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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아래인 남동생을 돌보며 가사 일을 도우며 지냈던 아동기부터 청소년시절까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또 다른 일상의 굴레로 기능하여 자유를 속박하기 시작했다. 맏이로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봐야 하고 연로한 할머니의 손발이 되어 평온한 가정을 이뤄가는 게 10대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버겁기만 했다. 생계를 전담하던 엄마는 바깥에서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딸에게 하소연 섞인 질책을 서슴지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 가슴에 박힌 가시는 지금도 큰 흉으로 남아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로 만들어 버렸다. 폭언과 폭행으로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그 잔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아 아픔을 준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형과 오빠에게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강민과 미나의 개 같은 날은 청소년 시절 우울함을 더한다. 미래에 대한 꿈을 품고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 보기도 전에 기족의 학대로 무너져가는 그들의 아픔은 잔인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사는 이지러진 가족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강민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가족은 황량한 사막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폭언을 일삼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당한 형은 동생에게 화풀이를 하며 가족 간의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양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버지와 형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폭언이 난무하고 거친 행동으로 소스라칠 때면 찡코는 강민을 달래주던 유일한 가족이었다. 형과 아버지의 싸움에 염증을 느끼던 강민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모두 죽이겠다며 나섰을 때 그를 가로막으며 울부짖는 개 찡코를 숨이 끊어질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팼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외삼촌이 운영하는 지역 정보 신문 전화 상담사로 일하는 미나는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오빠와 함께 지내는 동안 갖은 폭행에 시달려 왔다. 오빠가 미나를 괴롭히자 강아지 머루가 오빠에게 달려들었고 급기야 그녀는 강아지 입을 막고 눌러 죽여 버렸다.
동물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어렸을 적 형과 오빠에게 학대를 받아왔던 강민과 미나는 강아지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찡코를 보내고 마음이 헛헛하였던 강민, 꿈속에 강아지가 나타나 그 앨 사랑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로 고민하는 미나는 개를 매개로 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레 드러내 위로하는 사이 개 같은 날은 조금씩 사라질 기미가 보인다. 아버지와 형이 싸우면 찡코를 데리고 나와 놀던 약수터 옆에서 하마 누나로 불리는 미나와 강민이 만나기로 한 날 강민은 늑골 골절로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학교에서 여자 친구를 소개해 준다는 친구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사실에 화가 난 강민은 그 친구를 폭행하였고, 당한 학생은 패거리를 이뤄 강민을 다시 폭행하는 학교폭력의 악순환이 고스란히 이어졌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오 원장은 강민을 구하기 위해 폭력배에 맞서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강민이 입원하여 치료받는 동안 오 원장은 강민의 가족을 설득하여 상담 기관을 찾아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가족 간의 갈등과 단절의 벽을 조금씩 허물 수 있기를 권했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형과 강민은 상담기관을 찾아 역할을 바꿔 나의 입장에서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형 강수는 아토피를 앓는 동생을 돌보며 지내야 했던 부담이 컸던 데다 동생만 싸고도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동생 강민을 학대하는 행동으로 이어져 왔었다.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며 상담하는 동안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형제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가족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은 아버지는 ‘비폭력 언어 사용법’을 읽으며 언행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두려움에 떨며 지냈던 개 같은 날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인간적인 사랑을 회복해 가는 강민이네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죽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찡코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형은 동생을 위한 깜짝 선물로 찡코를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미나 누나의 힘을 빌려 찡코를 돌려받게 된 날 더 이상 외톨이로 힘들게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얻어터질까 바들바들 떨면서 공포에 짓눌려 자신의 뜻을 저버리는 <<개 같은 날은 없다>>는 제목대로 자유롭게 스스로의 삶을 구상하여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힘들 때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기보다는 서로를 해하며 갖은 상처를 남겨 잔상이 얼룩진 인생으로 물들일 때도 있다. 한 공간에 오래 머무는 동안 소소한 다툼이 충동적인 싸움으로 비화되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쉼 호흡을 크게 하며 상대의 입장에서 이 행동이 최선의 행동인지를 물어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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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안에 오면 따뜻한 기운으로 인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가족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가족에게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가족은 지옥 속의 인물들이 되어 버린다. 폭력도 습관인 것 같다. 한 번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그게 두 번이 되고 습관처럼 되는 것 같다. 감정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아들은 동생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동생은 또 강아지나 다른 것에 화풀이를 할 수 밖에 없다. 폭력이 계속 반복된다. 왜 그러는지 깊이 들어가보면 상처와 눈물이 있다. 그걸 마음 깊숙이 묻어 놓고 다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한다.
