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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작가의 책이 아닌 이상 외국 작가의 책들은 번역본을 읽을 수밖에 없는데, 번역서를 읽다 보면 유난히 잘 읽히지 않는 책이 있는가 하면, 술술 읽히는 책도 있다. 그러다 보니 번역서를 읽을 때 특정 번역자를 선호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된다.
요즘은 실력 좋은 번역가도 많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번역서도 골라 읽지만 그럼에도 망설이게 하는 것은 중역본이다.
어릴 때 읽었던 '어린 왕자'도 중역본이었는데, 당시에는 중역본이란 것도 몰랐고 그냥 동화책 읽듯이 읽었던 책이라 별생각이 없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영어 공부를 한다고 영어로 된 '어린 왕자'를 읽어보려고 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한글 번역본이든, 영어 번역본이든 둘 다 번역된 책이라 원래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동화처럼 읽었던 '어린 왕자'를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니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차례
동화처럼 쓰인 '어린 왕자'가 사실 한때 아이였던 어른에게 헌정된 책이었다니!
'나는 이 책을 한 어른에게 헌정한 것에 대해 아이들의 용서를 구합니다. ~ 나는 이 어른의 옛날이었던 아이에게 이 책을 헌정하겠습니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
우리말로 번역된 '어린 왕자'는 영역본을 다시 번역한 책들인데, 원본이 아닌 영역본이었고,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 보니 번역시 오역이 생긴 듯도 하다.
책은 장별로 프랑스어 원문과 함께 저자의 우리말 번역본이 먼저 제공되고, 후에 Note를 두어 각 부분의 영어 번역, 한글 번역을 프랑스어 원문과 비교하며 분석하고 있다. 설명이 잘 되어 있어 프랑스어 왕초보인 내가 읽기에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메아리에 대한 부분을 한 예로 들어보면,
프랑스어 원문은 이렇게 쓰여 있다. - Qui etes-vous? dit le petit prince. - Qui etes-vous... qui etes-vous... qui etes-vous... repondit l'echo. - Soyez mes amis, je suis seul, dit-il.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번역했다. - "당신들은 누구세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 "당신은 누구세요... 당신은 누구세요... 당신은 누구세요...." 메아리가 대답했다. - "내 친구가 되어 줘요, 나는 혼자예요," 그가 말했다.
캐서린 우즈의 영역본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 "Who are you?" said the little prince. - "Who are youㅡ Who are youㅡ Who are you?" answered the echo. - "Be my friends. I am all alone," he said.
다른 우리말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다. - "너희들은 누구냐?" 어린 왕자가 말했다. - "너희들은 누구...... 너희들은 누구...... 너희들은 누구......." 메아리가 대답했다. - "내 친구가 되어 줘. 난 외로워." 그가 말했다.
저자와 이전 우리말 번역본에는 말투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생텍쥐페리는 아이에게도 높임말 사용을 유지하며 작품을 써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말로 번역될 당시 아이들이 읽는 책이고 아이들이 하는 말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반말로 낮추어 번역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어감에서부터가 달랐다. 아마 영어에서도 존댓말이 없으니 번역할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또 한 부분은 '당신/당신들'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vous는 복수형인 동시에 2인칭 존칭이다. 어린 왕자는 산 너머에서 인사를 해오는 목소리들이 메아리인지 모르고 당신들(vous)로 묻고,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당신(vous)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p.237)" 메아리가 처음인 어린 왕자는 울리는 메아리가 여러 명의 소리처럼 들리니 '당신들'이라고 물었겠고, 메아리가 보내는 소리를 어린 왕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묻는 말이니 단수인 '당신'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영어에서도 you는 단수, 복수의 형태가 같으니 조심하지 않으면 충분히 오역이 생길 만도 할 것 같다.
또한 마지막 문장의 'seul'의 번역을 보면, 저자와 영어 번역본에는 이 단어를 '혼자'라고 번역을 했지만 다른 우리말 번역은 '외로워'라고 되어 있다. 우리 역자들이 모두 '외롭다'로 번역을 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러하다. "그러나 이 역시 맥락에 비추어보면 '혼자'라는 의미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저쪽은 여러 사람이고 이쪽은 혼자이니, 당연히 '나는 혼자야'라고 하는 게 상식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어린 왕자는 평생을 '혼자' 살아온 사람입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 역시 정확히 언어로 규정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p.276)"
이렇게 작은 부분에도 오역이 몇 곳이 나왔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쓰인 대로 읽었던 내용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가 새롭게 보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중역본 읽기가 여전히 꺼려진다... 영어 원서는 가끔 읽긴 하지만 그 외의 언어로 쓰인 책들은 원서를 읽을 실력이 전혀 되지 않아 번역본 밖에 읽을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번역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하니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또 궁금한 책은 그렇게라도 읽어볼 수밖에...
저자는 문학 번역은 반드시 '직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래 작가의 문장에 다가갈수록 그 문장들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책을 읽고 나니 이해가 간다. 보통 직역이라고 하면 굉장히 어색한 표현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어린 왕자 번역본을 읽고 나니 저자의 뜻을 알 것 같다.
