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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국밥 한 그릇의 위대한?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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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이 라는 정체불명의 책을 들고 나타났을 때 나의 관심은 세속적인 것 이상을 넘지 못했다. 흔하디 흔한 교양주의, 혹은 얄팍하게 읽어낸 시류에로의 동참 정도가 그를 향한 내 악담의 정체였다. 최근 그가 문학동네에서 펴낸 도 그리 예외적이지는 않다. 흔한 줄거리에 값싼 정취를 더한 표제작의 흐름은 간혹 시집 중간에서 도발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잠언류와의 불화를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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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이 <연어>라는 정체불명의 책을 들고 나타났을 때 나의 관심은 세속적인 것 이상을 넘지 못했다. 흔하디 흔한 교양주의, 혹은 얄팍하게 읽어낸 시류에로의 동참 정도가 그를 향한 내 악담의 정체였다. 최근 그가 문학동네에서 펴낸 <바닷가 우체국>도 그리 예외적이지는 않다. 흔한 줄거리에 값싼 정취를 더한 표제작의 흐름은 간혹 시집 중간에서 도발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잠언류와의 불화를 자초하고 있다. 서정도 아니고 순수도 아닌 어중간한 집행자의 자해 의식은 '누군가 인공기를 달고 있을 것이다 (태극기를 달면서, 全文)'에서 절정을 이뤄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런 유형의 잠언은 그 함축성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것을 말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더구나 그것이 시인의 결핍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이거나 의미 확대로의 기능으로 쓰인다면 그 폐해는 너무도 심각하다. 안도현만을 두고 보자면 최근의 출판 경향은 매우 물렁물렁하다. 안주하는 삶, 회귀하는 삶, 거기에 적당한 그리움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했'다고 고백하던 시인은 이제 바닷가 우체국에서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로 안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민중'과 '프롤레타리아' 타령을 할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비록 시대가 어렵다고 해도 민주는 이 땅의 저어할 수 없는 주류로 한 흐름을 장식하고 있고, 이쯤에서 '귓밥을 파'고 있는 우체국을 떠올리거나, 자전거를 탄 우체부를 따라 변산 어디쯤이었으면 좋겠다고 후렴처럼 늘어놓은 바닷가를 서성인다고 해서 반쯤 미친 듯한 세월들을 경시하고 있다고 어찌 단언할 수 있겠는가. 어설픈 회귀의 상품화라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그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서정을 반쯤 눈 질끈 감고 세상으로 환치시켜도 그 언젠가의 '全琫準'이 통탄할 일은 없다. 김수영이 '풍자 아니면 자살'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처럼 이 세월은 이제 '서정 아니면 즉흥'이란 패러다임 속에서 엄살을 떨어야 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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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시집-바닷가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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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때까지는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茅亭아래 한 떼의 잠든 일꾼들 모두 臥佛같다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쌔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휴식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누워 계신 게야 아주 작고 하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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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때까지는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茅亭아래


한 떼의 잠든 일꾼들

모두 臥佛같다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쌔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휴식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누워 계신 게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광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단풍나무


가을로 접어들자 단풍나무는

자기 몸에다 전향서를 쓰고 있었다

너무 냉정해서

내가 말을 걸어볼 틈도 없었다

 

 

***

 

오래전에 좋아했던 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가 수록된 시집이라 구입했다.

 

살아가면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어느 순간, 어느 찰라

감정을 증폭시켜버리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생활속에 있는 소소한 모습들을 돋아나게 해

잔잔하면서도 재치있게 묘사한 이 시가 참 좋았었다.


소주,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오히려 나를 뜨겁게 껴안는다

는 표현은 또 얼마나 멋스럽던지.