다른 이도 아닌 가족의 형제남매간의 폭력으로 인해 폭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폭력의 원인을 살펴보며 그 상처가 얼마나 아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느 한 사람 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 모두가 대화하고 소통해야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집안이 사막같다. 황량한 사막 (71페이지 중에서) 같다고 말하는 중학교 3학년의 강민과 강민의 형 강수 형제, 강민에게 하마라고 불리우는 거식증에 시달렸던 미나와 민욱 남매. 어쩌면 이세상 모두의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형에게 말을 듣지 않는다고 때리고, 형 강수는 강민을 때린다. 강민은 또 집안에 키우던 강아지를 때리는 등 폭력이 반복된다. 강민은 아버지가 밉다. 아버지가 형을 때리지 않으면 형은 자기를 때리지 않을 것이고 자기는 또 애꿎은 강아지 찡코를 때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도 죽이고 형도 죽이고 싶다. 그러다가 강아지 찡코를 죽이고야 만다. 미나, 거식증으로 인해 정신과 전문의 오원장에게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찡코의 사진을 보게 된다. 찡코는 미나의 외삼촌댁 옆집에 있는 키는 크고 삐쩍 마른 소년이 키우던 강아지다. 강아지 사진을 들여다 보던 중 강아지의 까만 눈망울이 그만 미나의 가슴속으로 들어와 버린다. 그 뒤 자꾸 강아지의 말이 들리고 꿈까지 꾸게 되자 미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미나는 잊고 있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본인이 아픈 상처로 인해 해리성 기억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정내 폭력은 집안 일이라며 쉬쉬하는 경향이 많다. 남편이 아내를 때린다던가, 부모가 아이들을 때리는 경우도 이웃은 알고 있지만 남의 집안 일이라는 이유로 관심 보이는 것도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형제간의 폭력은 부모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 형제니까, 형제들은 서로 맞기도 하고 자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녀가 말을 해도 오빠니까, 형이니까 그럴수 있지 하고,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 다른 사람 보기 창피하다며 쉬쉬 하게 되어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가족에게도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으로도 되지 않으면 심리 치료나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폭력에 얼룩져 마음을 다쳤던 강민과 미나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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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핏줄을 나누고 그 안에 있기만 하면 사랑이 흘러넘치는 곳(?),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장 근본적인 사랑이 있는 곳(?)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가족은 그렇게 따스할 수 없기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상 같은 것이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 순간부터 “요이 땅” 사랑이 넘치고 늘 부드러운 시선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에서 가족은 상처투성이고, 날카로운 칼날의 끝과 같다. 화목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각자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고 희생해야지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한 가족이다. 많은 시간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야 가능한 게 가족이기 때문에 화목함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난 뒤 울면서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다. 아픈 두 영혼이 있다. 아토피로 고생하고,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늘 형에게 맞는 강민이. 강아지를 키우면서 위로를 받곤 했지만 그날... 강민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찡코를 사정없이 때려죽인다. 죄책감에 불안한 상태로 학교생활을 하는 강민은 우연히 미나를 만나게 된다. 미나 역시 아프다. 어릴 때 늘 오빠에게 맞고 자랐다. 그 덕에 얻은 것은 하마처럼 뚱뚱해진 몸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찾은 정신과에서 우연히 찡코의 사진을 보게 되고 미나는 찡코가 보내는 신호에 과거 어떤 일을 기억하게 된다. 상처 많은 두 영혼 강민과 미나는 찡코를 통해 어떤 신호를 만나게 되고 가족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데.. 나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어쩜 주렁주렁(?) 열린 형제자매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외동인 친구를 부러워했고, 외로워도 좋으니 온전히 나 혼자이길 바랬다. 한 번도 “내 방”이란 것을 가져본 적 없고, 언니 오빠 동생 사이에서 늘 크고 작은 전쟁이 이뤄지곤 했다. 내가 크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양보다. 언니랑 싸울 때는 언니한테 대든다고 혼나고, 오빠랑 싸울 때는 하나 밖에 없는 남자, 귀하디귀한 아들한테 까분다고 혼나고, 동생하고 싸울 때는 언니라는 게 동생한테까지 이겨먹는다고 혼났다. 매일 혼나고 매일이 전쟁이었던 나에게 가족은 사랑의 가장 밑바탕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벗어나고 싶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던 인간들의 집합이었다. 사랑을 강요하지만 결코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가족. 그런 나도 상처 받은 영혼으로 가족을 만들었다. 그런 아픔을, 한을, 슬픔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나름 공평하고 공정하게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늘 듣는 이야기는 하나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엄마는 형만 좋아해. 이 책에서처럼 나에게는 아들만 둘이 있다.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내 촉이 감지되지 않는 곳에서 혹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싸우고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 입히지 않을까 읽는 내내 마음 한 쪽이 싸늘해진다. 사랑의 가장 기본이라 생각하는 곳 가정에서, 가족에게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싸우고 상처를 입히더라도 서로를 보듬고 안아주고 아픈 마음의 상처를 아무 말 없이 가슴으로 안아주는 여유로움이 없어진 탓일까? 예나 지금이나 가정 내 폭력은 있어 왔다. 하지만 가족 간의 일이란 이유로 우리나라에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폭력조차 버릇을 고친다는 이유로, 혹은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폭력은 폭력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어릴 때부터 폭력을 보고 자랐다면 폭력이 모든 해결의 수단이 될 것이고, 사랑으로 자랐다면 사랑이 모든 해결의 수단이 될 것이다. 가족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다 느끼고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 아플 때는 적극적으로 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픔을, 한을 가슴속에 켜켜이 쌓아 두고 한 번에 터뜨려서는 안 된다. 집 안은 폭력의 현장이 되어서 패고 맞고 소리치고 부수는 개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형한테 맞으면서 속으론 온갖 욕을 다 했다. 나중에 크면 꼭 복수할 거라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형을 때리는 아버지가 더 무서웠다. 형한테 맞고 아팠던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형을 때리는 아버지가 미워서 울었다. (75) 시간이 더 흐리기 전에 드러내야지. 이때껏 그 일에 대해서 기억을 잊고 살다가 다시 찾았으니까 오래 두면 둘수록 점점 상처가 커져요. 용기를 내 봐요. 미나 씨 자신을 위해서 아니 미나씨 한테 평생 미움을 받고 살 오빠와 어머니를 위해서도 미나 씨의 결단이 필요해요. (225) 나의 가족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경쟁에서 이기고 무조건 최고가 되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 아이들의 가슴에 어떤 슬픔이 자리 잡고 있는지 이젠 돌아봐야 할 때다. 그렇게 상처 많은 아이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들... 과연 행복할까? 해피 하우스를 만드는 것. 어렵지 않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알거란 착각은 하지 말자.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드러내고 공유할 때 진정 해피 하우스가 되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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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학교에 이옥수 작가 강연회가 있단다. 이름만 들어보고 그녀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딸 아이에게 책 대여를 부탁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몇장만 읽어야지 하고 책을 펼쳤다가 다 읽어버렸다. 토요일 밤엔 보통은 책을 읽지 않는데, 읽고는 주일 아침부터 비몽사몽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너무나 맛있어서 술술 넘겨지고는 그 속에 빠져 버린다. 게다가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가슴 앵하게 아파오지만, 다독여주고 치유해주는 손길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청소년 소설의 이름으로 된 이야기들 중에 상당수가 열린 결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열린 결말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수도 저렇게 만들 수도 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수 있어 좋지만, 여전히 난 행복한 결말이 좋다. 아이들 책과 청소년 책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청소년 도서로 된 책들은 행복한 책이 좋다.