그리고 문학 번역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문학 번역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도 하지만, 원문의 느낌, 작가의 의도는 분명 살려줘야 하고, 문법적인 부분에서도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언어, 문화, 사회, 역사 등 그 나라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함과 동시에 우리말도 잘해야 한다고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좋은 번역해주시는 번역가들 응원하며 열심히 읽는 쪽을 택하기로!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영상으로 넘겨보기!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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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보고 오래 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읽었던 어린왕자가 생각 났어요. 그림도 신기하고 생텍쥐베리의 비행기 타는 사진도 신기했던 것 같아요. 이제 8살 된 아이가 어린왕자를 읽을 시기가 되었어요. 우리 때보다 이르긴 하지만 명작 동화에서 제목을 보아선지 아이가 평소 어린왕자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더라고요. 읽고 싶어 했는데 아들이랑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영어 챕터북 읽는 중이라 아들이 영어 원서 어린왕자도 조금씩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읽어 보게 되었어요. 한,불,영이 같이 있다니 번역의 미묘한 어감과 의역을 안 해서 아이들이나 다시 읽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마침 집에 시누가 보던 어린왕자 책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이가 오래된 책을 읽으려 하지 않고 제가 받은 이 책을 번역 설명 부분만 빼고 재밌게 읽더라고요. 책은 우선 다른 어린 왕자보단 두께가 두껍지만 양장제본이라 참 예쁩니다. 중간에 책갈피 리본도 금색이에요. 저는 특히 영어나 어학에 관심이 많아서 번역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저처럼 어학이나 번역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보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살짝 영어 공부도 되는 것 같고요. 전 불어를 모르지만 불어 공부도 될 것 같네요. 원서가 궁금했는데 원서만 읽으면 이해도 안 가고 아예 넘겨 보게 되질 않더라고요. 예전에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보느라 미리 대본도 읽어 보고 책도 읽어 봐서 원서도 여행 갔다 샀는데 초반만 읽고 역시나 안 읽게 되어서요. 이 책은 번역 해설 부분이 있어서 참고하면서 보니까 정말 좋았어요. 번역 해설 부분은 연두색으로 종이를 다르게 해서 편리하네요. 저희 아이는 당연히 연두색 부분은 생략하고 읽을 수 있었어요. 앞부분에 책을 펴내며에 이 책을 어떻게 보면 좋은지, 왜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나와요. 이방인,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도 저자인 이정서 님이 번역한 책이 있다고 나와 있어서 다시 읽어 보고 싶어 졌어요. 저자인 이정서님은 번역과 소설을 넘나든다고 해요. 소설도 쓰는 분이라고 하니 그래서 번역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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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더 이상 뭔가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아. 그들은 가게에서 전부 만들어진 것들을 사지. 하지만 친구들을 파는 곳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어. 만약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이렴!
어린아이들부터 성인 모두 한, 두 번은 읽어보고, 인용한 내용을 들어보았을 생택쥐베리 <어린왕자>
고전 문학 중에서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품 중 하나이지만 간혹 출판사나 번역가의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의 문구를 들어볼 때가 있다.
이건 <어린왕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한글소설이라도 읽는 독자에 따라 생각하는 의미가 달라지듯 번역가에 따라 소설의 내용이 흥미롭거나 지루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전문학이나 해외소설을 읽을 때면 여러 출판사 중에서도 번역가의 이름을 눈여겨보게 된다.
아이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쉬운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왕자> 역시 그에 해당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하다고 답할 것이다.
작품의 첫 장에는 '코끼리를 삼켜버린 보아뱀'을 모자라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 때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은 짧고 간단하다.
Pourquoi un chapeau ferait-il peur?
우리의 번역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자가 뭐가 무서워?" 「아니, 모자가 왜 무서워 」
우리가 번역서를 보면서 크게 오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한 문장만 떼어 놓고 보면 말끔히 잘된 번역 같은데 전체를 읽고 나면 뭐가 뭔지 명료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은 이런 부분들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글은 조사 하나로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동사 시제의 경우라면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모자가 어째서 두렵게(peur) 할 거라는 거지?"
원서를 모르거나 번역본이 다양하지 않은 작품을 읽을 때는 그 해석이 맞다고 생각하며 읽을 수 밖에 없지만 가끔 정말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어휘력의 번역본은 책 속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드는 맛을 없애버려 좀 더 다양한 번역본이 있었으면... 원서를 더 잘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물론 작가의 문장 그대로를 반영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원래의 느낌 그대로를 생생하게 읽고 싶다는 것이 욕심인 것일까
<어린왕자>는 신비스러운 배경 속 명언과 같은 문체로 많은 번역본이 나와있고, 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지만 한글소설로 나온 고전문학, 명작이라고 칭찬하는 작품들은 아직도 번역의 늪에서 어려워서 고전문학인가? 명작은 원래 이렇게 읽기 어려운 것인가? 높은 벽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정서 작가이자 번역가의 작품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 혹은 학계에 새로운 충격과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전에 번역가로 좀 더 친근한 이정서 작가는 이번 작품 이 전에 <이방인>,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의 기존 번역 속 오역과 표절 등을 지적하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간혹 원서를 읽고 번역본을 읽은 사람들이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이 점은 번역을 하는 방법에서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단어의 의미만을 해석해서 새로운 문장을 만들거나 할 때에는 특히나 이런 오류가 많이 생겨난다.
