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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얻은 깨달음들을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헤매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주님의 뜻을 전하면서 그들을 참된 아이들로 변화시키는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가 기대되는 책입니다.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해주는 복음, 아이들을 변화시켜 준 복음 등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배워보고 싶습니다. 상처받고 위기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철저히 고민했던 이요셉 목사님의 고민의 흔적이 잘 드러난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나침반이 되어주길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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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는 새벽기도를 해야 돼. 새벽 기도를. 자네 새벽기도는 하고 있나? (p 72) 돈도 잃고 녀석도 잃게 될 것이며 녀석은 그 사소한 잘못 하나에 예수를 만날 기회를 또 잃게 될 것이다 (p 169)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책이다. 나 역시 비슷한 사역을 지금까지 해 나가면서 경험되어진 일들을 다시 책을 통해서 보는 듯 하다. 사실 저자 목사님을 몇 번 만나뵀었고 캠프나 이런 부분에 몇 번 참여했기에 이 책을 사실 읽기 싫었었다. 나의 부족함이 여실히 보일 것이기에. 이 분의 이런 열정이 많이 사라진 나 자신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하지만 서평 책이기에 읽어내려 갔고 나와 비슷한 부분에선 많이 공감하였고 나보다 더 열정적인 모습에선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앞선 두 문장을 뽑아 보았다. 사실 나 역시 경험했던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이래야 하며 특별히 목회자는 이래야 한다는 규칙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있다면 새벽 예배이고 또 하나는 11시 대 예배이다. 나는 사실 2가지 다 못한다. 새벽예배든 11시 대 예배든 아이들이 밤에 술을 먹고 늦게자서 나도 늦게 자고 그래서 새벽예배는 오전 예배로 대체했고 11시 대예배는 저녁 예배로 드리고 있다. 두 번째 문장 역시 나 역시 많은 갈등을 낳은 문장이다. 돈이냐? 아이냐? 사실 당연히 아이인데 내 자신은 어쩔 땐 돈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쳐본 나에게 저 문장이 참 마음에 와 닿았고 참 찔렸다. 글에도 밝혔지만 청소년 사역은 참 별거 없다. 그냥 나가면 된다. 그럼 마주하는 사람들이 다 청소년이다. 특히 심야에 나가면 거의 다 청소년 혹은 술취한 아저씨들이다. 하면 되는데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힘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바로 예수님처럼 완전히 낮아져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예수님을 완전히 사랑하면 그 분을 닮고 싶어 예수님처럼 완전히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 기도해야겠다. 책을 읽은 것이 헛되지 않기위해. 진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진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지막으로 진짜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아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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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는 길은 속한 그 지역에서 죽는 것, 그것뿐이다(108).
<지금 가고 있어>는 거리 위 위기 청소년들을 돌보는 양떼 커뮤니티 대표 이요셉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딱히 위기 청소년 사역을 하리라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새벽 시간에 교회의 잠긴 문을 따고 들어와 술 파티를 벌이고 잠이 든 가출 청소년들과 지하 주차장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지역의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사역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35-36). "교회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내쫓을 것인가,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안정된 교회(!)를 떠날 것인가?", 이요셉 목사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이 질문은 사실 모든 한국 교회 앞에 던져진 주님의 물음이요, 사역의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교회 개척에 뛰어들며 다음세대, 특히 위기 청소년들에게 대한 비전을 공동체 안에서 가장 많이 나눠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전혀 준비되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앞에 몸부림치듯 뒹굴며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이 찾는 아이들은 새벽 술집 거리, 경찰서나 법원에 있는데도, 저는 여전히 세상 속의 교회가 되지 못하고, 교회 건물 안에 갇혀 교회의 생존을 위한 헌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프게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작은 실망과 배신에도 쉽게 사랑하기를 포기했던 내가 누구를 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깊은 좌절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가고 있어>는 교회됨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술집 거리에 서 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렸고, 교회는 세상의 한복판, 세상의 중심에 서 있을 때 가장 많은 일을 했다"는 외침은 교회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심장에 피가 흐르는 통증을 느끼며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직 우리 교회는 무리라고 거부감을 보일지도 모르고, 같은 마음을 품어줄 동역자가 몇 이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읽고 나누고 싶은 책입니다. 이요셉 목사님 안에 부어졌던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도 충만하게 부어지기를 기도하며 말입니다.
복음은 '회복되길 원하나이다'가 아니라 '죽기를 원하나이다'가 맞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세상 가운데 증명되어지는 방법은 희생밖에 없기 때문이다(35).
