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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마리 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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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마리 루티가 쓴 책으로는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를 읽어봤다. 재밌더라. 그리고 이번 책을 읽고 생각했다. 마리 루티의 저서가 더 많이 한국에 번역되면 좋겠다고... 그녀의 문체는 신랄하다. 솔직하다. 재밌다. 역으로, 내게는 읽기에 부담스러운 저자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메모하고 싶은 구절이 몹시 많아, 기록으로 남기기 힘들거든.# 1이번 책은 제목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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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마리 루티가 쓴 책으로는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를 읽어봤다. 재밌더라. 그리고 이번 책을 읽고 생각했다. 마리 루티의 저서가 더 많이 한국에 번역되면 좋겠다고... 그녀의 문체는 신랄하다. 솔직하다. 재밌다. 역으로, 내게는 읽기에 부담스러운 저자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메모하고 싶은 구절이 몹시 많아, 기록으로 남기기 힘들거든.


# 1

이번 책은 제목부터 세다. '남근'이라니... 약간 야릇한 느낌도 드는 단어이나, 프로이트 심리학을 접한 사람이라면 알 테다. 남근은 인간의 욕구 불만을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라는 사실을. 프로이트 심리학은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데 여성은 남근이 없다는 사실에서 좌절을 느끼고, 남자는 언제 거세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평생 지고 산다. 이런 설명은 수많은 공격에 직면했는데, 여성에 관한 설명이 가치 중립적이 아니라 가부장제 맥락에서 나온 편향된 사고라는 비판도 그 중 하나다. 


# 2

부제의 표현처럼 '명색이 페미니스트'인 마리 루티는 프로이트의 남근선망을 다르게 본다. 설사 대다수 여성이 개인적으로 남근 선망을 인식하지 않더라도, 여성과 남자가 가시적으로 다른 게 남근 딱 하나인데, 고작 이 남근 하나로 모든 권력과 부가 남자에게 쏠리는 게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어찌 여성이 남근을 선망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프로이트가 내세운 가설은, 누구보다 가부장제를 꿰뚫는 분석이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덧붙여 마리 루티는 라캉을 끌고 온다. 그런데 대다수 남자에게 남근은 허상이다. 팔루스는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욕구한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결여한 존재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 자연스레 나쁜 감정이 삶을 관통할 수밖에 없다. 우울, 불안, 억울함, 외로움, 불만, 좌절, 괴로움, 짜증, 환멸 등.


# 3

책에서 저자가 비판하는 결은 여러 층위다. 첫째, 페미니즘 독해다. 가부장제에서 왜 여성이 나쁜 감정에 휩싸이기 쉬운지 분석한다. 둘째, 반신자유주의 독해다. 끊임 없는 성과를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남자 역시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 독해는 자칫 푸코의 논의를 떠올리기 쉽다. 주체는 허상이고, 우리는 치밀하게 형성된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논의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저자는 라캉을 다시 끌고 온다. 라캉은 세계와 맞닥뜨리며 상처받고 좌절하는 주체에 관심을 두었는데, 루티가 보기에 생명정치 논의나 신자유주의적 담론은 주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인간이 마냥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자신의 예를 든다. 이민 가족 출신에 여성인 자신이, 어쨌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 않았느냐고.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가 신자유주의적인 자아계발 담론으로 흐르는 건 아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런 담론이 아니라는 의미다. 저자는 고난으로써 인간은 보다 다차원적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세번째 결이 등장한다. 자신의 나쁜 감정을 어떻게 전유하여 긍정적으로 나아갈 것인지. 마리 루티가 보기에 긍정적인 감정만 강조하는 건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기에 제격이다. 인간이란 늘상 쾌활하고 성실할 수 없는 존재인데, 무한 긍정만으로 살았다가는 언젠간 소진되어 쓸모를 다할 뿐이다. 나쁜 감정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 4

이런 내용으로 본다면, 이 책의 화두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다. 북유럽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대까진 아니더라도 부모의 무관심과 언어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써서, 어느 정도 인정받게 되기까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사상가를 공부했으며 어떤 가치를 중시하며 살았는지에 관한 책이다. 한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그러하듯,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동시에, 프로이트나 라캉, 푸코 등 사상가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묘한 지적 쾌락 - 아, 나도 대학 때 푸코 열심히 읽었지 - 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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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신체기관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는 그 집단의 문화가 부과하는 신화에서 나온다. (19쪽)


남근선망의 또 다른 이름은 분함 혹은 억울함일 수 있다. 니체는 이러한 감정은 약자들이 의지한다고 했다. 맞다. 남근 권력에 대한 이성애가부장제적 환상에 빠진 이들에 비하면 많은 남자들을 포함하여 우리는 약한 조내이고 충분히 분하고 억울하다. 어디 억울함뿐인가. 우울과 불안은 가장 흔한 감정이고, 원통함과 외로움, 불만과 좌절감, 괴로움, 짜증, 환멸감 등등 우리가 의지할 나쁜 감정들은 넘치고 남는다.