"녀석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찡코를 죽인 녀석의 이름은 강민이다. 분명 찡코녀석이 '죽여봐, 죽여봐'하면서 놀린 기분이 들어 죽였지만, 찡코가 없는 세상은 강민에게는 너무나 낯선 세상이다. 아토피로 박박 긁어야 할때도 자신을 위로해 줄 이가 하나도 없다. 외삼촌 집에서 기거하며 정보 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는 미나 씨는 거식증 증세가 있는 강민의 옆집사람이다. 그저 스치듯 알았을 뿐인데,미나씨는 심리치료를 받던 중 우연히 정신과 진료실에서 찡코의 사진을 보게 되고 사진속의 강아지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스캔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강이지를 학대하는 그녀석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 그 앨 사랑해' (p.62)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도 있다고 하니 찡코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궁금했던 미나씨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다가 본인도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억이 이렇게 지우고 싶다고 지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얼마나 또렷하게 떠오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하다. 내 경우는 워낙에 단기 기억을 못하니 예전 기억을 떠오르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미나씨는 강아지 사진 한장으로 자신의 어린시절 그녀 역시 강민처럼 사랑하던 강아지를 죽였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강아지를 죽인건 미나씨인데 어째서 강아지를 죽인것과 함께 어린시절 겪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지 미나씨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빠가 밉고 엄마가 미울 뿐이었다. 그저 장난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물고 물리면서 근수를 때리고 또다시 근수에게 맞아서 입원을 한 강민도 미나씨와 다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강민이 본것은 형과 아빠의 싸움. 아빠에게 맞은 후 강민에게 돌아오는 형의 폭력. 강민과 미나씨는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있고 폭력에 주눅든 여린 영혼일 뿐 이었다.
이옥수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녀에 대한 소개글들을 읽다보니 이옥수 작가는 도시 빈민촌, 탄광촌, 산업 현장과 같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10대의 삶을 농익게 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미혼모나 입시 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로 10대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현실감 있게 그려내 우리 청소년 문학의 근육을 탄탄히 키워 온 작가라고 되어있다. 『개 같은 날은 없다』는 형제남매 간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족 내에 잠재된 눈물. 아이들의 싸움은 그저 싸움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강민과 미나처럼 가슴 깊숙하게 그 응어리가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대문 밖을 넘지 못하고 숨겨진 이야기. 서로의 마음이 퍼렇게 멍들어 가고, 우리 가정, 사회는 한 집안의 일이겠거니 넘겨버리거나, 또는 부모의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라 세상에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싸웠나요? 아니, 누나, 누구한테 맞았죠? 누가 누나를 괴롭혔어요?"..."씨이, 우리 찡코도 그렇게 죽었어요...씨, 아버지하고 형이 싸우는데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었어요. 내가 형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데... 녀석이 못 나가게 할퀴었어요. 죽여 봐, 하면서.." (p.258~259)
강민과 미나는 용감하게도 정신과를 찾고 비폭력대화를 시도한다. 용감하다는 표현을 쓰는이유는 알고 있으면서도 어렵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러 다니는 친구가 있다. 강민의 가족들이 찾은 '비폭력대화'를 보면서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아니, 맘속에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자신만의 상처라고 생각을 했기에 자신만이 피해자였는데, 동생이 아닌 형이 되는 순간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 주는 것. 내면에 꽁꽁 숨겨둔 아픔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녹아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꼈던 이들에게 멈추지 말라고, 치유받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것은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문 두드리고 두드려서 열게 하고 서로 안아줘야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또 다른 나의 분신에겐 평화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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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폭력이 아닐까 한다.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그 순간의 쾌감으로 그 화는 조금 누그러지기도 하고, 분노는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영원히’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홧김에 무언가를 때려 부수더라도 그 순간이 지나면 망가져버린 것들을 눈앞에서 보면서 후회하기도 하니까. ‘아, 아깝다.’하면서. 근데 정말 궁금한 건, 처음에는 아깝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게 반복되는 행동이라면 뭐, 익숙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는 거, 아닐까?
주인공 강민이 자신의 강아지 찡코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버지가 형에게 행사하는 폭력, 그리고 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형이 강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강민이네 집안에서의 폭력은 돌고 돈다, 아주 신나게. 입 밖으로 나오는 대화의 대부분은 욕이고, 자신의 꿈을 향해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하던 강수(강민의 형)의 반항으로 역시나 되돌아오는 것은 아버지의 폭력뿐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는 절차인 강수가 강민에게 행하는 폭력. 또 다른 주인공 최미나. 외삼촌이 운영하는 생활정보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도비만의 20대 초반의 여인. 어느 날 강민의 죽은 강아지 찡코의 목소리가 미나씨에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옆집 살던 강민과 미나씨의 교류는 시작된다. 그리고 계속 들려오던 찡코의 목소리를 통해 미나씨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분을 되찾는다. 자신 역시 오빠가 행했던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강아지 머루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폭력이 시작되는 시점과 그 원인, 그리고 계속해서 진행되는 폭력의 방치, 드러내놓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닌 꼭꼭 숨겨두면서 쉬쉬해야할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계속해서 폭력을 낳은 결과로 보이고 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폭력이 가정 안에서 만들어지고 커지고 계속된다는 점이다. 강민 형제나 미나씨 남매나 왜 이들이 싸우기 시작했는지 아무도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습관적으로 계속되는 폭력 앞에서 마치 그것들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 주변의 상황들과, 피해버리면 그만인 시선들뿐이었다. 저절로 나아지길, 그냥 지나면 괜찮아질 일들로 치부해버리고 두 눈 감아버리면 그만인 귀찮을 일일뿐.
