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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35년의 시기는 일제시대 또는 일제 강점기라 불리우는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의 한 순간이기도 하다. 따지고보면 경술국치 이전부터 조선에 대한 야욕을 가진 일본이 차근차근 압박을 해왔으니 그 시기는 더욱 길다 하겠다. 이 치욕의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꽤 복잡하다. 그 시기를 분노를 갖고 바라보거나 아예 외면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재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친일 내지는 부역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대한 역사 역시 상반되게 해석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민족적인 역사관과 식민 사관의 대립이 그것이요, 여기에 더하여 정치권에서도 이를 이슈화하여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역사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이 시기를 보다 차분하면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책으로 느껴지게 된다.
일제 식민 지배 때문에 한국의 전통문화가 단절되었다라는 의견은 분명 많은 이들이 수긍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것을 달리 해석하면 오늘날 한국 문화의 상당 부분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형성되었다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자칫하면 일제시대가 우리의 근대화에 기여를 한 것이 아니냐라는 일부 의견과도 통하는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기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제시대의 긍정적인 효과를 주장하는 그릇된 상황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신문과 잡지를 통하여 마주하는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과 때론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더욱 그 시대의 일상을 통하여 우리는 그 시기를 재현하여 바라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중략) 따라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사회상을 복원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그 당시 있었던 항일 독립운동, 친일 반역 행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펼쳐놓고 한발 뒤로 물러나 '숲'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숲'은 탄압과 저항, 욕망과 좌절, 성과 속, 역사의 수레바퀴에 찢긴 삶의 잔해가 뒤섞여 있다. 존재론의 시각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바라본다고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항일 독립운동을 일상의 삶 속에서 서술할 때 오히려 그 의미가 더 살아난다. - 책의 서문 中에서 -
저자의 집필 의도는 이 책의 제목에서 잘 드러난다. 허구가 아닌 현실을 직접 다루면서 그 현실에 대한 허구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현실 그대로를 전달하려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이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910년이 아닌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1945년까지 년도별로 당시의 일상을 의견과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 그대로 서술하고 있어서 우리는 이를 통하여 스스로 이 시기를 바라보는 안목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항일 독립투쟁에 대한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는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동일한 시기에 경성(서울)에서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로 상징되는 그 시대를 그대로 즐기는 젊은이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저자의 말대로 항일 독립투쟁이 나라를 잃은 사람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 숭고한 대의의 실천으로 더욱 큰 의미가 느껴지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당시의 일상을 그대로 재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인하여 이 책은 항일 투쟁 및 가혹한 식민지 상황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당시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친일 인사 및 총독부의 활동 내역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이 시기에 대하여 새롭게 배우게 되는 것이 많아 지면서 이 시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일제시대가 우리의 근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허와 실을 체크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러한 관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하여 그러한 관점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총독부의 정책 중 치안과 방역에 대한 민생 조치는 확실히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특히 너무나 지저분했던 조선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정책은 분명 환영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백백교'와 같은 사이비 종교의 난립이라든지 어린 아이의 뇌수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라는 미신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을 없애기 위한 그들의 정책은 확실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철도와 도로 건설 및 전차와 전기와 같은 신문물의 도입은 대중들에게 분명 천지개벽과 같은 효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효과로 말미암아 경성은 조선과 일본을 통틀어 세련된 도시로 거듭난 것처럼 보여졌다. 일본 내부에서도 수도를 경성으로 옮기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제시대를 그저 수탈과 가혹한 폭압에 의하여 모두 헐벗고 숨죽이면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상상했던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이질감이 느껴지는 일상의 모습이 우리를 당황시킬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일본과 특정 세력에 해당하는 부분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먼저 도시 정비 및 치안은 경성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즉, 일본인들이 머무르는 지역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이지 대부분의 경성 지역에서는 여전히 움막에 거주하면서 비참한 생활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학교 및 극장과 같은 교육, 문화 시설의 혜택 역시 말 그대로 기득권에 한정된 것이었다. 