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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64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 리 립센설 김해온 옮김 샨티 2019.1.15. 사람은 자기가 가장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는 법이다. (37쪽) 난 그저 내게 남은 삶을 즐기고 싶었다. 나는 ‘싸우려고’ 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아내는 화가 났다. (51쪽) 나는 심오한 배움도 얻었다. 스트레스는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는 단지 어떤 사건에 따라 일어나는 반응일 뿐이었다. (71쪽) 바로 그 순간 나는 이 모든 일을 함께 웃어넘길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윌은 아직 그러지 못했고 케이시는 나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세릴은 농담을 할 수 있었다. (127쪽) 일어나기 전에 30분에서 45분 동안 사랑을 명상하기.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조건 없는 사랑 쪽으로 가도록 뇌를 다시 훈련하는 것이다. (208쪽) 네가 웃어 주기에 내가 웃을 수 있지 않아요. 네가 웃든 안 웃든 나는 얼마든지 웃으면 됩니다. 너한테 선물을 주었기에 즐겁지 않아요. 누구한테도 선물을 주기 어렵더라도 스스로 활짝 피어나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지을 수 있어요. 돈을 모아야 주는 선물이 아닌, 마음으로 짓는 선물입니다. 뭔가 넉넉해야 짓는 웃음이 아닌, 넉넉하건 아니건 아침저녁을 기쁘게 받아들이기에 짓는 웃음입니다. 그런데 사회라는 얼거리에서는 이런 틀이나 저런 잣대를 내세웁니다. 무엇을 하지 않으면 떨구거나 어느 틀에 닿지 않으면 내치지요.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리 립센설/김해온 옮김, 샨티, 2019)은 스스로 즐거이 죽음길을 맞아들인 의사 아저씨가 이녁 삶을 되새기면서 쓴 책입니다. 의사라는 자리에 있을 적에는 환자라는 자리에 있는 이웃한테 차분해야 한다고,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으레 이야기했다지요. 이러다가 막상 의사 스스로 ‘살 날을 얼마 안 남긴 몸’이 되었을 적에 스스로 얼마나 흔들려야 했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며, 곁님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서로 다독이는 손길이 될 수 있었는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어느 한 곳에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곳에 있으려면 저곳에서 떠나야 합니다. 저곳에 가려면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곳이든 저곳이든 모두 같습니다. 몸은 움직이더라도 마음은 한결같고, 몸이 그대로 있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몸이 아프기 앞서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했다면 나았을 텐데 하고 아쉽게 여길 수 있어요. 몸이 아픈 뒤에 비로소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하면 될 뿐인 줄 깨닫고 즐겁게 첫발을 뗄 수 있어요. 어느 길을 갈 적에 몸이 깨어날까요? 어느 삶을 누릴 적에 마음이 환할까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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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리 렙센설이라는 쉰 두 살의 의사는, 어느 날 샌드위치를 먹다가 샌드위치가 가슴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식도 아래쪽에 암이 있다는 진단으로 돌아온다. 암 판정. 그것도 예후가 무척이나 나쁜 암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우리는 보통 죽음이 먼 미래에 있을, 미지의 무엇이라고 생각하니까. 당장 내 일은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까. 이런 순간이 오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아니면 가지고 있어 놓고 가기 어려운 것들을 떠올리며, 슬프고 두려운 순간들을 감당해내야 할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 사회적 성공,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 딸,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절망과 우울, 분노에 휩싸여 지낼 이유가 충분한 것 같은데 저자는 보통 죽어가는 사람들이 거치는 다섯 단계인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수용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보통 우리는 ‘암과 싸운다’거나 ‘암을 이겨낸다’거나 하는 단어들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저자는 암과 ‘싸울’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싸워서 이기거나 굴복하는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 그것은 포기나 절망과는 다르다. 어떻게 저자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을까?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충만하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갔다. 나는 그들이 나이 드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기대 이상으로 오래 살아남아 손자들과 노는 모습도 보았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하면서, 나는 단지 살아있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가고, 깊이 사랑하고, 살아있는 매 순간을 포용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 (p.26)
저자는 평소 자신의 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환자들이 건강 문제를 겪으면서도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요가와 명상을 생활하하고, 순간을 살려고 노력해왔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서조차, 삶을 살아간다. 삶의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순간순간을 음미하고 즐기려 한다. 그래서 책은 시한부 삶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경험의 순간으로 읽힌다.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일도 나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헬렌켈러가 말했듯이 삶은 “대담한 모험”이 될 수도 있고, 모든 사건은 배움의 경험이 될 수 있다. " (p.195)