반면 이정서 작가는 기존의 작품 속 서술구조를 지켜가며 시간 개념과 존칭 개념을 바로 잡아 독자들이 헷갈려하던 부분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영어 뿐만 아니라 불어까지 번역을 통해 이번 <어린왕자>의 작품을 완성한 터라 책의 퀄리티는 더욱 상승한 느낌
이왕이면 그동안 독서장르의 꼭대기에서 좋은 작품인데 좋게 읽히지 못했던 고전작품들에게 번역의 생명을 더욱 더 불어 넣어주셨음 하는 바람이다.
<어린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는 작품만의 신비한 삽화와 불어(생텍쥐페리는 프랑스 작가이다.), 영역(생텍쥐페리가 미국에 머무는동안 같이 작업한 것으로 알려진 캐서린 우즈의 역본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작품이다.)을 Note 페이지에서 동시에 비교해가며 한글로 가장 알맞는 뜻을 전할 수있도록 설명하고 있는데
단순히 번역된 문장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역이 생기게 된 이유, 이 문장이 이렇게 해석되어야 하는 점까지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어 작품을 분석하며 독서하는 재미가 더해져있다.
사실 Note만 있었다면 어려웠을 것도 같은데 사이사이 어릴 때 읽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 받을 수 있는 삽화 덕분에 아 이 때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지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에는 높임말과 낮음말을 사용하는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이나 기존의 대표적인 번역서는 낮춤말로 번역을 하는 반면 이정서 작가가 번역한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가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헌사를 고려해 높임말로 전달을 하고 있어 무언가 내가 어른이 되어 존중받는 느낌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놀라운 것은 생텍쥐베리의 헌정사 자체가 높임말로 어린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번역본에서는 낮춤말로 전달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작가가 어른과 아이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왜 낮춤말로 번역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어른이 어린왕자에게 바오밥나무가 무엇인지 얼마나 큰지 설명하는 부분인데 원래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교훈이나 감동이 사라져버린 부분을 접하게 된 것이다.
C'est next! Mais pourquoi veux-tu que tes mountons mangent les petits baobabs? "그렇구나! 하지먼 너는 왜 양이 작은 바오바브나무를 먹길 원하니?"
Ben! Voyons! "아이참, 생각해 봐!" <기존 번역서 중에서>
"커다란 바오밥나무도 자라기 전에 조그맣게 돋나아지?" "그렇긴 하지. 하지만 왜 양아 작은 바오밥나무를 먹겠어?" <어린왕자>로 보는 번역의 세계 중
사실 이 장면은 바오바브나무의 크기를 모르는 어린왕자에게 그 크기를 설명하는 장면이 아니라 거대한 나무도 작은 떨기나무로 시작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일깨워 주기 위한 장면으로 (어른도 원래는 작은 아이였다는 작품의 주제를 언급한 것이다.) 어른인 나는 보통 어른과 달라서 자신이 아이에게 한 수 배운 것을 인정한다는 'C'est exact!(그렇구나!)' 말을 하는 반면
영역이나 기존 번역에서는 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는 내용이 아닌 아이의 생각을 무시하는듯한 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물론 무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책에서는 아이에게 배웠음을 인정할 수 없는 어른의 고집이라고 한다) 번역가의 가치관이 반영됨으로써 하나의 대화가 다른 교훈과 의미를 전달한다는게 놀라울수 밖에 없던 것이다.
만약 내가 불어를 잘한다거나 새로운 번역이 없었다면 책에서 주는 교훈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었다 생각하면 아쉽기만하다.
번역의 세계를 통해서 오역을 비판하기 보다는 원래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와 교훈을 전달하고자 함은 알지만 이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은 <어린 왕자> 속 대화를 또 어떤 가치관이 반영 된 이야기고 듣게 될지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정서 번역가의 새로운 번역으로 많은 작품들이 문장 그 자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고전문학에는 기존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도전이 계속되길 바라볼 뿐이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문장이 그렇습니다. 번역이라고 해서, 번역이니까, 역자 임의로 그때그때 다르게 옮긴다면, 절대로 작가가 쓰고자 했던 의미를 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 없는 번역이 여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어떤 위대한 번역가라고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나은 의미를 담은 문장을 창작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번역은 그야말로 작가가 쓴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인 것입니다.
반면 작가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전세계 언어들로 자신의 글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는 것에도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책 속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번역가라고 생각된다. 그 노동에는 작가의 감사함과 독자의 고마움, 그리고 창작의 언어를 전달한 보람도 존재하지 않을까 짐작해보며 그들의 노고 자체에 감사할 뿐이다. 다만 이정서작가의 이야기처럼 작가가 생명을 불어 만든 작품을 좀 더 잘 전달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존칭이 없는 영어권의 특징까지 생각해본다면 개인적으로 <어린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를 한 번씩, 음.. 몇 장면이라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존칭을 사용해 전달하는 느낌은 신비로움에 생텍쥐페리의 헌사가 고스란히 전달되어 새로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이 헌사일까?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가 생각했던 어린시절은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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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읽을 때면 출판사마다 번역을 비교해본 후 선택하는 작은 버릇이 생겼다. 그 시작은 벌써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서모임에서 같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데 그 감상이 천차만별이었다. 나에겐 너무나 큰 감동을 준 책이었는데, 어렵고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더 이상했던 점은, 그 책에 공감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출판사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좋았던 문장을 출판사별로 사람들과 비교하며 낭독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번역의 중요성을. 의미만 통하면 되지 않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수 년간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보면, 번역에 따라 그 작품에 대한 첫인상이 달라지며, 다 읽고 나서의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번역을 비교해보는 자그마한 취미가 생겼다.