YES마니아 : 로얄 c*******7 2010.02.26.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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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씁쓸한 바닷가 우체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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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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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평교사에서 해직교사로, 그리고 다시 복직교사, 이제는 전업작가로 그 삶을 한 발, 한발, 옮겨온 안도현이 바닷가 우체국에 서 있다. 시집 『그리운 여우』를 끝으로 이제 '스톱'을 외치면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선 안도현에게 그의 친구이며 소설가인 이병천은 자신의 소설 '애기똥풀'을 읽고 나서도, 스스로 직접 보고 느껴야 '애기똥풀'을 하나의 꽃으로 이해했던, 그래서 아픔이 곧 현실이고, 그 현실을 시로 거듭 나게 했던 안도현을 향해 다음과 같은 기우를 발문에서 發한다. '아, 안도현이 학교를 그만두기 잘했다고 부인에게 우리가 얘기했는데, 그의 시가 자연과 학교의 현장성이라는 건 강한 아름다움에서 퉁겨져나와 평소의 안도현답지 않게 혹시라도 요상허고 해괴하게 시를 쓰기라도 헐작시면?' <그리운 여우>p.109 나는 그런 이병천의 기우를 지팡이 삼아 안도현이 서 있던 바닷가 우체국 앞에 서본다. 주변의 것들을 자신의 삶 속에 끌어들여 같이 호흡하기 위해 주로 의인법을 사용했던 안도현은 시집 『바닷가 우체국』에서도 여전히 꽃대가 아프게 꽃을 밀어내는 모습을 사려깊게 바라보고 있다(그의 시「꽃」). 그러나, 회 한접시를 먹으면서도 북녘 어느 산 속에서 탄광 노동자로 일하는 형님을 생각하던(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가운데「송어회를 먹으며」) 안도현은, 이제 혼자 오뎅국물과 함께 자신의 몸을 바다처럼 뒤척이며 숭어회를 감성적으로 즐긴다(시집 『바닷가 우체국』가운데 「숭어회 한 접시」).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者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던 (시집『그리운 여우』가운데「인생」) 그가 이제는 치열한 인생에서 한발 물러나와 인생과 삶을 묵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안도현의 변화를 평론가 김수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도현이 천연덕스럽고 여유로워졌다……안도현은 이제 아주 편안한 자세로 시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가 시를 위한 안간힘이나 불편한 자의식으로부터 멀어져 자유자재로 시를 놀(遊) 줄 아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시적 긴장보다는 화해의 세계에 대한 심미적 자족감에 젖어들고 있다는 것……편안하게 잘 읽히는 시의 부드러운 질감과 안도현 특유의 생동하는 비유들이 전자를 느끼게 한다면, 대부분 낭만적인 기억에 의존하는 시적 발상과 평이하고 감상적인 진술들은 후자를 감지하게 한다.' --- '낭만에 유적에 관한 그리운 기억들, 김수이, 문학동네 1999년 봄호, p.475 김수이의 이러한 표현이 장생포 바닷가에 서서 바다만 바라보면서 서러워하는 안도현의, 삶을 대하는 태도변화에 대한 불만의 표시냐고, 은근슬쩍 나는 김수이의 옆구리를 찔러 보고싶다. 같은 의인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같이 치열하게 호흡하기 위해 제 곁으로 끌어들여 자신과 대상과 현실이라는 삼각대를 힘차게 시에 박아넣던 안도현이 이제는 대상을 하나의 성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오는 밤, 그렁 거리는 양철지붕의 심성을 세심하게 짚어주는 안도현과 함께 그 양철 지붕을 바라보면서 양철 지붕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것은 잠시이지만 (『바닷가 우체국』가운데「양철 지붕에 대하여」), 재만 남은 연탄을 바라보면서, 언제 그렇게 뜨겁게 살아본 적 있냐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가운데「너에게 묻는다」) 안도현의 질책이 주는 아픔은 좀 더 오래 남는다. 이제 나는 안도현과 함께 바닷가 우체국에 서서 삶을 묵상하지만,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안도현과 함께 흘리던 눈물은 더 이상 흘리지 않는다. 내 사는 것도 몸 하나 편하기 위해 부단한 애를 쓰면서 안도현이 이제 그의 경제를 더이상 걱정하지 않고 삶을 관조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 그리 배 아프냐고 말한다면 나는 구차한 변명 거리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렇더라도, 나도 가끔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은 욕심은 있는 것이다.
n******e 1999.06.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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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휴일, 바닷가 우체국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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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날 바닷가를 찾는 기차 안에서, 혹은 바닷가 우체국을 바라보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밀린 일 때문에 두 번째 차표를 반환하고 돌아서는 내 모습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사는 무슨 우화 속의 주인공 같았다. 비가 치덕치덕 내리는 석가탄신일 오후, 이 시집을 읽었다. 푸른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하얀 회벽집의 우체국을 상상하며 (겉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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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날 바닷가를 찾는 기차 안에서, 혹은 바닷가 우체국을 바라보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밀린 일 때문에 두 번째 차표를 반환하고 돌아서는 내 모습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사는 무슨 우화 속의 주인공 같았다. 