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만하의 시는 내 마음의 성벽을 공략하고 있었다. 조금씩 성벽은 허물어져갔다. 길은 산자락을 따라 시내처럼 흐르고 있었다. 벼랑은 잘린 언덕줄기의 속살이었다. 통곡의 벽을 바라보듯 나는 벼랑 앞에 섰다. 흑표범의 눈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는 지층. 바위는 조용히 기억하고 있었다. 쓰러지는 양치식물의 숲. 아우성치는 맘모스의 마지막 울음소리. 쌓인 시간의 무게 밑에서 목숨은 진한 원유로 일렁이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바위의 적의를 느꼈다. 바위는 기다리고 있다, 인류의 멸망을. 찢어진 바위틈에서 갈맷빛 물이 솟구쳐 바다가 되고 부스러진 스스로의 피부에서 다시 풀밭이 일어서서 눈부신 고함을 지르며 연둣빛 바람을 흔드는 부활의 순간을. -「바위의 적의」全文, 14쪽. 시집의 두번째 시를 읽고서 나는 오래 지체하였다. 길다랗게 여백에 느낌표를 해두고 다시 읽었다. 또 다시 읽었다. "갑자기 나는 바위의 적의를 느꼈다." 이렇게 절묘하게 '갑자기'라는 부사가 들어간 문장을 나는 알지 못한다. '갑자기'는 본래 뜻이 그런지라 뜻밖의 순간에 급작스레 등장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갑자기'의 앞과 그 뒤는 상당한 비약이 존재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갑자기"가 화자의 허를 찌르면서도 자연스러운 궤도에 편입되어 있다. 때문에 여기에서의 "갑자기"는 뜻밖의 등장이면서도 비약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 파동은 그렇게 나의 허도 찔렀다. 만물에 생명이 있음을 나는 한순간 깨달았다. 잊어버렸다. 또 깨달았다. 잊어버렸다. 시가 자꾸 내 감각의 끄트머리를 건드렸다. 비가 빛나기 위하여 포도가 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돌의 포도. 원수의 뒷모습처럼 빛나는 비. 나의 발자국도 비에 젖는다. 나의 쓸쓸함은 카를교 난간에 기대고 만다. 아득한 수면을 본다. 저무는 흐름 위에 몸을 던지는 비,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물안개 같다. 카프카의 불안과 외로움이 잠들어 있는 유대인 묘지에는 가보지 않았다. 이마 밑에서 기이하게 빛나는 눈빛은 마이즈르 거리 그의 생가 벽면에서 보았다. -「프라하 일기」부분, 27쪽. 카프카의,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흑백 사진이 떠올랐다. 비는 "저무는 흐름 위에 몸을 던"져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흐름"은 무엇일까. 포도는 鋪道일 것이다. 미로迷路인 포도. 길은 유사有辭이래로 오랫동안 삶을 지칭하였다. 비올 것 같은 카프카와 그의 묘지, 그리고 비에 젖는 화자의 발자국이 지속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죽음이다. 그런 죽음을 알리는 이미지는 시집에 줄기차게 제시되어 있다. 그는 죽음과 시적으로 동화된다. 박남수 시인의 죽음을 쓴 것으로 짐작되는 시가 「새」「하늘」「데스 마스크」「한 시인의 데스 마스크」「내면의 바다」「독」 등 6편 이상이다. 이 여섯편의 시들은 그럼 어떻게 된 것일까. 그가 자신을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계시키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두 시인은 죽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시의 등」(71)에서는 아예 "먼 섬나라에 사는 사람의 죽음이 나의 일부를 죽인다"고 선언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 죽음에의 동화는 그의 시를 시로 만들었다. 그는 "언어의 그리움은 / 섬처럼 외롭다. / 언어는 침묵을 그리워한다."고 「오베르의 들녘」에서 적고 있다. 사실 시란 가장 구차한 삶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죽음을 시쓰려고 하지만 살아있지 않으면 시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절대로 죽음을 그대로 설명할 수 없다. 시의 역할은 그게 아니다. 시가 설명한다면, 이미 시가 아니다.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형용사로 이야기한다. 요원들의 암호처럼 그것은 아름답다. 가령 A가 '쓸쓸한' 하면 B가 '부드러운'이라고 말한다. 이따금 섞이는 프랑스 말 비음같은 우아한 어법으로 메시지를 교환한다. 물론 알타이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언어 체계다. 목적을 위하여 혹사된 언어는 이제 피로하다. 반란하는 언어는 물푸레나무 향 같은, 들길 연둣빛 쑥내 같은, 의미와 은유를 떠난 새로운 시스템이다. -「안개를 위한 에스키스」부분, 117쪽. 시의 언어는 의미로부터 도피하여 메시지를 교환한다. "프랑스 말 비음"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서 언어는 음성에 더 바탕을 두고 있다. "쓸쓸한"이나 "부드러운"도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두 단어는 순수하게 음성만을 따져보아도 어딘지 "쓸쓸한", 어딘지 "부드러운"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시집을 통독해보라. 어딘지 "죽.음."이 전달되지 않는가? 잡목림 마른 풀섶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늙은 엽사는 흰 눈가루를 털며 말했다. ―상처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 밤새 모국어의 가시에 상처입은 나는 흰 눈 위에 핏자국을 남긴 사슴의 최후의 점프를 생각하며 걸었다. 바다처럼 번득이는 언어의 슬픈 물빛을 찾아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아린 혼의 무게를 부드럽게 짚어주는 은빛 지팡이. 피는 붉은 것만은 아니다. 피는 울음처럼 맑을 수 있다. 흰 꽃잎이 눈송이처럼 무너지고 있는 눈부신 길을 걷는 나는 나의 상처다. -「상처」全文, 129쪽. 그렇다면 그의 시는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쓴 '생채기'일 것이다. 붉은 피가 엉겨붙어 지저분한 상처가 아니라 맑디 맑은 사슴의 눈같은 상처. 그러고보면, 이 시집의 길 맨 처음에 만났던 바위의 메시지가 바로 상처이고 죽음이 아니었던가. |