"어떤 위대한 번역가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좋은 문장을 만드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나은 의미를 담은 문장을 창작해 낼 수 없습니다. 번역은 작가가 쓴 서술 구조 그대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이어야만 합니다."
번역을 이야기 하다보면 직역과 의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반적으로 직역을 한 번역에 대해서는 문장이 어색하고 딱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의역이 너무 심하다보면 실제 작가의 문체가 아닌 번역가의 문체로 작품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직역과 의역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의미는 변하지 않되, 문장 역시도 좋은 번역을 선택하곤 했다.
'<어린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는 '직역'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책이다. 원문과 번역문이 1 : 1 대응이 되도록 번역된 책, 그게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이정서 번역가는 작가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예를 들면,
Ils peuvent venir, les tigers, avec leurs griffers! (원문) 그들이 올 거예요, 호랑이들이요, 발톱을 가진! (이정서 역) 호랑이들이 발톱을 세우고 올테면 와보라 그래요! (김** 역)
무조건 1 : 1 번역을 해야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의도한 문장의 호흡이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살리며 번역이 된다면 독자가 작품의 속도를 더욱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왕자> 로 본 번역의 세계는 매장마다 (어린왕자는 총 2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Note에 이정서 번역가가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기존 번역과의 비교를 설명해준다. 나는 먼저 번역된 작품을 쭉 읽고 나서 다시 note를 읽기를 권한다. 혹 귀찮으면, note부분 없이 그냥 '어린왕자'만을 번역한 버전이 있으니, 이 책을 먼저 읽고 읽었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 어린왕자를 만나보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어른인 생텍쥐페리가 작은 소년이었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바치는 책이다. 그 점을 어린이들에게 사과를 구하며 시작한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반말과 존댓말의 구분, 그리고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중요하다. 또한 어린왕자를 비롯한 캐릭터 하나하나가 주는 교훈들이 있기에 각 캐릭터의 성격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와 내용을 모두 제대로 담는다면, 이러한 세세한 점들까지 신경 쓴 번역을 선택하는 건 독자의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모여 인물들의 성격을 만들어내고, 상황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모든 것이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작품이 완성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는데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쓴 '진짜' 작품에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움 출판사의 번역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독자로서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들을 원서의 감동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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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기본적으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이기에 ‘의역’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작가가 아닌 이상 누구도 100% 정확하게 그 의미라고 확증할 수 없기에, 저 역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 여러 오해도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엔 ‘직역’애 대한 내 생각을 ‘설명’알 것이 아니라, 직접 원문과 번역문을 1:1 대응시켜 봄으로써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제가 작가의 문장을 100%로 옮겨싸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작가 문장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오히려 문장은 감동을 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아직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어린왕자>. 이 책은 그 어린왕자를 원문과 번역된 문장으로 한 글자씩 짚어주며 불·영·한을 비교해 놓은 책으로 역자는 직접 원문과 번역문을 1 : 1 대응시켜 보여 줌으로써 작가의 원뜻을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껏 많은 책을 읽어보고 봐왔지만 이런 책은 정말이지 처음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재탄생된 <어린왕자>는 그 만큼이나 다양한 번역본이 존재한다. 그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번역본만을 읽다가 원문과 함께 실린 번역문과 함께 읽어보는 <어린왕자>는 번역본만을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방대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에 놀라움의 연속이다. 하나의 단어를 두고도 이를 옮기는 이가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원문에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넣어서 의미를 강화시키기도 하고 한 문장을 아예 누락시키기도 하는 까닭에 똑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번역에도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내 생각에는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어느 장을 펼쳐 봐도, 작가가 원래 쓴 주어, 서술어, 대명사, 쉼표, 마침표, 접속사 등등 작가의 서술 구조와 다르게 역자 임의로 더하거나 뺀다거나, 의역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어린왕자는 생생히 살아 숨쉰다. 마치 실제로 어린왕자를 만나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작가의 생각을, 느낌을 그대로 고스란히 옮겨 놓으려고 애를 쓴 역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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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명저들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건 '번역'이라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원서를 일일이 대조해보지 않는 한, 번역가를 믿고 번역본을 읽게 된다. 그래서 번역이 중요하다.
