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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고독한 삶, 뭉크 작품의 원천
‘절규’로 유명한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삶을 보면 마치 죽음이라는 향기가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 “다섯 살 때[1868년] 어머니[Laura Bjolstad]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열세 살 때는 (가족 중 가장 각별했던) 누이 소피에(Sophie)마저 폐결핵으로 목숨을 잃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뭉크의 아버지[Christian Munch]는 견디기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매달렸다. 그리고 뭉크에게 엄격한 종교적 생활 방식을 강요했다. 병약하기까지 했던 뭉크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정 학습을 받았기 때문에 교우 관계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더욱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게 된다.” [p. 21] 그러한 사실만 보면 그의 앞에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 자신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과 여동생 라우라의 정신병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뭉크의 “어린 시절엔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사랑을 갈구하고 그에 집착했다. 비극적 이별과 좌절을 겪고, 병마에 시달리면서 정신병을 앓기까지 했다. 공황 장애, 우울증, 불면증, 정신 분열, 불안 장애, 환각, 피해망상 등의 정신병적 증상들은 뭉크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과 불행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p. 14]
청춘, 사랑과 방황
21살이었던 1885년, 뭉크는 보레(Borre)에서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보내다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밀리 타우로브(Milly Thaulow), 이미 한 남자의 아내였다. 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두 자유로운 영혼들의 앞에서는 그런 제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뭉크의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녀가 자신이 고른 이와 두 번째 결혼을 했을 때, 그녀의 옆에 선 사람은 뭉크가 아니었다. 그렇게 뭉크의 첫사랑은 성냥개비의 불꽃처럼 확 피었다가 화상만 남기고 사그라졌다.
<이별>
출처: <뭉크>, p. 43
뿐만 아니었다. “1889년 11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뇌졸증으로 마비가 와 곧 세상을 뜨고 만다. 화가가 되기로 한 뒤부터 아버지와 마찰이 잦았던 뭉크는 아버지에게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죽음 후 뭉크 가족의 불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버지의 수입에 의존하던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뒤따랐고, 곧이어 여동생 라우라의 정신병이 발병하여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된다. 카렌 이모가 부업을 하고 막냇동생 잉게르가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지만 집안의 맏이로서 뭉크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화단에서 인정받고 화가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뭉크를 짓눌렀다.” [pp. 44~45]
아이러니하게도 뭉크의 이러한 20대의 방황은 혁신적인 예술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고, 자기 내면의 심연으로부터 그림의 대상을 찾았다. 대표작 <절규(The Scream)>를 비롯하여 <마돈나(Madonna)>, <불안(Anxiety)>, <아픈 아이(The Sick Child)>, <이별(Separation)>, <키스(Kiss)> 등의 모티프를 그는 몸소 겪은 경험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마치 그림으로 된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p. 14]
뭉크의 혁신적인 예술
뭉크는 여러 가지 혁신적인 시도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째, “뭉크는 하나의 모티프를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번 그리는 것을 즐겼다. <절규> 또한 4개의 버전과 판화본이 존재한다. 동일한 제목에 같은 모티프를 가졌지만 디테일에 있어서는 4개의 버전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p. 68]
<절규>(1893)
출처: <뭉크>, p. 12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게 알려진 버전이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에서 보관하는 1893년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절규>의 얼굴은 대부분 이 버전에서 기인한다. 판지에 템페라와 크레용으로 그린 이 그림은 잘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화면 오른쪽에 덧붙여 확장시킨 부분이 그것이다.” [p. 68]
또 다른 <절규> 가운데 2개를 뭉크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뭉크 박물관은 판지에 크레용으로 그린 1893년 작과, 판지에 템페라와 유채로 그린 1910년 작의 두 가지 버전을 소장하고 있다. 1893년 작은 크레용의 터치가 거칠고 건물과 배가 없다. 디테일이 약해 아마도 연습 버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1910년 작은 템페라와 유채로 그려져 색이 선명하고 형태가 비교적 견고하다. 특징은 중심인물에 눈동자가 없다는 것이다.” [pp. 68~70]
<절규>(1895)
출처: <뭉크>, p. 70
마지막으로 독일의 미술 수집가 유진 폰 프란케트의 주문으로 1895년 제작된 판지에 파스텔로 그린 버전이 있다. 이 버전은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다른 버전에서는 배경의 길이 자유롭게 채색되어 있는데 반해, 이 그림에서는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매우 정확하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배경의 두 남자를 주목해볼 만하다. 다른 버전에는 두 인물이 모두 서 있다. 그러나 이 파스텔 버전에서는 두 인물이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한 명은 서서 고개를 돌려 피오르를 바라보고 있고, 조금 뒤쪽의 다른 한 명은 난간에 기대어 있다.” [pp. 70~72] 덧붙이자면, <절규>에 앞서서 그 토대가 된 <절망(Sick Mood at Sunset: Despair)>(1892)과 <절망(Despair)>(1894)라는 작품도 있다. <절망(Sick Mood at Sunset: Despair)>
출처: <뭉크>, p. 60
영원한 습작이 된, <아픈 아이>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이처럼 같은 작품을 조금씩 다르게 반복적으로 그림으로써,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형상을 보다 완전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까 소설가 최인훈(崔仁勳, 1936~2018)이 그의 대표작인 <광장(廣場)>(1960)을 10여 차례 개정과 개작(改作) 했던 것과 비슷한,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마음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뭉크가 남긴 많은 글 가운데 그의 예술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문구이다. 뭉크는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처럼 풍경이나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대상을 관찰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 본 것, 자신의 기억을 그리려고 했다. 기억이란 감정과 생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기억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이 화가의 뜻대로 ‘해석’되고, ‘편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3]
둘째, 작품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 지에 관심을 가졌다. 뭉크 예술과 인생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생의 프리즈>는 인간 삶의 여러 모습을 주제별로 엮어 보여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연작 아이디어로 작품의 배치 및 전시에 관한 뭉크의 관심이 빚은 결실이었다.
