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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언제쯤 들어올 예정인지... 엄마에게 이 세 가지를 말하고 나가는 건 암묵적인 약속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이 정도는 말하고 나가야 엄마가 안심할 테니까.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밖에 나간 자식이 들어오지 않을 때 걱정하는 건 가족으로 당연한 일 아닌가. 엄마가 보여준 이 정도의 관심(?)이 딱 좋았다. 걱정하지만 지나치지 않았고, 자유를 주었지만 관심을 늦추지는 않았을,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만약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이 정도의 마음을 쏟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아이를 키우기 전의 생각이고, 막연하게 여겼던 부모의 입장이었다. 조카를 돌보면서도 그랬지만, 주변의 많은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아이와 부모 입장의 줄다리기가 항상 갈등의 원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마이크와 티아의 아들 애덤은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좋아하던 아이스하키도 더는 즐기지 않는 것 같다. 애덤의 친구가 스펜서가 죽은 후로, 애덤이 변했다. 친구가 죽었다고 마음이 아픈 아이도 이런데, 죽은 스펜서의 부모는 오죽하랴. 그래도 자기 자식이 먼저다. 친구의 죽음은 슬프고 그 가족의 고통도 이해하지만, 마이크와 티아에게는 애덤이 더 중요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이크와 티아는 애덤의 컴퓨터를 감시한다. 아이의 수상한 행동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컴퓨터로 통하는 아이의 일상을 지켜본다. 무언가 수상쩍은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 같은데 아이는 말이 없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애덤이 간직한 비밀을 부모에게 털어놓는 것일 텐데, 애덤은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그래서 마이크와 티아는 컴퓨터로 애덤을 지켜보는 걸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미처 다 풀리지 않는 의문에 관해서는 애덤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로 한다.
그래서 마이크와 티아가 애덤이 털어놓지 못한 일을 알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결과로만 본다면,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라 애덤이 차마 말하지 못한 많은 일을 다 드러난다. 중요한 과정이다. 애덤이 왜 그렇게 침묵해야만 했는지 이유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부모에게는 사춘기 아들을 걱정하는 정도로 시작했던 의문이 점차 생각지도 못한 큰일로 번지면서,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또 다른 부모의 이기심이 끼어들어 문제를 키운다. 물론 여기서 문제를 더 키운다는 표현은 마이크와 티아의 입장에서다. 애덤의 부모로서 챙겨야 할 대상은 애덤뿐이라고 여겼을 테니. 하나하나 밝히다 보니 생각보다 컸던 사건에 다른 아이들이 연루되어 있고, 그 아이들의 부모 입장이 또 제각각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부모라는 이름의 이기심과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둔 부모라는 공통된 작은 교집합만 남아 있었다.
겉으로 보는 가족의 모습은 평온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목한 척 할 수 있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마음을 파고드는 고통이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는 건 그 가족만이 안다. 어쩌면 그들만의 비밀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 비밀은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니까 지켜줘야 할 것과 가족이니까 조금 더 옳은 방식을 택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애증의 감정일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이라고 하면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어느 가정이든 이런 문제들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언젠가 그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가족이니까 배려하고 이해하고 참아줘야 하는 게 있다면, 그렇게 하기 위해 고통받는 가족 구성원도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가족인데 그것도 못 해줘?’ 가족이니까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실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 얹어진 희생이라는 것을 잊는 순간, 그 가족은 금이 간다. 와해한다. 애덤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쌓여갈 때마다, 가족이니까 진실을 덮고 싶을 때마다 그들 사이의 신뢰는 깨지고 상처만 남았다. 그들이 자초한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일만 남았다. 각각의 부모가 짊어져야 하는 숙제가 사실은 그들이 만들어낸 일이라는 것을 감추고, 그대로 지금 이 순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을 거는 것처럼. 닫아버린 아들의 방문을 열어야 하는, 아이의 출생 비밀을 끝까지 감춰야 하는, 딸아이가 겪은 자존감의 상처를 복수하고 싶은, 아들의 고통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일만을 생각한다. 이들 가족이 겪은 비밀의 시간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산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투성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이런 모습이 가족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내 아이를 감싸고 보듬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가족이라면, 부모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주문을 거는 일을 반복한다.
