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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을 다 사용하지 않고도 나의 해외 체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다. 체류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 머묾은 진행됐으며, 이제는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당시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글로벌한 시대에 반하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드넓은 세상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건 진정 비극이 아닌가! 이제는 고인이 된 베네딕트 앤더슨의 자서전을 읽으며 더더욱 그와 같은 생각이 강해졌다. 1936년 태어난 이 인물의 삶은 다채로웠다. 중국 쿤밍, 미국 캘리포니아, 아일랜드, 영국, 다시 미국. 자연스레 체득한 문화의 폭이 어마어마할 듯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그는 동아시아(이 말 자체가 다분히 편향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거 같긴 하다.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 이렇게 불리는 국가는 우리의 서쪽에 위치했다.) 지역을 자신의 배움 대상으로 삼았다. 세계대전이 있었고, 대개가 팽창한 제국주의에 제대로 맞서질 못했다. 학문이라 하는 것은 결코 객관적이지 못했다. 힘을 지닌,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서는 나라를 연구한 이들은 쉬이 교편을 잡았고, 종신 교수직을 보장받았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일단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혹 이를 연구하겠다 마음먹은 이들이 있더라도 사정의 열악함을 털어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저자 또한 경험한 바인데, 이들 국가가 외세를 배척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독재 정권은 외지인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다. 오래도록 입국을 금지 당한 탓에 현지인과의 교류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나의 가능성이 막히면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는 걸, 저자는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간 관심 밖이던 타이로 연구 분야를 돌린 게 그것이다. 특유의 성실한 태도가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했을 테지만, 분명 그는 외국어 습득 능력을 타고 났을 것이다. 알파벳 아닌, 같은 아시아 인일지라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언어를 그는 즐겼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말레이어에 대한 그의 평이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 언어 자체가 평등한 특성을 갖고 있는 데다가 어떤 한 인종/언어 집단에도 속하지 않아 정말 좋았다고 했던. 책만 놓고 보았을 때 그가 한글을 배우지는 못했던 거 같다. 책 어디에도 한글은커녕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등장하질 않는다. 대신, 일본에 대한 시선은 살짝 엿볼 수가 있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의 근대화를 재촉하는 요인이라는 식의 해석을 펼치곤 하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의 주장을 이 책에서 만났다. 식민지였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는. 단, 그의 말은 저항 측면에 부합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혼란의 시기에는 되려 외부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강해질 수 있다. 제국주의 외세를 물리치기 위한 단련은 분명 존재했다. 허나 강해지기 위해 그와 같은 몹쓸 경험이 필수였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저자의 주장이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다. 살짝 씁쓸한 내용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늘날 민족주의는 정부 및 (군대, 미디어, 학교, 대학교, 종교 기관 등) 정부 유관 기관의 강력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내가 도구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가의 기본 논리는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 즉 국가 자체의 생존과 권력, 특히 자국민에 대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과거의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달리 다른 나라들과의 연대에는 관심이 없는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만 봐도 중국, 버마, 남한과 북한, 샴, 일본, 파키스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나라의 역사가 그 결과를 보여 준다. 그런 경우 민족주의는 국민들에게 비논리적이고 극도로 예민한 국수주의와 편견을 심어주게 된다. 그리고 대개는 (이 문제에 대해 쓰지 말라! 저것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 등) 다양한 금기와, 그것을 강요하는 검열의 형태로 표현된다. -p251
함께 언급된 나라들이 우리보다 격이 떨어진다며 분노하는 이도 있을 거 같은데, 중요한 건 그들보다 과연 우리가 더 민주적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에 있다. 지난 역사는 다분히 권위주의적이었다. 국토가 반으로 갈렸으므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개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그렇게 국가 안에 하나가 되어야만 했고, 이의를 제기하기가 무섭게 제거당했다. 그것은 뒤틀린 민족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익숙한 것은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지라, 여전히 우린 우리 안의 권위와 싸우느라 분주하다.
저자는 연대를 외쳤다. 우물 안의 개구리 처지에 놓였을 지라도 각기 다른 우물에 속한 개구리들과의 연대는 희망적이라고 보았다. 과연 우리는 그리 하고 있는가. 실체 모를 두려움에 떨며 경계를 경외하고 있지는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