우리는 때로 삶에서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을 마주하고는 한다. 사고나 질병, 아니면 예상치 못한 불행들.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한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고는 한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찾아오는 이런 것들을 마주할 때, 보통은 무력감을 느끼고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이 없다. 내 삶에는 사랑이 있다. 이것은 피라미드를 보고, 산에 오르고, 태국에 가서 그곳 음식을 먹고, 그 외에 재미있을 법한 다른 활동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는 사랑받았고 사랑했다. 내 목록은 다 지워졌다." (p.200-201)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 삶. '덜' 하면 부족한 것 같은 삶.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보통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떤 것들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실 이미 삶이 충만하다면, 죽음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암에 대처할 때 이 단순한 방법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화학요법을 받느라 거지 같은 기분으로 여섯 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서, 나는 화학요법이 내 암세포를 죽이고 있다고 상상하는 쪽으로 초점을 바꾸고, 치료를 대하는 내 태도를 바꾼다. 방사선 치료 테이블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이 방법을 활용하여 호흡을 ‘바꾸고’ 암세포가 점차 줄어들어 사라지는 영상을 ‘활성화한다.’ 고통이 희망이 된다. " (p.206)
그리고 관점을 바꿔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생각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놀라웠다. 고통을 그대로 느낀다면 무력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저자는 생각을 전환해 상황을 받아들인다.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후회와 괴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감사하며, 충만함을 느낀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 삶은 의미 있었다. 나는 이번 생애에, 이 별에서, 이 사람으로 살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한다. 이런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한다. 오늘 죽는다면 내 삶은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인간 관계는 언제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생이라는 샌드위치의 주재료가 된다. 그리고 감사하기는 그 재료들을 감싸주는 빵이라고 할 수 있다." (p.198)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을 통해 오히려 삶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쁘고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법, 삶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 저자가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하고 행복을 찾고 삶을 받아들이려는 욕구들을 느끼고, 죽어가고 있지만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진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후회와 두려움을 행복으로 바꾸는 비결이지 않을까 싶다.
"다가온 죽음과,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에 직면하려니, 그리고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려니,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이 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감사하고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롭고 더 살아있다고 느낀다." (p.231)
감사함과 자유로움, 평화로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삶의 끝에서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고, 사랑을 남기는 것이 저자가 생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또한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떻게 죽을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삶을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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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은 저명한 예방의학연구소의 의료 책임자였던 저자 '리 립센설'이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하루하루의 삶을 사랑과 평화와 감사 속에 충실하게 살아나간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리 립센설'은 수많은 환자들이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특하도록 돕는 일을 해왔으며, 쉰두 살 된 해 여름, 식도암 판정을 받고 2년 2개월이 지난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의 두려움 대신 삶의 신비와 기쁨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것은 생의 본질이다. 어떤 시점이 되면 삶은 끝나지만, 이 책은 그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그 순간에 도달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려움, 즉 죽는다는 두려움을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오직 이 두려움을 치유한 뒤에, 그리고 그것에 수반되는 다른 두려움들을-고통의 두려움, 상실의 두려움, 변화의 두려움, 충분하지 못하다는 두려움, 사랑받지 못하다는 두려움을-치유한 뒤에야 살아갈 수 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계기로 당신이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끌어안고, 불확실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지금 마지막에 직면해 있든 그렇지 않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에든, 어느 때에든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죽음은 때로는 인내심 있게, 때로는 그다지 인내심 없이 우리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것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샌드위치 한 조각을 입에 베어 물었을 때에야, 나의 마지막이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새로 받아들인 명상과 요가 수행 덕분에 삶과 태도가 서서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암 진단을 받은 뒤로 명상 시간을 더 늘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생존의 뇌는 생존에 궁극적 위협이 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원인이기도 하며, 생존의 뇌가 너무 활성화되어 있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면서, 위험을 감수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욕구가 저하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위험을 감수하기가 두려워 뭔가를 창조하거나 경험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두려움이라는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명상은 두려움을 느끼는 생존의 뇌가 기능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 두려움과 불안을 줄여준다. 