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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어라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님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닥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제치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꼬박 뜬눈으로 날을 샌 후
문 열어라
아버님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 문 다시 닫혀졌는지 어젯밤에도
문 열어라
허형만 시인은 1945년에 태어났으니 해방둥이다. 2018년 지금 우리나라 나이로 74살이니 할아버지다. 고희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지만 새 시집을 낼 정도로 아직도 시를 놓지 않는 현역이다. 거의 20년 전인 1999년에 낸 시집에는 시인이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시집의 서시가 “사랑의 힘을 믿어야 한다 // 스스로를 태우고도 / 남는 게 있다면 그것마저 버려야 / 비로소 우리 가슴에 뜬 / 생명의 별 하나 / 따뜻한 숨결을 내뿜느니.”(「시」) 하고 시 자체에 대해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시에 대한 엄격한 태도는 다른 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 편의 시가 /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 / 나의 온몸은 / 긴장하고 / 한 편의 시를 위한 / 순수의 몸종이 된다”(「한 편의 시가」)고까지 노래하고 있다. “어느 시인이 그렇지 않을까만은 나의 경우도 작품 한 편마다에 목숨을 건다. 시 한 편이 주는 깊이와 넓이와 크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에서다. 우리가 쓰는 언어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것이 시라고 할 때 시로써 살의 저 깊은 곳을 꿰뚫고 거기에서 터져나오는 빛으로 내 영혼을 울려주기를 바란다.”라는 글에 이르면 시를 숭배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싶다.
「흑산도」「겨울 들판을 거닐며」「비 잠시 그친 뒤」「따뜻한 그리움」 같은 시를 읽으면 시인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말이 느껴진다. 시인의 본령은 금방 노래가 될 것 같은 서정시에 있다는 생각이 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시도 여럿이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쓴 시들은 정제되지 않은 슬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 이전의 시 같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용한 시의 절정에 다다르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문 열어라」는 뛰어난 시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정태춘이 그래서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위 시를 노래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