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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권역에서 캣콜링 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길거리 성희롱인 캣콜링은 처벌 대상이 맞지만, 신체 접촉이 없으면 처벌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었다. 이제는 입만 털어도 빨간 줄 긋겠다는 거다. 진작 그랬어야지! 내 나이 또래 중엔 유럽 여행을 가고 싶어하거나 갔다 온 친구들이 꽤 있다. 그들은 항상 경험담으로 '캣콜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무용담처럼 얘기했다는 것이 아니다. '역시나 그 명성이 어딜가겠나'라는 식의 이야기.) 유투브나 인터넷 기사는 '캣콜링 대처법'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왜 우리는 '대처'해야 하는가? 주로 캣콜링 현장의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만약 여성이 대처를 하지 못하고 복수를 하게 된다면? 그 여성은 성희롱 피해자를 넘어서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은 남성의 신체는 물리적인 힘에 있어서 여성보다 우위에 있거든. 그래서 우리를 누가 지켜주나요? 국가는 국민에게 말했다. 범죄의 수사와 처벌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너희는 사적 보복처벌을 하지 말라고! 근데 왜 가만히 있냐고! 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캣콜링 대처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정말 쌔애드 스토리다... 여성들의 비통한 현실을 담은 시의 묶음에 '캣콜링'이라 명명한 이소호 시인! 아주 고심고심해서 고르셨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시집 안에는 '캣콜링'이라는 제목의 시가 한 편 있다. 그 시를 읽다 보면 어느 유럽의 한 골목길에서 상념에 빠진 채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주변에는 성적으로 타락한 남성들이 내게 한 마디씩 던진다. 그 소음은 아주 시끄럽고 공허하다. 이밖에도 대한민국 2, 30대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상념들이 이 시집에 녹아있다. 그 상념은 모두 폭력에 반발하고 있다. 엄마와 자매, 과거의 연인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여성의 권리를 외쳤던 선배 예술인들까지 모두 소재로 다뤘다. <경진이네-거미집>처럼 폭력을 폭력으로 이야기하는 시들도 있었고, <지극한 효심의 노래>처럼 위트가 넘치면서도 의미를 꽁꽁 숨기지 않은 시들도 수록돼있다. 폭력에 마음을 다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뿐이다. 우리는 연대한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빈다.너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우리는 힘이 없어서 직접 지옥으로 끌고 갈 힘이 없다. 그냥 쥐 죽은 듯 구석에서 눈물 흘리다가 조용히 저주할 뿐이다. 우릴 슬프게 한 너, 지옥에 떨어지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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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비가 오는군요. 이런 날엔 시 한편씩 보는 것도 좋겠지요. [아무거나 읽어보고 싶은 날의 시]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또 준비했습니다. ㅋㅋ. 나의 반응기준은 댓글! 그리고 많이 본 글에 턱걸리라도 올려져 있으냐 없느냐! ㅋㅋㅋ, 이번엔 어떨지 조금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출발합니다.
나는 나 같은 너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파 놓은 구멍마다 들어가 보는 고양이처럼 너라는 나에 대해 말한다 모자란 2월의 날들을 걸어 놓은 옷걸이 푹 삶은 하얀 양말을 신고 건너간 수화기 너머에는 내가 버려 놓은 말들이 떨고 있다 먼지 위에 쌓아 올린 일가처럼 문턱을 넘지 못한 발가락처럼 나는 나보다 멀리 가 떨고 있다 -이소호 <혜화> 일부
나 같은 너. 그러니까 너는 나다, 라는 말인가. 나 같은 너가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한참은 모자라 보이는 너를 보면서 나는 떨며 떨며 떨고 있을까. 나 같은 너는 어떤 모습일까. 나의 모습이 나보다 멀리 가 있는 낯선 나에게서 느껴지는 당혹감. 다시 나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부들부들. 갑자기 들이다친 빗소리처럼 당혹스러운 나 같은 너. 나에 대해 말하면서 너를 읊고 있다. 나 같은 너에게 아름답다고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날이 오면은 좋으련만.
- by 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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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면 문득 그리운 을 읽다가 홍상수 남의 영혼이 멤돌고 있음을 느꼈다 혼쭐을 내주고 싶네....
