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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위계질서와 네트워크 조직의 대결의 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개인(개체)가 활성화된 세상에서 위계질서는 약화되고 네트워크가 위력을 발휘하여 사회의 안정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네크워크 속의 위계질서가 똬리를 틀어 안정된 조직이 될 것인가?
1.역사는 광장과 타워의 전장터: 종교개혁과 자스민 혁명처럼 네크워크 조직의 힘이 드러난 사건이다
2.네트워크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 주요한 변환기에 등장하는 민초들의 힘의 결집, 새로운 사상이나 아이디어의 확산 통로로 이용되었다
3.저자의 보수적인 관점을 엿볼수 있는 네크워크 조직의 문제점들입니다 무질서가 질서로의 회복은 위계질서의 도래를 재촉할 것이다
4. 앞으론 문명의 이기(인터넷,모바일 등)로 네트워크 조직은 단속적이고 일시적이 조직이 아닌 상시 조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이 이어질까?.
5.역사상의 네크워크 시대를 대표하는 두개의 사건 밑바탕엔 인류의 역사속에서 보이지 않는 개인(개체)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6.네트워크에서 얻는 지혜: 결코 잠들지 않는 네크워크의 동태성과 창발성을 가진 복잡계로 진화가 가능함을 함축하고 있다
7. 우리의 역사속에는 가문, 문중, 씨족 등 네크워크 조직이 역사를 장식하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가 성숙화되면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8. 조선, 명청의 역사를 대비해 보면 유사한 사건들이 왕조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분명 역사속에서 숨기는 것이 있을 것이다 조선의 동학과 청의 태평천국의 난도 또한 숨긴 역사속에 동일한 사건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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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 퍼거슨은 보수주의자다. 과거를 보는 역사학자라서 그런가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보수주의자가 아닌 역사학자도 많다.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그런 것이다. 그런 보수주의 역사학자가 네트워크를 보는 시각이 궁금했다. ‘프리메이슨에서 페이스북까지, 네트워크와 권력의 역사’라는 작은 제목은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프리메이슨이라는 가장 은밀하면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조직과 현재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 사이의 역사를 쓰고 있다는데 과연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를 네트워크의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네트워크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種)으로 분화하면서 다른 개인과 관계를 맺으며, 조직을 이루며 지금까지 왔다. 바로 그게 네트워크다. 물론 우리가 21세기에 말하는 네트워크(말하자면, ‘소셜 네트워크’)와 그런 일반적인 의미의 네트워크가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인간은 네트워크를 이루는 동물이다.
그러나 니얼 퍼거슨이 현재의 소셜 네트워크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조직을 네트워크적인 것과 위계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을 때, 그동안 역사 속의 대부분의 권력이 위계적이었지만, 지금은 그 위계가 붕괴되면서 네트워크적으로 변화한다고 했을 때에도 위계적인 조직은 네트워크 조직의 한 형태일 분이라는 것이 바로 니얼 퍼거슨의 관점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를 뒤진다.
그렇게 그가 뒤져 찾아낸 역사 속의 네트워크에는, 단명했지만 후에 프리메이슨과 같은 은밀한 조직의 원형이 된 일루미나트에서 시작해서,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쇄공들, 프랑스 혁명의 계몽주의자들, 미국 혁명(독립)을 일군 혁명가들, 로스차일드 가문, 대영제국의 일꾼들, 히틀러, 헨리 키신저, 다보스, 알카에다, 트럼프 등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저커버그의 페이스북도 포함한다.
그는 네트워크의 시대가 절대 유토피아의 시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망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도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다.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 제국들이 평평한 세계를 얘기하지만, 그 평평한 세계에서 우뚝 서서 돈을 쓸어모으는 존재가 바로 저커버그 같은 인물이라며 쓴 소리를 한다. 이는 트럼프에 대한 태도와 상반된다. 트럼프의 저열했던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고는 하면서도 평가하지 않으며 그의 성공 요인들에 대해서 집중한다. 이 역시 네트워크 자체로 어떤 가치를 갖는 게 아니며 그 미래조차 그렇게 안심되지 않는 예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가? 그는 19세기에 혁명의 물결로부터 유럽을 ‘지켜낸’ ‘5대 강국 지배 체제’ 같은 것을 기대하고 제안하고 있다. 아연하지 않은가? 이 네트워크 시대에, 세계가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가는 시대에 오히려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대국들이 더 큰 힘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니. 보수주의자로서 당연한 귀결일까? 혹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회고(懷古)주의자일 뿐일까
그가 담은 많은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흥미롭다(옥스퍼드 출신으로서 케임브리지 출신들을 동성애자, 소련 간첩으로 단순화시킨 것도 포함해서, 페이스북의 아이러니도 포함해서). 그런데 그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렇게 귀결되고 만다니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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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는 위계적 질서와 사회네트워크 사이의 긴장과 갈등 과정이다.세상 모든 네트워크가 위계적 질서라는 기존 권력과의 갈등을 일으키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독자에게 풀어 설명한다. 비망록 등에 나온 사람들 간의 서신 빈도와 강도가 그 근거다. 작가는 이런 하나의 주제를 갖고 책을 써나가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고 표현한다. 세계사를 꿰뚫는 그의 안목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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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되어 온 다양한 계층 구조 간의 권력 투쟁을 세계적인 규모로 바라보고 조명해 본 훌륭한 시도였습니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위계 구조의 질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위계 질서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다양한 네트워크이지만, 그 네트워크가 다시 또 다른 위계 질서가 될 수 있는 아이러니를 봅니다. |