그가 <태양>과 같이 따뜻한 희망이 넘치는 그림도 그렸다는 점을 알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절규> 하나만 알고 있던 화가 뭉크가 불행한 삶을 살면서 겪은 고독과 죽음을 그림을 통해 승화시키는 과정을 보는 것도 감동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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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규 말고는 뭉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뭉크를 좋아하게 되었다 잘 써진 책이고 구성도 너무 좋다
* 에케베르그 언덕에서 바라본 짙은 노을 사진을 양 페이지에 커다랗게 싣고 다음 장에 이어 절규의 토대가 된 작품 절망을 보여주고 나서 작가가 말한다
신경 쇠약과 현기증을 자주 느꼈던 20대의 뭉크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생각해보면, 이토록 강렬한 색감을 품은 거대한 자연의 모습은 뭉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시각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뭉크는 이 시각적 충격을 청각적으로 자연의 비명이라 표현했고 그 비명을 듣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다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절규라는 그림이다
* 소름 .... 너무 좋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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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비통과 절망, 불멸의 예술로 꽃피다
1. 불우했던 어린 시절
군의관이었던 뭉크의 아버지는 마흔이 넘도록 미혼이었다가 몰락한 선장의 딸인 라우라 비욜스타드를 만나 결혼을 했고 7년 동안 다섯 명의 자녀를 낳을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하지만 뭉크의 어머니는 뭉크의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해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뭉크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크게 상심하여 종교에 심취하였는데 자녀들에게 엄격하고 자주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녀야 했다.
뭉크 또한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만성 기관지 천식을 앓았고 류마티스성 고열로 여러 번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세 살 때는 피를 토하고 환각을 볼 정도라 가족들이 생사를 걱정할 정도였고 결국 학교를 그만 두고 가정학습을 받아 딱히 친구도 없었다. 뭉크의 어린 시절은 외로웠다. 뭉크는 어린 시절 정물이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즐겨 그렸다.
1877년 어머니 대신이자 놀이 동무 였던 누이 소피에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소피애가 죽은 지 13년 이 지난 1890년, 그는 마야와 카를레만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소피에의 죽음을 묘사한다.
뭉크는 소피에의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그림에 빠져든다. 그림을 그리면서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외로움을 잊고 싶었으리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뭉크는 소피에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을 <습작>이라는 이름으로 1886년 가을 전람회에 출품하였지만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훗날 <아픈 아이>라고 알려진 그림을 비판한 다른 작가의 평에 대해 뭉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뭉크는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자신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기술적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뭉크는 <아픈아이>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중심적인 작품을 이끌어내는 씨앗이 되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여러 미술 사조를 탄생시킨 씨앗이 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뭉크는 <아픈 아이>를 모티브로한 작품을 평생에 걸쳐 반복해 그렸다. 그리고 죽음을 그린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집약한 <생의 프리즈>에도 포함시킨 적이 없었다. 뭉크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한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아픈 아이>는 평생 완성할 수 없는 미완의 습작이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2. 거대하고 끝없는 붉은 비명
저자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지적을 한다. 널리 알려진 뭉크의 대표작 <절규>라는 그림의 모티브를 묘사한 노트에는 '절규'라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어 스크리크skrik는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짓는 '절규'보다는 너무 놀라 지르는 외마디 소리인 '비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한다.