비가 치덕치덕 내리는 석가탄신일 오후, 이 시집을 읽었다. 푸른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하얀 회벽집의 우체국을 상상하며 (겉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영화 "일 포스티노"를 떠올리며.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 붉은 우체통 부분에 가서 하얀 회벽집 우체국에 대한 내 상상은 끝났지만. 시집은 전체적으로 조금은 들쭉날쭉하고 별 감동이 없었다. 이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이 TV 드라마에서 그의 시 "연탄"을 듣고서였는데. 그 시가 수록된 시집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우체국은)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라든가 "눈보라 속에 발갛게 몸 달군 포장마차 한 마리"와 같은 표현들의 남발은 마치 고등학생들이 밑줄 치고 "의인법"하고 적어야 할 것처럼 진부하게 들렸고, "당신, 저 강을 건너가야 한다면/ 나, 얼음장이 되어 엎드리지요 ("겨울 편지")"하는 시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소서"하는 시의 아류처럼 들렸으며 "이발소 그림을 그리다"라는 시는 쟈끄 프레베르의 "새 한 마리를 그리려면"을 연상시켰고, 그밖에도 많은 시들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을 주어 별 감동이 없었다. 어쩐지 산문이 더 어울리는 시인이라는 느낌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단풍나무> 가을로 접어들자 단풍나무는 자기 몸에다 전향서를 쓰고 있었다. 너무 냉정해서 내가 말을 걸어볼 틈도 없었다. <12월 저녁의 편지>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지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에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a*****e 2001.05.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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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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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바다의 이곳 저곳을 누비다가 문득 '안도현 시인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게시판을 발견했다. 무작정 방황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아니고 사실 그 시를 읽었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서평을 어디까지나 참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거기에 올린 글들 중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당신의 글은 희망입니다. 고맙습니다.' 이것을 보자 나의 마음속에서 솜털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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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바다의 이곳 저곳을 누비다가 문득 '안도현 시인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게시판을 발견했다. 무작정 방황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은 아니고 사실 그 시를 읽었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서평을 어디까지나 참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거기에 올린 글들 중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당신의 글은 희망입니다. 고맙습니다.' 이것을 보자 나의 마음속에서 솜털같이 뭉클한 감정이 일었다. 이외에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한 사람의 시가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일상의 삶 속에서 잊고 살았던 것을 느끼고 더욱이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는데 말이다. 항상 글을 쓸 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는 대충 알지만 머리 속에서 실타래처럼 뒤죽박죽 엉켜있어 그 첫 가닥을 뽑아내지 못하곤 했다. 이번 역시 '아 정말 좋았어, 근데 어떻게 하면 술술 내 생각을 조리있게 잘 썼다고 소문날까', 하고 고민하다가 인터넷을 통해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글을 썼던 사람들을 참고하기로 마음먹었었는데 난 정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문학에 관한 지식이라면 내가 상대성 이론의 그것을 아는 만큼만 알기 때문에 좋은 분석을 기대할 수 없다고, 혹은 지금까지 '시집=베드타임 스토리(bed time story)'의 공식을 나름대로 정립하고 살았던 나의 독서 습관은 애초부터 제대로 된 감상을 이끌어낼 수 없노라고, 스스로를 질책만 하면서 나는 그 글들이 나의 마음에 아주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조금은 후련하다. 이제 좀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안도현의 시집 '바닷가 우체국'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았으며 거부감을 느낄 수 없는 생각을 담았다. 모두가 동경하는 자연을 그 소재로 삼았고 대신에 동전의 이면을 보는 듯한 뛰어난 관찰력과 소년같은 감수성으로 각박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정말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능내로 동기들과 MT를 간 적이 있다. 평소에 큰물이 모인 강이나 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도착하자마자 고스톱을 판을 벌인 무리들 중 한 친구에게 강가에 가 보자고 얘기했다가 청승맞게 놀지 말라며 핀잔을 들었었다. 