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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기독교 시리즈 좋은 씨앗에서 나온 이 책들은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신앙의 기본기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책은 성경과 신앙고백서 특별히 요리문답을 통해 칭의교리에 대해 살피는 책이다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받는 칭의를 다룬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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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기 싶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칭의에 대한 이야기로써 우리의 의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히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시면 구매하셔서 읽어 보시길 추천하며 좋은 책에 대한 감사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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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에서는 무율법주의적 폐단으로 인해서 윤리적으로 바르게 거룩하게 사는 메시지가 교회에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바르게 살고 거룩하게 사는 메시지가 이상하게도 새로운 율법주의에 빠진 오류가 나타난다. 도덕적으로 각색된 복음의 메시지로 인해서 그리스도안의 풍성한 사랑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짓눌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은혜론자이지만, 실제로는 율법주의자들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천성적으로 율법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교리적 지식보다, 우리 안에 천성적으로 있는 율법주의가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바르게 살아야한다는 당위감에 사로잡혀서 강박적으로 경건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삶에서 평안을 누리기보다, 가시지 않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든 죄책에서 자유를 선언하는 칭의를 믿으면서, 실제 삶에서 병적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냉혹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 힘, 그 공급이 무엇인가이다.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누려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제시해줘야 한다. 그래서 모든 세대에 이런 두 가지 극단적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복음전파자들은 항상 이 두 가지에 대응해서 칭의와 성화의 연결성과 구별성을 적절하게 강조해야함을 꼭 기억해야한다. 전통적 입장, 그리고 서신서를 읽어보게 되면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이방선교를 위해서 나중에 칭의 교리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의 교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 사랑에 감동되어서 그 사랑에 사로잡혀서 이제 전도의 열정에 쫓겨서 이방 선교에 전념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바울이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유대인들이 율법의 전통을 이방인에게 부과한 것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행위구원사상 자체를 비판한 것이 그의 서신서를 읽어보면 너무 분명히 드러난다. 로마서, 갈라디아서에서 계속 논쟁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육체가 없다는 논증이 계속 드러난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칭의의 가르침이 바울 사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새관점 학파뿐만 아니라 여러 신학자들의 칭의에 대한 이해는 칭의를 법정적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속사람이 변화되고 새사람이 되어서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 실제적 갱신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세윤 박사도 전통적 입장에서 새관점 학파를 비판했는데, 칭의와 성화라는 책에서 입장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법정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 갱신까지 포함된 의미로 현대 신학자들 - 슈바이쳐. 케제만 등 -이 칭의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칭의와 성화를 혼합해서 이해했던 로마 카톨릭의 관점과 비슷하게 된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통해 칭의의 교리가 기독교회의 주요 요점이고 교회의 사활이 달렸다고 말했다. 만일 이 교리에 순전성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교회가 치명적 손상을 입으며 파멸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이 칭의의 교리가 사라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사라지며, 종교는 폐지되고 교회는 파멸에 이르고 구원의 소망의 사라질 것이다. 이미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선언이 마지막 날 똑같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을 소망하고 확신하는 것, 우리 소망이 부끄럽게 되지 않는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바 됨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하사 우리를 향한 사람 변함이 없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들의 소망이 변함없는 것이다. 그래서 칭의를 이런 소망에 근거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 과거 정체적 개념으로만 이해하게 되면, 칭의 교리가 사람들을 나태하고 방종하게 만든다. 미래를 지향하는 바가 없어지는 오류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소망이 있을 때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이 소망을 향한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느니라.”(요일 3:3) 이런 소망이 우리를 정결케 한다. 과거 정체적 개념으로만 남아 있을 때 교인들을 방종과 나태에 빠지게 한다. 성화에 대한 추구의 갈망을 상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가 나태와 방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성화를 이루는 다이나믹한 역할을 하면서 믿음과 소망의 사이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칭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종말론 적인 소망을 가지며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