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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익었기 때문이지. -이 철수
참으로 허망한 그리고 올바른 그런 표현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익었기 때문에 떨어진 사과는 누구껄까요? 누구 소유일까요? 이런 소소한 문제 덕에 사는 것이 참 팍팍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회사가 20세기 최고 발명품이라는 표현을 들었습니다. 최고! 발명품! 그건 언젠가 수명을 다하거나 더 좋은 것이 나오면 바꿀 수 있다는 뜻. 제가 청춘을 바친 조직의 일이 그런 것일 수 있네요. 우엣든 불살라본 경험은 없어지지 않겠지요.
익었기 때문에 떨어졌든 만유인력 때문에 떨어졌든 떨어지는 시기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준비를 잘 해서 행복하게 떨구고 다른 위치에서 재미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좋은 시를 봐도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아직 덜 여물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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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의 판화는 소박하고 어여쁘고 생각깊고 단아하고 여백이 많은... 한마디로 좋다. 지난 봄에 사서 읽고 또 한 해가 지나 봄이 되어 다시 읽는다. 아니, 잊고 있다가 우연히 이철수의 판화 산문집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 책꽂이에서 꺼내어 다시 본다. 판화 그림이 글과 더불어 있으니 읽는다, 라는 말보다 감상한다, 혹은 바라본다.
지금보다 조금 더 욕심그릇에서 욕심을 덜고 미움그릇에서 미움을 덜고 게으름그릇에서 게으름을 덜어내고 또 채워 넣을 그릇에는 조금씩 더 채워 넣으면서 살자,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게 만드는 참 좋은 그림과 글 몇 줄...장 수를 넘겨가는 긴 글보다 몇 줄의 글이 훨씬 마음을 붙들고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올 봄에는 누구에게 이 좋은 책을 선물할까... [인상깊은구절] 소란스러운 소리는 늘 위로 솟구치지만, 조용하고 다정한 소리는 낮은 데를 찾아서 걸어내려옵니다. 퇴락한 절에서 돌아내려오는데, 문득 등뒤에서 가벼운 풍경소리 들립니다. 잊고 있던 그 소리에 얼른 인사드렸습니다. 저는 그 소리 사는 것 모르고 빈집이라 했습니다. 그 집에 주인 없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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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지금은 넘치도록 많아진 사람들이 넘치도록 많아진 물건들과 넘치도록 많아진 물건의 찌꺼기들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아질 물건들을 만들어 좁은 세상에 쏟아놓을려는 듯 하다. 그 문제점들을 직선적으로 쓰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도자기 만드는 작업대에 앉아 진흙으로 예술을 뒤적이는 듯한 경험을 날라다주는 저자는 박달재 아랫마을에서 농사일과 더불어 판화작업을 하면서 오늘도 소리 하나 좋은 것 골라, 아니 그 무엇이든 갈고 다듬어 깊은 소리 뽑아올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엇하나 소리내지 않는 것 없고, 무엇하나 소리를 통해 표면으로 발현되지 않을 것 없는 판에 하늘로 솟구치는 소리는 많지만 땅으로 파고드는 깊은 우물같은 소리는 듣기 어려운 세상. 목청 굵은 소리가 이명증으로 살아 꿈틀대는 현대인들에게 겸허와 자성을 동반하는 작지만 향이 물씬 묻어나는 짧은 글귀들이 오늘 같이 찌부듯이 흐린 날에도 맑은 자수정을 보는 듯 하다. 가장 쓸모 있고 요긴하지만 가장 흔해 가치부여를 그 값만큼 대접해 주질 않는 물에 관해서부터 눈, 별(북두칠성), 구름, 하늘, 해바라기, 소나무, 비, 낙엽들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심성순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인간들이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바구니에 나란히 담겨있어야 함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한쪽 지면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판화로 구성되어 일독하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의미를 되새겨 읽는다면 무게있는 서적이 되어 실개천 흘러가는 한 방울의 물이라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한결같습니다. 죽이고 싸우고 속이고 다치고 유혹에 빠져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 소식을 한결같다 한 것은 바깥세상의 일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의 일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마음자리가 전과 다를 바 없으니 거기서 나오는 것이 다를 리 없습니다.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찹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일이나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입니다.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그 마음의 일이 뻔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아는 것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감추고 숨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닌 것도 분명합니다. 깊이 보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
| 일단 이 책은 작다. 그런데 그 작은 책을 펴보면 채워져 있는 공간보다 비어있는 공간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 여백들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텅 비어 있어서 꽉 찬 책. 짧은 산문들, 선 굵고 단순한 판화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둥그런 그림들 밑에 적혀있는 짧은 글귀들... 일상 생활 속에서 禪을 찾으려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하다.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차가 막혀 짜증이 날때,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느라 화가 날때 언제고 꺼내어 짧지만 긴 유익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그 둥글둥글한 空처럼 내 마음도 그러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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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말의 어원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人間'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말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였다. 불과 조선시대만 해도 '人間'이란 '人生之間'라는 한자어의 줄임 말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뜻이였다. 이런 의미가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사람'이란 뜻으로 점차 변했다. 우리는 제대로 되먹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되어라'라고 하지 '사람이 되어라'라고 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하지 '인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이라는 의미는 사람 보다는 낮추어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사람보다 못한 느낌의 인간이 보일 수 있는 행동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렇게 글로써 표현하거나, 그림, 소리, 몸짓 등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철수님의 "소리하나"는 '人生之間'에서 '人間'과 '萬物'에 대한 자신의 의사표현이다. 이 의사 표현을 판화와 간단한 선문답으로 옮겨 놓았다.
