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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김구의 행적이나 백범일지, 이재형의 러시아 독립운동 등 많은 책을 읽었지만, 임시정부 27년의 중국 상해를 중심으로 한 탐방 역사서는 처음이었다. 임시정부 스토리에 김구가 많이 포함되긴 하지만 임시정부 처음부터 김구가 주석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번 책은 김구 이전의 임시정부부터 찾아가본다는 측면에서 내게 매우 유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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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을 걷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상해 지사 주재원으로 부임하는 후배에게 어떤 책을 선물할까 고민하다 선택한 책이다. 우리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하면 대부분 상해임시정부를 떠올리게 되는데, 나 역시도 그랬다. 과거 프랑스 조계지역이자 현재는 상해의 가장 번화한 중심 지역인 신천지 입구 근처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상해에서 거주하며 몇번 방문하여 나에게도 매우 익숙한 장소였다. 그러다가 상해에서 멀지않은 항주와 가흥, 그리고 진강 지역에 출장을 다니면서 그 곳에도 임시정부 유적지가 있다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임시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인데, 왜 중국 도시 곳곳에 유적이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마지막 임시정부 유적인 중경 임시정부청사 방문을 통해서 풀 수 있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사건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활동 때문에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도저히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운영할 수 없게 되어 상해에서 가장 가까운 가흥을 시작으로 중국 장강의 물결을 따라 상류 지역으로 계속 피난을 다녔던 것이었다. 그렇게 가흥과 항주, 진강과 남경, 그리고 장사와 광주를 지나 드디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전시 임시 수도인 중경에 정착을 하게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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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라 하겠다. 역사에 똑같은 사건이야 없겠지만, 특정한 과거 사실이 발생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동일한 행위를 하더라도, 어느 시기에 어느 곳에서 일어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 내가 종로경찰서에 가서 사제폭탄을 던진다면 테러범이지만,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다면 의사(義士)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공간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조건 또한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서울이라는 같은 시공간에서도 밀정이 될 수도 있고, 독립운동가가 될 수도 있다. 누구냐에 따라 사건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역사를 해석함에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사건도 어느 시공간에서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광해군은 조선시대 동안 대국의 의리를 저버린 폭군이었지만, 지금은 중립외교를 펼친 위대한 군주로 평가 받기도 한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도 역사가에 따라, 역사가가 있는 시공간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이 세가지는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자, 영원한 숙제다. 이처럼 중요한 세 조건을 확인할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학문 특성상 ‘과거’의 일을 다루기 때문에, 세 조건이 현실에 남아 있지 않다. 구전, 문자, 사진 등 불완전한 요소들만이 과거와 과거의 틈새를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역사가가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어보지만, 비어있는 간극을 좁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이 있다면, 바로 ‘답사’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찾아가 시도하는 대화다. p.12” 본래의 것들은 이미 사라진 공간을 찾아 간다고 해서 무엇 하나 싶을지 모르겠다. 답사는 역사를 주제로 한 여행이다. 기본적으로 낯설게 보는 일을 동반한다. 낯설게 보는 만큼 상상력을 북돋는 일도 없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과거와 과거의 틈새를 메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은 부제 그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을 걷는다. 임시정부의 한계는 명확하다. “독립전쟁을 하겠다는 점에서 전시정부와 비슷하지만 실질적인 군대를 갖지 못했고, 국외에 수립됐다(p.80)는 점에서 망명정부와 비슷하지만 빼앗긴 나라와 찾아야 할 나라의 모습이 달랐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많(p.81)”았다. 그럼에도 근 30년에 걸쳐 국외를 전전했다.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 고난의 길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많은 고뇌와 삶의 힘겨움이 있었는지는 직접 걸어보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다. 책과 영화로 아무리 잘 표현하더라도, 그 먼 거리를 걸어보지 않고, 그 건물을 만져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 각지를 직접 돌아다닐 수 없기에, 이보다 더 쉽고 편하게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역사라는 학문 특성상 직접체험은 쉽지 않다. 시공간을 넘어 사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역사는 간접체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삶이다. 치열한 전쟁만이 역사가 아니라, 지리멸렬한 일상도 역사다. “까마득한 기나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p.54)” 있음을 깨닫는 방법은 남아있는 흔적을 더듬는 길 뿐이다. “침대에 누웠어도 가시밭이었던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p.225)”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독립전쟁의 표면을 이룬 독립운동가의 투쟁만큼이나 그 속에서 일상을 지켜나간 이들의 고생도(p.523)” 우리의 역사이며, 정정화와 같은 분들도 중요한 독립운동가라는 저자의 인식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체험이다. 전쟁은 야전사령관만으로 할 수 없다. 보급관도 필요하고, 이를 수행할 인력도 필요한 법이다. 이렇게 또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
여기에 머물던 임시정부의 내력도 역사지만 그 내용(p.440)을 확인하고 또 찾아낸 것도 역사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기니 우리도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역사는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p.441
-----------------------------------------------------------------------------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찾아가 시도하는 대화다. p.12 이름, 명예, 자존, 긍지보다는 우선 급한 것이 생활이었다. <장강일기> 어쩌면 적과 싸우는 것보다 앞이 까마득한 기나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p.54 막 출발한 통합 임시정부의 과제는 분명했다. 독립전쟁을 하겠다는 점에서 전시정부와 비슷하지만 실질적인 군대를 갖지 못했고, 국외에 수립됐다(p.80)는 점에서 망명정부와 비슷하지만 빼앗긴 나라와 찾아야 할 나라의 모습이 달랐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은 많은 임시정부였다. p.81 잊지 않아야 용서할 수 있지 않은가. 잊어버린다면, 역사를 잊는다면 그들이 사죄를 해오더라도 용서할 방법이 없다. p.197 침대에 누웠어도 가시밭이었던 그들의 삶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들의 임시정부 답사다. p.225 혁명을 하면서 지도부가 부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른바 국부가 없는 나라도 많다. 더구나 한 사람에(p.359)게서 그 나라의 바탕이 나와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이나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것은 그 초인이 단 한 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p.360 여기에 머물던 임시정부의 내력도 역사지만 그 내용(p.440)을 확인하고 또 찾아낸 것도 역사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기니 우리도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없어도 역사는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p.441 정정화를 가리켜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을 들어 정정화의 업적을 독립운동 전선에서 과소평가하는 이들이 있다. 1~2년 혹은 그보다 짧은 독립운동이라면 적에게 타격을 가하거나 군사활동을 하는 독립운동가의 역할이 중요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몇 년을 넘어 근 30년에 이르는 독립운동은 전쟁과 일상의 결합이라는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p.522) 전쟁이란 일단 일어나면 총력전을 펼쳐 단박에 끝내야 하는 일시적인 사건이며, 일상은 한 사람이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길게 이어지는 장기적인 생활이다. 사건과 생활의 결합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러한 상황이 임시정부에 닥쳤다. 독립전쟁의 표면을 이룬 독립운동가의 투쟁만큼이나 그 속에서 일상을 지켜나간 이들의 고생도 보통이 아니었다. 당시 외부활동에 제약이 따랐던 여성들이 대(p.523)부분 이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독립운동가가 훈포장을 받았다면 옆에서 도운 아내, 드물게 남편도 역시 함께 받아야 한다. p.524 답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던가. p.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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