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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가 미쳐 날뛰고 있다. 아니, 가라앉고 있다. 각종 매체가 부지런히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전혀 생뚱맞은 일도 아니다. 월러스틴이 말했듯,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역사적' 자본주의일 뿐이니. 후꾸야마가 주장한 것처럼 역사의 종언으로써 자본주의는 환상이다.
갈무리에서 나온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는 한국이 외환위기의 충격에 빠져나올 때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고 미묘하게도 지금 상황이 그 때와 흡사하다. 환율은 오르고 주가는 폭락한다. 실업률이 높아질 일은 없을 테다. 이미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노벨 경제학 수상자들이 말하는 대책이 지면에 있었다. 시장에 맡겨라, 안정적인 금융정책을 마련하라, 국가간 협조가 필요하다, 등 새로울 것 없는 말들이었다. 과연 그걸로 될까.
분명 이 책이 작금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만한 혜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갈무리 시리즈답게 좌파의 입장에 선 저자들은 자본주의의 종언과 새로운 체제의 탄생을 반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주류 매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좌파적 도식을 제공해 준다.
이 책이 다루는 시계열은 케인즈주의 때부터다. 케인즈주의나 통화주의 모두 자본주의에 대한 동의는 공통적이다. 다만 케인즈주의는 노동의 권력을 인정하고 그들을 자신의 체제 내부로 포섭하기 위해 복지국가를 제공한 반면, 통화주의는 노동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분배의 주체로서 국가는 나름대로 황금기를 이끈 동력이었다. 균열이 시작된다. 브리튼우즈 체제의 붕괴, 68혁명, 오일쇼크 등이 케인즈주의의 몰락을 불러온다.
예고된 붕괴였다. 맑스가 분석한대로 자본은 내재적인 성격상 초국가적이다. 케인즈주의의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힐퍼딩이 분석했듯, 자본은 금융자본으로의 변혁을 꾀하는데, 금융은 미래에 대한 노동의 착취를 약속한다. 금융의 순환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노동을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착취하냐가 관건이다. '자본론'에서 맑스가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그대로 도입한 것처럼, 어쨌든 잉여가치는 노동을 통해 나오니까. 문제는 자본이 노동을 성공적으로 착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통화주의의 압박은 기업에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국가의 적자정책을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황금기의 이윤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왜. 바로 노동의 불복종적 권력 때문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 현존 자본주의의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위의 논의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된 논지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왔다. 대공황 때 케인즈가, 68년 이후엔 하이예크와 미제스 그리고 프리드만이. 최근의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주장된 통화주의는 화폐가 곧 권력이라는 '화폐의 정치'를 추구한다. 생존권은 화폐 앞에서 평등하다. 돈을 가졌으면 이용하고, 돈이 없으면 벌어라. 국가는 관여하지 말라. 노동은 더 유연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이게 다른 프리드만, 토마스 프리드만이 예찬하는 세계화의 실상이다.
대책은 없는가. EU식의 연대?
글세. 과문하여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