교회는 먹고사는 삶에 지쳐 있을 때 심적인 위로와 안녕을 얻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살리겠다고 다짐하는 사명적 장소다(113).
사탄이 우리에게 하는 타협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 앞에 쉬운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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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방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수 믿는 이들이 예수의 방법으로 해낼 때, 세상의 가치와 물질 사상이 만연한 곳에서 예수 믿는 이들이 예수의 가치와 예수의 길로 살아낼 때, 이를 통해 복음이 증거된다.(p.33)
# 하기 싫으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할 수 있는 신실함, 하고 싶으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지 않는 결단, 먹어도 되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먹지 않는 거부, 손해 볼지언정, 혹은 죽을지언정 하나님 앞에 더러워지지 않겠다는 굳건함.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순결은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한 정조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p.64)
# 세속화의 방임죄 : 이 세대가 죄와 아픔 가운데 허덕이는 것을 막거나 막을 대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본인들의 신앙만 지키며 살아가다가 결국 세대는 죄 가운데 어그러지도록 내버려두며 묵인하는 것(p.107)
위기의 청소년들,,,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고 유리하는 잃어버린 양과 같은 아이들을 사랑과 복음과 밥으로 다가가는 한 청년 목사님의 이야기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의 고백에서 밝히는 바, 처음부터 위기의 청소년들을 사역하려는 동기나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이 그를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삶 속에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영혼이 위기의 청소년이었고, 그들과 자신의 차이는 오로지 예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하라는 공부 안 하고 철없이 놀기만 좋아해서 집을 나온 아이들? 반항기가 많고 부모의 말을 안 듣고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 그 아이들은 가정이 무너지고 해체되어, 생존을 위해 집을 나와 갈 곳 없는 집에서 쫓겨난 아이들입니다. 책에서 한 가출 청소년은 집에서 맞아 죽는 것보다 밖에서 얼어 죽는 게 속 편하다고 말하기도 할 만큼 상처받은 아이들입니다.
복음과 책임, 그리고 희생,,,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믿는 복음은 무엇이며, 복음에 대한 책임은 무엇인가.
이요셉 목사는 교회가 비행청소년들을 대할 때, 선민의식의 무례함을 버리고, 복음의 사랑으로 대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재판을 받는데, 술 마신다고 버린 자식이라고 방치해버린 녀석의 부모들.. 더럽고 문제가 많고 사고만 쳐서 문제아로 낙인 찍는 학교들.. 이 아이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할 때,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보려고 죄의 영역에 발을 디디는 순간까지 그저 욕하고 손가락질만 하는 어른들.. 복음을 맡고 있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막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이 하나님을 닮아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 안에는 당신을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하며, 그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어야 함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한 영혼에 대한 긍휼함과 애통함, 예수님을 모르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끝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마음.. 그리스도인이 꼭 간직해야 할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다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됩니다! 그 분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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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이러한 소망의 공식에 의하면 현재의 녀석들은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가 없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한 영역이라도 절망이 존재하는 이유는 소망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지 예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p. 80) “14층의 숙소 발코니에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녀석들, 이렇게 무서운데 어떻게 뛰어내렸을까…. 녀석들은 혹시 사는 것이 이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살려 내야 한다. 더 이상 잃지 말아야 한다.” (p. 103) “나쁜 기억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좋은 기억을 그보다 더 많이 남겨 주자. 그리고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그 상처와 나쁜 기억들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큰 힘이 될 것이라 고백하자.” (p. 220) 서평 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야 시간에, 죄악 가득한 거리에서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고자 애쓰는 젊은 목사는 아이들의 호출에 대답할 때면 으레 “지금 가고 있어”라고 남긴다. 그런 그의 말. 내가 오래전에 듣고 싶었던 말이다. ‘지금 가고 있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이 누구보다 강렬하다. 이런 영혼 사랑을 본 적이 없다. 저자의 사랑과 행함은 뭇 사역자에게 부끄러움을 안긴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눈물. 행여 과거에 위기를 경험해본 흔적이 있는 사람은 차마 제어하지 못할 만큼의 감동과 응어리가 교차한다. 위기는 위기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위기 밖에서 보거나 위기를 경험한 이후에 볼 때 위기는 실로 가슴 아프다. 그리고 위기는 위기를 위하는 마음이 커서 서로 연합하지만 간절한 의리와 사랑으로 지속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곳에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 파고든다. 놀라운 사역인데 저자가 그 일을 한다. 지천명을 지나면서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게 부끄럽지만, 새벽 파출소의 공기가 어떤지 떠오른다. 그 아이들이 왜 내 곁에 있었으며 내가 왜 그 아이들 곁에 있었는지도 떠오른다. 고교 시절, 가장 많은 결석일과 가장 저급한 학교성적을 자랑하던 아직 짤리지 않은 전교 최고의 불량스러운 학생은, 교장의 서명만 남은 퇴학 서류가 책상 위에 있을 때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 약속에 책임을 져야 했던 아련한 기억을 오랜만에 더듬는다. 