자라면서 싸우지 않는 형제 없을 것이다. 꼭 형제들 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부부 사이에서도 싸움은 늘 일어난다. 서로의 생각의 차이, 의견 충돌, 그리고 잘잘못을 지적하는 과정에서도 싸움이나 체벌은 등장할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아무런 표현 없이, 설명 따위 없이 그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은 심각하면서도 있어서는 안 될 문제다. 말문을 닫아버리면 아무런 해결도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빠지기만 하지 좋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족, 그 안에서의 소통은 행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가정의 파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늘 이렇게 같이 얼굴 보고 웃고 떠드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나씨가 자신에게 들리던 찡코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찾았을 때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좋아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금씩 드러내준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동물과의 교감을 읽어갈 수 있는 역할이지만, 사실 이들(강민이나 미나씨)의 삶에서 정말 필요했던 것은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이었으니까. 대화가 아닌 욕설, 토닥여주는 손길이 아닌 거친 폭력으로 가득했던 그들 가족 사이의 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읽어가는 교감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록 폭력으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기억들이 잊은 듯이 싹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쑥스럽게 서로가 내민 손을 잡아주면서 한 마디 건네는 그 순간을 만들어가는 것. 정말 필요했던 것은 그런 것이었는데 말이다.
여전히 소통의 부재는 존재하고 선뜻 누가 먼저 손 내밀 것인지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나아지려 애쓰는 모습들은 보기 좋았다. 조금은 더 긍정적인 나중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웃음도 만들면서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피해가기만 하면 점점 심각해질 일들이 조금씩만 양보하니 썩 괜찮은 이름의 가족의 이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강민이도 미나씨도 지금쯤은 어색한 손을 마주잡고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가 아닌 조금은 환할 내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더 이상 개 같은 날은 없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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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어떤 이들에겐 정겨운 추억이 서린 곳일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의 내게 있어 다락방은 그 어느 곳보다도 무서운 공간이었다. 그 다락방은 안방의 건넛방에 시렁처럼 얹혀 있었는데 어른 둘이 누울 수 있을만큼 제법 넓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체벌을 가할 때 꼭 다락방으로 날 데려가시곤 하였다. 물론 나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락방으로 끌려 올라가는 걸 정말 죽기보다 싫어했다. 평소에는 온화한 편이지만 한 번 화를 내시면 거의 네이팜탄이 터지듯 불 같으신데다가 그것이 사그라지는데도 아주 오래 걸려서 그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온전히 담겨진 매를 아주 매섭게 그리고 오래도록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 다락방으로 올라가던 계단은 모두 다섯 개였다. 하지만 이제 곧 다락방에서 맞게 될 상황에 대한 공포로 내 두 다리는 채 두 계단을 오르기 전에 이미 힘이 모두 빠져 나가 그대로 주저앉기 바빴다. 그러면서 빌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엉엉 울면서. 그 말이 굳어진 아버지의 얼굴에 아무런 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을 알지만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보자는 심정이듯 혹시나 만분의 일 정도의 확률이라도 제발 통했으면 하는 절박함이었다. 내게 다락방은 그런 공간이다. 5촉 전구 하나 불 밝히고 있는 그 곳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종아리와 엉덩이를 마치 할퀴듯이 내리치는 매질을 감내했던 공간.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유년의 어둑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곳.
폭력을 경험해보면 알게 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정말로 진리임을. 어떤 수단으로도 어떤 목적으로도 폭력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버지는 날 제대로 키운다는 이유로 때렸고 학교에서는 공부 잘해서 사회에서 성공하라고 때렸다. 어릴 때 당하는 아무리 무지막지한 폭력에도 이유는 있었다. 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서 였다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말을 학교 현장에서 체벌이 금지되었을 때도 들었다. 거기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은 공교육은 훈육의 기능도 중요하다고 하면서 체벌이 없어졌을 경우 아이들이 무질서하게 되면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정당한 폭력이 있다는 의미였었고 그들은 그 이유를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가 그래도 바로 효과를 가져오니 어쩔 수 없다.'하였다. 어찌보면 우습다. 타인을 위한다면서 그걸 타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폭력으로 표현하다니.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을 참 많이도 닮았다. 어릴 때 맞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저들은 ' 날 위해서 한다'는 자기가 한 지금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일까?'하고. 도대체 내가 그 말로 이 모든 상처들을 '그래 다 나를 위한 것이니까 잘 이해하자'로 마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듯 말끔히 지워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진짜로?
