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7%
  • 리뷰 총점8 4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죽음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죽음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내용보기
내가 윤대녕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다. 1996년인가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힌 [천지간]이란 작품을 통해서였으니 20년도 훌쩍 넘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본 작품이라 기억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윤대녕이란 작가 이름만큼은 또렷하다. [천지간]이 실려 있는 책은 그간의 세월이 말해주듯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책장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죽음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내용보기

내가 윤대녕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다. 1996년인가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힌 [천지간]이란 작품을 통해서였으니 20년도 훌쩍 넘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본 작품이라 기억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윤대녕이란 작가 이름만큼은 또렷하다. [천지간]이 실려 있는 책은 그간의 세월이 말해주듯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책장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몇 년 전인가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작품 역시 등장인물이 누구이며 서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집에서 살아가며 유사가족관계를 형성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것 같다는 기억이 있다. 그 두 작품을 제외하곤 작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마 이 책을 읽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단편소설은 이해하기가 한없이 난감하다. 그래서인지 읽고 난 후에도 기억에 남거나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소설집을 찾는 것을 보면 내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불가다. 다만 이 책은 작가이름을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는지라 정서적으로 혹은 사고방식 등이 일정부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작품을 이해하기에 큰 무리는 없으리란 생각이 들어서 선뜻 읽겠다는 생각을 했지 싶다.

 

책에는 표제작인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포함하여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작품들은 각기 다른 내용들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 그랬다. [서울-북미간]에서 불의의 사고로 딸이 죽은 이후 아내와 이혼하고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으로 시달리던 K는 여객선 사고로 수많은 학생들이 실종된 뉴스를 시청하다가 북미의 한도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H를 만나지만, 그녀 역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오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잊지못해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그 죽음이 자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K는 딸의 죽음이, H는 남편의 죽음이 그랬다. 그러기에 그 고통은 자신속에 숨어있는 환영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나이아가라]에서 화자는 북미의 한 해안도시에서 요양원에서 투병중이던 삼촌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화자는 장례식에 못 가는 대신 삼촌이 여행했던 경로를 따라가며 삼촌의 흔적을 더듬는다. 북미대륙을 가로지르는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삼촌과의 관계를 회상하는 화자는 마침내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해 그가 준 하모니카를 꺼내 그가 즐겨 불렀던 송어를 부르며 그를 떠나 보낸다. [나이아가라]의 화자가 [서울-북미간]KH보다 죽음에 대해 보다 건강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는 죽은 사람이 누구이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경옥의 노래]에서 상욱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죽은 경옥을 화장하고 그녀의 재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그녀가 머물렀던 곳, 그리고 자신과 그녀가 같이 있었던 곳을 찾아 경옥의 재를 뿌리며 그녀를 추억한다. 그것은 경옥을 보내는 상욱만의 추모 방식이었다. 그리고 한달 후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사고를 당하는 상욱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일상에 만연되어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어간 세월을 우리는 살아왔다. 아마 작가는 그런 죽음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죽음을 보고 살아가야 하는 자들의 환멸과 무기력을 호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밤의 흔적]에서 장호는 특수청소하청업체를 운영하며 방치된 죽음들을 수습하는 일을 한다. 작가는 장호가 하는 일을 통해 각종 죽음의 장면들을 그려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의뢰받은 청소가 이상하여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한 여인의 자살이 실패로 돌아간다. 그 여인과 장호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 밖에도 책에는 권위적이고 군림하기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만 어쩌지를 못하는 아들의 번민을 그린 [], 자신에게는 사랑이었지만 상대에게는 상처였던 삶으로 인해 오랫동안 떠돌며 생활한 늙은 배우의 이야기를 그린 [생의 바깥에서], 유적답사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여인상과 사랑에 빠져 평생을 떠도는 삶을 택한 수호와 이혼한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 [백제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읽고선 당혹감이 들었다. 작품에는 가부장적 폭력에 시달리는 두여인이 나온다. 공인중개사인 희숙에게 어느 날 성희가 집을 빼 달라고 찾아온다. 그 과정에서 희숙은 성희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후 성희의 집에 머물던 희숙은 오한으로 나흘을 앓아 눕는다. 성희는 그런 희숙을 간호한다. 그리고 둘이 외출을 하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뭔가 아직 이야기가 더 이어져야 하는데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 순간 파본 된 책인지 의심스러워 페이지를 확인해보아도 정상적이다. 작품해설에서는 가부장적 폭력에 시달리는 두 여인의 연대감을 그린 작품이라고 써 있는데 무언가 나사가 빠진 느낌이 든다. 내가 갑자기 이해력이 떨어졌는지 한참이나 생각을 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단편소설은 읽는 사람들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다른 작가의 소설집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페이지가 얼마 안되는 분량이라도 이야기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선명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페이지는 길지만 무엇을 말하려 하는건지 이해력을 테스트하는 작품들도 있다. 이래저래 소설집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시험하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k*****1 2019.03.03. 신고 공감 16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소설로 건네는 용서
"소설로 건네는 용서" 내용보기
윤대녕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윤대녕만을 읽었던 시간이. 『미란』을 읽고 나서였을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찾았다. 대책 없는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그 대책 없음에 끌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존재의 시원이라고 누군가는 표현했다. 그런 거창함 때문이 아니라 윤대녕을 읽다 보면 마주하는 생의 서늘함에 반했다. 우연히 불려간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늦은
"소설로 건네는 용서" 내용보기