2014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며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은 이정서 번역가가 이번엔 <어린 왕자>의 오역을 지적하는 책을 썼다.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생텍쥐페리, 이정서 지음 / 새움출판사 / 2019)라는 제목을 달고 온 400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이 두꺼운 이유는 <어린 왕자>의 원서와 이를 번역한 내용이 좌우로 펼쳐져 있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노트가 챕터마다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여러 버전의 <어린 왕자>를 보았지만,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어려서, 또는 내가 아직 이 책을 읽을 만한 그릇이 되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이어진다. 단어 하나만 잘못 해석해도 전체 내용이 흐트러지고, 원작자의 의도가 빗나간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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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기에, 저자가 말하는 것의 반쯤은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Bonjour와 Bonsoir의 차이를 무시한 채 단순히 '안녕'이라고 번역한 것은 시간 개념이 빠진 상태로 독자에게 전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tu와 vous의 차이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원서와 타 번역본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책을 원서와 비교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에 번역본을 그대로 믿고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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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쓴 주어, 동사, 쉼표, 마침표, 대멍사, 접속사 등등
그 하나하나에는 작가가 그렇게 쓴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중문학을 함께 전공했던 터라 '번역'이 무척 어려운 분야임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뜻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제대로 옮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 역사 등 사회적 배경까지 통달해야 하는, 실로 엄청나게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데 요즘 번역서를 가끔 보면, 이게 번역기를 돌린 건가 싶을 정도로 엉성하고 이상하게 번역된 책들이 종종 보인다.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도대체 이 번역가는 내용을 이해하고 옮긴 것인가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이정서 번역가가 예전에 카뮈의 <이방인>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걸 하나하나 짚어가는 내용을 페북에서 자주 보았다. 기존 번역자들이나 업계 사람들에게는 질타를 받았을지 모르겠으나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정확한 번역은 매우 반갑다. 그리고 번역의 정확도를 보다 높이려고 하는 한 번역가의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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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가 또 좋은 책을 추천해드리고자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D 그리고 이제는 책 추천을 저의 간단한 서평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아무튼 이번에 추천드릴 책은 바로 생텍쥐페리 원작, 그리고 이정서님이 번역하여 쓰신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라는 책입니다.
어린 왕자라는 책이 어려웠던 이유
솔직히 어린 왕자라는 책은 나도 어렸을 때부터 쉽게 접했었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으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 필독 권장도서에 항상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 하면 떠오르는 보아 뱀 이야기, 장미꽃 이야기, 여우 그리고 뱀 이야기 등 솔직히 말하면 아주 어렸을 때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가지 자세히 예를 들면, 어린 왕자가 주인공에게 양 한 마리를 그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왜 상자를 그려주었고 이에 왜 어린 왕자가 만족을 하는지)
그 이유는 간단했다. 책을 마음으로 읽은 것이 아닌 표면적으로 글자만 읽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길들인다'의 의미 또한 당시 굉장히 어렸던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나에게는 책의 내용도 모호하고 어렵게만 다가왔었다. 이번 기회에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봄으로써 나는 비로소 어린 왕자 책이 주고자 하는, 그리고
생텍쥐페리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 그리고 메시지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은 읽고 읽을수록, 의미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진하고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이 이해가 되는 것이 단순히 내가 예전보다 성숙해지고 지식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나의 이해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를 읽고 나니 책의 내용을 그토록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순전히 나의 무지뿐만이 아니라 '번역'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못된 해석과 번역이 불러온 어려움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진정으로 그 문학 작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작가 한 사람뿐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어린 왕자라는 책은 생텍쥐페리가 쓴 것이다. 이 작품에 쓰인 구절의 의미, 녹아져있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오롯이 아는 사람은 그뿐일 것이다. 아주 당연한 사실인데도 잊을법한 이 사실을 이정서님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 책은 직접 원문과 작가의 번역문을 1:1로 대응하며 번역의 한계점을 항시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노력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본인의 번역문과 타 번역가의 번역문, 영어로 된 번역문까지 함께 수록해놓고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대조하고 있다.
번역의 중요성
원래 작가가 의도한 생생한 묘사와 감동을 번역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정말 원작자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이를 정확히 번역해야 하는 번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번역서를 읽는 우리와 같은 독자들은 어찌
보면 자연스레 수동적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글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되고 문맥이 어색하다고 느낄지라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가야 한다는
한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위치에 놓인 독자들을 위해 의역보다는 직역을 하려 노력했고 그 열정과 땀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과하게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작가의 세심함이
이해가 안 됐던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였던 인칭과 존칭.
그리고 작가가 계속해서 강조한 "안녕하세요"와 "좋은 아침"의 차이.
솔직히 '너무 과하고 어찌 보면 예민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의문들을 예견이라도 한 듯 왜 자신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쓸 수밖에 없는지 설명을 해준다. 이 부분에서 작가가 얼마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애정을 그리고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주장하는 직역의 장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유기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의 시각(어른)이 아닌 어린 왕자(아이)의 시선에서 책을 볼 수 있어 책이 전달하고 자하는 바가 훨씬 잘 느껴지고 전개 또한 더욱 매끄럽다고 느껴진다.
