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어 읽게 된 책이다. 별로 이채롭거나 특이한 제목은 아니지만, 제목이 대체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어서 궁금증이 생겼고, 결국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과 당시 유행했던 소설을 결부시키고 있다. 요컨대 당시 베스트셀러의 내용적 특성이나 공통점을 살펴보면 당대의 사회적 인식과 일반적인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데, 이것이 프랑스 혁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학과 사회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대의 독자이고, 독자는 사회와 유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이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든 문학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든 간에 둘은 연관되어 있고, 하나를 통해 다른 하나를 읽어낼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저자는 유명 소설 한두 편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다기보다, 당대의 문학 유행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당대 프랑스의 문학에서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고아인 경우도 많고, 아버지가 있는 경우에도 주인공과 함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정신적 성장을 하는 것을 중시했던 당시 문학에서 기성권위의 표상인 아버지는 껄끄러운 존재였고, 대놓고 맞서지는 못했지만 '치워버리는' 것으로 처리했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많은 문학작품에서 아버지가 부재하는 것을 들어, 아버지를 더 이상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 사회 풍조와 연관시킨다. 한 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용인하는 데 이르렀고, 이런 인식이 전통적 의미에서 국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왕을 처형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기념비적 저작이 역사적 선도자 역할을 했다는 것은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는 패턴이고, 문학에서도 그런 사례는 종종 있다. 그러나 대개는 목적의식이나 주제성이 아주 뚜렷했고, 계몽주의 문학 등 지극히 정치적인 서적인 경우였다. 전적으로 문학적인 관점에서 쓰였고 독자들도 순수문학작품으로 받아들인 책이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미진하다.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고, 베스트셀러 문학이 역사적 흐름을 알게 모르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제에 맞추다 보니 별로 유명하지 않은 소설을 인용하기도 하고 유명한 소설에서는 지엽적인 면을 다소 자의적으로 해석한 면도 없지 않지만, 프랑스 대혁명을 독특한 시점에서 접근했다는 점과 풍부한 자료를 통해 연구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
|
블로그 하기 전, 조한욱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책은 다 읽던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한 십년 만에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와 너무도 달라 나 자신이 어리둥절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약간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다. )
이 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토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제 시간이 꽤 흘렀으니 새롭지 않게 되었지만)을 보여준다. 저자는 <토템과 터부>를 토대로 혁명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가부장적 존재로 여기던 국왕을 처형함으로써 어떻게 아버지 살해를 통해 형제애(박애, 라고 주로 번역되는)를 추구하고 왕비를 새로운 희생양으로 삼아 가족 구조를 복원하는가에 대해 고찰한다. 당시 프랑스 민중의 집단 무의식을 소설이나 포르노그라피 등의 인쇄물을 통해 분석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4장 나쁜 어머니'편에서 가족 로망스 차원에서 마리 앙트와네트에 대한 공격을 분석한 부분은 프랑스 혁명사나 여성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절판인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
공화파의 남성들이 마리 앙투와네트를 처형했을 때, 그들은 단순하게 반혁명의 지도자를 벌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캐롤 페이트먼이 논하듯 어머니들을 공적 행위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스스로가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탄생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중략) 요컨데 그들은 가부장적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의 살해에는 인격적인 중상비방이 거의 뒤따르지 않았다. (중략) 공화주의적 덕성이라는 이상은 남자들간의 형제애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여기서 여성은 가정의 영역으로 추방되었다. (중략) 마리 앙트와네트 및 공적으로 활발한 다른 여성들을 공격함으로써 공화파의 남성들은 서로간의 유대감을 강화시켰다. - 본문 171 ~172쪽에서 인용
하지만 열 살 더 먹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사드의 텍스트는 포르노그라피와 정치 간의 나약한 연결고리를 파괴시키려고 위협하며, 이 과정에서 공화주의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위협한다(본문 190쪽에서 인용)"라는 사드 부분 분석은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가족 로망스'라는 개념이 새로운, 가부장적 권위에서 벗어난 정치 체제를 상상해보기 위한 창조적 노력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아버지의 권위, 아버지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늘, 역사와 문학은 출발하는 법. 한 인간 역시.
|
|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하나의 ‘분석’이 아닌 프랑스 혁명이라는 ‘신화에 대한 일종의 해석’으로서 그동안의 정치적 혹은 사회 / 계급적 관계와 의미에 중점을 둔 분석들과는 달리 조금은 다른 방식과 각도에서 프랑스 혁명을 들여다보고 있다.