* 읽으면서 계속 놀랐고 놀라웠고 시인이 궁금해 에세이집도 구매했다
* 아버지는 제기 위에 온 가족의 손바닥을 두고 못을 쿵쿵 박았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단다 가족이니까 아빠는 마지막으로 못 머리를 자르고 영원히 뽑지 못하게 두었다 이제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흰쌀밥을 찬물에 말아 먹었다 한지에 우리 이름을 적고, 서걱서걱 과도로 갈라 먹고 우리는 글이 되었다 꾸깃한 종이로 서로를 감싸 안고 까맣게 까맣게 종이를 채웠다 우리는 문장에 머물렀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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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인 시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현대 시에 익숙하지 않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런 형식의 글들도 시라고 부르는 구나, 싶었고 그 자체로 시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제목으로 쓰인 캣콜링은 길거리에서 당하는 광범위적인 성희롱인데, 주로 인종차별로 수렴된다. 여성-남성의 권력 구조 뿐만 아니라 백인 사회에서 아시아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갗으로 느낄 수 있어서 이 단어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모욕적이다. 어휘가 필요할 정도로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니... 시를 읽으면서 가장 잘 느껴지는 정서는 고통이었다. 아주 날 것의,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시 안에서 폭력이 빚어지는데 가해-피해 구조가 꼭 남성-여성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독특했다. 작품 해설(장은정 문학 평론가) 중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소호의 시에서 여성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할 때, 그것은 언제나 가족 제도 안에서의 사건이라는 뚜렷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상상했을 때 거의 자동화된 상태나 다름없이 남성에 의한 여성 강간과 폭행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일 이 시가 화자의 성별을 남성으로 설정했다면 이만큼의 낯섦을 야기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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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할까? 이 당혹스러운 감정을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너무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이 먼저 강하게 온다. 누군가의 ‘실험적인 시들이 많아서 퍽 인상적이다.’라는 평에 머릴 끄덕이는 건 영 아닌데, 라는 심정이다. 아직은 마음부터 익숙하지 않아서다. 시인의 시에 익숙하지 않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런 형식의 글도 시라고 부르는구나,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제목으로 쓰인 ‘캣콜링’은 길거리에서 당하는 광범위적인 성희롱인데, 주로 인종차별로 수렴된단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 구조뿐 아니라 백인 사회에서 아시아인을 어떻게 바라 보는지 살갗으로 느낄 수 있어서 이 단어 자체의 존재가 모욕적이라니. 매우 슬픈 사실 하나를 안 것 같아 씁쓰레하다. 그래서 그런가, 시를 읽으며 가장 잘 느껴지는 정서는 고통이다. 아니 성희롱인 ‘캣콜링’이 던지는 이미지, 그 상투적 전형성인가? 이 상투적 전형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한아의 2018년 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심사평을 읽음으로써 더욱 극명해졌다. ‘나의 유일한 망설임은 오직 이 시집이 너무나 시의적절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 시집의 문제의식과 목소리의 주체성은 몇 년간 진행되어 오고 있는 젠더 이슈가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여전히 보편성을 얻었을 것이다.’라는.
내가 태어났는데 어쩌다 너도 태어났다. 하나에서 둘. 우리는 비좁은 유모차에 구겨 앉는다.
우리는 같은 교복을, 남자를, 방을 쓴다.
언니, 의사 선생님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그러니까 언니, 나 이제 너라고 부를래. 사랑하니까 너라고 부를래. 사실 너 같은 건 언니도 아니지. 동생은 식칼로 사과를 깎으면서 말한다. 마지막 사과니까 남기면 죽어. (이하 중략) - ‘동거’에서
화자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너’라고 부르겠노라 선언하며, 이 자매들은 어째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있을까? 시를 통해서 금방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들이 있는 곳이 너무 비좁다는 것. 비좁다는 것을 반복해서 한탄하는 것. 첫 시로 등장한 이 시를 읽으며 누구라도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엄마는 다리를 혐오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우리를
언제나 비좁은 우리의 요람 밤마다 침대에는 온 거족의 다리가 뒤엉켰다 이 이는 사 이 사 팔 시팔 그날, 엄마가 낳은 1989개의 동생
햇빛이 사라지면 거미는 줄을 타고 올라간다 (이하 중략) 한 호흡에 한 번씩 조여지는 똥구멍, 수축하는 질 (이하 중략) - ‘경진이네-거미집’에서
시를 읽을수록 낯설고 충격적이다. 물론 남성에 의한 여성 강간과 폭행을 가장 먼저 떠오르도록, 이 시 화자의 성별을 남성으로 설정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런 장치는 아님에도 무언가 폭력성을 자극한다. 이렇게 경진이는 일기를 쓰듯 자신을 아프게 하는, 낯선 대상들에 대해 묘사 하고 그려나간다. 폭력이 주는 압도적인 고통이 이토록 생생하게 느껴진다면, 나는, 아니 그 독자는 어쩌면 시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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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sns 에서 알게된 책인데 책소개에서 남김없이 드러내고,거침없이 고발하며 완성된 사적인 주체의탄생이라는 문구가 강렬했다.고발과 폭로를 통한 진실을 응축된 시집의 한축의 모음이라니 평소에 평온하고 잔잔한 시만 읽은 나에게는 조금은 신선하고 폭력적으로(공격적으로) 다가왔다 한장한장 느끼며 아 내가 읽던 시랑은 다른결이구나 하고 알게되었다. 평소에 먹는 반찬과는 다른반찬을 먹는느낌 시가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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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강렬하게 다가온 시집의 페이지를 본적이 있는데,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에 수록된 시라고 해서 그 시만으로 구입하게 된 시집입니다. 시집 전반적으로 강렬하고 충격적인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동생과 싸우다가, 머리를 얻어마자 어지러운 상태로(물체가 겹쳐보이는) 시를 쓴게 있는데, 그 상황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인쇄를 흔들리게 한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 사람도 어지럽게 만드는데, 이 외에도 실험적이고 다양한 형식을 시도한 시들이 많습니다. 화살표 모양을 한 시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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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이 말을 제대로 설명하는 시집.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폭력들을 전세계 여자들이 겪고 있다는 게 참 착잡하고 허망한 기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면면은 모두 다른데, 다르면서도 또 징그러울 만큼 같아서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비명으로 쓰인 시, 비명으로 멈추지 않는 시. 나는 이소호를 오래오래 읽고 싶다. 환하게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이 너무 좋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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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작가의 캣콜링 리뷰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건데, 내가 이 시집을 구매하게 된 계기는 그 특유의 편집 때문이었다. 집 모양의 시가 나를 가장 사로잡았었는데 정작 시집을 읽고나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 서로가 서로를'이라는 시였다.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의 시들이 모두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인의 삶을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감정이 휩쓸릴 위험도 있는 것 같지만 여러모로 강한 시집의 느낌이 새로웠고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