사실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일상 곳곳을 감성 어린 소년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의 여부가 이와 같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될 자격이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의 어떤 노래 가사 중, '누구나 기타를 칠 수 있어요, 음악을 좋아하기만 한다면....'하는 대목도 이러한 맥락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t 2001.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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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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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뛰어난 언어표현력의 경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너무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시인들이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안도현님은 기다림에 대한 자세를 아는 듯 하다. 그의 책 부분에서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그 분의 시에 매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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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뛰어난 언어표현력의 경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너무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시인들이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안도현님은 기다림에 대한 자세를 아는 듯 하다. 그의 책 부분에서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그 분의 시에 매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기다림에 대한 그의 낮은 자세와,,, 그리고,, 한없이 한사람을 위한 마음과 그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에의 기다림과 야속함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꾸만 무뎌져 가는 나에게 인문학적 감수성을 나에게 넌지시 던저주는 시 구절들은 나에게 잔잔한 미소를 선사할 뿐만 아니라, 그 가슴에 일어나는 잔잔한 파동은 한없이 내 어린 시절의 내가 갖고 있었던 유년시절의 언어로 치닿게 만들어 준다.. 이런 나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세상이 있기에 난 행복하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도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s******5 2000.04.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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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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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우체국을 참 좋아한다.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속에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도, 조용필님의 서울서울서울이란 노래속에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도 그리고 또 하나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인/ 바닷가 우체국도... 안도현님의 시는 별미다. 별미로 먹는 누룽지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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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우체국을 참 좋아한다.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속에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도, 조용필님의 서울서울서울이란 노래속에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도 그리고 또 하나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인/ 바닷가 우체국도... 안도현님의 시는 별미다. 별미로 먹는 누룽지같은 맛이 나는데 구수한 누룽지 본연의 맛이 나기도 하지만 어떤때는 설탕이나 고추장을 찍어 먹는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누룽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그야말로 예삿 누룽지가 아닌 것이다. 시 <동백꽃 지는날>을 보자면 제 계절을 다 보내고 오래 참던 꽃잎이 '저리 비켜라 말 시키지 마라'며 서두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는 선운사 뒷간에서 똥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시를 잘 모르면서 읽는 부족한 나이지만, 아. 동백꽃 지는데서 어떻게 이런 착안이...하하. 슬며시 미소가 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알것도 같았다. 그 시의 느낌은 어차피 읽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이 시는 튀긴 누룽지 맛이 난다.^^ 아, 좀 있으면 동백꽃이 필텐데... 오늘도 작가님은 어디에서 또 어떤 누룽지를 만들고 계실런지.

[인상깊은구절]
내 시는 아무래도 겨울날 볕 잘 드는 사랑방에서 댓살을 다듬고 한지를 자르며 싸드락싸드락 만드는 연 같은 것이어야 겠다. 내 시쓰기는, 지상과 천상의 다리를 놓는 바람의 게임, 즉 연날리기와 같은 것이어야 겠다. 연을 날릴때는 당연히 얼레를 잡은 손은 연줄을 풀어야 할 때 풀고 당겨야 할 때 당길 줄 알아야 하는 법. 그렇다면 나도 내 손에서 언어를 풀 때는 풀고 당길 때는 당길 줄 아는 시인이어야겠다.
s****a 2001.02.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