윤대녕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윤대녕만을 읽었던 시간이. 『미란』을 읽고 나서였을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찾았다. 대책 없는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그 대책 없음에 끌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존재의 시원이라고 누군가는 표현했다. 그런 거창함 때문이 아니라 윤대녕을 읽다 보면 마주하는 생의 서늘함에 반했다. 우연히 불려간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늦은 새벽 수도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맞는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그들은 삶에 지쳐 있었고 늘 어딘가로 떠나려는 음모만을 꾸몄다.

필사도 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라는 소설을.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썼던 노트는 지금 없다.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그것은 소설이었고 문장이었고 이야기였다. 일상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업 멘트(?)를 뻔뻔하게 날리는 남자와 그런 수작을 지긋이 바라보는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들은잠깐 만나다 가도 생의 어두움을 어쩌지 못하고 이별했다.

새롭게 나온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이야기들이 한결같이 어둡고 슬프고 아득하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윤대녕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 실제 그 일이 있고 나서 잠시 한국을 떠났었다. 「서울-북미 간」, 「나이아가라」, 「경옥의 노래」가 외국 체류에 관련된 소설이다. 작가적인 위기였다. 세월호 사건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상처이고 슬픔이었다.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커다란 배가 그대로 넘어가고 바닷속으로 잠기는 걸 봐야 하는 우리 모두가 참담했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의 소설의 화자들은 죽음과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경험한다.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간다고 썼지만 그들은 시간을 버티고 있는 정도이다. 예전에 윤대녕의 소설을 읽었을 때는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라고 여기며 읽었다. 비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소설 속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은 작가가 부러 꾸민 것이 아니라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딸을 졸지에 잃어버리고 남은 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남자.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삼촌의 기억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 노래를 부르고자 했으나 과거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들어간 여자. 증오로써 아버지를 대해야만 하는 남매들. 죽은 자들의 흔적을 치우며 경멸로 삶을 끌고 가는 남자들. 외로운 처지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어가는 여자들. 영화배우에서 이제는 건물 관리인으로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 죽어가는 남편에게 생의 마지막 복수를 하는 아내.

윤대녕을 읽었던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도 바로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전히 윤대녕이 그리는 사람들은 허방을 내딛고 끝 모를 장소로 떨어진다. 사랑이라고 느끼는 순간까지도 불안해하고 서로에게 이별을 말할 지점으로 찾아 들어간다. 생은 벼락같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은 없다.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슬퍼해봐야 죽어지지 않는다. 죽겠다고 해도 생이 가만두지 않는다. 살아가라고 삶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등을 떠민다. 떠밀리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자리로 찾아 들어오고야 만다.

