며, 사약을 받은 수많은 신하들뿐만 아니라 숙종 시절 희빈 장 씨가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궁으로 들어오려고 하던 모친의 가마를 들던 가마꾼의 죽음, 사약을 받은 스승의 죽음, 북방 토벌을 하러 갔다가 그들을 감시하려는 요량으로 눌러앉아 부모와 자식에게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아비의 죽음, 바른 소리를 하려던 박태보의 죽음들이 있다. 왕이 있고 혈육이든 처자든, 백성이든 나라가 있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가 새삼 다가온다.


왕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제3자인 성형의 눈을 통해 최대한 균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어린 왕이 그 자리에서 얼마나 고뇌하는지,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잔인해졌는지도. 결국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왕이 안녕하시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안녕하지 못했는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 왕이 안녕하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안녕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소설' 속에 묶어 놓는다. 화자가 헌책방에서 산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에서 발견한 글이 바로 위의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 속에서 성형은 김만중을 만나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를 언급한다. 귀양 보내진 외딴섬에서 억울한 감정을 녹여낸 소설을 실제로 왕이 읽고 공감한 이야기를 살며시 언급하며 웃음 짓게 한다. 거짓의 이야기에서 얼마나 많은 참을 얻을 수 있는지는 이렇게 매번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매번 놀랍다.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서배스천 베리의 <로즈>라는 소설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역사란 일어난 일을 순서에 따라 거짓 없이 정리해 놓은 것이 아니라 추측과 짐작을 멋들어지게 배열해두었다가 힘없이 시들어가든 진실의 습격에 맞서 치켜드는, 깃발과도 같은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김은성 작가의 <내 어머니 이야기>에서 작가는 엄마의 과거 이야기 속에서 전에 알고 있던 역사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발견하였으나 엄마의 주관적 체험 역사 또한 역사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창작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왕의 역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도 역사다. 왕 혼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진 못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권력은 어느 인물에게 옮겨진 대중 의지의 초화'라고 했고, '그 권력이 역사적 사건을 만든다'고 했다. 생명이 있는 한 우리는 매 순간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를 만들고 있다. 역사의 일부분, 혹은 역사 자체다. 어느 한 부분이 허구일지라도 미래의 누군가는 그곳에서 진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새삼 소설을 읽고 메모하고 있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그곳에 있어 지금 여기에 내가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당신이 나예요. 나는 당신일 수 없지만. 생명에는 언제나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니까요. 고마워요. 당신이 거기 있어주어서. - 성석제, <왕은 안녕하시다 2>

f********r 2019.02.1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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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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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하면 떠오르는 것 하나.아마 그의 작품을 만나지 않았어도 입소문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그의 재치 있는 입담과 울고 웃기는 인생사 한 판이 하나의 작품이 담겨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작품도 그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 게 좀 안타까울 뿐)조선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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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하면 떠오르는 것 하나.

아마 그의 작품을 만나지 않았어도 입소문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으리라.

그의 재치 있는 입담과 울고 웃기는 인생사 한 판이 하나의 작품이 담겨 있다는 것 말이다.

 

이 작품도 그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 게 좀 안타까울 뿐)

조선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끌고가는 이야기다.

(헐... 왕과 의형제라굽쇼?! ㅎㅎ)

조용할 날 없는 시대의 혼란 속에서 왕을 지키겠다고 활약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놀랄만큼 모험의 흥미로움을 전달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어느 부분과 상상력이 뿜어대는 이야기로의 재미를 적당히 잘 어울리게 한 듯하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권력의 민낯과 역사의 흐름,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사가 잘 녹아있다.

 

끝까지 다 읽지 못해서 안타까운 작품이기에,

시간이 된다면 2편까지 완독하여 이야기의 완성본을 맛보고 싶다.