아마도 그 때, 등으로 다리로 떨어지는 매를 맞으며 나는 분명히 느꼈던 것 같다. 폭력엔 아무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아무리 '너를 위해 하는 것이다' 따위의 변명을 해도 그것은 맞고 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때리고 있는 자기 자신의 양심상 가책을 덜기 위한 치졸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폭력엔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통해 억눌린 자기 감정을 분출함으로써 때리는 자가 가지게 되는 쾌감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당해야 하는 맞는 자가 가지게 되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 그것 뿐이다. 당하는 자의 마음 속에 그어진 생채기는 나무의 나이테가 그러하듯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세월 속에 그 선명함을 차츰 잃어갈 뿐. 용서로도 자기 합리화적 변명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폭력은 가해자에 있어서는 어쩌다 있었던 지나가는 과거가 될 수 있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다락방을 떠올리면 등과 다리로 내리치던 매의 강도와 그것이 내 육체에 새겼던 아픔을 그대로 생생히 되새길 수 있는 것처럼 폭력은 그것이 언제 있었든 늘 '오늘'의 일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교묘한 변명을 해도 말은 채 1시간이 되기도 전에 과거의 일이 되지만 그 말이 달래주어야 했을 상처는 수 십년이 지나도 현재형이니 말로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 정말 그 입이 말하는 것처럼 진정 타인을 위해 행사한다면 해야 할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올려든 주먹을 내리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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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수 작가의 '개 같은 날은 없다'는 가족으로 부터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던 강민과 미나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이 소설이 불편했고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것은 강민과 미나 두 사람이 사실 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절대 지워질 수 없을 거라는 건 알지만 어떻게든 제발 좀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 때문이었다. 폭력이 얼마나 한 영혼에게 오래도록 상흔을 남기는지 알고 싶다면 이 '개 같은 날은 없다'를 읽어보면 된다. 특히나 성인인 미나의 경우는 더욱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릴 때 오빠로 부터 갖은 폭력을 다 당했던 미나는 그 때문에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수동적이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또한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오빠에게 증오만 커져서 가족들마저 기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증오란 바깥으로 내뿜는 독이 아니라 내 안으로 들이붓는 독이다. 증오를 하면 할 수록 파괴되는 것은 증오하는 대상이 아니라 증오하고 있는 나 자신 뿐인 것이다. 미나도 마찬가지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철된 고독과 달랠 길 없는 증오는 그녀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그래서 그녀는 정신과를 습관처럼 찾는다. 이렇듯 폭력이 좀 더 나은 관계를 위해서라는 둥 아무리 좋은 말로 미화되더라도 결국 가져오는 것은 관계의 파괴 뿐이다. 맞은 사람은 그 상처가 늘 현재형으로 환기되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맞은 사람이 가해자를 바라볼 때 가지는 시선은 단 하나 뿐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맞지 않을 수 있을까?'. 폭력이 변질시켜 버린 그와 가해자의 관계는 오로지 그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살랑거리며 굴종하는 이유도 가해자를 피해버리는 이유도 오직 한 가지다. 또 맞기 싫다는 그것 뿐이다. 강민과 미나 역시 그러하다.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를 둘러싼 모든 관계를 단절시킨다. 타인으로 부터, 그것도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로 부터 받게 되는 폭력은 모든 다른 타인들마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폭력이 심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당하는 자로 하여금 고립을 자초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손을 내밀 수 없었던 강민과 미나는 각자 스스로 그 상처와 두려움을 풀 수 밖에 없었다. 강민은 형이 자신에게 가한 폭력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그렇게 가해자의 위치에 서서 자신이 피해자로 당한 상처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지우려 한다. 미나는 앞서 말했던 대로 회피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폭력은 이렇다. 그것은 가해지는 순간 당하는 자에게 오래도록 이어지는 고통의 목록을 만든다. 세상에 정당한 폭력은 없으며 아무리 좋은 말로 미화시켜도 당하는 자에게 새겨진 고통의 항목을 지워줄 수도 없다. 폭력으로 마음에 한 번 박힌 못은 절대 뽑아낼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폭력이 가져다 주는 상흔을 그리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당하는 이들에게 치유를 주려는 소설이기도 하다. '폭력이 야기한 고립과 아픔으로부터 그나마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 이옥수는 이 물음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강아지 '찡코'다. 이 찡코는 강민이 기르는 강아지로 아이들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것을 형으로 부터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던 강민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구해준 것이었다. 여기서 보듯이 '찡코'는 애초부터 강민에게 자신을 파괴로만 몰고가는 형의 지속적인 폭력이 자신에게 내재화시킨 폭력성으로 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뜻하는 존재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찡코는 결국 미나와 강민을 이어주는 존재가 되고 강민은 그 찡코가 열어젖혀 준 이 새로운 만남을 통해 좀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갈 계기를 얻게 된다. 폭력이 각인시킨 상처는 지울 수 없지만 그것이 최소한 자신의 삶을 파괴하도록 속절없이 내버려두지는 않겠다는 마음만은 생길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그건 미나도 마찬가지다. 찡코를 통해 자기와 같은 처지의 강민을 알아가면서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과 받아들이는 걸 배우게 된다. 그렇게 이옥수 작가는 분명히 보여준다. 폭력이 드리운 어둠과 고통의 장막은 먼저 스스로가 나서야만 온전히 걷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아플수록 밖으로 손 내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강민에게 남아있는 최소한의 양심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한 강아지 '찡코'가 강민이 폭력을 휘두로고 싶을 때 스스로 몸을 던져 막아주었듯이 타인으로 인한 상처는 또 다른 타인을 받아들임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옥수 작가는 강아지 '찡코'와 강민과 미나의 관계 그리고 그들에게 온전히 자신을 열어보이며 모두를 품어주는 정신과 상담의 오원장을 통해 이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건 독자인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보내는 간구이기도 하다. 폭력을 당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그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 뿐이라는 것은 우리 역시도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을 그냥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관심을 가지고 보살필 것을 요청한다. 폭력을 끊는 진정한 길은 사랑뿐이다. 아주 단순하지만 원래 영원불변의 진리는 '1+1 = 2'처럼 단순한 법이 아닐까? 미국에 인종 갈등과 베트남 전쟁의 기운이 한창 달아오르고 있을 때, 그렇게 폭력이 일상화되어갈 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써 자연과 인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외쳤던 히피들은 'LOVE & PEACE'를 그 모토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진압하러 온 군인들의 총부리에 꽃을 꽂았다. 그들은 폭력 없는 평화가 오로지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랑의 상징으로 꽃을 가져왔다. 꽃은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해 때리지 않아도 된다. 절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향기가 그 체내로 스며들어 공감을 통한 무장해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의 상징이 꽃이 된 것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먼저 다가가 그의 입장 안에서 공감하고 배려하여 하나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폭력 앞에 꽃을 들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이옥수 작가의 '개 같은 날은 없다'는 위에서 말한바와도 같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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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평화로워야 사회 문제도 덜 발생을 하는 것 같다. 요즘은 특히나 학교폭력이다 청소년폭력이다 하여 점점 갈수록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앞 뒤 가리지 않고 행동을 하여 안팎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가르치는 것이 힘들다. 나 또한 청소년기의 딸들을 키우고 있지만 내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는 녀석들을 의견을 들어주고 맞추어 준다고 생각하는데도 녀석들에겐 늘 부족한 부모로 저희들과 세대차이가 나는 엄마로 간주될 때가 있다.하지만 내 경우에도 비추어보면 한 집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온전한 관계,평화롭거나 아이들 앞에서 이미지만 행복한 부부가 아닌 정말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렇게 생활하는 집의 아이들은 삐뚫어나가는 경우가 드문 듯 하다. 가정이 곧 단란하다는 것이다.