「밤의 흔적」,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대에 관한 이야기. 예전 윤대녕의 소설이 혼자임을 어쩌지 못하고 괴로워했다면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누군가들과 함께 하는 내일을 꿈꾼다. 삶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면 우리를 희망하게 할 수도 있음을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서 말한다.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어린 꿈들에게 우리는 사과하지 못했다. 용서받지 못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잘못을 이야기할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소설가 윤대녕은 소설로써 잘못과 책임을 전한다.

s*****m 2019.03.01.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별로 신경 안 쓴 리뷰 (33)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별로 신경 안 쓴 리뷰 (33)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그녀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의 유리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희숙은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오싹한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희숙은 두고두고 생각했다. 불탄 숲속에서 까맣게 재를 뒤집어쓰고 걸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중 고양이를 죽인 사실은 있으나, 그 고양이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
"별로 신경 안 쓴 리뷰 (33)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그녀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의 유리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희숙은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오싹한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희숙은 두고두고 생각했다. 불탄 숲속에서 까맣게 재를 뒤집어쓰고 걸어 나오는 사람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중

 

고양이를 죽인 사실은 있으나, 그 고양이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 하다. 이 사거 이후에 집은 내놓았으며,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엮어가던 사건이 끝에 가서는 누군가의 까딱한 웃음으로 끝났으니, 분명 불행한 결말은 결말인데, 결말이 왠지 해피엔딩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뭔가.

 

나는 아무래도 리뷰의 세계에서 은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은퇴>란 말은 그냥 한번 던져보는 말이다. 예전의 <우수리뷰>에 뽑혔던 글을 쓸 만큼의 에너지가 나에게서 더 이상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던져보았다. 그때 그만큼의 글을 쓰려면 두 시간 이상의, 엄청난 집중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우수리뷰>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대신, 좀더 가볍고 즐길 수 있을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리뷰를 쓰는 이유도 나의 체력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이다. 서평도서에는 조금 더 에너지를 쏟아내고 그외 리뷰 리워드용 도서에는 그다지 큰 힘을 들이지 않는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에너지와 체력을 쏟아붇고 우수리뷰에 도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얻으면 너무도 진이 빠진다. 그래서 진이 빠지지 않게 우연히 얻어걸린 <일확천금의 우수리뷰>를 바라는 걸로. 그래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조금 소외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뭐 내가 워낙 천성적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닌 걸 어떡하랴. 내가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잘 쓰는 글을 쓰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이 말 한번 해 보았다. 가끔, 나는 내가 쓴 글을 자랑하곤 하지만, 그건 그냥 정말로 농담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정말로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신통한 다이어리 릴레이 인터뷰>의 글은 열번 이상의 수정을 가했다. 한번에 뚝딱하고 나온 글이 아니다. 그래서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 글을 완성하는데 거의 한달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서평단 리뷰를 쓸 때도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래서 서평단 리뷰를 쓰고 나면 금방 피곤해진다. <누가 고양이를 죽었나>를 읽으며, 이 사람들은 분명 불행한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보기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엔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음을 알아야겠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가 보여주려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h******o 2019.04.20. 신고 공감 5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한국소설-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한국소설-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소설은 나를 살게 한다. 내게만큼은 확실하다. 소설을 읽으면, 특히 좋은 소설, 내 취향에 맞는 소설을 읽으면 나는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삶, 소설을 읽고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온 모든 조건들에 끝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만약 내가 소설 읽는 즐거움을 몰랐다면, 내 생은 얼마나 단순하고 미약하고 누추했으랴. 때로 음악을 모르고 미술을 모르고 춤을 모르고 건축을 모르
"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한국소설-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소설은 나를 살게 한다. 내게만큼은 확실하다. 소설을 읽으면, 특히 좋은 소설, 내 취향에 맞는 소설을 읽으면 나는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삶, 소설을 읽고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온 모든 조건들에 끝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만약 내가 소설 읽는 즐거움을 몰랐다면, 내 생은 얼마나 단순하고 미약하고 누추했으랴. 때로 음악을 모르고 미술을 모르고 춤을 모르고 건축을 모르는 내 수준이 서럽고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느낀 적은 잦았지만, 이렇게 소설 한 권을 잘 읽고 나면 이전까지의 그런 섭섭함이 모조리 스러진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이 작가의 소설집이다. 글을 읽다 보면 시간이 걸린 이유를 금방 알게 된다. 그러면서 독자로서 조바심을 가졌던 게 미안해진다. 더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데, 더 참고 있어야 하는데, 이런 조급한 태도가 작가에게 또다른 부담이 되지나 않을지 염려가 된다. 나처럼 하찮은 감수성을 가진 독자를 대신해서 아파하는 작가인데, 노골적이지는 않으나 그보다 더 깊은 저항으로 시대와 사회에 저항을 하고 있는 작가인데, 그 때문에 스스로 지치고 있음에도 끝내 소설로 우리가 하고 싶은 말과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고 있는 작가인데, 글을 읽을수록 고맙고 감히 말해 보건대 측은했다. 소설가의 운명이란, 이 또한 하늘이 내린 사명인가 싶기도 했다.