본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저자인 린 헌트는 굉장히 적극적인 방식으로 프랑스 혁명을 해석하고 있고, 린 헌트의 해석 방식에 대해서 입장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나타낼 수 있기는 하겠지만 분명 이전의 다른 방식들에 비해서는 흥미로운(물론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어차피 해석이라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얼마나 설득력 있고 독창적인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린 헌트의 해석은 그동안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른 해석들에 비해서는 충분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그중에서도 집단무의식과 아버지의 죽음, 종교 및 상징적 권위의 등장과 그 기원에 집중하고 있는 ‘토템과 타부’)을 토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고, 그 해석의 핵심은 ‘가족 로망스 / 가족 이데올로기’이다.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질적 / 상징적 권위의 대상인 아버지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애정으로 인해서 ‘아버지 살해’라는 실제 / 신화적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종교, 법 등이 생겨나게 되며,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사회의 핵심 원칙이 생기게 된다는 논의인데, 이와 같은 논의를 프랑스 혁명에 대입해서 린 헌트는 논의하고 있고, 혁명 당시의 프랑스 민중과 혁명을 이끈 이들의 무의식과 정신구조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으며 국왕을 죽임으로써 생겨나는 당혹스러움과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혁명이 제시하(려고 하)는 하나의 신화를 프로이트의 논의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국왕과 왕비라는 상징적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상징적 의미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권위와 가부장적 틀이 붕괴되어 나타나게 되는 정신적 사회적 혼란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고, 새로운 권위와 가부장적 틀을 만들어내고 가족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즉,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정치 체제에서만의 혁명이 아닌 정신구조에서도 혁명이 완성되었다는 방식으로 (기존의 신화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제시한다는 방식으로)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고 있다. 결국 존재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아버지를 등장시키는 과정으로 혁명을 해석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국왕 루이 16세가 갖고 있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상징성과 함께 그가 보인 정치적 잘못들로 인해서 어떻게 민중들이 실망하게 되고 그의 권위가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추락하게 되는지를 분석하며, 결국 국왕을 사형시키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라 정신구조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위해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논의에서의 상징적 아버지가 갖고 있는 중요성 그리고 사람들이 국왕을 어떤 아버지로서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당시에 발표된 소설과 그림들을 토대로 자신의 해석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상징적 아버지로서의 국왕이 어떻게 그 상징성을 박탈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국왕이 사형 당함으로써 발생되는 (상징적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공백을 민중들이 그리고 국왕을 사형시킨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당시의 신문과 소설 그리고 그림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던 사람들의 연설과 언급을 통해서 확인시켜주고 있고, 이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논의를 토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아버지)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를 내세우기 위해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어떤 무의식적 반응과 그 무의식적 반응을 실제 정치적 혹은 사회적 행동에 옮기게 되는지를 앞서 말했던 소설, 그림, 정치적 발언과 연설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남성적 혹은 가부장 적인 질서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여성 /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 / 국왕을 죽임으로써 갖게 된 혼란은 국왕의 아내였던 왕비 /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반감과 함께 국왕을 죽였다는 죄의식이 겹쳐짐으로써 왕비 /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은 보다 깊어지고 이와 함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 또한 이전 사회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강화되어가게 된다. 이러한 (여성을 배제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면서 어떻게 남성적 질서가 재구성 되는지 분석하면서 그 배제의 과정과 죄의식의 형태가 매우 ‘성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성성을 강조하고 여성성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으며, 성적인 방종과 혼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다고 저자인 린 헌트가 주장하고 있는 사드의 소설 ‘규방 철학’에 대해서 논의하며 사드가 얼마나 프랑스 혁명이 갖고 있는 성적인 의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냉소적인 논평을 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전복적이며 노골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사드를 통해서 혁명이 갖고 있는 성적인 혼란을 다루고 있으며, 그 혼란을 정리하고 안정을 찾기 위해서 어떠한 정치 / 사회적인 모델이 제시되는지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게 하고 있다.
