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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렇다. 화자인 대학원생 오하시 후미오는 헌 책방에 갔다가 거기 있는 H전집 앞에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책방 주인에게 가격을 지불하고야만다.
나는 내 의지에 반하는 일을 억지로 해야하는 답답한 마음으로 계산대 쪽을 보았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시작 되어야만 하는데, 이 문장에 유독 눈길이 머무는 것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서다. 순응하며 사는 삶에는 이야기가 생성되지 않는다. 이제 후미오를 시작으로 세 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의 전 소유자 사노와 그의 인장을 알아 본 후미오의 약혼녀 세쓰코, 그리고 후미오의 고백이 이 책의 근간이다.
사노는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 공산당 세포 조직원으로 활동한다. 1950년 초반, 일본 공산당은 무력 혁명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며 그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사노는 세포조직의 캡틴으로 메이데이 시위에 참여하지만 경찰 진압대 앞에서 스크럼을 빠져나와 도망친다. 그리고 그의 남은 생애동안 이 날의 행동에 자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탈당 후 평생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기를 결심했지만 그의 도드라지는 능력은 감춰지지 않았다. 그는 세속의 성공을 이룬 부사장의 어두운 표정을 보며 사는 일에 지겨움을 느낀다.
나는 입으로는 용감하게 선동했으면서 마지막 순간에 모두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화자인 후미오는 사노의 유언을 읽으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사노가 선택의 여지 없는 삶 때문에 괴로워했다면 후미오는 난잡한 여성 편력으로 자신과 세상과의 괴리를 메꿔갔다. 유코의 자살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안 뒤 자기 혐오에 빠진 후미오는 고향 바닷가를 찾는다.
추억은 가까운 추억이든 먼 추억이든 모두 우리에게서 떠나가고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늙어가다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후미오가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덮고 평범한 삶 안으로 들어온 인물이라면 그의 약혼녀인 세쓰코는 사노의 유언을 읽은 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한 인물이다. 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사람에게 과거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걸 부정한다는 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란 현재의 자신을 모두 부정하는 거라 생각해.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어. 그러지 않으면 미래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세쓰코는 사노처럼 시대의 '혁명'을 꿈꾸었지만 '혁명'은 꿈이었고, 존경했던 혁명 전사는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을 맞이했다. 그리고 사노와 비슷하게 사는 일에 체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먼 친척인 후미오와의 결혼을 받아들였다. 그리나 사노의 유언과 오하시의 고백을 통해 자신이 시간에 떠밀려가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다른 사람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의지만이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두 사람의 생활에 어떤 공통된 의미가 존재하려면 마주보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의 생활에서 무엇인가를 이미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겠지. 그리고 또 만약에 두 사람이 각자의 생활에서 이미 각각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 두사람이 공유하는것에서 생성될 무엇은 처음에 두 사람이 각기 갖고 있던 무엇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것일 테지. 그러나 나는 당신이 갖고 있는 것과 결합시킬 무엇인가를 갖고 있었을까?
세 사람의 고백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좋을 지를 생각해 본 소설이었다. 사노처럼 시간을 역행할 수도 있고, 후미오처럼 적당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다. 또 세쓰코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이끌어갈 수도 있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 시간은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시간의 편에 서서 본다면 인간의 삶이야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찰나에 머물렀다 떠나는 사소함 그 자체일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고 자신을 속이면서도 어떤 가책도 없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후미오처럼 어떤 기묘함에 이끌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무엇을 만날 수 있다면 휩쓸려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현재의 나를 돌아볼수 있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런 의미로 내게 이 책은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무엇'이 되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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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철 평론가 인생의 책이라고 한다 그렇군 신형철 평론가는 이 책이 인생의 책이로군 (변태처럼 내내 생각하며 읽고 말았다
* 나는 어디에서도 인생의 책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지 어떤 책이든 이 책이 내 인생의 책이요 하고 소개하지 않을테다 생각했다 어쩐지 들키는 기분이고 이상한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 같은 애들이 꼭 있다니까 그래서 나는 비밀이 좋아
* 1960년대 소설이라고? 놀랐다
* 그것은 나 자신도 생각지 못한 감정의 태풍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내가 세쓰코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세쓰코가 내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딱딱한 막대기처럼 내 가슴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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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인생의 소설이 있는 거겠지요. 저도 얼른 제 인생의 소설을 만나야 할텐데요.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지라 초반에는 집중이 조금 덜 됐습니다. 중간부터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 느낌으로 술술 읽힙니다. * 어쩐지 겨울의 계절감이 드는 글이었다. 그 점이 좋았다. * 겉으로 보이는 생활에는 아무런 변호도 없지만 모든 것이 귀찮았다. 굳이 그것을 말로 표현해보자면, 결국 죽을 때가 돼서 생각나는 일이 과거에 저지른 배신이라면 지금 생활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논리로도 따질 수 없는, 사는 것에 대한 귀찮음이었다. * 귀찮음.... 그것에 대해서라면 내가 또 잘 아는 분이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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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이겨내기보단 버텨가는 것이다. 하루키의 걸작인 ‘상실의 시대’보다 일찍 온 ‘그래도’ 살아가야 ‘우리의 나날’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젊은 날의 의미는 모두 편지 속에 들어있다. 그것이 비록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해도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별과 아픔이 더 많은 삶일지라도, 어떤 기쁨으로 서로를 마주보려해야 한다. |