 

n******i 2020.02.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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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입담가의 재미난 역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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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두꺼운 책이 사실 읽어 가는데 전혀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성석제 소설가의 걸출한 필력은 독자의 집중도를 쫘악 빨아들인다.  숙종조는 단순히 장희빈으로만 또는 숙종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만으로 읽혀졌지만.  사실.. 격렬해 지기만 했던.. 당쟁의 시대를 왕권의 강화로 극복하기도 하고.. 영, 정조 시대라는 조선의 르네상스로의 연결 통로였기도 했다.  또한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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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두꺼운 책이 사실 읽어 가는데 전혀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성석제 소설가의 걸출한 필력은 독자의 집중도를 쫘악 빨아들인다.

 

숙종조는 단순히 장희빈으로만 또는 숙종을 둘러싼 여자들의 이야기만으로 읽혀졌지만.

 

사실.. 격렬해 지기만 했던.. 당쟁의 시대를 왕권의 강화로 극복하기도 하고..

 

영, 정조 시대라는 조선의 르네상스로의 연결 통로였기도 했다.

 

또한 숙종의 즉위시기도 결코 짧지 않았다..

 

유명하지만 유명하지 않았던 이 왕과 이 왕의 시대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접근이다.

 

시작은 무언가.. 정치역사 소설 같다고. 중간에는 또다른 상업 역사 소설 같다가.. 또한 무협 역사 소설 같기도 하다..

 

무언가 퓨전의 연속이다.

 

성석제의 상상력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러나 이런 재미가 생각해야 할 또다른 요소들..

 

그런 것들을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일단.. 착착 넘어가는... 페이지가 너무 좋다..

 

 

p******n 2019.08.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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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시다 1 -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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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밑줄"나 창녕인 성형, 나 완산인 이순, 우리 두 형제가 한날한시에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는 못하였으나 이제 한날한시에 죽을 것을 소망하나이다. 우리 형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며 추호도 속이지 않으며 형의 원수는 아우가 갚고 아우가 입은 은혜는 형이 반드시 갚으며 한 사람의 원수는 두 사람의 원수로서 목숨을 바쳐 갚을 것을 맹세하나이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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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밑줄

"나 창녕인 성형, 나 완산인 이순, 우리 두 형제가 한날한시에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는 못하였으나 이제 한날한시에 죽을 것을 소망하나이다. 우리 형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으며 추호도 속이지 않으며 형의 원수는 아우가 갚고 아우가 입은 은혜는 형이 반드시 갚으며 한 사람의 원수는 두 사람의 원수로서 목숨을 바쳐 갚을 것을 맹세하나이다."

 

내가 왕을 지키는 이유는 왕이 친히, 직접, 간절하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는 너를 지켜라. 나 또한 너를 지키리니.

 

"한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의 뜻을 이길 수는 없어요. 한 사람의 뜻이 아무리 지당하고 그가 아는 게 많다고 하여도 언제나 옳을 수는 없고. 한 사람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만인을 얻어야죠. 그러면 저절로 그 한 사람을 이기게 돼요."

 

왕, 왕이라는 자리, 왕이 가지는 힘은 누구든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 왕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왕이 그랬다. 왕의 팔자는 의례, 세도, 공론, 전례 따위에 친친 매여 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요. 살고 싶다면 살고 죽고 싶다면 죽는 게지."

"가히 장한 말이다. 그러나 그건 장부들이나 하는 것."

"장부라는 게 별거요? 나는 그 장부라는 것들을 내 아래에 모두 엎드리게 만들 거요. 그러지 못할 양이면 혀 빼물고 죽지 뭐."

 

"새 임금이고 헌 신하고 간에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어주면 고맙겠어. 신역에 세금에 수령들 침학과 아전들 수탈로 자나 깨나 들들 볶아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게 해놓고는 말로는 백성들 위한다고 떠들어대느니. 잘하는 게 서인이니 남인이니 갈려서 저희끼리 피 터지게 싸우는 거밖에 더 있는가."