그래서 회복이 어떤 건지, 주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떤 건지 그 감격을 알고 있다. 모태신앙이지만 예수에게 모태를 빼앗겼다고 원망하던 나를, 교회 선생님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선생님의 사랑과 은혜로 여기 이렇게 있으니 위기의 아이들 바라볼 때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컸다. 너희들 마음 내가 안다. 잘 아는데 막상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 마음으로 여태껏 살았으니 이 책을 보며 미안함이 커진다. 받은 만큼 주지 못했음이 죄스럽고 미안해서 지금보다 더 좋게, 위기의 아이들 보는 시선과 눈빛을 온유하게 다듬기로 한다. 이 책은 위기 청소년을 대하는 ‘사역자 매뉴얼’이라고 해도 된다. 그들을 생각만 하는 차원과 전혀 다른 영적 매뉴얼이다. 현장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입체적이다. 저자의 소망처럼 청소년 범죄가 사라져야 하고 위기의 아이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열매를 위해, 복음 아래 앞장서는 저자가 귀하다. 하나님의 시선도 같으심을 믿는다.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는 훌륭한 사명자가 지은 책, 세상을 바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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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아이들을 향한 양떼 목사의 마음 지금 가고 있어 이 제목이 왜 이 제목인지 책을 읽으면서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가고 있어 가끔은 너무 힘들어 때로는 걸려오는 전화를 외면하고 싶지만, 지금 가고 있어 양떼 커뮤니티의 슬로건이자 사역의 중심인 것 같습니다. 듣기만 하는 복음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복음이야기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상처로 상처를 덮는 삶을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흔적으로 상처를 덮는 삶을 살길....' (p41)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 적어도 예수님 때문에 당한 아픔 하나쯤은 있어야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더라 하는 이야기에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복음이야기가 삶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복음이야기가 여기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복음밥 사역일지를 통해서 생생한 사역의 현장의 이야기에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슴아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위험하잖아요. 위험해서 타는 거예요. 어차피 우리는 인생 자체가 위험하게 태어났어요"(p199) 한순간 잠시 멈춤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이 목사님의 최선의 노력이 최소한의 그들의 안전장치가 되어주길 바라는 소망에 응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숙제를 받았습니다. 결국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걱정하다가 죽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다.(p172) 사명자를 흔드는 사탄의 전략에 오늘도 결핍이라는 숙제에 다시금 마음을 되짚어 보기도 합니다. 이해가 아닌 믿음으로 나아갈 때 사명의 자리를 지킬수 있다라는 도전을 마음에 다시 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목사님의 길에 머리가 숙여지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변화로 이 세대를 맞이해야 할 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믿는 사람들에게 받는 이야기가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형화된 사역에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삶이 살아지겠어? 하는 이야기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사역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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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타협은 거창하고 대단하게 오지 않는다. p182 녀석이 말하는 싸움법은 잘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 맞는 것이었고, 잘 피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p186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시작된다" 제도교회가 너무너무 싫어서 스스로 가나안교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 앞에 저자가 던지는 고백은 화살이 된다. 그렇다. 지금 교회는 세상의 집중포화에 너덜너덜해지고 고유의 고귀함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세상을 걱정하던 교회가 어느새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린 암담한 현실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사역자의 이름으로 도저히 갈 수 없는 곳, 사역자들이 거닐 수 없는 시간,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만나기 힘든 아이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인가. 그럼 아골골짝 빈 들은 어디인가? 이것, 저것, 그것 다 빼고 남는 그곳에서 찾는게 우리가 목놓아 부르는 골골짝인가? 이런 허울 뿐인 편견을 버린 저자가 부럽다. 십여년 이상을 청년사역을 한 나로서도 견디기 힘들었던 그 시선과 말들을 꿋꿋이 견뎌내며 그 길을 걷고 있는 저자의 열정이 부럽다. 그런 저자의 첫 주제는 이렇다. '복음을 듣기만 하는 세대' 너무 많이 들었다. 특히나 부모가 교회를 다닌다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들이 만난 예수를.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의 예수는 없다. 모두가 남의 예수만 가득하다보니 삶의 변화가 없다. 아니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뿐 아니라 삶과 행동이 다른 그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아이들의 마음엔 이미 '그런 예수라면 난 안 믿어요'가 가득하니 백번 천번 들어도 변화는 없다.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게 우선인데 자꾸 다른 사람을 보며 정죄한다. 그러다 보니 복음을 듣기만 한다. 우리도 이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먼저 믿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 바르게 믿어야 하고 잘 믿어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예수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 문자로 된 예수가 아니라 삶에서 드러나는 예수를 만나야 하며 그 예수를 믿어야 바르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전도사님이 좋아하니까 찬양을 듣고 우리형이 싫어하니까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아이들의 배려는 도무지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현실을 맞닥뜨리는 나에겐 충격이다. 