|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인생의 소설이라 극찬한 소개문장에 끌려 구매했다. 시대는 1960년대, 일본 젊은이들의 고뇌가 담긴 이야기. 그런데 인물들의 생각의 흐름과 대화가 쉽게 이해되거나 공감되진 않는다. 공허함과 모순, 마음 속 깊은 외로움... 인물들의 그런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후 일본사회의 역사적 사실과 특징을 알고 다시 읽어봐야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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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솔아빠서재 어떤책일까? 죽는 순간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일본 전후 학생운동 세대의 질문이 사십년의 세월을 건너 스무살의 내게 도착했고 삶에 대해 질문하는 방법과 언어를 건네 주었습니다. 이 도구들을 나는 아직도 사용합니다.물론 오래된 소설이지요. 낡았다는 것은 아닙니다.낡았다는것은 극복됐다는것입니다. 사실 이책을 읽는 계기는 역시 신형철 작가님의 추천이 주요 하였지만 왜 작가님이 인생 소설이다. 라는 멘트를 적었는지 100프로는 아니지만 왜 그런 추천을 하신건지 조금은 알거 같습니다. 책속으로 이 이야기의 시작은 늦가을 어느날, 뭔지 모를 힘에 이끌려 금방이라도 주저 앉을거 같은 헌책방 책꽃이에서 H전집의 한권을 빼든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H전집을 빼든 하나의 행위가 마침내 우리사이의 위태로움을 상기 시켰고, 그로인해 결국엔 약혼자 세쓰코와 헤어지기를 ,세쓰코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바랐던건 아닐까요? 이소설에 나오는 사노,소네.죽은 유코와 다코,구니에다등 모두 나름대로의 고통을 갖고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바람,혹은 원한,시끄럽게 떠들어댄 아우성 정말 그시대를 산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 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1950년대의 일본의 젊은이들의 고민을 그리고있지만 2019년도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그 무언가 를 주는 소설 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주인공을 떠나며 남긴 약혼자 세스코의 편지 부분은 남자들이 정말 두눈 부릅뜨고 봐야하는 부분이 아닐까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사랑 하는 사람이 원 하는 게 무엇이며 왜 그녀가 그런 행동을 했으며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수 있는 소중한 편지 인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후 다시 한번 꺼내들거 같은 소설 입니다. 즐거웠던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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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산 게 조금 후회되는 책. 분량도 얇고 표지가 예뻐서 서재에 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과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두 국가간의 고유성은 물론 존재하지만 거쳐간 시대적 흐름이 있다. 세계 2차대전의 가해자와 피해자이면서 앞뒤로 같은 궤도를 따라가는 이런 현상이 낯설면서도 그럼에도 국내에서 일본문학이 상당한 인기를 차지하는 이유도 일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 일본문학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만) 낡은 시대와 그에 맞는 사고방식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간이 있다. 한 인간의 죽음을 이토록 조롱한다는 게 의외다. 분명 그의 죽음은 비극에서 탄생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에 대한 질문을 해소하지는 못하겠으나 약간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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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스물여섯 나이에 데뷔한 작가 시바타 쇼가 자신이 통과한 대학시절을 담아 서른 살에 쓴 장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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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오하시)는 그 무렵, 곧잘 헌책방에 들렀다. 그리고 막연히 눈에 띄는 책을 빼들고 시간을 보냈다. 어떤 때는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책등만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제목을 읽기보다는 오히려 누레진 종이며 색 바랜 글씨, 닳은 귀퉁이나 손때 묻어 생긴 얼룩, 혹은 그 책이 가진 그늘 같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무의미한 시간 죽이기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중에 시간 죽이기가 아닌 일이 뭐가 있을까, 게다가 나는 나름대로 애서가이기도 했다. - 삶이 결국은 갖가지 시간 때우기의 퇴적이라면, 틈틈이 몰두할 수 있는, 혹은 몰두한 척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나 또한, 하고 지저분해진 헌책사이에 선 채로 생각했다. 나 또한 앞으로 반년만 지나면 지방 대학의 영어 강사가 되어, 번역서도 한 권쯤 낼 것이다. 그때는 나도 마찬가지로 조금 흥분해 옮긴이 후기를 쓰고, 그리고 잠시 행복해할 테지. - 그랬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내 속에 퍼졌다. 내가 앉아 있는 커피숍 광경. 기분 좋게 따뜻하고. 의미없는 얘깃소리와 담배 연기와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노랗고 나른한 인공조명 등이 서로 섞이고 교차하며 흔들리는 커피숍 광경. 그 출렁출렁 흔들리는 광경 속에 차가운 비가 내리던 늦가을의 헌책방 풍경이 떠올랐다. 그랬던가. 그 풍경의 기이함, 내게 말을 걸고 내게 휘감기며 집요하게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H전집을 사게 한 것. 그것은 (사노의) 죽음이 뿜어내는 기이한 느낌이었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감명이 내 속에서 천천히 물결쳤다. - 죽음이라는 사실이 가진 무거운 감동이 내 속에서 낮게 술렁거리고, 소네의 말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그 속을 천천히 지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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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를 읽고 읽게 되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에 와 박히는 구절이 많았다. '우리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하는 세쓰코의 물음에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고 후미오를 떠나 시골 마을 학교의 영어교사를 하겠다는 세쓰코의 선택도 응원했다. 그러나 이 책을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시대가 달라서인지 나라가 달라서인지 지금의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생각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