이 생존의 뇌는 두려움과 자기 방어 행동을 일으키는 주된 원천이다. 그것은 잠재된 위험을 재빠르게 판단하고 거기에 대응하도록 도와준다.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생존의 뇌는 과도하게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따라서 뇌의 다른 부분과 균형이 어긋나 있다. 이것의 극단적인 예가 강박신경증인데, 이 상태가 되면 거의 모든 것이 위협으로 인식된다. 이 같은 과도한 경계 상태에 빠지면 특정 생각을 과대평가하고(강박 사고), 반복적인 행동이나 행위(강박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안전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당사자는 자신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알아도 그것을 조절하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저자는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귀를 기울일 때 삶에 관에 혹은 죽음에 관해 가장 많이 배운다고 말한다. 그저 앉아서 귀 기울이고 배우면 된다. "날마나 일어나는 좋은일에 주목하고, '이랬어야 하는 일'이나 '이럴지도 모를 일'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를 즐긴다. 지금 먹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다. 내 인생은 하나의 샌드위치이고,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먹는 편이 제일이다." 저자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온전히 살아있으려면 병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입하지만, 우리는 모두 병을 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고 누구나 때가 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불가피한 일에 맞서 싸우도록,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 뛰어들도록 만들어져 있다. 저자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우리가 모두 패배자라고 믿게 만들려고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성장하다 보면 '하나인 자아' 혹은 '무아'의 체험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자연과 신과 영성의 느낌과 조건 없는 사랑이나 연민, 봉사와 연결되는 체험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단순히 생존하는 차원 너머로 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게 된다. 모든 가능성에 문을 열어두게 된다. 나에게 이 '하나인 자아'는 암, 고통, 두려움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암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신체적인 사건일 뿐이다. 암은 암일 뿐이다. 암치료를 받는 동안 내 건강은 끔찍할 정도로 안 좋았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잠도 잘 못 잤고 기운도 없었다. 내 마음은 우울, 피로, 분노, 때로는 평온 같은 이런저런 감정들 사이를 부유했다. '하나인 자아'는 내 마음을 초월한 곳에서 편안하게 이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는지, 내가 치료받는 내내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다. '하나인 자아'는 고통과 아픔을 자신과 분리된 것으로 경험할 수 있었기 대문이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감사할 줄 아는 자질을 타고났지만 우리 스스로 그 길을 가로막을 때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비관주의와 완벽주의는 삶에서 감사할 일들이 있더라도 왜 그것이 적절하지 않은지, 완벽하지 않은지 아니면 어떻게 더 나을 수 있었는지 등등을 재빨리 찾아낸다. 저자는 침대 밑에 메모지나 일기장을 놓아두고 매일 밤 그날 일어난 감사한 일을 세가지씩 적어보라고 말한다. 그저 맛있는 식사, 즐거운 농담, 혹은 좋아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 일 등이면 된다. 저자는 감사하기를 날마다 실천하면 삶의 초점을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맞출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감사하기 연습은 현실을 마주보고, 자신의 여러 면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자신과 타인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이고, 우리를 해친 사람에게 연민을 품는다는 뜻이며, 삶의 힘겨운 면을 인식하면서도 눈 내리는 어두컴컴한 날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작고 순수한 꽃잎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삶은 의미가 있었다. 나는 이번 생애에, 이 별에서, 이 사람으로 살 기회를 얻은 데 감사한다. 이런 사랑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한다. 오늘 죽는다면 내 삶은 멋진 인생이 될 것이다. 인간 관계는 언제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인생이라는 샌드위치의 주재료가 된다. 그리고 감사하기는 그 재료들을 감싸주는 빵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삶을 통제우리가 자신을 통제하려는 이유는 통제는 곧 안전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통제하려 하지 않고 긴장을 풀고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경이와 호기심이 깨어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창의성과 성장의 발판이며 죽음의 두려움도 줄어든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죽음은 우리 통제를 벗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삶을 살아가고, 최선을 다하고, 다가오는 순간순간을 즐기면 된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곳은 두려움과 제약의 집이 될 수도 있고, 신비와 창의성의 집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자신의 약점과 남들의 약점에 분노를 느낄 것인가, 아니면 연민을 느낄 것인가?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삶의 기쁨을 느낄 것인가? 그것이 전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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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잘 사는 법’과 관련한 자기계발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시간을 쪼개서 관리하며 살 수 있는지, 나의 능력을 최대치로 개발할 수 있는지, 성공하고 유명해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들은 무수히 많다.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모두들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는 때에 이 책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은 ‘잘 죽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므로 어찌 보면 이 책 역시 잘 살아가는 법에 관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죽는 것을 염두에 두는 잘 살아가는 법은 훨씬 깊이가 있고 울림이 크다.