강민 강수 두 형제를 키우며 있는 가스배달을 하는 아버지는 집에서 툭하면 폭언에 큰아들인 강수와 치고 박고 싸우기 일쑤이다. 그 화는 고스란히 강민에게 내려오고 강민은 애꿎은 찡코에게 되풀이 된다.그러다 정말 강민이 일냈다. 그날도 형이 오토바이 사고를 내고 들어와 아빠와 치고 박고 싸우는 소리에 강민의 화 게이지는 점점 올라고 둘을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서 나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으려는 찰나 찡코가 팔을 물었다. 아니 자신에게 대들었다. 화가 난 상태에서 개가 그러니 녀석은 개에게 분풀이를 하듯 개를 때리고 던지고 그렇게 하여 찡코는 급기야 움직이지도 않고 피범벅에 죽고 말았다. 거실에서의 싸움은 찡코의 죽음으로 인해 조용해졌지만 난 뭐냐고,왜 내가 찡코를 죽여야 하는가.찡코는 피부병이 심해 누군가가 버린 강아지를 주워다 강민이 키운 것이다. 그 또한 우여곡절 끝에 집에서 키우게 되었는데 자신이 죽였다고 해도 이 집에서 자신 편인 것은 찡코 밖에 없다. 녀석이 그립다.
강민이 집 밖에서나 공원에서 찡코를 학대하는 것을 본 미나는 옆집에 사는 누나다. 폭식증에 외삼촌 광고회사에서 일하지만 그녀 또한 지금의 거대한 몸이 되기까지는 '오빠' 와의 문제가 있었다. 맞벌이 엄마와 아빠 때문에 늘 오빠에게 맞고 폭력을 당하고 그렇게 하여 그녀 또한 오빠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본다.그런 그녀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책상위에 놓인 찡코의 사진을 보면서 찡코의 알 수 없는 신호를 받게 되면서 옆집 일에 끼어 들게 된다. 왜 깡마른 녀석은 찡코를 죽여야만 했을까? 그리고 왜 그집은 날마다 싸움이 끊이질 않을까? 강수와 강민 형제 사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형제가 낯설게 행동하는 것에 그녀는 궁금하다.
말 못하는 '개'라고 하여 주인이 일삼는 폭력의 주범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들 또한 감정이 있고 무언가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다. 독특한 캐릭터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것을 내세워 동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좁게 파헤쳐 들어가면 형제간에 아니 집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하여 다르고 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인간과 동물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가슴에 뭉친 '화' 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 아니 화가 생기게 된 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러면서 살짝 강민의 일상에서 가정폭력은 학교폭력으로 불거질 수 있음을 이야기 힌다. 가정폭력은 바로 사회문제로 커질 수 있는 것, 쉬쉬 덮어버렸던 문제들이 결국에는 곪아 터져서 더 큰 문제로 발전하여 사회를 좀먹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강수에게는 엄마가 없는 대신에 자신이 강민에게는 엄마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한 보호자였던 것이다. 자신의 삶이 없다.늘 어린 동생을 챙겨야 했던 그 시간 속에서 자연적으로 폭력이 행사되기도 했던 것인데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찰로 인해 더욱 겁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악은 악을 낳는 '악순환'을 가져 온 것이다. 아버진 엄마 없이 크는 강민이 불쌍해서 늘 감싸고 돌았는데 그것이 강수에게는 안 좋게 비춰진 것, 그들은 서로간에 대화를 하여 풀거나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폭언과 욕설로 악을 계속적으로 나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 온 것이다. 그것이 강민이 찡코르 죽이게 되고 학교 친구인 근수와 싸우게 되고 점점 너울은 커지게 되고 어떻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아버지, 서로간에 소통과 교감이 없었던 것.그들은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남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잡아 먹지 못하여, 아버지는 큰아들을 큰아들은 동생을 물어 뜯으며 살고 있었던 것,그것이 단지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일까? 엄마 없이도 잘 크는,잘 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 서로를 이해하고 들여다보려 하지 않은 것,역지사지라고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본다면 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서로의 목소리만 키우려고 했지 상대의 목소리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그렇다면 지금,바로 이 순간이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타인의 아픔과 문제를 들여다보면 비로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미나' 씨, 그녀 또한 엄마와도 오빠와도 언젠가는 풀어야 하는 '매듭' 이 있다. 강민네 일을 겪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비로고 보고는 자신 또한 지금 이순간 매듭을 풀어야 함을 알게 되는 미나씨, 그렇다면 찡코는 죽었을까 안 죽었을까? 강민과 강수 그리고 아버지가 원만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그들은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역할극을 통해 문제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 정말 바람직한 방법이다. 문제를 알면서도 회피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강민의 아버지처럼 문제를 파악하고 도망가려하지 않고 모두가 참여를 하여 부딪히려는 자세가 너무 좋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가는,회복되어가는 화목한 가정,아니 교감과 소통이 있는 가정으로 변모를 한다. 나 또한 사춘기의 딸들과 애견을 11년을 키우고 있어서 몇 번이나 눈물이 글썽글썽,가슴 뭉클하던지. 감동이 있고 가족의 문제를 어느 누구 혼자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서서 풀어나가는 자세가 너무 좋았고 결말이 해피엔딩,완전한 가족으로 거듭나서 좋았다. 오월은 가정의 달,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한 달이기도 한데 한 권의 책에서 진한 감동을 전해받고나니 나 또한 딸들에게 전화를 하여 목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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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날은 분명 없다. 왜? 사람은 개가 아니니까, 하지만 개같은 기분이 드는 날은 분명 있다. 이 책속의 이야기는 그렇게 개 같은 기분이 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책이랄까? 왜 그런 기분이 들어야만 했고 또 어떻게 그런 더러운 기분을 씻어 내려 가는지를 열여섯의 강민과 스물셋의 미나씨가 서로의 마음속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주며 뭉클하게 한다. 왜 이런 이야기의 끄트머리는 사람을 울컥하게 해서는 목이 메이게 만드는지,,,
