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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끼던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 어른이 되어... 박서영,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나부끼던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 어른이 되어... 박서영,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내용보기
중2가 되어버린 조카와 얼마 전 잠시 걸었다. 조카의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을 거론하며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신은 그런 것으로 상처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너 거기서 되게 착한 척 하더라, 라고 말했더니 한참을 까르륵거리며 웃었다. 착한 척 하다보면 조금쯤 착해지기도 한단다, 말하려다가 그 웃음 앞에서 그냥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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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가 되어버린 조카와 얼마 전 잠시 걸었다. 조카의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을 거론하며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신은 그런 것으로 상처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너 거기서 되게 착한 척 하더라, 라고 말했더니 한참을 까르륵거리며 웃었다. 착한 척 하다보면 조금쯤 착해지기도 한단다, 말하려다가 그 웃음 앞에서 그냥 멈췄다.

 

나뭇잎

 

거미줄이 낙하하는 나뭇잎을 붙잡고 있다

구름이 검다

눈물이 몰려오는 하늘을 심장이라 하자

바닥에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은

슬픔을 식량처럼 핥아 먹는다

계속 회전하면서

 

축축한 공기가

눈먼 거미 곁을 서성거리는 시간이다

물방울 맺힌 하늘을 절망했고, 절망스럽게

공기가 그린 풍경을 바꿔치기하고 있다

어느 날 잠깐 내 입술이 닿았던

나뭇잎 마른 입술 이야기다

 

꽃놀이 끝난 어느 날에 어린이의 테를 벗어버린 조카와 걷는 봄은 무섭도록 착하였다. 생애 최고로 화가 났다는 절망의 표시를 달고 있던 조카의 타임라인에 깜짝 놀랐던 것이 무색하였다. 조카의 절망은 겉씨식물의 이파리처럼 한꺼번에 우르르 떨어져 내렸고 한순간 어딘가로 쓸려 내려갔다. 조카는 친구들과 공차를 마시고 싶다 하였고, 나는 조카와 그 친구들이 그럴 수 있도록 하였다.

 

“괜스레 선풍기의 미풍 약풍 강풍 버튼을 번갈아 눌러보았다 / 죽기 전에 저 고장 난 선풍기를 먼저 버려야겠다고 / 심장에 몇 마디 꾹꾹 매장해 보는 가을 밤 / 선풍기는 어떤 무늬를 가진 새처럼 울기 시작했다” - <밤의 외로움> 중

 

세상의 외로움들은 정처가 없지만 그래서 대체로 착한 사람들에게 깃든다, 고 생각해본다.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인 아이들이 친구들을 통해서 세상과 만나고, 아이들은 친구들 때문에 외롭고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다. 친구들은 외로움을 저당 잡아주는 전당포이고, 친구들은 외롭지 않은 시간을 대출해주는 은행의 창구이기도 하다. 어떤 어른들은 여전히 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이불 속에 두 손을 넣어 벚나무를 심는다 / 그리고 벚꽃나무를 뽑아버린다 / 죽었다 살아났다 빛과 어둠 나는 모든 풍경에 묶여 있구나 / 소용돌이 속에 손을 넣고 있다 / 당신을 켜고 끄는 건 내 의지가 아니다 / 매일매일 당신을 끄지만, 곧 당신은 켜진다” - <위로> 중

 

떠올리면 도둑맞은 시간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많던 외로움은 어디로 갔을까, 싶다. 골목 끄트머리로 이어지던 계단 그 위로 해가 떨어지던 시간들, 어설픈 블록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담벼락을 따라 뉘엿뉘엿 기울어가던 그림자들, 아무도 모르는 내 전신의 형체가 조금씩 허물어져 갈 때 내 이름을 호명하던 이들, 내가 묶여 있었고 나를 풀어줄 이가 있었던 불멸의 기억들은 어디로 갔을까, 싶다.

 

목련나무 빨랫줄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

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

 

무섭도록 말라 있던 화살나무에 파란 이파리들이 돋았다. 불두화는 세상의 번뇌를 품은 채 풍성하여서 그만큼 세상의 번뇌가 줄었다. 견딜 수 없는 것들에서 새싹이 돋고 시들어버릴 것들이 모른 체 차오른다. 나부끼던 아이들은 모두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인 체 하는 이들이 아이들의 나부낌을 단단히 손에 붙들고 있다. 구멍 나려는 세상이 그 연대로 겨우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박서영 /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 걷는사람 / 135쪽 / 2019 (2019)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9.05.0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