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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단언컨대 문(文)의 나라였다. 당연히 책이 중요했다. 무슨 사안이든 책에 적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강박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세계기록유산이다. 책과 기록을 통해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부침을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기록을 우리는 참 잘 모른다. 예들 들어,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같은 책제목은 들어 외우고 있지만, 그와 같은 책을 읽기는커녕 무슨 책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TV에서 자주 보는 신병주 교수가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그렇지만 우리가 그냥 제목만 들었던 책들을 모아놓았다. 대체로 제목은 알고 있던 책들이다. 그렇지 못한 책을 꼽아보면, 오희문의 『쇄미록』, 이건창의 『탕의통략』 정도인 것 같다. 최부의 중국 표류기 『표해록』이나 16세기 선비인 이문건의 손자 양육기인 『양아록』도 낯설지 않다(특별함 때문에 다른 책들에서 몇 번 접했다). 그러니까 대체로는 알고 있는 책들이지만, 그 의미를 하나의 줄로 꿰어본 적이 드문 책들을 통해서 조선이 어떤 나라였으며, 어떤 역사를 통과해 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인 셈이다.
이 비슷한 책으로 기억나는 게 강명관의 『조선 시대의 책과 지식의 역사』다. 그런데 강명관 교수의 책은 책들 자체를 하나씩 소개한다기 보다는 조선 시대에 책의 출판과 그것의 영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이라면, 신병주 교수의 책은 책 하나하나를 소개하면서 저자와 함께 그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비록 전체적인 흐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시기의 책들을 모아놓은 것을 보면 그 시기에 조선이 어떤 데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테면, 1부에서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법령의 정비와 외교 전범의 마련, 기록의 전형 세우기 등을 보여준다(『경국대전』, 『해동제국기』,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책들이 그런 책들이다). 3부를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관련된 책들이 소개되는데, 그 양난을 기억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다(『난중일기』, 『징비록』, 『쇄미록』, 『박씨전』과 같은 책들이 여기서 소개된다). 4부와 5부에서는 성리학의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선의 좌절된 노력과 관련된 책들이 소개되는데, 『홍길동전』, 『지봉유설』, 『반계수록』, 『성호사설』, 『택리지』, 『열하일기』와 같은 책들이다. 조금 의아한 것은 그 시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정약용의 책이 빠진 점인데, 아마도 너무 잘 알려져서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은 왕실에서 나온 책들이 소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인데, 『계축일기』, 『한중록』, 『의궤』,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같은 책들이 등장한다. 솔직히 말하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같이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기록물들이 어떤 식으로 다른 것인지를 여기서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 읽고도 여전히 시원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건 강명관의 『조선 시대의 책과 지식의 역사』에서의 문제의식과 비슷한 것인데, 이렇게 훌륭한 책들을 썼음에도 이 책들이 얼마나 읽혔을까 하는 것이다. 인쇄술의 문제와 유통의 문제, 문자 해독의 문제 등으로 이렇게 훌륭한 책들은 지식층, 그것도 일부에게만 소통되었다. 만약 조선의 어느 시기에 이런 책들이 비약적으로 유통되어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책들이 그저 우리에게 남겨지고, 그 당시에 이런 생각도 있었다고 받아들이고, 지금도 참고할 만하다고 여기는 대신 그 유산이 그대로 우리의 국가, 우리의 삶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