할런 코벤의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몇 편의 이야기로 그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맛을 내면서도 감정을 많이 소모하게 한다. 가족이라는 화두 때문인지, 부모라는 역할의 힘겨움 때문인지, 왜인지... 대한민국이나 다른 나라나 부모는 따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가족을 바라보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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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자살 이후 촉망받던 하키까지 돌연 포기해버린 열여섯 살 소년 애덤. 그들 가족의 집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충격의 ‘그날’ 이후 입을 닫아버린 애덤은 탈선과 가출을 일삼으며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어울리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하던 부모는 아이의 컴퓨터에 감시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휴대전화 GPS를 추적하는 등 위험한 선택을 하고 만다. 아이를 몰래 감시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던 아버지 마이크는 애덤의 휴대전화 GPS 신호를 쫓으며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후에야 뿌리깊이 스며든 파멸의 그림자를 직감한다. 사춘기 소년의 일탈을 막기 위해 시작한 그들의 ‘선택’ 이후 주변 인물들의 비밀까지 잇달아 드러나고, 급기야 무덤 속에 잠재워야 했던 ‘비밀’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모든 가족은 그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당신 가족이 죽음 직전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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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좀 되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쓰네요. 분명 읽을 때는 흥미롭게 끊기지 않고 그자리에서 다 읽어질만큼 몰입했었는데... 이해는 되고, 저리할 수 밖에 없었지 싶긴 한데, 뭔가를 할수록 뭔가가 꼬여가는 느낌이 읽으면서도 자꾸 뒤통수를 때려서... 물론 이야기가 뒷부분이 궁금해지고 사건이 해결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해야 하는 거지만 뭔가가 자꾸 걸리는 부분이 생기는 게.. 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었어요. 시원하다기 보단 조금 목이 메이는 느낌. 그냥 저는 그렇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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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벼랑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상황 자체를 알아채지 못한다. 어둠 속을 헤매다가 벼랑 끝에 거의 다다랐는데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인다." 지루할 틈없이 치밀한 구성에 의외로 드러나는 충격적인 진실.. 경탄하면서 책을 놓지못했다. 먼저 읽었던 숲보다는 임펙트와 여운은 덜하지만 위기에 빠진 현대의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맛깔스러운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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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의 홀드타이트는 기존 할런 코벤의 소설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느낌이다. 스릴 넘치고 속도감 있는 사건들의 전개와 상황묘사, 반전을 거듭하는 스케일 있는 설정등 그간 그의 작품에서 늘상 기대되었던 부분은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비껴나있다. 홀드타이트는 가족간의 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고 전작에 비해 묘사에 치중한 점이 없지 않다. 약간은 지루하고 장황한 느낌마저 들어 아쉬웠지만, 결말까지 가는 짜임새는 놓치지 않았기에 작가의 팬이라면 읽어볼 만한 작품인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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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 중에 한 명쯤은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단 한 명도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두 명의 꼬마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진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악의 없는 선의가 이렇게 무섭다. 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다 용서받는 거겠지. 죽었다는 이유로 다 용서되는 생각이 녹여있는 거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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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스릴러는 너무 안맞는다. 굉장히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뭔가 판에 박은 느낌도 나고... 또한 굉장히 과학적인 지식으로써 풀어나가는 건 좋지만 작가가 자신의 자식을 자랑하려는 느낌도 드는 것 같고... 나는 차라리 북유럽쪽 스릴러가 맞는것 같다.. 미국쪽 스릴러는 내게 안맞는 것 같다는게 확인 된 경우라고 생각한다. 참 유명한 작가라고는 하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