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이책을 처음 읽었을때, 오컬티즘에 대해 흥미만 가졌을뿐, 오컬티즘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는 이책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끝까지는 읽었지만 머리속에 남는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해 공부하고 오컬트의 전반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 받아 드린 후 이 책을 보았을때... 이 책은 저에게 생명의 나무의 지혜와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국내 카발리즘 비기너에게는 필수인 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카발라 이 책은 어느정도 오컬트에 대한 지식이 있으신분만 보시길 바랍니다. 오컬트에 대해 무지하신분은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를 이해 하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번역하신 조하선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
처음에 이 책을 샀을 때, 이 책을 바쁜 일이 모두 끝나고 나면 읽겠다고 다짐하고 책을 책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리고 정말 바쁜 일이 끝난 후, 이 책을 다시 꺼내어 들었지만, 이 역시 다소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어 중도에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터 벤야민의 자극, 그의 친구 숄렘의 자극 그리고 부버나 레비나스의 자극,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자극을 끝내 물리치지 못하고 이 책을 제대로 읽기로 작정했고, 다 읽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자극과는 별도로 책을 읽는 중에 계속 “카발라를 다시 보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지적 전리품을 늘리기 위한 것에 불과한 걸까?”라는 회의가 드는 거였다. “우주를 신화적으로 재건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 내면에 있는 근원적인 합일을 재발견, 재확립하여 전체적인 인간, 새로운 아담이 되어야만 한다.”는 식의 구절은 카발라에 전체주의적인 혐의를 주려는 나의 거부감과 경향성을 추동하기도 했다. 게다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에 대한 유희 같이 보였던 이 지식이 하나의 빛으로 빛나기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이후였던 것 같다. ‘카발라 신비주의가 단순히 우주의 외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면의 우주를 통찰함으로써 각각의 소우주들의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카발라 신비주의의 근본이라는 것. 결국 이 소우주들의 무한한 집합체가 바로 대우주이고, 이 소우주들의 지속적인 반영을 통해 대우주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것이 곧 엔-소프(무한자:En-sof, Ain-sof, Ayin-sopf)를 향한 상승과정(anabasis)이라는 사실.’ 결국 카발라는 전체주의를 역설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지적 유희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카발라는 나에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통찰하는 전 과정이 이성과 의식을 넘어서고, 이를 통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현시키는 것이 곧 무한이 현현되는 작업임을 깨우쳐 주었다. 뭐 새삼스러운 결론도 아니지만, 이러한 결론이 벤야민이나 레비나스 등의 사상가들과 체계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이것이 타자를 향한 실천적인 윤리학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철학적 비평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카발라 사상의 현대성을 넘어 필자 개인에게는 현대와 타자를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인간의 영혼의 작용이 신성의 작용의 반영”이라는 점은 필자로 하여금 기존의 레비나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를 재설정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신성이 반영된 예술작품의 비의(秘意)를 찾아내도록 자극하였다. 이는 결국 내 자신을 통찰하는 것이며, 나를 진정하게 현현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타자를 바라보고 그의 현현을 돕는 것이며, 동시에 대우주의 무한한 현현을 돕는 것이라는 사실로 이어진다. 결국 개인의 신비적 실천이 무한의 현현으로 이어지는 과정, 작은 움직임 하나가 엔-소프로 상승하는 여정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무한한 신성에 동참하는 것이며, 구원으로 한 걸음 내 딛는 것이다. 