형제지간이나 자매지간이나 서로 자라면서 싸우고 다투는 일이 참 많기는 하다. 서로 원수지간처럼 으르릉 거리기도 하지만 같은 편이 되어주는건 또 형제 밖에 없다는 사실에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가며 그때 일들을 추억으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다툼의 수위가 조금 높은데다 각자 의지할곳이 없어 마음의 병이 되어 버려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죽음으로 내모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첫 장면에서부터 강민이가 강아지와 다투다 강아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끔찍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 괴로움으로 심리적 압박감에 자신의 아토피가 더 심해지고 자꾸만 더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와의 참혹한 다툼으로까지 번져 정신병원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아빠와 형의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보며 자란 주인공은 여지없이 그 날벼락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주워다 기르게 된 강아지를 발길질 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죽음으로 몰아 넣기까지 한 것이다.
스물셋의 미나씨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데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증에 시달리다 가게 된 정신병원에서 어느날 우연히 강아지를 안고 있는 옆집 남자 아이 강민의 사진을 목격하고 그 사진속 강아지에게서 그 남자아이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받게 된다. 그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과정에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아픈 과거를 떠올리고 그 남자아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더더욱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실은 미나씨 또한 자라면서 오빠에게 이유없이 구타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며 자라 자신이 실수로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 강아지의 죽음을 기억에서 지워버린 채 마음의 병을 얻어 그동안 그렇듯 힘겹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 강민을 만나 강아지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면서 서로 얼굴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과 똑같은 괴로움을 겪으며 자랐다는 사실에 감정이입이 되어 한바탕 울기에 이른다.
집단 폭행으로 정신과 의사와 함께 입원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강민의 가족은 점 점 달라지게 되고 미나씨 또한 자신이 내내 끌어안고 괴로워했던 마음속 짐을 털어놓기로 결심하게 된다. 강민의 온 가족이 상담을 받으며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지켜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형 또한 어린 나이에 맘편하게 놀지 못하고 자신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형은 자신의 철없는 행동들이 얼마나 동생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티비에서 온가족이 집단 상담을 받으며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오열을 터뜨리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가족이지만 그 마음만은 남보다 못해 서로 상처입히고 오해하게 되는 가족! 헝제는 싸우면서 큰다지만 싸우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건 그것이 악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철없는 아이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처럼 가정은 파탄의 지경에 이르고 형제자매 또한 서로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상처 입은 마음을 둘 자리가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참 가슴아프게 한다 .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가정폭력이나 청소년폭행 사건등이 바로 가정환경의 문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제는 우울증이 감기와 같은 종류의 것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것이 부끄러운것이 아닌것처럼 가족간의 불화가 심하다면 가정상담을 받아 보는 것 또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가족이 서로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부끄럽고 불행한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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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 / 비룡소
최근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까지 하는 아이들이 소식을 접하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이라 아픈가슴을 뭐라 표현하기 참 힘들다. 이런 학교폭력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지만 서로 챙겨주며 의지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가정에서도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접하는데 그걸 가정의 문제로 생각하고 덮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런쪽으로도 확실한 대책들이 쏟아져 나와야 할 것 같다.
녀석이 죽었다! 난 지금도 내게 달려들던 녀석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주인공 강민 그리고 그의 형 강수는 형제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며 지내야 하는 형제지만 이들의 관계는 누가 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는 관계이다.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문제점이 있으면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해결하는 방법이 서툰 가족 일방적으로 강압적인 아버지와 자주 부딪치는 형의 모습이 정말 싫었던 강민~ 그렇게 조금씩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조금씩 쌓이고~ 쌓이게 된다.
가정마다 분위기가 있어 어떤 가족은 둘 이상만 모여도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밤새고 이야기를 해도 즐거운 가족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모인 가족모임의 자리지만 조용하게 식사만 하면서 가볍게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가족들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족들의 관계는 어느 한 사람이 잘한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되는 건 아니다. 모두 함께 진심으로 소통을 원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이다.