| 카이로, 사하라, 코네티컷, 프라하, 신현, 지리산 등 다양한 국내외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지구, 우주, 바다, 강, 시내, 호수, 산, 다양한 공간들이 등장한다. 고대, 중생대, 현대, 그리고 옛날과 현재, 다양한 시간 속에서 이들이 기하학, 진흙, 의학과 섞여 심연 속에 있는 존재의 의미를 시인은 마치 잠수부처럼 끌어올린다. 모든 생물, 무생물, 물질의 삶의 의미들이 건져 올려지고, 거기서 강은 사막에서 죽고,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명제를 퍼 마신다. 내면의 심연 속에서 시인은 고고학자처럼 수많은 지층을 들썩여가며 생명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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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 다음날,친구와 약속이 생겼다.얼굴도 오랜만에 볼겸,책구경도 할 겸해서 서점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리 기웃,저리 기웃(사고 싶은 책은 왜 그리도 많던지..)책구경을 하다가 여타의 시집과는 어딘지 다른 딱딱하고 두꺼운 시집의 껍데기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시집을 살까말까 망설였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라는 제목이 세로로 쓰여있고 개미처럼 작은 글씨로 '프라하 일기'전문이 역시,세로로 앞표지에 쓰인 시집의 외양이 우선 맘에 들어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시인의 말처럼 "시의 순결이 사라지고 있는 이 무잡한 시대에 시집없는 시인으로 남는 것이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한 때문일까..
이 시집은 허만하의 첫 시집 이후 30년만에 세상에 나온 책이다. 문학평론가 김우창의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 '보려고 하는 의지'가 남다른 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집안에 담긴 약 65편의 시는 총 여섯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허만하의 시는 시인의 구도자적,순례자적 모습에서 '류시화'와 어딘지 닮아 있고 시의 난해성에 있어서는 '이상의 시'를 보는 듯하다.
그의 시세계는 이 시대의 주류로부터 어딘지 비껴가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하지만 그러한 시인의 구도자적이고 주류를 비껴선 모습을 동감하거나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 별의 해안선을 씻는 푸른 물이랑이 사라진 뒤 눈은 다시 초여름 술처럼 타오르는 연둣빛 불꽃이 된다.돌이 된 달의 분화구에 꿈의 검은 물을 붓고 숲속의 새처럼 들뜨고,말은 다시 눈먼 어둠으로 되살아난다.
<시인의 등> 中..
허긴, 30년을 통해 습득한 삶의 의미나 진리를 시집 한권을 다 덮었다고 모두 알아버리길 바란다면 그 또한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태한 발상인가 싶기도 하다. 눈오는 늦은 오후 차 한잔을 앞에두고 시집을 덮으며 시인이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고 말한 문구가 가슴속에 깊이 각인이 되어 잠시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몇번이고 입안에 뱅긍뱅글 맴도는 말을 씹다가 문득,그것은 어쩌면 시인의 바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언어는 기대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수직으로 선다
중천에 얼어 있는 눈부신 햇살처럼.
외로움의 절벽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섬.
<장미의 가시ㆍ언어의 가시> 中..
창조하는 정신은 언제나 상처입는다.
<創자에 대하여> 中..
위에 그의 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는 의미는 세상에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꼿꼿한 눈과 곧은 가슴으로 시를 담고 싶어하는 시인의 의지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육질은 씹으면 씹을 수록 그 맛을 알고 평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시에 대한 나의 느낌을 이 자리에서 모두 말한다는게 어쩌면 무리가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인상깊은구절] 시인의 언어는 기대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수직으로 선다 중천에 얼어 있는 눈부신 햇살처럼. 외로움의 절벽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섬. 시인을 찌른 것은 장미의 가시가 아니라 언어의 가시다 그의 언어는 짓밟힌다,꿈에 시달린다,앓는다, 그의 눈은 앓는 언어다 그는 앓는 언어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