 

모두 8편의 글이 담겨 있다. 2015년부터 2018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학잡지에 실렸던 글을 한데 모은 책이다. 한동안 읽던 문학잡지를 끊었는데, 몇몇 익숙한 이름의 잡지는 진작에 사서 볼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이 책에 실린 글을 미처 읽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이 작가의 글 한 편이 담긴 잡지라면 다른 작가의 글이 실망스러워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을 텐데 싶으니까.

 

소설은 2014년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 사건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한탄을 하다가,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원망과 미움을 넘어 끝내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들고 마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괴로움이 생기나 불평하다가도 흠칫 내가 이 사회의 무책임한 어른 중 한 사람이지 하는 자각에 이르다 보면 희생자의 가족이 느낄 아픔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감정에 투덜대는 내가 한심하기 그지없어 또 다른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이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읽기만 하는 내가 이런데 하물며 글로 살아가야 하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번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전 책들의 인물에 비해 조금 낯설다. 다들 좀 못났다. 가진 것이 없어도 근사할 수 있을 텐데-소설이니까-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가의 마음이 이들에게로 많이 기울었나 보다. 못났고 한심하고 딱한 사람들. 문제는 이들의 처지가 스스로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개인의 의지나 상황 바깥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이나 악랄한 입시 제도나 자녀 학대나 가정 폭력이나 고독사나 자살 문제나 반려동물 문제나 하다못해 태극기 부대에 이르기까지. 지긋지긋한데 해결책은 쉽게 마련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도 끈질긴 문제들. 개인의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아득하기만 한데, 작가는 문제의 한가운데에서 휩쓸리며 다치고 아프다가 죽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들은 또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 살고 싶어요, 나, 죽고 싶어요, 아니, 나, 살게 해 주세요, 나, 죽고 싶지 않아요......   

 

작가는 한 편 한 편의 글로 나를 쉼없이 흔든다. 잔잔하게 흔들다가도 휘몰아치기도 하고 슬쩍 어루만지는 듯하다가 무심하게 내팽개친다. 되도록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만큼의 아픔을 느끼려고 하지만 언감생심 바랄 일이 못된다. 나는 여전히 방관자고 숨어 버리는 쪽을 택하는 비겁한 사람이므로. 다만 다 읽고서도 책을 덮지 못하고 내내 서성거리는 내 마음이 덜 부끄럽다. 한동안 시달릴 것 같다.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9.02.12.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생의 바깥에서'인 듯 몽롱함으로 일관하는... 윤대녕,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생의 바깥에서'인 듯 몽롱함으로 일관하는... 윤대녕,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서울-북미 간」 처음 계간지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닥터 K의 경우>였다. 그것이 소설집에서 <서울-북미 간>으로 바뀌었다. ‘K 씨께서는 현상의 역동이 아니라, 그 안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까지 욕망하시는군요. 무엇이 K 씨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p.13) 아마도 알 듯 모를 듯한 대화를 주고 받은 K와 H는 캐나다, 그러니까 북미에서 만났다. K는 대학교에 진학한 딸을 잃은
"'생의 바깥에서'인 듯 몽롱함으로 일관하는... 윤대녕,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서울-북미 간」