 

어떤 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는 것이 낫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기를 쓰고 뭘 하려고 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한 게 없이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f********r 2019.04.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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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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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의 안부를 묻다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        성석제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하얀 표지에 달이 떠 있고, 선비가 말을 타고 날아간다. 나무 위에 선 학은 고개를 길게 빼고 사슴은 돌산을 달려간다. 거북이 두 마리는 물에서 헤엄을 친다. 2권에서는 호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는 무엇을 바라는지 돌산꼭대기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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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의 안부를 묻다

성석제의 왕은 안녕하시다

    

 

 성석제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하얀 표지에 달이 떠 있고, 선비가 말을 타고 날아간다. 나무 위에 선 학은 고개를 길게 빼고 사슴은 돌산을 달려간다. 거북이 두 마리는 물에서 헤엄을 친다. 2권에서는 호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는 무엇을 바라는지 돌산꼭대기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나무에 앉은 까치와 그 나무 아래 서 있는 선비도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들이 바라보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노량진역 근처 학원가 중고책방 가판대에서 국역 연려실기술 전집을 발견하고 칠만 원에 산 것처럼 나는 설 연휴에 읽을 책을 고르다가 표지 그림에 이끌려 이 책을 구매했다. 그러나 설 연휴에는 TV에 빠져 누워만 있다가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7호선 전철 안에서 입술이 부르트는 줄도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 그사이 나는 현대와 조선시대를 오갔다.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기 시작할 때 앞의 내용들이 먼 과거처럼 아득했다. 입춘이 지나고 나서 하얀 눈이 내리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안에서 또 한 번 나만의 시간 흐름을 경험했다. 소설은 17세기가 배경으로 허구의 인물 성형을 내세워 내용이 전개되지만 이미 익숙한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이 등장하고, ‘구운몽사씨남정기의 저자 김만중, 거기에 성춘향까지 엮어내다 보니 역사 속 인물들을 불러내어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서도 왕은 왕처럼 온화했고, 포악했으며, 신하들은 신하처럼 엎드렸고, 뾰족했고, 거만했으며, 절개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백성이나 국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들고 고달팠다. 그 안에서 여전히 왕은 안녕하시고,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기록되었다.

 

  성형과 숙종은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났다. 그때는 아직 왕이 되기 전 미소년의 불과했기에 성형은 그가 세자인줄도 몰랐다. 그 뒤 소년은 궁을 빠져나와 밑바닥 은밀한 즐거움과 쾌락에 능통한 성형과 세상의 오락과 재미를 즐기게 되고 유일하게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진짜 자기 사람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평생 배신하거나 헤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아니, 나처럼 덜떨어진 인간이 뭐라고 임금의 지척에서 무슨 일을 하라는 거야. 뭘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 왕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였다. 또 꼬마가 내게 먼저 형제가 되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래, 내게 나도 잘 모르는 어떤 능력이 있어서 왕을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우가 그걸 원한다면.

67.p

 

 

  만약 내가 성형이라면 어떠하였을까? 예를 들어 나와 여행을 하고 신앙을 나누며 서로의 가족과 삶의 행적을 잘 아는 후배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 발 더 나아가 그가 은밀히 나를 찾아와 세상 사람들 몰래 가까이 있으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면 그것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음흉하고 탐심이 가득해서 자신에게 찾아온 좋은 기회라고 여기게 될 것 같다. 물론 상상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지만 그런 면에서 성형이 왕 옆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왕과 독대한 뒤,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기도 하였지만, 자리와 재물에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처신을 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처신이란 은밀하게 왕의 형이 되어 주어 내수사를 비롯한 왕의 재산을 늘려주는 일부터 공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자잘한 일들을 도와하고 좋은 학자와 신하들, 심지어 왕의 두 여자까지도 본의 아니게 잘 돌봐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리에 대한 권력욕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꼬마가 왕이 되어가는 동안 진짜 왕의 형이 되어 갔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어린 임금과 우암 송시열이 문장과 유학을 놓고 신하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명승부를 겨루었던 장면이 멋있었다. 임금은 대학자이자 서인의 우두머리인 송시열을 맞기 위해 혼자 준비하고 연습하며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송시열을 귀양에서 풀어주고 영중추부사에 다시 임명하면서 왕은 얼마나 고심참담해가며 만남을 준비했을 것인가. 과연 승산이 있을 것이라 여겼을까. 그 두려움과 외로움을 왕은 혼자서 이겨냈다.