책의 내용 중 전생을 체험한다든지 텔레포트를 시도한다든지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명상, 기도, 내면 여행 같은 방법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창 왕성한 사회 생활을 할 나이인 50대 초반 식도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저자의 경험은 진솔하고 감동적이다. 내 안의 분노가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일상의 모든 사건들을 대할 때 ‘바꾸고’, ‘활성화하기’ 같은 방법들은 당장 내 삶에 적용해도 무방하리라.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계속해서 명상하고 기도하며 삶을 마무리하는 그의 모습이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보다 훨씬 큰 감동을 주었다. 그건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많이 웃고 명상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나의 샌드위치를 조금은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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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을 돌보던 의사가 있다. 예방의학 연구소의 의료책임자로서 심장질환치료를 위한 '오니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환자들이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어 삶의 기쁨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몸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다. 샌드위치를 먹다가 말이다. 음식이 식도에 걸린 느낌. 의사의 직관으로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문제를 직감하고 마찬가지로 의사인 아내와 상의 후에 병원을 찾는다. 검진 결과는 식도암. 진단 후 18개월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75퍼센트에, 5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90퍼센트에 이르렀다. 그가 이른 시일내에 죽음에 이른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해보였다. 과연 그는 이 거짓말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금껏 그가 자신의 환자들에게 해왔듯,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을까? 병의 치유자인 의사로서 바라보던 세계와, 병의 당사자인 환자로서 바라본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삶을, 결과적으로 2년 2개월이 되었던 시간을 어떤 경험과 생각으로 채워나갔을까?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구도자로서의 이야기 이 책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의 저자 리 리셉설은 의사다. 위의 이야기는 그가 경험한 실제의 이야기다. 병의 치유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52세의 나이에 식도암을 진단받는다. 누구나 두려워해 마지않을 '죽음'이 눈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불안해하지도 동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본다. 지금까지 삶에서 배워왔듯, 죽음을 앞둔 삶으로부터 배움을 얻고 성장을 이어간다. 이 책에는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구도자로서 그의 긴 여정이 담겨있다. 책의 전반부는 암을 진단받기 이전까지 그의 삶과 세계관으로 이루어져있다. 중반부는 암진단 이후 저자의 내밀한 마음과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진솔하게 기록됐다. 후반부는 삶을 회고하며 저자가 정리한 세계관과 인생관이 담겨있다. 이따금 혼란스러워지고는 한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의문은 지나온 삶을 회의스럽게 하고 다가올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일상의 삶에서도 이러한데 죽음이 분명해지는 시점에서 나는 얼마나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될까? 하지만 저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삶을 대하는 그의 신념은 더욱 분명해져갔다. 진솔해서 인간적이며 담대해서 대단한 저자의 이야기는,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감사, 인생이라는 샌드위치에 풍미를 내는 법 55 감사는 작은 실천으로 큰 대가를 받는 방편이 되었다. 사실 그것은 삶이라는 샌드위치에 풍미를 내는 핵심 재료이다.
202 감사하기 연습은 현실을 마주보고 , 자신의 여러 면(내적 자아, 하나인 자아, 하위 인격들, 주변 사람들)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자신의 그림자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자신과 타인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이고, 우리를 해친 사람에게 연민을 품는다는 뜻이며, 삶의 힘겨운 면을 인식하면서도 눈 내리는 어두컴컴한 날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작고 순수한 꽃잎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감사함은 희망의 궁극적인 표현이다.