처음 계간지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닥터 K의 경우>였다. 그것이 소설집에서 <서울-북미 간>으로 바뀌었다. ‘K 씨께서는 현상의 역동이 아니라, 그 안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까지 욕망하시는군요. 무엇이 K 씨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p.13) 아마도 알 듯 모를 듯한 대화를 주고 받은 K와 H는 캐나다, 그러니까 북미에서 만났다. K는 대학교에 진학한 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H는 오래 전 남편을 잃은 후 캐나다로 떠나 그곳에 정착하였다. 남편은 그때 그 시간 무너지던 삼풍백화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과 북미 사이라는 건, 세월호와 삼풍백화점 사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그러니까 어떻든 유지되고 있었던 사건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나이아가라」

계간지에 실렸을 때의 제목은 <눈물>이다. 조부모 댁에 머물던 시절 내가 만났던 삼촌에 대한 이야기이다. 친삼촌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무언가를 나누었다. 그 삼촌이라는 이는 이후 집을 떠났고, 나도 그곳을 다시 찾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의 부음을 들었고 나는 머나먼 대륙에서 그 삼촌의 행적을 복기하는 중이다. “그곳에서 돌아 나올 때 나는 뿌연 물보라 속에서 낯이 익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와 함께 횡단 열차를 타고 왔던 그들, 일본인 남녀였다. 그들은 폭포를 앞에 두고 허리를 구부린 채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물줄기 소리에 가려 내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p.75) 나와 삼촌 사이의 흐릿하지만 아예 끊이지는 않은 관계가 중심에 있는데 느닷없는 일본인 커플의 등장에 눈이 간다. 일종의 맥거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옥의 노래」

오래전, 상욱의 친척인 재순을 통해 만난 적이 있던 경옥,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재순을 사이에 두고 제주에서 만났다. 재순이 떠나고도 며칠을 제주에서 더 지낸 두 사람은 이제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경옥은 상욱을 두고 자꾸 떠나려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렇게 자꾸만 떠나던 경옥은 아예 상욱을 떠나고, 상욱은 경옥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배낭에 넣고, 두 사람이 함께 한 장소를 찾아가 한 줌씩 뿌린다.

 

「총」

가부장적인 아비와는 이미 오래 전 연을 끊다시피 한 사이인 명기는 그러나 누이의 부탁으로 아비를 찾아간다. 명기와 아비 사이의 불화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데, 느닷없이 총을 꺼내는 부분은 조금 뜬금없다.

 

「밤의 흔적」

죽은 이들의 흔적을 지우는 청소 업체에서 함께 일하는 장호와 현수... ‘숲속의 웅덩이’라는 어떤 꿈 속의 개념에 의지하여 소설은 진행이 되고, ‘암리타’라는 범어의 개념에 의존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고양이 새끼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어요. 근데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안에 싸늘하게 죽어 있더군요... 고양이가 제 발로 냉장고 안에 들어간 걸까요?” (p.211) 별 의미 없이 고양이를 죽여 못마땅하다. 집을 거래하는 일을 하는 희숙과 집의 거래를 위하여 희숙과의 관계를 시작한 성희 사이에서 조금씩 무르익어가는 워맨스 Womance 라고 해야 할까...

 

「생의 바깥에서」

“그가 담배를 연거푸 피워대는 동안 아까 그녀가 타고 간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가 도착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후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가 다음 정류장에 내려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p.226) 개연성의 부족은 윤대녕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불현듯 발생하고 불현듯 알아채고 불현듯 느끼는 일들이 수도 없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천태만상이 채워지는 것은 아닌데...