폭력은 되물림된다는 걸 우리는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개 같은 날은 없다>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강아지라고 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폭력이 없었다면 형 강수의 폭력이 아니었다면 강민이 그렇게 우발적으로 후회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상처는 누군가가 치료해 주기만을 바라는 것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그 고통의 상처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남에게 받는 상처보다는 주위사람 바로 성장하면서 가족에게 받은 상처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책을 접하게 되니 일방적이 소통이 아닌 진심을 나누는 소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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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되는 경쟁상대는 형제,자매,남매중의 한사람일 경우가 많다.먼저 태어난 아이는 그 아이대로의 상실감이 있을테고 나중에 태어난 아이는 또 그 나름의 상실이 존재할것이다.태어난 순서에 의해서 아이의 독립성이라던가 성격이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또한 존재하는것으로 알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형제자매간의 갈등으로 고민을 하는경우를 종종 보게되는데 딸과 아들 남매를 둔 나의 경우에는 다행히 큰 갈등은 없이 자라준것 같다. [개같은날은없다]에 등장하는 강민이와 강수 미나남매의 갈등과 대립상황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의 상황상 큰아이에게 아무래도 작은아이를 부탁하는 경우가 잦았다. 큰아이라봐야 저도 어린아이였는데, 동생을 잘데리고 놀아달라는 말이 지금 생각하면 부채로 남는다.친구들과 한참 뛰어놀고싶었을 나이였는데, 고사리같은 제손에 저보다 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놀았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해진다. 그 시간들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동생이 제누나라면 끔찍하게 위한다는것과 남매간의 우애가 조금 더 깊게 자리할수 있었다는것, 그럼에도 이 미안함은 오래도록 남을것같다.
경제가 불황일수록 가정폭력이 증가한다는 통계를 본 기억이 있다. 사는것이 힘드니 화가 증가할테고 그 끓어오르는 화를 마땅히 표출할곳이 없으니 가정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증가한다는것이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또다른 대상을 찾아서 폭력의 희생양으로 삼을것이고 그렇게 폭력이 도미노처럼 번져가는 사회현상과 맞닿아있는것 같다.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위해서는 상담을 통해서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집안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폭력에서 벗어나기위한 실천을 하는 강민이 아버지의 노력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것처럼 일단은 가정에서 폭력을 몰아내기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아버지는 형을 때리고 형은 동생을 때리고 동생은 강아지를 때린다. 반복되는 폭력의 고리에서 가장 연약한 대상은 강민이가 키우는 강아지 찡코일수밖에 없는데 강민이의 형의 폭력이 찡코의 반항과 더불어 더 깊어진다는것을 알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일이 일어났다. 찡코는 강민이에게 가장 소중한 동생이었는데, 의도한일이 아니었지만 강민이는 자기손으로 찡코를 죽게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근수네패거리가 작정을 하고 강민이를 바보로 만들었을때 평소같으면 그냥 넘겼을 그 시간을 견디지못하고 강민이는 주먹을 휘두르고 말았다. 상당기간 폭력에 노출되어있던 강민이는 아버지가 형 강수를 때리는 그 시간들이 힘들었고 아버지의 폭력에 잔뜩 화가 난 강수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야한다는게 화가났다. 조용히 조금씩 조금씩 강민이의 영혼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외삼촌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미나는 거식증과 폭식증을 동반하면서 하마같은 몸을 가지게되었다. 그런 미나의 눈에 애꿎게 강아지에게 자꾸 화풀이를 하는 강민이가 보였고 정의의 사도라도 된양 그런 강민이를 말리던 미나는 강민이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현장에 할말을 잃고 뒷걸음질친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미나는 강민이의 개 찡코가 보내는 신호를 받게된다. 무시하려고 해도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참을수없던 미나는 강민과의 약속을 잡고 찡코가 강민이에게 보내는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왜 하필 찡코가 보내는 신호가 다름아닌 미나에게 전달되었을까...
강민이와 미나는 닮은꼴의 인생이었다. 강민이 강수의 폭력에 시달리다 찡코를 죽게만든것처럼 어린시절 미나 또한 오빠의 폭력에 시달리다 강아지를 죽게만든 전력이 있었다. 까맣게 잊고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미나는 어린 그시절의 오빠가 더더욱 미워지고 그런 미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되살아난다. 단지 지켜주려고 했던것인데, 오히려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그 아픈 현실때문에 잊고있었던 그 어린날의 기억들.
오원장을 만남으로해서 강민이네 가족들은 새로운 가족을 꿈꾸기 시작했다. 폭력적인것이 일상생활이던 가족들이 아버지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조금씩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그동안은 서로가 싫다고 외면하려고만 했던 형제간의 갈등이 심리극을 통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화해의 길로 접어든다. 강민이는 강민이대로 강수는 강수대로 저만의 입장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었지만 강수의 입장에서 본 강민이도 강민이의 입장에서 본 강수도 서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형 강수가 강민이를 위해 준비한 아주 특별한 선물은 형제가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관계로 발전해나갈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런 강민이와 강수를 보면서 그동안 과거에서 도망치려고만 했던 미나 또한 이제는 그만 어린날의 상처와 마주할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강민이형제와 미나남매의 경우에는 폭력이라는 형태로 갈등상황이 표현되었지만 굳이 폭력을 동반하지않더라고 형제, 자매, 남매간에 갈등은 존재할것이다. 갈등이 꼭 나쁜쪽으로 발전하는것은 아닐테지만 갈등이 심화되기전에 보다 건강한 쪽으로 해결의 방안을 찾기위해서는 가족간의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입장만 내세우기보다는 역지사지의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