특히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하여 삶에 내몰리면서 진학 자체가 쉽지 않았기에 허울에 지나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그들이 말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요소 역시 그 바탕은 대륙 진출을 위한 기반 확보를 위하여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근대화와는 별개로 해석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1930년 흥남에 건설된 일본의 질소비료 공장의 사례를 보자. 아시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면서 이후 흥남에는 산업단지가 구축되게 된다. 질소 공장만 하더라도 무려 4만 5천명의 노동자가 존재하였으니 그 규모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런데, 이 질소 공장을 건설하기 위하여 강압적인 토지 매매는 물론 그 건설 과정 중에 1만명의 조선인 노동자의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산업단지 건설이 과연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초기 공장에서 생산된 비료 역시 바로 일본으로 수출할 조선의 쌀의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었고, 값이 비쌌기 때문에 소작농들은 비료값도 버거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전쟁 막바지에는 이 질소비료 공장은 전시 물자를 공급하는 곳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그 목적과 수단이 이미 조선의 근대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미두 시장 및 주식 거래소의 등장 역시 근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제의 교묘한 수탈 과정에서 등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자연스럽게 등장한 자본주의 요소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민족자본에 의하여 설립된 다양한 기업이라든지 각종 상회와 화신 백화점의 등장은 확실히 조선 시대와는 구분지어 볼 수 있는 자본주의 요소에 기인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활동 역시 친일 내지는 당시의 체제에 대한 복종이 수반이 되어야 가능했다라는 점은 이를 완벽한 자본주의라 보기에는 한계라 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가혹한 통치와 압박 속에서 조선인들 스스로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터득하면서 발전시켰다라고 보는 해석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러한 논란은 사실 쉽게 수그러들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보는 다양한 관점과 분석을 통하여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단순히 자본의 수치적인 증가라든지 공업화가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깨달은 또 하나의 내용은 바로 약산 김원봉의 존재이다. 후일 월북하였기에 그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그의 활동은 항일 무력투쟁 그 자체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가 조직한 의열단은 물론 훗날 정파를 가리지 않고, 중국과 연대하여 무장 투쟁을 계속하려던 그의 활동은 확실히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봉창과 윤봉길고 함께 김구의 항일 무력 투쟁은 잘 알려진데 반하여 일제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김원봉의 활약은 잘 다뤄지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의 활약상을 이해한다면 그가 왜 월북(해방 이후 그를 조사한 인물이 바로 일제 치하에서 활약한 고등계 조선인 출신 형사였다.)을 하였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가려져 있던 김일성의 항일 유격 활동 역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남북 대립으로 인하여 철저히 부정되었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가 이끈 동북항일연군이 홍치허 전투를 비롯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러한 부분마저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이 시기에 대하여 갑갑함이 느껴진다. 더구나 그러한 시기의 잔재와 부역자들이 여전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이 시기를 완전히 우리의 역사에서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친일파 내지는 부역자들의 활동, 일제의 가혹한 행위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는 모습들 역시 그 시대로부터 비롯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시기를 외면함으로써 줄긋기를 단행하였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러한 줄긋기는 애초부터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독립과 항일 투쟁의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된다는 점은 커다란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외면하거나 친일로 방향을 바꾸는 사례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나라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더욱 돋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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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 어제는 삼일절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각종 대체가 독립 운동과 일제강점기의 처절했던 역사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그렇다. 우리에겐 절대 잊을 수 없고, 아니 절대 잊어선 안 되는 고통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우리의 분노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좌절 속에는 맥락이 없었다. '그래서 그러하다'는 기본 공식이 없이 그저 밉고, 싫고, 증오했고, 피하려 했다.
이태영 작가는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를 통해 역사의 연속성과 동시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리는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그 시간을, 여전히 그들과 같은 모습의 우리를 보게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진다)처럼 잊게되면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없으며, 잊게되면 그때의 그들도 나와 같았으며 나 또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다름 아닌 비극적인 역사의 책임을 묻는 부분이었다.
을사조약, 한일병합, 가장 최근의 IMF사태까지. 우리의 분노의 대상은 단편적이고, 정작 책임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과한 관용을 보이기도 하며, 때론 힘듦 속에서 그저 묻혀가기도 한다.
아무도 짚어주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언론도 그저 역사의 한 부분을 드러내 감정을 조장하고자 하는 일에만 나설 뿐이었다. 하지만 작가 이태영은 달랐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객관화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엄격해야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수많은 에피소드에서 이 모든 역사가 민중에겐 그저 한낱 삶의 한 사건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많다.
그 중 하나를 옮기고 후기를 마치려 한다.
