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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믿음의 진정한 사표
"우리 시대 믿음의 진정한 사표" 내용보기
* ( )은 책의 쪽수임. 저자인 김진홍 목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젊은 시절에 대단한 방황을 하였다는 점을 알 것 같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제는 대단한 목사님이 된 것이 감명 깊었다. 저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들을 옮겨 보았다. 나는 지금도
"우리 시대 믿음의 진정한 사표" 내용보기
* ( )은 책의 쪽수임. 저자인 김진홍 목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젊은 시절에 대단한 방황을 하였다는 점을 알 것 같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제는 대단한 목사님이 된 것이 감명 깊었다. 저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들을 옮겨 보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만화를 많이 읽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화책 읽고, 동화 듣고,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아이들의 상상력은 발전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조력이 자란다(1권 24). 삶이란 무엇인가? 한 조각 구름의 일어남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 조각 구름의 사라짐이다. 뜬구름 자체는 본래 알맹이가 없듯이 인생 삶도 죽음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1권 93). 이것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화장터를 철학실습이라고 하고 들어가 한 구의 시체가 한 줌의 재로 변한 과정을 지켜보고 저자가 읊조린 어느 구도자의 시이다. "교수님은 오늘 강의를 시작하면서 철학은 진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도 아직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계신다니, 그렇다면 수업을 계속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모르시는 것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서로 시간낭비 아니겠습니까? 그만 수업을 마치시는 게 어떻습니까?(1권 135). 저자가 조교로 강의를 대신 한 수업시간에 받은 학생의 질문이다. 대단한 질문이 아닌가. 이 질문 때문에 저자는 민중의 삶에 직접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한다. 어느 대학 할것없이 철학과 교수님들은 자신이 체득한 삶의 의미를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철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번역하여 소개하는 수준이 아닐까?(1권 137). 이것 참 말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방황하는 영혼들이 진리에 갈급하여 교회를 찾아든다. 교회가 그들에게 진리 그 자체인 예수를 제대로 만나게만 해주면 그들은 삶을 통째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에게 예수는 보여주지 못하고 돈을 바쳐라, 땅 사자, 집 짓자, 목사를 섬기라고 한다. 그 때문에 실망한 영혼들은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간다. 더러는 바른 길을 찾다가는 그릇된 길로 나아가 사이비나 이단의 올무에 빠져들게 된다. 교회에는 목사를 쳐다보고 복받아 잘살겠다는 사람들만 남는다(1권 148). 나는 교리를 중요시하고 인간의 아픔을 외면하는 교회는 그릇된 교회라 생각했다. 예수는 상한 마음들을 고치러 왔다고 말씀하셨으나, 예수가 세운 교회는 건강한 자들과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예수는 상한 마음들이 살아가고 이쓴 예배당 울타리 밖에만 머물러 있고, 예배당 안에는 아쉬울 것 없는 잘난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생각했다(1권 177). 예수 그리스도의 도(道)를 이어받아 교회가 처음에는 진실에서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진실이 제도화되고 교리라는 껍질을 쓰면서 왜곡된다. 인간을 해방시키려던 복음이 인간을 구속하는 종교로 변질하는 것이다(1권 202).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깊어져 부자는 가벼운 감기에 걸렸어도 호화로운 병실에 입원하고 빈자는 주사 한 대 맞아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현실을 거부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철저히 거부하고 그 변혁을 위해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그런 파괴력이 없는 신앙은 그릇된 신앙이요, 그런 도전력이 없는 종교는 종교답지 못한 종교다. 그런 종교는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백성들의 아편이 되는 종교일 따름이다(2권 147). 한국 교회는 예배당 건축이나 비품 구입에는 과소비를 하면서도 구제, 지역사회 개발, 인재육성 등에 쓰는 데에는 대단히 인색하다(2권 256).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저렇게 아파하는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넓은 가슴으로 품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3권 179). 저자의 개인적인 기도 제목을 보자. 어떻게 하면 진실한 인간이 될 것인가? 내가 목회하고 있는 활빈교회와 두레교회를 어떻게 하면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나갈 것인가? 교회가 교회로서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겨레를 섬기를 교회가 되어 백성들의 눈물을 씻고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인가? 의 세 가지라고 한다. 저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일에 쓰임받는 교회가 되는 것을 바란다. 그래서 그것을 사회개혁운동이라고 한다(3권 223). 예수는 떠도는 백성 전체를 품으셨는데 우리 목사들은 예배당 안에 있는 교인들만을 상대하려 든다. 예수처럼 예배당 안팎의 백성 전체를 품은 목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인목회가 아니라 국민목회가 되어야 한다(3권 313). 이상에서 인용한 내용을 살펴보면 저자의 목회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말로 이런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교회들은 상당 부분 예수의 교회가 아니고 로마교, 바울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야고보서에서는 행동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런 내용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헌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보아도 신약에서 십일조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십일조를 강조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아니 십일조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용도는 제대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십일조로 건물을 짓는다면 그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할 수 있을까. 도대체 한국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과부, 나그네, 고아를 강조하는 그 분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사해는 소금의 함유량이 20%가 넘어서 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바닷물 안에 소금의 함유량이 3%라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제대로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는 비율 역시 3%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하긴 먼저 나부터 세상의 소금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돌아보고 반성할 일이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7*****0 2001.1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