제대로 된 번역이 가져다준 인식의 전환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어렸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장미꽃의 진정한 의미이다. 어렸을 때 내가 접했던 어린 왕자 책에서는 장미꽃을 오만하고 도도하며 자존심 강한 것으로 묘사했다. 자신의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고 바람막이를 요구하며 어린 왕자를 귀찮게 하는…. 이 때문에 나는 장미꽃을 앙칼지고 까다로운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왜 어린 왕자가 나중에 장미꽃을 생각하고 그리워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번역을 직역이 아닌 의역을 하다 보니 당연히 번역가의 개인적인 느낌과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독자인 우리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장미의 입장과 처지가 되어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그저 어른의 입장에서 '쓸모없고 성가신 것'으로 여겨 장미를 바라봤기에 작품이 전하고 자 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작가의 비판 덕분에 나는 장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장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나중에 왜 어린 왕자가 그토록 장미꽃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왕자 책이 주는 메시지
어렸을 때는 단순히 하나의 동화로만 다가왔던 이야기가 다시 그 의미를 곱씹어 보고 제대로 된 번역과 함께 읽어보니 개인의 책임, 행복함의 정의, 길들인다는 말에서 오는 타인과의 관계, 사랑의 진정한 의미 등과 같은 매우 심오한 가치와 이야기를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덕분에 나 또한 이에 대해 고심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 왕자라는 책을 바라보다가 진정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읽어봄으로써 어린 왕자는 내가 느꼈던 것보다 많이 어리고 순수했으며 또 정말 '아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번역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 나도 책을 무분별적으로 읽고 수용하는 것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할 것이다.
작가에게 던져지는 비판과 날이 선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정당성을 끊임없이 피력하며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시는 자세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러한 작가의 의지 덕분에 나와 같은 독자들이 '올바르게' 독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라는 책이 아직 어렵고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와닿지 않는 것 같아 아쉽고 오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의역보다는 직역이 그 답이라는 사실을 직접 체감하고 싶으신 여러분들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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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하고 유명한, 그리고 너무나 잘 알려진'어린 왕자'. 1번씩은 읽었을 테고 혹 읽지 않았더라도 어린 왕자의 금발 머리, 어린 왕자와 꽃, 여우의 대화는 알고 있는 이야기. 이미 많은 출판사에서 더 예쁘게, 다양하게 많이 출판했을 책.
올해 출간된 이 책은, '어린 왕자'의 원서 그대로를 따라가며 '번역'에 대해 집중했다. 책의 왼쪽 페이지는 '어린 왕자'의 원문 그대로를, 오른쪽 페이지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글을 실었다. 원문과 번역문을 1:1로 대응시키며 원문 그대로의 번역을 지키고자 했다. 글과 그림 그대로 원문과 번역문을 볼 수 있는, 나에게는 신기한 책이었다. 1장이 끝날 때마다 번역가의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기존 번역서들의 번역과 이 책의 번역 내용 비교, 프랑스 원문과 영어 번역의 비교, 프랑스어 문법을 기준으로 직역한 번역가의 설명, 어른의 시선으로 번역된 기존 번역서들과의 차이점 등 상세히 기재/비교된 번역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존칭어가 존재하는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존대와 반말 그리고 말하는 시점(인칭)에 따라 책을 이해하는 데에 꽤 다른 시각이었다. 아이의 시각이 아닌 어른의 시각으로 재창조된 '어린 왕자'는 가르치고 혼내고 훈계하며 세상을 다 아는 듯한 어른의 말투가 되어 있었다. 고집스럽고 앙탈스러운 꽃의 이미지, 여러 별에서 만난 별 주인의 모습들은 '어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풀이된 모습이었다. 어린 왕자는 왜 자신의 별을 떠났고 왜 돌아가고자 했는지, 어린 왕자에게 꽃은 어떤 의미였는지 나 또한 제대로, 진중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책에 쓰인 대로 '그랬구나'라고 번역문에 의지했는지도.
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꽤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책이나 영화를 번역할 때도, 사투리나 한자어 등 외래어로 번역하기 어렵고 번역할 수 없고 100프로 일치하는 단어가 없기에 원문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 아무리 잘 번역했다고 해도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말의 느낌과 분위기, 시대적 배경을 다 이해하긴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서 번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원작의 시대적 배경, 작가의 인생, 작가의 의도를 깊게 이해하여 작가의 원문 그대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역과 의역 중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번역가의 상상에 의해 혹은 이해를 돕기 위해) 너무 많이 삭제되고 덧붙여진 글이 아닌 작가의 언어로 된 글과 책을 만나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첫째, '어린 왕자'의 책 본연의 내용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읽어봤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더 큰 울림이었다. 꽃과 나무(자연)를 대하는 태도, 각 별의 주인을 만나는 여정, 궁금한 점은 끝까지 알고자 하는 용기, 순수한 마음 등 지금의 나와는 다른 모습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여우와의 대화, 아이들만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선로 변경원과의 대화는 인상 깊었다. 두고두고 계속 읽어야 할 어른을 위한 이야기이다.
좋았던 점 두 번째는, 번역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는 점이다. 책을 좋아해서 여러 책을 읽었지만 '어쩌면 작가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역하기 애매한 그리고 어려운 단어와 문장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우리의 언어에 맞게 의역될 수밖에 없겠지만,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나는 책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을 거의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노트를 포함하여 1번 읽으며 번역의 세계에 대해 알았다면, 다음엔 작가의 노트를 제외한 '어린 왕자' 이야기만 읽어보고 기존에 출판된 '어린 왕자'를 읽으며 비교해 보려 한다. 이 책에서의 작가의 의도와 시선이 기존 번역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직접 알고 싶어서!