저자의 삶을 관통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감사'다. 그는 암을 진단받은 이후에도 가족들의 마음을 걱정하며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동요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해나간다. 그 담대함의 배경에 '감사'가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날마다 감사하기를 연습하며 자신의 관점을 조율해왔다. 그렇기에 다가올 죽음보다 남아있는 삶에 집중하며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감사일기'는 나 역시도 실천하고 있으며 삶을 대하는 관점을 바꿔준 고마운 기술이다. 때때로 마음같지 않은 순간들을 마주하며 마음이 요동칠 때,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나와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려 애쓴다.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일들, 그리고 이 사건이 나에게 전해주는 새로운 '의미'와 '성장'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리고 이번 독서를 통해 '감사'에 대한 관점을 또 한번 확장시킬 수 있었다. '사건'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감사다. 나는 꽤나 회피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실패한 경험이나 나의 미숙한 요소를 떠올리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개선해준 것이 바로 '의미부여'다. 실패라는 결과가 아닌 성장이라는 과정으로 사건을 바라보니, 취약성이라는 결과가 아닌 성장요소의 발견이라는 과정으로 미숙함을 바라보니, 한결 부드럽게 그것들을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의미'를 넘어 '감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직면을 넘어 반가움마저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저자의 감사는 그랬다. 현실을 비틀어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현실을 마주보고 자신의 그림자마저 이해하고 포용했다. 명과 암을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의 삶과 자신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 나아가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야말로 '희망'의 궁극적인 증거가 아닐까?
곁을 내어준다는 것, 함께 고통받는다는 것 212 나는 성난 채로 침대로 갔다. 수프도 필요 없었다. 텔레비전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아내가 나를 안아주길 바랐다. 다음날 나는 내내 성이 나 있었다. 케이시는 왜 내가 필요할 때 안아줄 수 없는 거지? 이 생각을 하며 앉아 있다가 화가 가라앉자, 나는 나를 안는다는 것이 내가 아플 때 내 곁에 있는다는 뜻이라는 점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를 안고 있다는 것은 나와 함께 고통받는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죽어간다는 뜻이었다.
책에는 암진단 이후 가족들에게 고백하는 과정, 마지막 가족 여행, 아내와의 갈등들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티비 프로그램과 관련된 아내 케이시와의 갈등이었다. 아내는 좋아하는 의학 드라마가 있었고 퇴근 후 거실에서 혼자 시청하고는 했다. 하루는 저자가 문득 아내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침실에 와서 안아주기를 부탁한다. 하지만 아내는 티비를 보고싶다며 거절했고 저자는 크게 화를 낸다. 우는 아내를 뒤로하고 혼자 침실로 돌아오게 된다. 나같아도 서운했을 것이다. 마치 티비는 중요하고 나는 중요하지 않은것처럼, 티비보다 하찮은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내 아내의 마음을 짐작한다. 티비를 보는 시간은 당면한 무거운 현실로부터 벗어나 쉴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의 기회였다. 남편을 안아준다는 것은 남편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직면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눈앞의 죽음에 대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부의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나 역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오해할 수 있음을 상기했다. 나의 회피성향으로 상대방에게 오해와 상처를 주었을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달콤할 샌드위치를 위하여 29 진단을 받은 바로 그날 나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걸 생애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다. 더는 죽음의 두려움이 온갖 방법으로 우리 삶에 침투하도록 내버려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두려움은 생존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지만, 다른 욕구들은-사랑하고, 행복을 찾고, 삶을 받아들이려는 욕구들은-이 생존의 욕구보다 훨씬 컸다. 나는 삶이란 그저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의사로서 살아온 긴 시간 동안 내가 그토록 경탄하던 환자들처럼 변해갔다. 죽어가고 있지만 충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이르든 늦든, 결국 우리는 모두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유일한 예외는 진정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다.