배려없는 목회자, 교인, 교회가 결국 높은 철옹성을 쌓고 자기들만의 천국을 만들어가다 보니 세상속에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할 교회가 점점 더 세상과 멀어지는 것이다. 배려는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 주님도 그렇게 사셨는데 그 뒤를 따르겠다고 제자임을 자처하는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그리스도인의 타자성'이라는 기독교 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항목을 글로만 배웠지 도무지 마음과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지독한 자기애에 빠진 우리들의 현실 또한 안타깝다. 물론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걸음에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자신의 반기독교적 이성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그것을 쫒기만 했던 나 자신이 떠올라 고개를 떨군다. 주님은 결코 자신이 가시지 않은 길을 따르라고 하시지 않는다. 이미 걸어가신 그 길을, 이미 이겨 놓으신 그 승리의 길을 따라오라고 걸으라고 말씀하신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한채 여전히 세상의 것을 기웃거리는 나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라고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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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고 있어
다음세대는 우리의 미래이기에 너무나도 중요한 세대이다. 그러나 이 세대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신앙에서 멀어지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깨어진 가정과 사회 가운데 잘못된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지만, 바로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인 동시에 너무나 마음 아픈 사실이다.
저자인 이요셉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 청소년 사역의 필요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수 있었기에, 그는 청소년 사역에 올인하기로 했다. 그는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여러 문제로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가족들은 본가로, 자신은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밤과 새벽에 청소년들이 있는 유흥업소, 경찰서등을 다니며, 돈이 없어도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는 모습은 이요셉 목사의 헌신과 섬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보여준다.
<지금 가고 있어>라는 책은 이처럼 이요셉 목사가 사역하면서 느꼈던 점, 그리고 생각들을 함께 나눈다. 또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청소년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왜 이 시대의 다음세대들에게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는가? 고민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부모님, 선생님, 목사님께 들었기에, 들었던 예수는 있지만, 정작 내가 만나고 인격적으로 경험한 예수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인정하며 매순간 그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복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복음은 나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증인들의 고백이며, 증인은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리고 성경은 이 증인들을 가리켜 제자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고, 더 나아가 주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또 다른 제자들을 길러내기 원하신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모습이다. 이 시대의 복음은 입으로 전해서 귀를 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서 가슴을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예수 이외의 각자 기뻐할 소식이 많은 세대는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복음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삶으로 복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상이 보기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위한 자기 희생적인 삶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도해야 한다. 전도와 관련된 이 문구는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전도는 교리나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신앙을 가지도록 인도하는 일이다. 전도는 전류가 물체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을 통해 옮아가는 현상이다 전도의 시작은 교회의 억압이나 해야 하는 의무감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내가 먼저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충만해지면 도저히 할 수 밖에 없도록 되는 것이다.“
그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왜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묻게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도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복음을 보여 주는 삶’이 ‘복음을 전하는 말’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종종 ‘빚진 자’라고 이야기 한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빚진 사람이라는 의미보다는 빚진 죄인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만 한다. 한데 주신 이에게는 갚을 길이 없다. 우리의 어떠함도 그분이 주신 그 십자가의 구속의 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랑의 빚을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빚을 내어 주신 주님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나의 삶 속 누군가에게 받은 그 사랑의 빚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의 아픈 현실을 알수 있었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동역해야 할지 뼈져리게 느낄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전도에 대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전도에 대한 마음을 깨우는 귀한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전도하고, 우리 주변의 청소년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