한가지 못내 '나에게' 아쉬웠던 건, 프랑스어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원문과 1:1로 비교가 되어있고 원문이 눈앞에 있지만 비교조차 힘들었다.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어였다면 어느 정도 해석과 비교가 가능했을 텐데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가 아니었던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그리고 생텍쥐베리의 일생에 대해 찾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 작가 연보를 훑어보고 한 번 놀라고 인터넷에서 작가의 일생을 보고 두 번 놀랬다. 그동안 '어린 왕자' 책만 열심히 봤지 작가에 대해 처음 알았던 것이다, 두둥. 비행사였고 비행을 좋아했고 사막에 5일간 불시착을 하고 비행을 하며 글쓰기와 책 읽기도 놓지 않았던 생텍쥐베리.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마저 소설 같았던 그의 죽음. 그의 일생이 고스란히 '어린 왕자'에 녹아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이고 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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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어린왕자를, 생텍쥐페리를 오해했다.
어린왕자는 누구나 잘 알고있는 유명한 동화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자세히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어렸을 때는 왠지 읽기가 꺼려졌고 어른이 된 지금은 너무 동화라는 생각에 읽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던 어린왕자의 이미지는 뭔가 어른스럽고, 애늙은이 같은 이미지였다. 나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가르친다는 이미지가 왠지 ‘어린왕자’는 정말 어린 것이 아닌 외형만 어린 것이 아닐까 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내가 가진 '어린왕자'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사실 생텍쥐페리가 왜 그렇게 유명하고 칭송받는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내 생각은 잘못되었다. '어린왕자'는 애늙은이가 아닌 어린 아이였고 생텍쥐페리는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위하고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하고 있는 작가였다. 지금까지 내가 깨닫지 못한 이유는 번역의 차이였다. 사전적 의미로서는 맞는 표현들일지 모르지만 이해하는 의미는 천지차이다.
어떻게 보자면 번역이 너무 세세하게 따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bonjour 가 우리는 인사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조차의 해석도 '안녕하세요.' 가 아닌 '좋은 아침' 으로 해석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만약 저자가 이 내용을 단순히 주장했더라면 나도 '저자가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예상이라도 했듯 다른 번역들과 비교하며 '왜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만 하는가.' 설명한다. 직접적으로 한국 번역 뿐만이 아닌 , 영어로 된 번역까지 같이 비교한다. 그만큼 이 저자는 '어린왕자'에 대한 작품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번역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밑의 두 문장과 같은 '어린왕자'를 읽어왔다. <어린왕자>는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시각에서 해석되지 못하였다. 어른들의 의역이 들어갔기 때문에 보통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들이다. 같은 'gentil'을 해석했지만 다 다르게 번역이 되었다. 여기서의 조종사는 어린왕자가 '하찮다는 듯'이 웃었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상해있다가 그의 말을 받아 친다. 여기서는 어른과 아이의 권위적인 관계에서 쓰인 밑의 두 말 보다는 '친절하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 어학사전에 찾아보았을 때 , '착하게 구는, 얌전한' 으로 해석한 번역은 (어린아이가) 라고 적힌 것과 같이 어른들의 해석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번역에 신경쓰는 부분은 존칭의 문제이다. 작가인 생텍쥐페리는 어린이들에게는 존댓말을, 어른들에게는 반말의 어미를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번역은 당연히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어린 존재에게는 반말을 당연히 쓴다. 대명사를 지칭할 때도 '아저씨'라는 표현이 줄곧 사용되곤 한다. 지금까지의 번역본들은 '어린왕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첫 번째 별에서 왕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본다면, 왕이 어린왕자를 대신으로 삼는다고 말했을 때 어린왕자가 무슨 대신이냐고 다시 묻는데 그 때 왕은 '사법대신'으로 삼겠다는 말을 한다. 과연 어린왕자는 대신, 혹은 장관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을까. 그가 물어본 대신이 무엇이냐는 말은 , 바로 그 자체 , 대신이라는 뜻을 물어본 의미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제대로 ‘어린왕자’를 읽은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어린왕자’에 대한 생각은 단순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과 같은 그 속의 아주 작은 이미지였다. 그래서 이 책은 ‘생각을 잃어버린 어른들.’ 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책도 아니었다. 어린왕자는 위의 사진에서의 말과 같이 시적인 표현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해석하기 더 어렵다. 번역자들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했던 것에는 그들의 ‘어른의 권위 의식’ 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어린왕자를 오해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어린왕자의 별에 살던 장미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춰 오만하고 쓸모없었던 꽃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왜 그렇게 어린왕자가 장미를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장미는 아주 어린 장미였을 뿐이다. 우리는 한 번도 장미의 입장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장미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했던 어른들이 오만했었다. 오해를 풀고 나니 어린왕자에 대해서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아주 큰 바오밥나무도 사실은 아주 작은 나무로 시작했다는 것이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 아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는 것도 이제서야 깨달았다. 생텍쥐페리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었던 어른들을 위해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뭔가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말.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다. 나도 그렇다 .뭔가를 알기 위해 배우기 위해 사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원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다는 말도. 우리는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것도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만났던 친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른이 된 지금 친구를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그들을 알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친구를 만들기 위해 그 친구를 알려는 시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스윗한 문장이다. 어린왕자와 조종사가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드러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이해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일차적으로 묶어줬겠지만 조종사는 어린왕자의 감정을 존중한다. 석양을 마흔 네번 봤다는 어린왕자에게 그 날 너는 슬펐냐고 물어봐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적다. 그런 의미에서 조종사와 어린왕자는 친구가 된 것이 아닐까.