저자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도와왔다. 죽음을 앞두고 극한의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충만하며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가는 환자들의 모습을 지켜봐왔다. 그러한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저자가 직접 그러한 삶을, 그러한 태도를,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지식이 경험이되고, 타인이 자신이 되는 저자의 여정은 배움과 영감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딘 오시니 박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조셉 캠벨의 말을 인용하며 경험을 강조한다. "나에게 믿음은 없다. 경험이 있을 뿐."이라는 문장이다. 저자에게 죽음은 삶의 일부였다. 그 자체로 경험의 대상이었다. 시도하고, 실수하며, 배움을 얻는 것이 삶의 기본적인 과정이듯, 저자는 눈앞의 죽음을 껴안으며 여전히 시도하고, 실수하며, 배웠다. 예전보다 더욱 담대하고 생기있게.
저자는 어려서부터 두려움이 많았던 자신의 성향을 고백한다. 나 역시 그렇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많지만, 새로운 경험을 향한 욕심은 많지만 기원을 알 수 없는 망설임에 주저하며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는 했다. 아마도 두려웠을 것이다. 실패가, 망신이, 좌절이, 시선이, 평판이.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 자체가 나의 발목을 묶었다.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죽을 것이다. 죽음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 곳에서의 경험들은 모두 기억과 추억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 부끄러운걸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걸까? 적어도, 죽음보다 더 두려울 것은 없지 않은가? 저자의 말처럼 삶은 모험이다. 뛰어들자. 경험하자. 그리고 날마다 새로워지자. 일단 그보다, 눈앞에 놓인 샌드위치부터 온전하게 음미하자. 인생의 진짜 맛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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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에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어요. 저희는 20대였기에 어떤 죽음보다 저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그 때 그친구로 인해 삶과 죽음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봤던거 같아요.
어느누구도 피할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 피할수 없지만 우리는 그 앞에 서기 전에는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해 버리고는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 삶의 끝을 알아버린다면. - '나는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삶의 기쁨을 맛보았나' 는 책의 부제가 마음에 들어 책,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을 읽어보게 되었어요.
2009년 7월 어느 날, 의사인 리 리셉설은 평소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다가 가슴에 걸린듯한 느낌을 받게되고 검사를 해보니 식도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진단 후 18개월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75퍼센트, 5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90퍼센트인 무서운 암.
그는 쉰두 살이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던 상황. 마치 소설 같지만 현실입니다. 책은 암에 걸린뒤 1년 반동안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책은 리 리셉설이 생의 마지막에서 죽음을 담담하고 초월적으로 직면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나는 죽어가고 있지만 온전히 자유롭고, 온전히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건 병에 걸렸느냐 아니냐와는 무관하다. 어느 순간에든 , 어느 때이든 삶은 달라질 수 있다. “ 본문중에서 “언젠가는 당신도 죽음을 마주보게 될것이다. 그 순간 당신 삶을 돌아보며 잘 살아왔다고, 후회가 남아있지 않다고 넉넉히 사랑했다고 느끼기를 바란다. 그날이 당신에게 죽기에 좋은 날이 기를 바란다. “ 본문중에서
명상과 수련을 통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직면하고 죽는날까지 매순간 자유롭게 살았던 리박사의 에세이를 읽으며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삶의 용기를.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통찰해보았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인생의 의미를 재 발견하고, 매순간 '나답게'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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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 출판사의 책을 나는 좋아한다. 몇 권의 책을 읽어보고 출판사의 안목을 신뢰하게 됬다. 이 책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삶의 기쁨을 맛보았나?’이다. 의사였던 저자가 52살에 식도암 판정을 받게 되고, 2년 2개월 후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어떻게 두려움이 아닌 사랑과 평화와 감사로 보낼 수 있었는지를 기록한 내용이다. 저자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과 명상을 주요치료법으로 삼으며, 남은 생을 평화롭고 조용하게 보내는 쪽을 선택한다. 저자는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조용히 지내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람은 의사이지만 대체의학의 다양한 방법들도 적극 활용한다.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좀 다른 것인지, 이 의사가 특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면의 분노를 용서로 바꾸는 작업이라든지, 다양한 하위인격들에 ‘내면의 의사’ ‘내면의 구루’ ‘내면의 장난꾸러기’ ‘내면의 환자’ 등으로 이름을 붙여 바라보는 정신통합의 방법 등은 심리치료적인 측면인데, 이 사람은 그런 방법들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결국 이 사람은 2년 2개월 후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가 아니라, 죽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든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적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이다.’ -테야르 드 샤르뎅(예수회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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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망률 90%인 식도암 판정을 받은 52세 의사의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가 죽음을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 방법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명상과 긍정적인 마음가짐 이라고 할 수 있다. (76p. 삶을 이런 식으로 바꿔주면서 부작용도 없는 약이 있다면 장담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약은 처방전 없이도 누구나 복용할 수 있고, 더구나 무료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모두가 명상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명상이 거의 매일 해야 효과가 있고, 그러자면 시간을 내서 꾸준히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병을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에게 말할 때도 너무나 태연하고 담담하다. 과연 나는 죽음앞에서 담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다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죽어 없어지는 것은 나 이지만 그로인해 남은 사람들이 느낄 슬픔. 나로 인해 누군가가 슬퍼진다는 것이 두렵고 힘들다. 이 책은 옮긴이의 말처럼 명료하면서 지혜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부터는 작가가 했던 것처럼 ‘바꾸고 활성화하기’를 실행하며 삶의 방향성을 긍정으로 설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얼마나 맛있게 먹을지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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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어야 하는 일'이나 '이럴지도 모를 일'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를 즐긴다.
