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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목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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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빈교회와 두레마을로 유명한 김진홍 목사가 자전적 소설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를 내 놓았다. 전체 3권으로 된 큰 작품으로 자신이 지끔까지 걸어온 삶의 여정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숨김없이 써내려 간다. 김진홍 목사는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 철학과와 장로회 신학대학을 마친 뒤, 청계천 빈민가에 뛰어 들어 활빈교회를 세우고 가난한 이들의눈물을 닦아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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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빈교회와 두레마을로 유명한 김진홍 목사가 자전적 소설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를 내 놓았다. 전체 3권으로 된 큰 작품으로 자신이 지끔까지 걸어온 삶의 여정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숨김없이 써내려 간다. 김진홍 목사는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계명대학 철학과와 장로회 신학대학을 마친 뒤, 청계천 빈민가에 뛰어 들어 활빈교회를 세우고 가난한 이들의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했다. 70년대 판자촌 철거계획이 발표되자, 철거민을 이끌고 모세의 출애굽에 비견되는 서울 탈출을 감행, 남양만에 정착하여 1986년 남양만 두레마을을 열고 지금가지 활빈교회와 두레마을에서 헌신하고 있다. 대표 저서인 [새벽을 깨우리로다]가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는 이제 그의 나이 60을 바라보며 쓴 책으로 균형감각과 삶의 깊은 체험에서 재 해석된 글로서 새벽을 깨우리로다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기독교의 본질과 생명력에 관해서 알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종교를 알아보기 위해 그 종교의 경전을 읽을 수도 있고 그 종교의 교리를 연구할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육화(incarnation)된 신앙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몇 마디 웅변이나 값싼 설득으로 강매하려 하지 않는다. 철저히 고뇌하고 길을 찾아 온 여정을 묵묵히 들려줄 뿐이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한 번 손에 들게되면 끝까지 읽지 않고 베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자신을 결코 미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 때 방황하던 시절 청량리 588에 갔던 경험과 느낌까지 진솔하게 토로한다. 나는 그동안 설교와 책자를 통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들어왔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 책을 통해 그의 스토리를 종합적이고 깊이있게 들여다 보며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종교는 교리의 정교함이나 조직의 방대함과 같은 외적인데 그 생명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연 사람을 변화시키며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생명력을 부여하는 실제적인 힘이 있는가 하는 것이 삶으로 검증됨에 있다고 본다. 일단 읽어보자. 그리고 토론하자.

[인상깊은구절]
두레운동이 내세우는 신학은 목민신학이라 이름한다. 목민신학은 지난 30년간 온몸으로 쌓아온 체험에서 베어난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도서실에서 이루어진 신학이 아니다. 민초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러난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머리에서 구상하여 손으로 쓴 신학이 아니다. 몸으로 체득하여 발바닥으로 쓴 신학이다. 목민신학은 200년 전에 통한의 삶을 살다 간 선각자 다산 정약용에서 그 틀을 찾는다
v******9 2000.04.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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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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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이 땅의 나그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책 아니 분명 그 이상 입니다. 영화 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 보다 더 감동적인 진실한 신앙의 선배의 삶.. 이 땅의 아픔과 고통을 연약한 한 몸으로 다 끌어 안은 20세기의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라는 것을.. 섬기는 모습으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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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이 땅의 나그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책 아니 분명 그 이상 입니다. 영화 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 보다 더 감동적인 진실한 신앙의 선배의 삶.. 이 땅의 아픔과 고통을 연약한 한 몸으로 다 끌어 안은 20세기의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라는 것을.. 섬기는 모습으로 (진정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를 섬긴다라고 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간다라는 것을.. 마음이 참 따뜻해 졌습니다. 그리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분의 인생에서 나의 모난 이기심과 중심성을 반성하며.. 선교사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깨달으며.. 읽고 나면 반드시 다른 분들에게도 권해 드리고 싶어할 겁니다. (다만 교회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사랑하고 함께 숨쉬어야 할 의무만 가진다. - 김진홍)
m*****e 2004.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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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가 장미꽃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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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가 장미꽃같이... 김진홍목사님의 일대기를 가장 잘 표현한 제목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신앙의 길로 막 접어 들었을 무렵 읽었던 김진홍목자님의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저의 가슴에 크나큰 파고를 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의 헌신과 능력,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 너무나 감격적이었고 이 감격과 은혜가 저 또한 헌신의 삶을 결단케 했기 때문입니다. 황무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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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가 장미꽃같이... 김진홍목사님의 일대기를 가장 잘 표현한 제목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신앙의 길로 막 접어 들었을 무렵 읽었던 김진홍목자님의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저의 가슴에 크나큰 파고를 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의 헌신과 능력,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 너무나 감격적이었고 이 감격과 은혜가 저 또한 헌신의 삶을 결단케 했기 때문입니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에서 저자는 '새벽을 깨우리로다'의 연장선상에서 극적이고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담담한 필채로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품에 안고 그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이야기 해주듯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이 구전을 읽듯, 그냥그냥 웃고, 슬퍼하고, 분노하기를 허락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람들로 부름받은 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할 사명과 시대적 소명을 분명히 제시해 줍니다. 죄악의 그늘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 빛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사람을 키우고 섬기는데 온전한 희생의 제물로 드리라고 말입니다. 저자는 빈민선교의 한계어 부딪혀 이 사역을 등지려할 때, 굶주림에 지쳐 울고있는 아이의 떨어지는 눈물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또한 죽은 훈이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세상을 저주하며 통곡할 때에도 '네 등에 있는 내가 예수니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저자의 모든 상흔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감당해야할 사명을 등지고 자족해 하는 우리의 삶에 회개의 채찍을 가합니다. 저자는 모든 고난과 아픔, 때론 희망으로 전개되는 자신의 일생에 "우리가 어려울때 그는 언저나 우리와 함께 있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저자는, 자칫하면 자살로까지 치닫을 뻔 했던 그많은 고난의 순간에도 늘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그분의 섬세한 손길을 의지하여 분연히 일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저도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절망과 나태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제 2의 훈이엄마와 굶주린 이웃들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내 마음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청송땅이다 청송이라면 이름 그대로 산 깊고 골 깊기로 유명한 곳이다. 청송에서도 안덕면 사부실이라는 산골 중의 산골이 내가 나서 자란 마을이다. 1941년 온 마을이 보리베기, 모내기에 한창이던 초여름 6월 열여드렛날에 나는 태어났다. 네 살 위의 형과 두 살 위인 누나에 이어 셋째였다. 당시 아버지는 일본 도쿄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모범운전사쯤 되셨던 것 같다. 일본에 사시던 어머니는 나를 낳으러 고향에 오셨다가 산후조리가 끝난 후 다시 일본으로 가셨다. 나는 태어나서 며칠 뒤 곧바로 도쿄로 갔고,다섯살까지 도쿄 신주쿠에서 낫토나 우메보시 같은 일본음식을 먹으며 자라났다. 신주쿠에서 자라났다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는 집앞에 작은 언덕이 있던 희부연 풍경밖에는 기억이 없다. 아무튼 내게 고향이란 한국의 청송과 일본의 도쿄가 되어버린 셈이다. 우리 가족이 귀국선을 탄 것은 1945년 해방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때 아버지는 일본에 남고, 어머니만 우리들 사남매(형 누나, 나, 세 살 아래 남동생)를 데리고 귀국하셨다. 그때 헤어진 아버지는 다시 뵐 수 없었다. 몇 년 후 일본땅에
p********e 2000.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