엔-소프가 무한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원의 걸음에 특별한 형식과 체계 그리고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통찰하고 자신의 본성을 밝히고, 나아가 타자의 신성을 통찰하고 그의 신성을 밝히는 길이 무한자로 나아가는 여정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신성이 우리의 파편화된 삶 곳곳에 스며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 어쩌면 우리 삶 곳곳에는 이처럼 조각난 성스러운 파편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결국 카발라는 외부에 조각난 파편들, 우리 내부에 조각난 파편들을 찾아 정교하게 다듬고, 이를 의미화시키는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면의 파편을 찾아내고 밝히는 것이 자기 수련과 수양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이것이 정체성을 부단히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하다면, 타자의 내면에 숨은 성스러운 파편에 귀기울이고 환대하는 것이 윤리적 관계로 접어드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숨은 성스러운 파편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이 곧 미학-해석학-비평적 관계로 접어드는 것이 될 것이다. 아마 이 때문에 카발라는 더욱 조각난 상태로, 그래서 하나의 체계로 해석하기 어려운 파편 그대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일 게다. |
|
조금이라도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카발라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못들어본 사람들도 아마 일본만화등에 나오는 10개의 원을 품고있는 생명의 나무 그림은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크게 히트했던 에반겔리온이라는 일본만화의 주제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의 시작부분에 배경으로 나오는 것도 세피로트의 나무고, 순정만화풍의 그림으로 크게 히트한 만화 클램프의 레이아스에도 세피로트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동양에는 분명히 신비주의적인 것이 많이 있다. 가까이 중국에는 도교가 인도에는 탄트리즘이 있다. 이 책은 서양 신비주의의 중심인 유대교의 카발라에 대하여 다룬 카발라 개론서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책을 볼 수 있어 우선 대단히 기쁘다. 오컬트나 신비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다. 몇년전에 번역된 숨겨진 성서가 어려웠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카발라의 개론적 이해를 더하고 본다면 색다르게 성서가 보일 것이다.
특히 이 책의 구성은 대단히 읽기에 편하다. 양 사이드를 공백으로 구성하여 삽화와 주석, 소제목등을 달아놓아 책의 이해를 십분돕는다. 내용에 있어서도 단지 서양의 카발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야의 탄트라와 요가와의 많은 비교, 예를 들면 세피로트와 차크라의 비교나 천지창조에 있어서 도교의 태극등과 비교하는 것은 저자가 동양지식에 있어서도 아주 박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분명 재미없는 책이다. 하지만, 오컬트 매니아에게는 소중한 보물같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네자-승리 또는 인내 일곱번째 세피라, 네자는 남성적, 활동적 원리로 자비의 세피라를 보조한다. 이 세피라는 상징적으로 태양과 달이 만들어진 창조의 제4일을 나타낸다. 호드-위엄, 또는 영광 여덟번째 세피라인 호드는 위엄 또는 영광으로, 그 성질은 여성적, 수동적이다. 이것은 다섯번째 세피라인 심판 또는 힘을 보조한다. 호드는 상징적으로 바다와 하늘의 생물들이 만들어진 창조의 제5일을 나타낸다. 이소드-기초 아홉번째 세피라는 이소드, 기초이며 남녀의 음부를 상징한다. 이소드는 세피로트의 마지막 트리아드를 완성시킨다. |
| 국내에 오컬트. 라는 취미에 발을 들여놓은 이라면 거의 입문서라 할 정도로 유명하고 많이 인용되는 책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구입하려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구하는데 있어 불가사의한(또는 뭔가 이해하기 힘든) 경험을 하고 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함에 어느정도 경의 비슷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었다. 이 책은 카발라 라는 하나의 주제를 어느정도 파악하는데 있어 읽는 이에게 하나의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어떻게 보면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소개서이며,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카발라라는 하나의 종교적 주제에 대한 개론일 수 있다. 취미건 종교적 연구건 이 책은 번역서들중에 상당히 알려졌으며 내용도 풍부한 책으로 추천한다. |
|
군대시절 여자친구에게 부탁해서 천부경에 관련된 책을 보내달라고 했었다. 사주를 공부하면서 폭넓은 지식을 쌓고 싶은 생각에 이것 저것 가능한 대로 독서를 하던 시절이였다. 그래서 보내준 책이 "베일벗은 천부경"이였다. 천부경을 기대하며 수많은 한자의 홍수를 준비하며 옥편을 들고 달려든 내게 그 책은 생소한 단어 "카발라"를 천부경과 연과 시켜 설명하는 책이였다. 당황했었고 상당히 긴 내용의 책을 이해하지 못할 말들과 씨름하며 힘겹게 읽게 되었고 제대하면 꼭 공부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책의 저자가 조하선님이다. 민족의 비전과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으신 분으로 알고 있었다.베일벗은 천부경의 저자이시고 이책의 역자이시구. 그리고 잊혀던던 카발라에 대해 타로를 공부하는 도중에 카발라에 대한 앎의 갈증을 느꼈을때 에전에 읽었던 베일벗은 천부경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책도 그러한 이유로 구입하게 되었다.