새롭게 제시되는 가부장적 그리고 남성적 질서는 이전 사회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그러한 질서가 제시되는 방식과 질서가 안겨주는 안락함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제시되는 질서가 갖고 있는 안락하고 가정적인 형태에 대해서 분석하며 자신의 논의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상징적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나타난 혼란과 당혹스러움이 성적인 혼란과 여성에 대한 배제로서 나타나고 새롭게 제시되는 질서를 통해서 남성성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완성시킨다는 린 헌트의 해석은 흥미로우면서도 배제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는 달리 별도의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린 헌트는 프로이트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의 해석이 결국 프로이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프로이트의 논의를 옹호하게 되고 있고, 이로 인해서 린 헌트의 입장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린 헌트는 혁명 이전의 질서와 이후의 질서 모두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고, 여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프로이트의 논의가 갖고 있는 가부장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의심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비판과 의심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만 있다. 그저 불만스러움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어떻게 그런 분석과 해석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혹은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안도 하지 못함으로써 그 신화와 해석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린 헌트 본인으로서는 함정에 빠지게 되어버린 것 같다.
|
| 프랑스혁명을 프로이트의 '가족로망스' 개념을 통해서 새롭게 읽어보는 책이다. 린 헌트의 새로운 역사적 시각이 책을 읽기 전부터 슬그머니 기대되었던 것은 이 책의 번역자가 신문화사를 전도(?)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조한욱 교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몰락과 못된 어머니상, 그 가운데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해야만 하는 고아로서의 당대인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이 새로운 가부장제의 성립이라는 것을 논증해가는 린 헌트의 시각은 상당히 색다른 접근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세미나를 목적으로 읽었던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드가 주제로 나오는 장이 아닐까 싶다. 성적 자유를 주장하고 결국에는 '모든 성의 창녀-당시의 거의 유일한 공적여성인 성매매 여성-화'를 주장하는 그에게서 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는 프리섹스주의자들의 입장을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여성들의 정치세력화를 억압했던 당시 지배적 남성 혁명가들의 '형제애-박애라고 알려졌던 것'를 신체적 접촉(동성애)까지 하라며 깎아내리고 그들이 그렇게 겁냈던 양성의 동질화를 포르노그라피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사드의 모습을 린 헌트가 정말로 재미있게(아주 흥미로운 그림들까지 동원하면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 마지막으로 책은 하드커버와 일반판 가격이 똑같으니 잘 보고 구입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단다. |
|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는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역사책 때문이었다. 이 책의 번역자 또한 조한욱 씨이다. 책세상이라는 출판사에서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는 제목으로 문고판을 저술하기도 한 번역자의 주요 관심분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되는 역사책이다. 역사적인 진실(사실 좀 우스운 단어이기는 하지만)을 생각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소재를 통해 밝혀내는 신문화사적인 역사 서술의 진미(眞味)를 잘 보여준다.
이 책 역시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개략적인 지식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가족 로망스' 그리고 사드 후작의 작품 경향 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저작이다. 물론 이 책의 장점은 단순한 지적인 흥미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역사'라는 학문적인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심도 있게 조명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게다가 일반인들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소프트한 소재를 통해 심도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상아탑에 갇힌 학문'과 '대중적 학문'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린 헌트는 이 책에서 프로이트의 '가족 로망스'와 '형제들의 아버지 살해'라는 두 가지의 모티브를 프랑스 혁명의 분석틀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약간 다르다. 프로이트가 사용한 가족 로망스가 부모에 대한 자식의 환상에 근거한 반면 린 헌트가 바라보는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는 구시대(앙시엥 레짐)의 가족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로망스이다. 또 <토템과 타부>에서 나오는 '형제들의 아버지 살해'는 프랑스 혁명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트를 처형한 후 등장한 형제애-보통 박애(博愛)라고 번역되지만, 여기서는 형제애로 번역되었다-의 등장과 가족적 질서의 회복으로 바뀌고 있다.
내 나름대로 저자의 서적을 프랑스 혁명의 발생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변천사를 보이고 있다.