 

「백제인」

20년 전 헤어진 남편으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이제 두 자식과 함께 그를 찾아가는 혜진의 마음에 충분히 젖어들기 힘들다. 그러한 헤어짐의 원인이 되었던 ‘여인상’에 대해서도 납득이 쉽지는 않다.

 

 

윤대녕 /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 문학과지성사 / 282쪽 / 2019 (2019)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9.02.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윤대녕]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윤대녕]" 내용보기
꽤 오랫동안 책이 읽히지 않았다. 꾸역 꾸역 손에 잡은 책들은 내용이 읽히지가 않았고, 글씨들만 공허하게 읽혔다. 나이 탓이겠거니...나이가 먹어 더이살 놀랄 것도 설레일 것도 없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그게 아니였다.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책의 문제였다.  한동안 읽을만한 책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 한 마디로 책 문제.  새해에 이 책을 읽으니, 한동안의 갈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윤대녕]" 내용보기

꽤 오랫동안 책이 읽히지 않았다.

꾸역 꾸역 손에 잡은 책들은 내용이 읽히지가 않았고, 글씨들만 공허하게 읽혔다.

나이 탓이겠거니...나이가 먹어 더이살 놀랄 것도 설레일 것도 없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그게 아니였다.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책의 문제였다.  

한동안 읽을만한 책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 한 마디로 책 문제.

 

새해에 이 책을 읽으니, 한동안의 갈증이 가시는것 같다.

 

많은 소설가들이 글을 쓰고, 글들을 묶어 책으로 만들겠지만... 언젠가부터 스타일리쉬한 글쓰기가 난무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알맹이는 없고 겉멋만 가득하다고 할까.

그건 비단 소설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래도 책 만들기 쉬워진 세상에 살다보니, 개나 소나 글을 쓰고 작가랜다. 개인 일기장에서 써야할 내용을 문학으로 둔갑시키니, 읽는 사람은 그 허접함에 피곤할 수 밖에.

 

윤대녕의 글을 읽는 것은 진정한 문학을 만나는 것 같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내 주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고,

글들을 읽다보면 정말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고 맛보는 것 같아서 많이 설레인다.

주옥같은 글들은 또 어떻고.

 

책은 그냥 평소 윤대녕 작가 그대로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이번  작품 집에서는 묘한 슬픔과 허무가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또 책의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작품들이 조금 더 아련하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YES마니아 : 로얄 c******m 2019.01.24. 신고 공감 0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서울-북미 간:  K는 대학 동아리 회원들과 래프팅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딸의 죽음으로 인해 가정이 완전히 파탄 난 상태다. 심리적인 외상으로 인해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던 그가 후배에게 원장 자리를 맡기고 북미 여행을 결심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다. 참사는 그의 정신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 캐나다로 떠난 그는 3년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수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내용보기

서울-북미 간:  K는 대학 동아리 회원들과 래프팅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딸의 죽음으로 인해 가정이 완전히 파탄 난 상태다. 심리적인 외상으로 인해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던 그가 후배에게 원장 자리를 맡기고 북미 여행을 결심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다. 참사는 그의 정신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 캐나다로 떠난 그는 3년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수 많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알게 된 여성 H를 만난다. 그러나 둘의 만남에는 어떤 떨림이나 에로틱한 분위기도 없다. H역시 삼풍 백화점 붕괴때 남편을 잃고 평생을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온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K H가 페이스북에서 교신을 하게된 계기는, 

K는 가을의 전설의 마지막 장면, 즉 늙은 주인공이 곰과 사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죽는 장면을 언급하고 나서 `야생의 곰과 가까이에서 대면해 보는 게 오래된 꿈이자 열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뜻밖의 말로 H `K 씨께서는 현상의 역동이 아니라, 그 안에 전해 내려오는 풍속까지 욕망하시는군요. 무엇이 K 씨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순간 K는 바늘로 심장이 찔린 듯한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혼돈을 치대고 패서 달궈 곁눈질과 수군거림 가운데 조응하는 정중동의 상태에 이르기를 염원하며 살고 있습니다. 불에서 달궈져 나온 도자기처럼 말입니다`

k****6 2019.05.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