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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미국의 평론가 윌리엄 파프씨가 던진 '진보는 이제 죽은 사상인가'라는 질문에 프랑스의 철학자, 역사가, 정치가, 교사 등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르 몽드'지에 실린 것을 모은 책이다. 필진에는 소설 '나폴레옹'으로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막스 갈로나, 조절이론으로 유명한 알랭 리피에츠, 유럽은행 초대 총재였던 자크 아탈리등이 눈에 띈다. 글이 쓰여진 시기가 세기말인 96년 가을쯤이었던데다가, 동구가 몰락하고 과학기술의 성과만큼이나 그 충격적 부작용이 더 심화되어 보여지는 시기였기에(당시 유럽은 광우병 파동의 여파로 뒤숭숭했다. 물론 요즘엔 조류독감 덕택에 아예 '전세계'가 뒤숭숭한 상황이다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뭇 어두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진보'란 무엇일까? 책에서 언급되는 진보는 단순히 '좌파적'혹은 '민주주의적'사고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물질문명의 혜택 등등을 포괄한 굉장히 넓은 개념이고, 여기에는 어찌되었건 '앞으로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마저 포함된다. 우리가 생각했던 미래가 그렇게 장밋빛만은 아니었음을, 인간이 그의 의지로 만든 세상이 그렇게 인간적이지만은 않음을 목도한 상황에서, 저자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두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윤리적 진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미래는 진보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다는 것. 지나친 비관주의가 책 전반을 엄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들은 한결같이 '의지로 낙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다. 불확실에 직면한 오늘의 세계에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에 맡겨져있다. 우리의 자유는 책임을 묻고있다. 때문에 밝은 미래는, 단순한 몇가지 기획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의'끊임없는 노력과 성찰, 바로 그것 아닐까? |
| 21세기의 도래, 그리고 그 안에서 겪는 수많은 학문, 사상적 위기. 사람들은 그러한 위기를 겪으면서 진보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었나 싶다. 그것은 맑시즘이라 불리우던 하나의 거대한 학문이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과 함께 무너져내리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기초적 학문들이 생산력의 향상이라는 명목 아래 더 이상 중요시되지 않는 것과도 연결되는 일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진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진보는 과연 죽은 사상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에 실린 글에서는 진보사상은 죽었을지 몰라도 진보 자체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 나름대로의 끊임없는 부딪힘, 투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는 결코 죽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살아있는 진보는 저절로 이루어져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투쟁과 끊임없는 반문의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 온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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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물질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반성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과 십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져 왔던 진보성에 대해 이제 우리는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게 되었다. 과연 인간의 문명은 진보하고 있는가?
개인주의의 강화와 과학 기술의 무한한 발전으로 대표되는 진보성의 문제에 대해 이책은 강력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비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가치는 보잘것 없는 것인가? 기술적 진보의 풍요로움에 파묻혀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진정한 회의를 해 보지 않았다.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환경의 문제 윤리의 문제는 더이상 좌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쩌면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과학 기술에 대한 맹신으로 장밋빛 미래만 바라보고 있다면 언제 우리는 이 파괴의 조류 속에 내맡겨져 그들의 희생양이 될 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우리의 정신적 기반을 다시 찾을 때가 되었다. 진보는 과연 죽은 사상인가? 우리는 이 역사적 진보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역자의 말처럼 진보도 캐묻는 자에게만 그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문명의 진보에 대해 20세기 말이 1918년이나 1945년보다도 더 극심한 비관주의를 정당화시킨다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기 위해서는 표상과 실제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문명-서양 문명뿐이 아닌-에 진보가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이 가져다 주는 더 많은 지식, 수명의 눈부신 연장 교육의 보급, 점점 더 증가하는 인구에 주어지는 안락한 삶, 더 많은 민주제도의 존재...... 우리 이전 세대는, 특히 영광의 30년 동안에 이 모든 것들을 실제 손으로 만지듯 분명히 보았다. 모든 것들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역효과를 낳고, 퇴보의 가능성을 막지 못하며 그리고 정당한 우려-핵, 공해, 무장의 확산-를 품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