소난지도전투가 끝난 뒤 섬에 사는 주민들은 의병들의 시신을 해안가에 암매장했다. 일본 경창의 감시로 무덤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몇몇 주민이 암매장된 유골을 몰래 파 갔다. 사람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바르면 피부병에 좋다는 속석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구국 이념보다 자기 다리에 난 두드러기였다. (p.50)
*이 리뷰는 예스 24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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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우리를 항일과 친일, 그리고 일상이 어우러진 역사 현장 속으로 안내한다. 우리는 일제시대가 오직 항일의 시대도 아니고 친일의 시대도 아니고 그저 일상만이 진행된 시대는 더 더욱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주목해 그 실상들을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 제시한 책은 없었다.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그런 혼종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지난 해 나온 한 문헌학자의 책에서 주목할 만한 개념이 삼문화였다. 삼문화란 풍납토성 일대처럼 백제시대의 성, 조선에서 근대에 이르는 서민 동네, 현대의 고층 아파트가 함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삼문화는 서로 다른 시간적 지층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세계나 행동은 어떤가. 지금 우리는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의 후예)들과 민주 세력, 그리고 투쟁, 이념 등과 거리를 둔 채 일상을 소시민적으로 영위하는 사람들이 두루 함께 하는 시대를 산다. 페이스북에서도 그런 현상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삼문화란 말을 했지만 이성, 욕망, 충동을 같은 차원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서 이성은 인간을 초월적인 것으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라면 충동은 동물적인 것이고 욕망은 인간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옛날 구체적으로는 일제시대는 어땠을까? 사람들은 흔히 전쟁 속에서도 일상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항일 의병운동과 대규모 운동회가 함께 있었던 시기(1907년)와 청산리전투와 수학여행이 함께 있었던 시기(1920년)를 언급한다. 이런 혼재(混在)는 오늘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탄압과 저항, 욕망과 좌절, 성과 속, 역사의 수레바퀴에 찢긴 삶의 잔해가 뒤섞인 일제 식민지 시대를 한 발 뒤로 물러나 숲으로(전체상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2009년 구상한 이런 방법론이 구체적 결과로 나온 것이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란 책이다. 존재론적 시각(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이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뜻이다. 또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지 말고 식민지 조선에 자본주의적 변화가 있었음에 주목하자는 것도 그렇다.
책은 전체 5부로 나뉘었다. 1부: 1900년대, 2부; 1910년대, 3부; 1920년대, 4부; 1930년대, 5부; 1940년대 등이다. 시대 구분은 편의적인 것이다. 10년 단위의 구분은 인위적일 뿐 자연적 질서와 무관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읽으면 된다. 물론 더 큰 의미가 있는 시기가 있다. 가령 국권을 뺏긴 해(1910년)가 그렇고 해방을 맞은 해(1945년)가 그렇다.
다만 그 해 그 시기에도 일상은 존재했고 반동 역시 존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것이 헌신적인 움직임이라면 일본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친일에 매진하다가 해방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션택은 반동(反動)이다.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는 주제별이 아닌 시대별로 분류한 수많은 사건을 배치시켰다. 백과사전식이다. 참고서처럼 사안이 발생할 때 펴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성찰거리를 얻을 수 있는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1909년 오랜 세월 방치되던 창경궁이 창경원이라는 이름의 동물원으로 문을 연 사건이다.
창경원은 19세기 말 일본 도쿄에 우에노 동물원이 조성된 이래 아시아 몇몇 나라에 이어 조선에서도 조성된 첫 사례이다.(61 페이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것은 조선 황실의 신성한 이미지를 허물어뜨려 한일합병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일제의 수작이었다. 저자는 일제의 조선 궁궐 훼손(건물 자체를 훼손한 것은 물론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 일반인들의 나들이 장소가 된 것)은 분노할 일이지만 창경원 개장은 신분 차별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한 풍경이라 말한다.
일제의 창경원 설립은 일제의 도서관 정책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일제시대에 도서관은 일제의 통치 도구로 이용되었다. 조선총독부가 도서관을 통치 도구로 생각한 것은 10년간의 무단통치를 실패로 인정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대만, 만주, 중국 등에도 같은 차원의 도서관을 세웠다.
조선총독부는 사상 통제를 위해 치안유지법을 시행(204 페이지)했는가 하면 우량아 선발대회도 개최했다.(211 페이지) 조선의 전통 육아법을 부정하고 근대 육아법을 보급한다는 취지이자 조선의 아이들을 우량아로 길러 황군을 만들겠다는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이었다. 조선총독부는 또한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도 승인했다.(292 페이지) 1933년의 일이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일제의 식민 정책은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아니 일상까지를 자신들의 지배 체제에 포함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일상이 식민과의 연관성에 따라 전개된 것은 아니다. 나혜석의 외침이 대표적이다. 나혜석은 1927년 남성들을 향해 ‘자신들은 정조(貞操)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겐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한다..(나는) 남펀의 아내이기 전에,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사람'(225 페이지)이라는 선언을 했다.
이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당당한 페미니스트 선언이다. 저자가 다룬 1900년대에서 1940년대는 대부분 의미와 파장이 큰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였다. 모든 사건들에 특색 있는 이름을 부여한 것도 ‘다큐멘터리 일제시대’의 특징 중 하나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민족 미술관을 설립한 것에는 ‘일본인이 발견한 조선의 미’라는 제목을 달았고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문을 연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에 대해서는 “여기는 경성방송국이올시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구상에서 출간까지 10년이 걸려 빛을 본 ’다큐멘터리 일제시대‘를 보며 저자의 노고에 감사를 느낀다. 두고 두고 참고할 책으로 추천한다.
* 리뷰어클럽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