마지막의 어린왕자가 끝나는 부분이다. 어린왕자는 내 생각보다 더 어렸다. 그리고 우리의 일반적인 번역에 ‘어른의 권위’ 가 들어간다는 것은 특히 <어린왕자>를 번역할 때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왕자는 ‘어른들은 정말이지 이상해’ 라고 말하며 여행하곤 한다.
그런 어린왕자에게 <어린왕자>를 해석함에 있어서 ‘어른들의 해석’ 을 끼워넣은 것은 작품 자체를 오해했던 것임을 반박하지 못할 것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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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로본번역의세계 . . 오랜만에 다시 어린왕자를 만났다. 누군가에는 환상이 되었고, 동경이 되었을 어린왕자와의 재회. 그런데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번역의 이름이 더해졌다. 기존에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인 만큼 의역을 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왔다. 우리에 맞는 언어의 방향으로 원작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로 번역의 기준은 언제나 의역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번역가의 임의대로 펼쳐지는 작품의 세계에는 오역과 오류들이 넘쳐났다. 원작을 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우리는 주어지는 대로 번역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 . 이 책은 기존 번역의 틀을 깨고 새로운 번역의 세계, 직역을 통해 어린 왕자를 재조명하고 있다. 불어 원문과 직역을 1대 1로 배치시켜 직역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번역의 가치를 깨닫는 일이 된다. 작가가 원래 쓴 주어, 서술어, 대명사, 쉼표, 마침표, 접속사 등 작가의 서술구조를 그대로 추적하며 본 작품의 의미를 풀어 나가는 직역. 이를 통해 번역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방향을 읽는다. 그것은 곧 원래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를 옮기는 일이 된다. 여기에 중간 중간 역자 노트를 실어 기존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며 낱낱이 파헤치는 과정에 타당한 근거를 들어 독자가 작품의 본 의미에 접근하는 것을 돕고 있다. 우리의 의역 뿐 아니라 모든 번역의 기준이라 여겨졌던 영어 번역 또한 함께 실어 얼마나 중심에서 벗어난 번역이 이어져 오고 있는지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 가령, 불어는 ‘tu’ 와 ‘vous’의 변화로 높임말을 반영한다. 이 중 어느 것을 택하냐에 따라 서술어의 형태도 달라진다. 즉 존대가 될 수도 혹은 반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의역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또한 등장 인물의 입장이 아닌 번역가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번역 문장을 볼 수도 있다. 이런 의역을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은 사라져 버린다. 어린왕자에 중요한 의미였던 꽃에 대한 이미지 또한 다르지 않다. 임의대로 펼쳐지는 의역은 등장 인물의 성향을 바꾸기도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에도 충분했다. 또한 문장 속에 녹여낼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세 개의 마침표가 사용된 문장도 두 문장으로 압축하거나 동사를 본 의미가 아닌 방식으로 해석하는 역자의 판단에 이르기도 한다. . . 원문과 직역의 일대일 대응을 통하는 일은 직역의 가능성을 탐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품에 스며있는 작가의 숨결을 느끼는 일이 된다. 작가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 보면서 읽는 생생함. 그래서 작가의 말을 전해주는 직역을 통한 번역가의 말은 살아있는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스며드는 내 감정의 강도가 달라졌고, 감동의 결이 촘촘하게 작품을 둘러싸는 가운데 작품의 본 의미를 어쩌면 작가가 알아주기를 바란 어린왕자의 정체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 어떤 위대한 번역가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나은 의미를 담은 문장을 창작해 낼 수 없습니다. 번역은 작가가 쓴 서술 구조 그대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이어야만 합니다. _이정서 (393p) . 번역의 통념에 빠져 있던 내게 직역에 대한 통찰은 모자의 정체가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이라는 본래의 의미 만큼이나 새로웠다. 그래서 본래의, 작가의 의도를 읽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작품이 선사하는 감동의 폭이 깊어졌다. 그것은 어린 왕자와 나의 대화를 보는 시야도, 작가가 어른에게 당부하는 말의 진심도 다른 무게와 깊이를 안고 다가오는 일이었다. 작가의 진심은 곧 작품의 세계관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원래 작가의 문장에 다가갈수록 작가가 작품에 품은 진심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문장 구조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의 번역을 역설하는 번역가의 간절한 마음이 인상 깊다. 그만큼 작품의 감동은 새로워진다. 고전의 가치를 알고 읽는 것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작품에 스민 가치는 제대로 읽는 일을 통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의 문장 서술 구조를 충실히 찾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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