그런데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페니스를 문화적으로 물신화한 경향이 역사적으로 우울과 불안 등 여성의 나쁜 감정들을 더 폭넓게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능의 환상 뒤에 숨지 않는 한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렵다. (29쪽)


하지만 내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몸담고 있다고 해서 그 구조를 비판하는 능력까지 무효화시켜야 할까. (37쪽)


일부 나쁜 감정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느낀다는 걸, 우리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인식하면 그런 감정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 같은 감정으로 고통받는 타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49쪽)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면 당신의 삶에 딴지를 걸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뜯어 말리고 싶은 대상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결혼이 주는 행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려놓지 않는, 이 때문에 원치 않는 길을 계속 가는 사람들이다 (103쪽)


사회는 우리가 발랄하게 틀 안에 갇혀 살길 바란다. 생산성 때문이다. 불균형한 사람들은 유능한 노동자, 소비자, 시민이 되기 어렵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피우고 감정에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들은 국가 의료보험제에 부담을 준다. (113쪽)


사랑이 찾아오면 도망치지 말라. 그러나 사랑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지는 말라. 사랑을 오해해선 안 된다. 사랑이 욕망과 얽혀 있는 한,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의 속성상 사랑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이 빠진 사랑은? 그 사랑은 쉽게 지루해지고 짜증과 분노 같은 불쾌한 감정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곧잘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됐을 때 사랑을 회복하려는 감정노동은 감정 자원의 낭비다. 다른 데 썼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냈을. (126쪽)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주의는 자연화되어 있다. 이상한 것은,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까지도 이 차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134쪽)


왜 성별 차이에서 오는 문제만 문제인가? 무의식적인 동기, 고난의 이력, 존재론적 투쟁 등등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할 이유는 수없이 널렸다. 젠더 차이에만 집착하는 건 인간 존재를 둘러싼 복잡한 변수들을 간과하는 일이다. (139쪽)


성별 고정관념은 거의 언제나 여성의 손해로 귀결된다.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조차 "따라서 여성의 너그러운 이해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151쪽) 


이 대목에서 페미니즘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 보는 게 좋겠다. 흔히 생각하듯 페미니즘은 남성을 무찌르려는 시도가 아니다. 대부분의 페미니즘 연구자와 젠더/섹슈얼리티 학자들은 남성 지배 체제인 이성애가부장제와 이 체제의 수혜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일 수도 있는 남성 개인을 구분하여 바라본다. 여성에게만 인간 존재의 결핍을 강요하는 젠더 고정관념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남성들은 페미니즘 투쟁의 동지다.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젠더 관념을 초월해야만 이성애 여성과 이성애 남성은 물론이고,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 등등도 모두 같이 살 수 있을 것 아닌가. (153쪽)


화장이 여성의 특권이라는 광고 문구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제한된 틀에 여성의 몸을 꿰어 맞추는 여성성의 상업적 구성이 이성애가부장제의 발명품임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167쪽)


오늘날 이성애 여성들은 남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 그대로 포르노 이미지와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포르노를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여성은 자신을 포르노화시키고도 섹스는 하지 못하는 희한한 처지에 놓였다. 이 같은 남성들의 '외도'와 포르노의 여성혐오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할 공간도 없다. 말만 성적인 해방이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것이다. (180쪽)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복잡한 성격을 갖는 경향이 있다. 부서져야 할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운 것이다. (226쪽)


물론 환상 속의 권력일지라도 실제적이 효력이 없지는 않다. 마치 인종차별처럼, 이성애가부장제는 심리적 감정적 물리적으로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 나의 요점은, 이 권력이 근본적으로 현실적인 것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도 결국 결여되어 있고, 우리 모두 다 거세된 존재라는 것이다. 남자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능을 조장하고, 역사적으로 조장해왔을 뿐이다. (242쪽)


어쩌면 우리는 인간 주체로서, 결여와 욕망의 주체로서 어쩔 수 없이 거세하는 타자와 사마귀 사이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타자는 언제나 위협적이거나 사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요점은, 우리가 맺는 관계의 대부분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무력했던 가장 초기의 관계들을 모사(반복)하는 한, 어느 정도의 불안감은 모든 관계에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250쪽)


떄로 삶의 힘든 경험은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르 더 다차원적으로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경험은 우리 존재에 깊이와 뉘앙스를 더하고, 행복과는 다른 인격을 더 깊이 형성한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흥미로워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쁜 감정들과 친숙한 사람은 당연히 타인의 고통에 더 잘 공감한다. (267쪽)


우리가 비판하는 제도는 우리의 저항을 무효화할 만큼의 혜택을 우리에게 준다. 이성애가부장제가 일부 이성애 여성들에게 자기 대상화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은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명관리정치적 지배는 그 지배를 우리에게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와 생명관리정치를 비판하는 우리 모두는 맹렬히 비난하는 그 제도에 연루되어 있다. (272쪽)


나도 사람이 어때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내)결여로 달아나는 방법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쌓지 않는 사람들의 진가는 안다. 물건을 사는 걸로 존재의 공허함을 치유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 우울증이 유행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환경 면에서도 재앙을 가져오지 않는가. 결여를 인간 삶의 어쩔 수 없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일부 나쁜 감정들도 그런 걸로 받아들이는 것이 존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의미 있는 이유다. (276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20.0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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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
"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 내용보기
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 - 마리 루티페미니즘 도서 중 제목이 눈에 띄어 구매했던 책인데 저는 동성 결혼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인상깊었어요. 동성 결혼이 결국 결혼만이 의미있는 관계라는 생각을 강화하고, 결혼 제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점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시간을 넉넉히 갖고 다시 읽어보고싶네요.
"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 내용보기

남근선망과 내안의 나쁜 감정들 - 마리 루티

페미니즘 도서 중 제목이 눈에 띄어 구매했던 책인데 저는 동성 결혼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인상깊었어요. 동성 결혼이 결국 결혼만이 의미있는 관계라는 생각을 강화하고, 결혼 제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점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시간을 넉넉히 갖고 다시 읽어보고싶네요.

YES마니아 : 로얄 z*******m 2020.0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