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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그 후 서울로 올라와, 1898년 이상재·윤치호·이승만 등과 같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독립협회 운동을 계속하였다.
1900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배우는 한편, 공립협회를 세워 교포의 생활을 지도하였다. 1906년, 귀국하여 양기탁·신채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을 찾으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양에 대성학교,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웠으며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사용하고 평양과 대구에 태극서관을 설립하여 출판 사업을 벌였다. 1908년 박중화·최남선·김좌진·이동녕 등과 '청년 학우회'를 조직하여 민족 계몽을 적극 추진하였다.
1911년 총독 데라우치 암살 음모 사건을 뒤집어씌우려 하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191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여 활약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내무총장·노동총판을 지내며 계속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32년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보내어져 대전 감옥에서 3년간 복역한 후 평남 대보산에 들어가 휴양하였다.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으며, 이듬해 서울대학 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죽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저서로 <안도산 전집>이 있다.
도산 안창호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도산 안창호
*우리가 세운 목적이 그른 것이라면 언제든지 실패할 것이요, 우리가 세운 목적이 옳은 것이면 언제든지 성공할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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