제 1시기(구시대 모순의 심화기) : 당시 프랑스에 퍼져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관념은 '권위와 자애'였다. 왕에 대한 비판이 들끓던 시기였지만, 그 비판의 기준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폭군(暴君)과 같은 아버지에 비유한 비판이 주종이었다. 또한 어머니에 대해서는 지나친 음란함에 대한 비판이 주종이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인식구조에는 "국가=가족"이었고,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왕이 왕답지 못하고, 왕비가 왕비답지 못한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있다.
제 2시기(프랑스 혁명 당시) : <토템과 타부>에 나오는 아버지 살해 모티브가 강하게 풍기는 부분이다. 왕을 단두대로 보낸 아들들(공화주의자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파묻었다. 왕이 '하늘에 계신 거룩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난 후, 그들은 왕을 처형한 날마다 모여 자신들이 부친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이 때 아버지를 죽이고 난 후 형제들 간에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된 윤리적 가치가 바로 '형제애'였다. 당시의 가족에서는 아버지가 사라졌고, 가족의 중요한 원칙은 평등과 형제들간의 우애였다. 또한 여자들을 독점하고 난 후 여성에 대한 금욕주의적 윤리를 갖게 되었다는 프로이트의 설명대로 혁명의 주체세력은 모든 공공 영역에서 여성들을 추방했다. 이제 여성들은 사적 세계로 격리되었으며, '정숙함'을 강요받게 되었다.
제 3시기(프랑스 혁명의 붕괴기) : 이 시기는 로베스피에르 사후부터 나폴레옹의 등장 이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당시 혁명의 열기가 한창이었을 때의 경건주의와 엄숙주의는 사라졌다. 이 시기 여성들의 위치 역시 조금은 성장했으나, 과학과 학문의 이름으로 강한 제재를 받았다. 여성들이 교양을 쌓고 공적인 영역에 대해 관심을 보여야 할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갖가지 이데올로기들이 여성들을 강요하면서, 프랑스 혁명과 함께 붕괴한 가부장적 가족 질서는 재건되기 시작했다. 공적 영역에서의 우두머리로서 아버지가, 그리고 아버지의 신민(臣民)으로서 아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매개해 주는 존재로 어머니가 역사의 호명(呼名)을 받았다. 새로운 형태의 가부장제, 이것이 제 3시기의 핵심이다.
제 4시기(나폴레옹의 등장과 가부장제의 재확립) : 이 분야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다. 대신 에필로그를 통해 저자는 가부장제도와 가족관계(가족 로망스와 부친 살해)가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유용한 잣대로 사용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또 제도와 문화가 갖는 정치사적 의미를 보여주며, 역사가 단순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진보적인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급진적인 보수성을 파헤쳤다는 것이다.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형제애)'라는 진보적 이념을 포방했으나, 그 이념이 추구한 것은 남성들만의 공동체였고, 과거보다 남녀차별의 벽은 더 높아졌다는 사실은 혁명성과 보수성 사이의 벽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수많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 혁명이 가진 시대적 한계랄까 뭐 그런 것이 깊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지나치게 강요한 나머지 보수성에 대한 강조가 지나치게 두드러진다. 특히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회고>에 대한 해석과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부분을 유비(類比)적으로 해석한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해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록 저자가 버크의 역사관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 혁명의 반동성과 보수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재미있는 역사읽기' 속에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지.....
게다가 사드 후작의 포르노그라피의 정치적 분석에 대해서는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사드의 소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과연 그 소설이 당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는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사드의 소설을 버크와 루소, 로크의 저작물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 역사를 제도사, 정치사적인 면에서만 초점을 맞춘 다른 역사서적들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의 층위를 두껍게 했다는 그의 시도는 충분히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인상깊은구절] 1797년에 출판된 한 팜플릿에서는 가족의 권위와 사회질서간의 연결관계를 다시 한 번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결혼은 가족의 통치를 준비하고 사회질서를 가져온다. 결혼은 질서에 필수적인 복종을 확립시킨다. 아버지는 힘에 의하여 우두머리가 된다. 어머니는 온화함과 설득력으로 중개자가 된다. 어린이들은 신민이고 자신들의 다음 차례가 되면 우두머리가 된다. 여기에 모든 정부의 원형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