지금 먹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다. 내 인생은 하나의 샌드위치이고,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먹는 편이 제일이다.
누구나가 삶과 사랑, 죽음의 여정을 거쳐간다. 이 여정에서 어느 한 순간에도 우리의 영혼은 죽은 적이 없고 온전히 '나'라는 신이 존재하게 된다. God, 그 어디엔가 신성시 하는 그 위의 존재라기보다 내 안의 신을 의미한다.
자아 성찰
이 책의 작가인 '리 립센셜'은 의사로서 자신의 희망하던 직업과 가족을 꾸리며 나름 만족할 만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던 중에 50대의 나이에 암 판정을 받고 깊은 자아 성찰을 해 나간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내 불안의 뿌리가 곧 나 자신의 인식의 뿌리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남들이 볼 때 나름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상상하던 그 세계의 삶과 일치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멋진 휴가를 가고, 늘 사랑이 넘치는 가정 생활. 이것은 그가 늘 가슴속에 품고 다니는 동경의 삶이었으나, 그 삶은 현재의 삶과의 괴리감만 더 부추길 뿐이었던 듯 하다.
동경의 '상상 세계'를 꿈꾸며 지금 현재의 기쁨과 충만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헛된 일인지 깨닫고 마음속의 나를 옥죄는 끈을 풀고 당장 내 앞에 핀 꽃과 나무를 보아야 한다.
나는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맑은 정신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고,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고 진실한 자신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명상으로 얻은 삶의 깊은 의미
리 립센셜은 책에서 명상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명상으로 그는 한층 더 깊은 내면으로 닿을 수 있었고, 삶이 더 충만해 졌으며, 사랑의 의미도 더욱 커져갔다.
'명상은 우리가 자신에게 "삶이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을 넘어서서 현실을 훨씬 잘 인식하게 해준다. 한마디로 명상을 하면 지각 능력이 향상된다. 명상은 우리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지배되기 보다, 거꾸로 그 이야기들의 관찰자가 되는 데 유용하다. 또한, 스스로 만든 자그마한 상자 같은 삶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저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귀를 기울일 때 삶에 관해 혹은 죽음에 관해 가장 많이 배운다.'
그의 생의 마지막 여정은 '암'이라는 고통과 '삶'이라는 행복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했다. 여기서 나는 왜 그가, 스스로의 몸을 치유할 영적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그대로 자기 삶의 동행자로 인정했는지가 너무도 궁금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자기 생의 여정에 나타난 모든 고통과 행복, 시련과 사랑 모든 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들인 것이다.
그에 대한 진심이 몇 줄의 글로 표현된다. '영과 더 강하게 연결되다 보니, 나는 인생을 통제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삶이 고통과 기쁨을 동반하며 펼쳐지는 동안 그저 그 흐름을 타고 즐기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세상
'로빈 윌리엄스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이란 그저 개념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의식적,무의식적 인식들의 집합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경생리학적 구조와 생존을 위한 생리에 토대를 둔다. 그것은 그저 인식일 뿐이다.'