타로의 메이져 카드를 해석하는데는 21장의 숫자가 매겨진 카드와 Fool카드를 합쳐서 22장의 카드를 이용한다. 하지만 마이너카드에는 10이라는 숫자에 대한 궁굼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많았다. 카발라에 대한 관심도 그러한 이유로 갖게 된것이다. 책을 처음 펼져보고 책을 덮은 후에 남은것은 더욱 목마른 갈증이였다. 알려고 다가설수록 나의 무지함에 짖눌리는 심정이란. 그래도 다행인것은 이 책을 통해 삼가하는 마음을 배운것이다. 한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10번이고 20번이고 관력서적을 모두 구해서라도 꼭 알아야 겠다는 의지를 살려주는 책이다.타로를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필독서이지만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보셔야 할 책이다. 손대는 순간 정신적인 공황과 지작인 피폐힘에 시달리게 될터이니....하지만 타로를 충실한 조언자로 얻고 싶다면 꼭 보시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아인 소프는 결토 인간이 경험의 일부분이 아니다. 다라서 이성적 존재로서 우리는 그것의 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도할 수 조차 없다. 하물려 그의 비존재에 대한 것을 말 할 것도 없음이다. 그것은 이해를 초월한 어떤 것이기 때문에 또한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어떤 동화에서 모든 마법사들이 노리는 귀중한 마법서를 얻게 된 평범한 사람의 얘기를 본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만든 가장 힘세고 강한 마법과 세상의 비밀이 담긴 책. 그 책을 우연히 찾아내긴 했지만 마법을 믿지도 않고 기초도 관심도 없는 그에게 마법책은 아무 쓸모없는 낡은 책에 불과했었다. 지금 내가 그 마법책을 손에 쥔 사람과 같은 심정이다.
'카발라' 컬트 경향의 만화나 영화, 신비주의적 관점의 책에서 한번씩 등장하는 이름이긴 했지만 그것이 뭔지는 몰랐다. 궁금함을 가슴에 담고 살았기 때문에 이 제목이 눈에 띄자마자 망설임없이 책을 잡긴 했는데...(그런 면에서 우연히 책을 얻은 그 동화의 사람과는 다르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선 똑같은 것 같다. 책 시작부터 등장하는 이상한 원과 도형들, 상형문자 같은 그림과 글씨들. 난해하다. 순전히 지식적인 호기심으로 카발라를 알아보려고 한 내게 이 책은 만족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끊임없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카발라라는 것의 설명이 아니라 그 신비에 접근하는 방법인듯 하다. 한 많이 유행했던 수행 방법을 알려주는 서적의 일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확실히 무게가 있고 사상과 철학도 있는듯하다. 하지만... 현재 내 공력으론 장님 코끼리 만지기. 풀지 못하는 암호문을 들고 있는 느낌. 카발라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대의 신비주의 철학(?)에 발끌을 슬쩍 담궈봤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듯. 이런 쪽에 조예가 깊거나 아니면 정말 고크다 통하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을 책이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정말 많다. 슬퍼... --;;;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흔히 서양철학 하면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베이컨의 경험주의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저 그러한 것들이 그네들 사상의 전부인 줄로만 안다. 그러나 서양의 정신세계 이면에는 고도로 발달된 형이상학 체계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카발라'이다.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정신의 궁극에 도달하는 현상(깨달음)이 있으며 그것을 도와주는 형이상항 체계가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