144.p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왕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우암 송시열을 통해 신하로서 왕 앞에 섰을 때의 당당함, 그 왕과 힘겨루기를 하는 노인네의 꼬장꼬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가려져 인경왕후의 존재를 몰랐다가 알게 되었고, 대비이기 전에 아들의 어머니로서 추운 겨울 날 속옷만 입고 찬물을 뒤집어쓰는 모성도 보았다. 그리고 박태보처럼 품위 있고, 절개 있는 젊은 신하가 임금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감동했다. 임금과 인현왕후의 폐비를 거두어달라는 신하들의 싸움은 서로가 뜻은 같으나 받아들이는 결과가 다르다고 싸우는 꼴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결국 왕의 뜻대로 이루긴 했으나 승리는 박태보라고 할 수 있다. 왕은 박태보의 몸을 죽여 뜻을 이루었고, 그는 자신의 몸을 죽여 왕의 뜻이 잘못되었음을 밝혔다. ‘성형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정적인 때에 나는 박태보나 왕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을 막거나 만류할 수도 없었다. 나는 멍텅구리였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달라지고 생사가 갈라지고 스러져가는데 입이 닫히고 손발이 묶인 듯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347.p

 

 

살다보면 그런 때가 있다는 것을 나도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멍텅구리처럼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때 말이다.

 

이 소설은 형과 아우, 왕과 신하,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만나 인연을 맺고 서로의 시간과 공간에 빨려 들어가 한바탕 신나게 싸우고 놀다 나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장사를 하고, 춤을 추고, 무예를 익히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임금이 되어 사람을 세우고 죽이기를 반복하며, 누군가는 학문을 하고, 뜻을 세우고, 자신이 세운 뜻을 지키다 죽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제 더 이상 한 명의 왕은 없다. 수많은 왕이 존재할 뿐이다. 그 왕들이 각자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견디며 곳곳에서 인연을 맺고 서로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물을 짠다. 그 그물로 낚을 것들은 무엇일까. 소설 속에서 왕과 신하들은 밀리고 밀리며 예과 학문, 법도에 대해 논쟁했다. 그 사이 백성들은 재난과 가난, 배고픔과 질병에 맞서 싸우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 그물 어딘가에 함께 안간힘을 쓰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왕과 신하들이 걸려들기를 바라고 싶다. 그들을 감시하고 맞서 싸울 당당한 국민들도 한가득 함께 들어있기를. 우리는 매일 마주하고 싸워야 할 존재들과 살아가고 있으니까. 긴 소설은 끝났지만 우리의 시간과 삶은 계속 될 것이니까. 오늘도 왕은 안녕하시다.

 

 

g*****y 2019.02.17.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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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안녕하시다 1,2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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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현재 고1 국어를 강의 중인데성석제 작가님의 '황만근은 말했다' 를 읽고 울림이 참 큰 글을 쓰는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전체를 다 읽지는 못 했지만 글이 쉽게 읽히고 장면과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쉬울 정도네요. 다 읽고 쓰면 더욱 좋았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석제 작가님의 책을 접할수 있는 기
"왕은 안녕하시다 1,2 세트" 내용보기
평소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현재 고1 국어를 강의 중인데
성석제 작가님의 '황만근은 말했다' 를 읽고 울림이 참 큰 글을 쓰는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전체를 다 읽지는 못 했지만 글이 쉽게 읽히고 장면과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쉬울 정도네요.

다 읽고 쓰면 더욱 좋았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석제 작가님의 책을 접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리뷰 먼저 남깁니다.

점점 추워지네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은 어렵지만 좋은 책들이 곁에 있어서 든든합니다
y******4 2020.11.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