이로써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데에는 우리의 생각,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바라보는 대상을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희망이고 기쁨이요, 악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낡고 황폐한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고, 진정으로 믿는 바가 있다면 이루어 진다. 이것은 고대부터 전해지는 진리인데 왜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욕망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용서
'타인을 용서하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서 몸부림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떳떳하지 못한 면이 있게 마련이다. ' 화의 대상인 나 혹은 누군가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해하고 용서할 때, 나는 더 자유롭고 힘이 생길 수 있다.
삶은 "대단한 모험"이 될 수 있고, 모든 사건은 배움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곳은 두려움과 제약의 집이 될 수도 있고, 신비와 창의성의 집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자신의 약점과 나들의 약점에 분노를 느낄 것인가, 아니면 연민을 느낄 것인가?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삶의 기쁨을 느낄 것인가?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아니 지금 삶을 누려야 한다. 이 시간과 공간을 한 없이 누리고 또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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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샨티, 2019)은 저명한 예방의학연구소의 의료 책임자로 일하던 저자 리 립센설이 쉰두 살 되던 해 여름, 식도암 판정을 받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2년 2개월 동안의 삶을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나는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삶의 기쁨을 맛보았나?’(부제)에 걸맞게 스스로 하루하루의 삶을 사랑과 평화와 감사 속에 충실하게 살아나간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보통 사람은 경험하기 어려운 전생 체험, 유령이 되어 누군가를 찾아가는 등 경이로운 체험을 통해 ‘해방감’을 맛본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죽음을 초월한 삶’이었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 나는 뒤로 기대어 앉아 암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난 나의 삶을 사랑했고 분명히 더 살고 싶었지만,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p.54)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함께여서 자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 저명한 연구소의 의사이기도 하다. 남들 부럽지 않게 풍족하게 살고 있다. 허나 “오늘 죽더라도 만족하고도 남을 만큼 이미 누렸다”라고 말한다. “날마다 온전히 충실하게, 후회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봉사하며”(p.54) 살았으니 어느 날 갑자기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온전히 자유롭다고, 온전히 살아있다고 느꼈다. 온전히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은 알고 보니 병에 걸렸느냐 아니냐와는 무관했다.”(p.141)
저자는 “우리가 자신에게 진실이라고 이야기하는 세계”를 “신경-상상의 세계”(p.57)라고 정의했다. 지금은 이토록 멋진 태도를 지닌 그도 실은 ‘삶은 이러저러할 것’(p.67)이라는 잘못된 인식 탓에 불안, 초조, 공황, 우울함을 느꼈다. 하지만 사망선고를 받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자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무언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선입견으로 가득 찬 상자의 벽을 ‘긁어내는’ 것이야말로 신경-상상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것은 내 인생 철학이 되었다. 날마다 일어나는 좋은 일에 주목하고, ‘이랬어야 하는 일’이나 ‘이럴지도 모를 일’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를 즐긴다. 지금 먹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다. 내 인생은 하나의 샌드위치이고, 한 입 한 입 음미하며 먹는 편이 제일이다.”(p.83)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이다. 허나 그런 삶 속에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란 문제가 아닐까. 작가 리 립센설은 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스스로를 맡겼다. 흔히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난 이겨내고 말 거야!” 하며 항암 치료, 화학 요법, 약물 치료 같은 온갖 방법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일은 오히려 그것이 두렵기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말은 상식을 벗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지 않나.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아직 하고픈 것이 많은데 죽고 싶은 이가 누가 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죽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막으려 해도 결국 끝은 있기 마련이며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그런 일은 신에게 빌지 않는 이상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가야 한다면, 멋스럽게 가는 거다”(p.214)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인생이라는 샌드위치가 우리 앞에 얼마나 더 펼쳐질지 모른다. 샌드위치는 누가 만들고 먹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그만큼 속 재료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그것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알았다는 건, 고달프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는 것이 아닐까.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리가 무척이나 멋지게 보이는 건, 비단 그런 태도를 지녀서만은 아닐 터이다. 삶을 후회하며 살지 말고 받아들이다 보면 언젠가 누구든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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