또한 소리를 내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자연이다. 인물은 자연에서 들려오는 , 소리 없는 비명을 듣고 있는 것이며, 그 거대한 비명에 괴로워 하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 아마 그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자신이 기억하는 감정'을 그리기 위해 뭉크는 새로운 표현 방법이 필요했고 자신이 겪은 강렬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강렬한 색체를 사용하고 대상을 왜곡시켰다. 뭉크를 표현주의 화가로 부르기도 하지만 엄멀히 말해 뭉크는 표현주의라는 현대 미술 운동에 결정적인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3. 삶과 죽음을 고민하고 그리다
파리에 유학중이던 뭉크는 몽타뉴 휘스라는 주점을 찾는다. 물랑루즈와 비슷한 곳이었던 이 주점에서 검은 피부의 이국적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각성하고 당시 느낌을 글로 남겼다.
뭉크 예술의 또다른 힘은 고독이었다. 1890년 1월 독감의 유행으로 뭉크는 거처를 파리 외곽의 생 클루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뭉크는 이 곳에서 노르웨이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생 클루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단조로웠지만 뭉크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주었고 예술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 때 뭉크는 동일한 주제로 여러 그림을 묶는 연작의 개념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후 뭉크는 예술이 정체된다고 느낄 때 마다 이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고 한다.
뭉크는 1890년대 초반, 자신의 그림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음을 감지하고 그림을 묶어서 본다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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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만큼 인상적인 그림이 또 있을까? 아마 절규와 뭉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뭉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뭉크의 일생에 관해 아는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 호기심이 이 책을 읽게 했다. 이 책을 골랐을 시기에 때마침 난 외롭고 불안했다. 깊은 밤 자다가 눈을 뜨는게 싫을 정도로.. 그때의 날 뭉크가 위로해주었다. 그의 삶의 이야기와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 내가 느끼는 외로움 같은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그렇게 다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공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그렇게 예술을 사랑하게 되는 거겠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시대를 초월하니까. 노르웨이의 풍경을 소소하게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언젠가 노르웨이에 가게 될 날이 온다면 뭉크미술관에 꼭 가봐야지. 그곳에서 실제 그의 그림들의 감정을 직접 느껴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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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종이책 구입합니다. 지난번 <훈의 시대> 이후로 오랜만에 종이책 구입했네요. 요즘엔 소설 같은 경우 대부분 이북으로 구입하고, 종이책의 경우에는 가격 부다이 커서 이것저것 따져보고, 재보고 구입해서 확실히 구입이 많이 뜸해졌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관심 있는 책이 나와 좋았습니다. 에드바드 뭉크의 일대기를 그림과 글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특히 도판이 많이 수록돼서 정말 좋았습니다. 초판 특전인 엽서집도 좋았어요. 특히 <키스>를 보는데 그 푸른빛 도는 느낌이 진짜 몽롱하고 우아하더라고요. 이 책 진짜 최고입니다. 덕분에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전 시리즈 다 카트에 넣어 놓았네요. 좋은 책 출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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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책을 집어들고 이다지도 흥미롭게 읽어 본 경험이 얼마만이었던가? 뭉크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시간이다. "절규'라는 그림으로만 내 머리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던 뭉크, 그의 삶을 통하여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또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향해 살아 갔는지 한참 생각하묘 읽게 된다. 저자의 글 솜씨도 충분히 뭉크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동행 하고플 만큼 좋다. |
|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의 이야기예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삶을 마칠 때까지를 시간순으로 들려줍니다. 컬러 이미지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요. 뭉크의 작품 외에 다른 작가의 그림도 몇 장 있고, 그가 지낸 마을과 거리의 현재 모습을 담은 사진도 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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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전시회를 가기 전 읽고 싶어서 구매한 책이다 뭉크의 일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발바취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뭉크의 삶에 대해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뭉크가 왜 불안해 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시간이 된다면 노르웨이에 꼭 가서 뭉크의 다른 작품들을 보고 싶다 . |
오슬로 여행가기 전에 읽으려고 구매했는데 안 읽었으면 후회할뻔 했네요. 뭉크와 오슬로라는 도시가 어떤 관계인지 그의 작품과 엮어서 읽으니 몰입이 잘되네요. 무엇보다 저자가 공들여서 썼다는 게 여러 대목에서 느껴집니다.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을 정도로 좋은 기획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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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가계를 보아도 그런 생각이 들고. 어머니, 아버지, 누이, 동생들이 일찍 죽고 뭉크보다 오래 산 가족은 막내 동생인 잉게르밖에 없으니, 이 집안이 단명하는 집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는 달리 뭉크는 8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1863년에 태어나 1944년에 죽었으니 우리 나이로 치면 82, 서양 나이로 치면 80인 셈이다. 장수했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인데... 그를 자꾸만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이 그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절규'
뭉크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 그림,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밝은 생각,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뭉크는 이 그림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사람이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랄 수 있는 뭉크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다. 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곳, 그와 교류한 사람들, 그의 사후에 어떻게 미술관이 건립이 됐는지 등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간과했던 뭉크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고 있던 뭉크는 바로 밝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점묘법의 특징을 살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는 것과 벽화를 그렸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