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록, 이라는 부제가 있는 고 노회찬 의원 유고산문집이다. 고인을 생각하면 품격있는 정치인, 촌철살인의 명수, 동그란 얼굴, 노르가즘 등이 떠오른다. 그를 신사다운 신사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서 본 것처럼 늘 글을 쓰고 책을 가까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
노회찬 의원은 '적자(write)생존의 법칙'을 일찍 깨달은 듯 하다. 자신의 일과를 세세하게 적어놓은 내용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1부는 2004년 하반기의 내용을, 2부는 2005년~2007년, 3부는 2008년~2012년, 4부는 2013~2018년의 기록을, 그리고 마지막 5부는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여준 그의 대표적 어록을 모아놓았다.
짧은 내용들 모음이지만 노회찬 의원의 평소 생각을 알 수있어서 반갑게 읽었다. 집안의 장남이면서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이야기, 오랜 수배 끝에 체포 되어 감옥에 간 이야기, 조촐한 결혼식과 처남이 왔을 때 알타리 무김치를 담그고 있어서 처가댁에 점수를 땄다는 개인사부터 여러 진보 정당을 거쳐 현재의 정의당 창당에 관한 이야기, 선거에 당선되기도 하고 낙선되기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보고 느낀 이야기 등 그의 삶의 편린들이다.
평소에도 느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보게 된 것은 그의 겸허한 마음이다. 저서 『힘내라 진달래』로 전태일 문학상을 받게 됐을 때 그 수상을 진심으로 기뻐하면서도 '상은 명예지만 또한 멍에다.' 라는 생각을 하는 태도. 자신을 찾아온 지지자들과의 만남 뒤에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하는데 업(業)이 너무 크다.'고 느끼는 모습에서 속이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감사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느낀 소회의 글을 읽을 때도 그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감사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하다. 감사원 구내식당은 관공서 구내식당 중에서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란다. 점심식사인데 전복이 등장하고 생선회와 산해진미가 차려졌다. 법사위원장은 국회의원 1인당 1만원 미만으로 책정된 식대를 감사원장에게 전달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구내식당에서 법사위 돈을 내고 점심을 먹은 셈이다. 그러나 그 음식은 일반 서민들이 평생 한 번쯤 먹어볼까 말까 한 고급요리이다.
식당 창문 밖 북악이 회색빛이다. *
*이 문장처럼 시적인 비유가 책 속에는 무척 많았다. 혼자 있을 때면 그는 시인의 얼굴을 하지 않았을까?
국정감사에 대한 비판과 국회의원의 행태에 대해 느낀 점, 정부 여당과 야당에 대해 진보정당 입장에서 본 아쉬움. 쉽게 진행되지 않는 사회변화의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 등 소신있는 정치인의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들에 대한 생각과 금연하는 것을 두고 '그와 헤어진지 두달 되었다'라고 쓸 수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이런 문장도 썼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연(自然), 본디 그대로이기 때문 아닌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속 앓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어둡고 슬픈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본 셈이다.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힘 있는 자를 비판하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려고 애쓰는 모습. 일당백이란 말처럼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강행군하면서 '서민과 약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촌철살인의 고수라는 말을 듣는 사람답게 그의 글 속에는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따뜻함과 유머가 들어있어 읽을 때 잔잔한 웃음을 선물 받는 느낌도 좋았다. 또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보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많이 읽은 사람이 더 부자'라는 말은 정말 마음에 든다.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나올수 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따뜻함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읽으며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느낀다. 그가 생전에 했다는 아래의 말도 하나의 답이 돼 줄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을 때에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