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사람들은 벌써 20세기를 잊어 버렸다. 크게 탓할 것은 못 된다. 미디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본을 새 밀레니엄 축제로 사람들을 몰아넣기 위해 투자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장단에 춤을 추었던가. 마치 2000년으로 달력이 바뀌면 우리가 모든 과거로부터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종로에는 15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새 해 첫 신문은 밀레니엄의 각종 첫번째 신기록에 대한 보도로 가득 찼다. 새 밀레니엄 첫 아기.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인간이 있었다면 우리는 모르지만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생을 끝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역사란 새로 태어나는 것과 죽어가는 것 사이의 변증법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만큼 ‘새롭지 않은 것’ ‘오래된 낡은 것(Te Same Old)’ 또한 그 힘을 상실하고 있지 않다. 단지 사람들이 새 밀레니엄이 도래했다는 사실에 취해서 반복되고 있는 오래된 낡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할 뿐이다. Far from the madding crowd’s ignoble strife ‘신자유주의’의 시대 이다. 이제 ‘시장’은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법사’로 불리 운다. 정부는 점점 작아진다.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정부는 이제 시장에게 그 막강한 권능을 물려준 것일까? 그것은 진실이면서 가장 뻔뻔한 거짓말 중의 하나에 속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가장 무책임한 형태 이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정부의 사회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이윤 극대화만을 유일 가치로 내세운다. 정부는 작아졌다. 정부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부분에서만 작아졌다. 정부는 여전히 크다. 모든 사회적 책임을 시장원리에 내 맡기게 움직인 것은 시민들 이었던가? 아니다. 시민들은 정부에게 사회적 책임, 보장과 안전을 요구한다. 정부는 이 책임감을 내 던지고 작아졌다. 그리하여 이제 사회에서는 능력 있는 자와 능력 없는 자 사이의 눈뜨고 볼 수 없는 개판 싸움이 벌어진다. 능력 있는 자들은 코스닥을 찬양하고, 코스닥의 거품경기에 동참하지 못한 ‘새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멍청한 자’들인 능력 없는 사람들은 코스닥에 대한 규제를 요구한다. 시민의 불복종을 다시 읽다 새 천년에 어떤 책을 읽을까 잠시 고민해봤다. 21세기를 전망하는 미래학 서적을 읽을까? 아니면 급상승세를 타고 있고 성담론에 관한 책을 읽을까? 최종적으로 선택한 책은 ‘오래된 낡은 책’이다. 10여년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었다. 그 때는 20살의 나이였고, 이제는 30줄의 나이가 되었다. 산성지를 사용하지 않았던 그 책은 이미 끝 자락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요즘은 찾기 힘든 세로쓰기의 판형이다.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이야기 할 때 나는 ‘가치 있는 오래된 것’과 함께 하기로 하였다. 도로우의 시민불복종 초판이 나온 것은 1837년이다. 이미 150년 전의 책이다. 하지만 도로우의 책은 여전히 시사성을 지닌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역사적 공덕(功德)은 자기가 통치를 잘 했기 때문이라고 말 한다. 그들은 실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변명하던가? 통치자의 실정은 일종의 사기이다. 시민들은 공덕을 기대하고 그에게 많은 권력을 양도 했다. 공덕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일종의 사기술 이다. 사기 당한 시민이 택해야 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선거관리 위원회는 불법적 행동이라고 말 했다. 도로우의 책을 보면 시민 불복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거기에 복종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이 성공할 때까지 복종할 것인가, 그러지 않고 즉시로 그것을 범할 것인가? 지금의 정부 같은 정부 밑에서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다수를 설득시켜 변경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들의 생각은, 반항하면 그 치료가 병폐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가 병폐보다 더 나쁘다는 그 것이 바로 정부 그 자체의 잘못 이다.”(461) 시민의 어떤 행동이 현행 법의 해석에 따르면 불법이라고 판명이 된다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로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나 그것이 만일 당신으로 하여금 남에게 불의를 행하도록 강요하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말하거니와 그 법을 깨뜨려라.”(462) 마지막으로 평균적 유권자보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무식하기만 한 대한민국의 국회 의원들에게 도로우가 던지는 따끔한 한 마디 “정부의 권위는 내가 기꺼이 복종하겠다는 것일지라도 아직도 순수한 것이 되지 못한다. 내가 기꺼이 복종하겠다는 것은, 나는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유쾌한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복종하고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나보다 잘 알거나 더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는 일이 많이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 한다면 정부는 다스림 받는 자의 재가와 승낙을 얻어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락해 준 부분 외에는, 내 몸에 대해서나 재산에 대해서나 순수한 권리가 없다. 전제 군주에서 유한 군주로, 유한 군주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 온 것은 결국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경을 향해 온 진보다…정부가 개인을 보다 높고 독립적인 힘으로, 제가 가지는 모든 권력과 권위를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를 그만큼 존경하게 도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문명한 국가는 절대로 될 수 없다.”(475) 150년 전에 쓰여진 책들을 한번 이 땅의 국회 의원들은 읽어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