책의 표지에 보면 풍경을 그려놓고 그 풍경 소리가 아래로 아래 내려가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마치 자신의 작은 목소리가 우리의 가슴으로 소리가 조금씩 퍼져 스며들 듯이 말이다. 표지 판화는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지은이가 표현한 모든 내용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풍경 소리는 소리가 퍼지는 길목에 선 모든 사람에게 퍼져나가지만 소리에 마음을 기울인 사람은 가슴과 머리로 소리를 감상하게 되고, 소리에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느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이처럼 지은이의 판화와 선문답은 느끼는 사람에게는 머리를 채우과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는 의미없는 낙서요 종이일 뿐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풍경 소리처럼 아무런 강요를 하지 않을 것이며 점차로 자신의 목소리를 사그러뜨릴 것임을 표지를 통해 말하고 있다.
책속의 판화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내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상을 접하는 것같다. '人生之間'이 있으면서 '萬物之間'이 있는 듯하다.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세상 또한 자신을 키우는 방법이 되지만, 우리에게 더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은 온갖 만물속에서 느끼는 세상이 아닐까. 한 밤중에 조용히 내리는 눈, 한 그루의 나무, 두그루의 나무, 세 그루의 나무... 그리고 숲.
판화만 보고 있도 세상에 진리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다. '염화시중'이라 했던가.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말로 해야만 알아듣는 이 답답한 세상에 일파 만파의 파도를 일으키는 듯하다. '人生之間'이라는 호수에 던지는 '작은 돌 하나'가 바로 이 '소리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인상깊은구절] (나무가 없는 판화) - 텅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내게 고요합니다. : 사노라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게 되는지 모릅니다. 미운 것이 있고 고운 것이 따라서 있습니다. 도무지 조용해질 줄 모르는 마음을 따라다니면서 야단치기도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지쳐서 구경꾼 노릇이나 합니다. 그래도 주고받는 상처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 없고 미움 없이 세상을 보는 일. 누구는 그런 눈이 무슨 소용인가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아야 환히 보입니다.그렇게 보아야 바르게 보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러기는 해야 합니다. (나무 하나 그려진 판화) - 사납지 않고 고요한 한사람 그렇게 혼사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나무 둘 그려진 그림) - 둘이서 함께서 있는 그자리 홀로 고요한 자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무 셋 그려진 판화) - 셋 다정합니다. 작은 하나가 큰 둘의 자리 다차지하여도 다툼 없습니다. (나무 넷 그려진 판화) - 넷이서 하나 되려면 열심히 서로 넷이여야 합니다. (나무 다섯 그려진 판화) - 다섯, 숲이되고 나면 처음 다섯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숲이 그려진 판화) - 그자리 더불어 숲 : 가득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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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의 판화는 그 단아함으로 유명하다. 그의 판화달력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넋을 잃게 된다.
그런 이철수 판화 모음집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겨우 읽게 됐는데 글쎄.. 이철수 판화는 판화에 나와있는 글자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왠지 그 단아함과 정결함을 해치는 게 아닌가 싶다.
또 이철수가 나이에 비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50년대 태어난 사람이 벌써 선을 노래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과 적어도 30년대 태어난 사람이 그래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꼭 조로해버린 과거의 황지우의 모습을 보는 것같기도 해 씁쓸하기도 했다.
오히려 선문답보다는 그의 생활이 솔직하게 담겨있는 글들이 훨씬 더 와 닿는 느낌이다. 앞으로 이철수의 생활이 담겨있는 글을 더 읽고 싶다. 그의 단아한 판화와 함께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인생이, 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라면 이제 죽기만 남은 셈입니다. 이제는 제 정신이 돌아와서 새둥지 같은 머리채도 감고 따뜻한 밥이나 거르지 않고 자시다 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